<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영화 [작전명 발키리] 브라이언 싱어

<전쟁의 슬픔> 바오 닌,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3장 타자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

설국열차, 부산행, 스테이션 에이전트
이것이 서구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적 진보(progress)의 개념이다(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와는 다르다). 단수(單數)의 시간. 과거-현재-미래라는 직선적 시간관과 단수의 주체가 시간의 기준을 제시한다. 개별적 인간의 상황마다 ‘10분‘의 의미가 다를수 있는데, 백인 남성 비장애인의 시간을 중심으로 삼아 객관적 시간 개념이 설정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과 지루한 시간은 그 길이가 다르다. 고문당하는 10분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10분이 어떻게 같겠는가. 시간은척도가 아니라 경험이다. 농촌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은 다르다. 장애인의 시간과 비장애인의 시간은 다르다. 이런 차이가 무시되고 누군가의 시간이 기계적으로 표준으로 설정되고, 사람들은 속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발전, 추격, 100미터 달리기, 문명과 야만, 최연소의 성취……. - P211

녹색당에서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구호에 대해 고등학생 당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어른‘ 당원들은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들은 왜 자신들을 현재의 동반자가 아니라 어른의 관점에서 ‘미래‘로 정의하느냐며 항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구호는 "우리 모두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었다. 자신들을 타자화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국열차>나 녹색당의 ‘어른‘(성인 남성)은타자를 정의하고 보호하는 주체의 역할을 자임한다. 그들은 재현의 주체이지, 재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10대들은 말한다. - P214

"우리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야. 당신의 관점에서 우리를 정의하지마." - P215

내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감독 자신이, 예술가 자신이스스로 타자가 될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항상 주체이고, 주체를 구원할 수 있는 대상조차 지정할 수 있는 조물주인가. 여성이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착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새로운 주체는 기차 밖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체는 스스로 ‘꺼지면‘ 안 되는가 자리에서 내려오라. 인류와 지구를 해방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방하라. 팬데믹 시대의 구원은 우리 모두 ‘섬싱(something)‘이 되고자 했던의지를 버리고, 자연의 일부인 ‘낫싱(nothing)‘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갈팡질팡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의지가 부끄러울 뿐이다. - P221

미스터 션샤인, 청연
개인의 삶도 복잡한데, 국제정세가 얽혀 있는 나라를 되찾는 일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원인 프란츠 파농은 민족 해방 투쟁(독립운동)은 빼앗기기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탈식민주의, 즉 포스트콜로니얼(post colonial)은 과거에 식민지배를 겪은 국가들이 형식상의 주권은 되찾았지만 여전히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가해국에 대한 피해 의식, 동일시 욕망, 경쟁심, 원한 등에 시달리고있는 상태를 말한다.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장 ‘웃긴‘ 사례가 ‘코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전에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이 무슨 정체성인가? 같은 주인을 모신 나라들의 운동 경기?
물론 아일랜드처럼 8백 년이나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끝까지 싸워 독립을 쟁취한 국가도 있다. 당연히 ‘코먼웰스‘ 회원국도 아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인도나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영국의 지배를 받은 국가들도 내부 구성원의 생각이 같지않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친미(親美), 반미(反美), 숭미(崇美), 용미(用美)·····… 다양한 입장을 지닌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 P230

기억의 전쟁
이 글 서두에 인용한 이야기는 나의 고통을 대변한다. 내가생각하는 페미니즘은 기존의 정치적 대립 구도가 누구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진상 규명이나 진실보다는 누가 협상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지, 누구의 관심사가 명확히 표현되지 않는지, 누구의 이득이 표명되지 않는지, 누구의 진실이 발언되거나 인정되지 않는지, 우리가 놓치고있는 진실을 찾아내려 한다. - P244

탈식민주의 이론가 호미 바바의 말을 빌리면 기억(re/member)은 사지(四肢)가 재조합되는 환골탈태의 과정이다. 기억은 기억하는 자에게 몸의 변태를 요구할 만큼의 고통스러운일이다. 베트남에 대한 사과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로 변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가.
서두의 인용문처럼, 문이 열리고 내면의 모순이 드러나면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을 하기는커녕 나 자신에게조차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랬다저랬다 하고 뭉개버리고 만다. 상황에 개입된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보호하고자 진심을 말하지 않는 한편, 누가 자기 진심을 읽으려고 하면 상대가 마음에 드는 가장 위쪽 상태만 드러내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의식의 수풀 안에 감춘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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