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녹평시선 1권.

녹색평론사 신간 시집이 왔다. 나뭇잎 무늬 표지 맘에 든다.
김명수 시인 몰라서 검색해 보니 시인이자 동화작가, 번역도 하시는 분이다. 번역하신 책 중 그림책이 눈에 띄어 찾아보니 얼마전에 읽은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그림책이다. 도서관에서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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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8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저의 머리를 또 쥐어뜯게 만드는 미스테리의 여인 에밀리, 이렇게 그림책도 있군요. 저도 도서관 가면 찾아봐야겠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1-18 21:48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그림책이니까요^^
 

저기 예배당과 회관과 초록빛 운동장이 있고 수도원처럼 보이는 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신에게 그것은 예전에 다닌 이튼 고등학교나 해로 학교이고, 당신의 모교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이며, 갖가지 기억과 무수한 전통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아서 교육 자금의 그림자를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교실의 탁자이고, 강의실로 운행되는 승합 마차이며, 자신은 교육을 잘 받지 못했음에도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코가 붉고 체구가 작은 여성이고, 옷을 사고 선물을 주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라고 받는 연간 50파운드의 용돈입니다. 아서 교육 자금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마술을 부리듯 풍경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옥스퍼 - P179

드와 케임브리지의 고즈넉한 안뜰과 그것을 둘러싼 건물들이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에게는 종종 구멍 난 속치마라든가 차가운 양고기 다리, 그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임항 열차로 보입니다. 문지기가 그들의 면전에서 꽝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아버리는 동안 말이지요. - P180

다행히도 ‘교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교육’ 항목에 해당되는 한 분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와 인간의 심리적 동기에 대한 이해로서 심리학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용어에서 과학에 대한 연상을 배제한다면 말이지요. 유사 이래로 1919년까지 우리에게 개방된 유일하고도 위대한 직업이었던 결혼을 통해서, 우리는 더불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인간을 고르는 기술에 있어 약간의 재주를 익혔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양성은 여러 가지 본능들을 다소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여성이 아닌 남성의 습관이었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습성이든 우연히 습득된 것이든 이러한 차이는 법과 관행으로 더욱 발전되어 왔습니다. 역사상 인간이 여성의 소총에 맞아 쓰러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짐승을 살해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요.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 P181

만약 당신 직종의 남성들이 단결하여 어떤 것을 요구하고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면, 영국의 법령은 집행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 직종의 여성들이 똑같이 한다면, 영국의 법령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우리는 같은계층의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할 뿐 아니라, 노동 계층의 여성보다도 무력합니다. 만약 "당신들이 전쟁에 나간다면, 우리는 군수품 제조를 거부하거나 상품 생산을 돕지 않겠다."라고 노동하는 여성들이 말한다면, 전쟁을 수행하기가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질 겁니다. 그러나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내일 모두 파업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공동체 생활이나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부분이 방해받는 일은 없겠지요. 우리는 국가의 모든 계층 가운데 가장 무력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의지를 강행할 수 있는 무기기 없으니까요.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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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씨 이야기
선남은 매일 저녁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비극의 자리에 자신을 가져다놓지 않기‘. 아빠 없는 아이를 가졌다고, 아빠 없이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천지간에 아이와 나뿐이라고, 이런 불행의 문장들은 처음부터 선남의 것이 아니었다. 불행의 문장은 선남의 마음이 물러지거나 몸이 약해졌을 때를 기다렸다가 튀어나오곤 했다. 약한 틈새를 알고 단박에 공격해 들어오는 음험한 문장들을 선남은 경계했다. 지금은 오로지 자신과 아이의 삶에 집중할 때다.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하규의 기억마저 버려야 한다. 선남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시로 되뇌었다. 하규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당장 이 험악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하규가 아니라 선남과 아이였으므로. - P219

그동안 용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무모함과 무식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숯처럼 달아올랐다.
- 봄의 왈츠 - P236

온은 이마를 찌푸리며 나를 탓했다. 간절히 기다리던 일이 무산되었을 때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짜증이 솟구친 나는 율을 두둔하는 온에게 버럭 화를냈다. 간절? 고작 그런 일 따위에 간절하다는 말을 붙여? 네가 자꾸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철딱서니 없게 굴잖아! 너는 개새끼처럼 며칠 예뻐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네가 망쳐놓은 애 버릇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나뿐이라고! 온이 단박에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눈치 빠른 율이 분위기 수습에 나섰을 때야 나는 또 아이한테 감정노동을 시켰구나,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 셋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고 어색하게 호텔을 나와 오도리공원으로 걸어갔다.

이게 저승길을 환히 밝혀준다네. 이렇게 일주일 간격으로 봉숭아 물을 들이면 손톱에불이 들어 나중에 죽으면 저승길을 밝혀준다네. 내 팔자에 저승길을 마중 나올 살뜰한 부모도 없고 애틋한 남편은 더더욱 없으니 내 저승길은 내가 미리 밝혀야지 싶어서. 돈도 안 들고 얼마나 좋으냐? 안 그러냐, 이년아? 그러면서 엄마는 또 징그럽게 깔깔 웃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뭔가를 참으며 엄마의 손에 둥글게 빚은 봉숭아 반죽을 하나씩 올렸다. 그때 내 안에서 치밀어 올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순도 높은 분노만은 아니었기를, 백반 가루 같은 연민이 조금은 섞인 마음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제야 나는 궁금해진다. 내가 스무살에 집을 떠난 이후 엄마의 봉숭아 물은 누가 들여주었을까? 엄마가 딱히 사랑하지 않았지만 미워하지도 않으며 짐승처럼 풀어 키웠던 어린 남동생들 중 한명에게 부탁했을까? 서울로 떠난 후 나는 엄마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본적이 없다.)
-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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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임은 인문학, 문학, 역사, 건축 공부 모임이었고 답사, 탐방, 견학 모임이기도 했다. 살림과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굳이 만날 때마다 모임의 과제를 정하고 실행에 옮겼던 건 아마도 우리가 시간이 남아돌아 한가롭게 놀러 다니는 유한부인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디 한번 증명해보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같이 증명의 압박을 느꼈다.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 P115

히읗의 요실금 역사는 일학년 여름방학 농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역시 니은이 곁에 있었다. 농사일을 도우며 ‘노동의 신성함‘이나 ‘민중의 위대함‘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동이 트기도 전에 담배밭에 나가 키만큼 자란 담뱃잎에 팔을 긁혀가며 일하다보면 너무 덥고 힘들어 욕만 늘었다. 노동은 신성하기 전에 일단 힘들었고 민중은 그 힘든 노동을 견디고 버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기보다 죄책감만 자극할 뿐이었다. - P181

저 아이들은 어떤 과정에서 강간을 응징의 한가지 방법으로 학습한 걸까? 디귿 선배를 비롯한 동아리 남학생들은 왜 저들의 미숙한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똑같은 수준으로 행동하는 걸까? 어쩌자고 히읗과 니은은 누군가의 사냥감이자 누군가의 수호 대상이 되었을까? 이를 악물고 참담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옆에 앉은 니은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씨, 오줌보 터지겠네. 순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요의가 단박에 히읗을 덮쳤다. 히읗의 오줌보야말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 물속을 걷는 사람들 - P183

그 할머나는 담장에 짐승이 그려진 다음부터 늘 꿈자리가 사나워 베개 밑에 부엌칼을 넣어두고 잠이 든다고 했다.
아유, 짐승은 싫어. 사람도 지긋지긋한데. 꼭 꽃을 그려요, 응? - P197

너 그거 아냐? 가난은 팔수록 가난해진다.
소년은 여자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가난이 뭔지도 모르면서.
- 꽃을 그려요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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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지금쯤 흐느껴 울고 있을까. 오종은 차갑게 식어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하는 고등어구이를 공연히 젓가락 끝으로 콕콕 찔러댔다. 심성이 곱고 정의롭기까지 한 아내는 지금 동정심에 버거워하고 있다. 오종은 고등어 눈깔을 푹 찌르며 기도했다. 제이의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철들어 제이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제발 불온한 그들의 바이러스가 자신의 안온한 가정을 더는 위협하지 않기를.
- 여름 감기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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