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임은 인문학, 문학, 역사, 건축 공부 모임이었고 답사, 탐방, 견학 모임이기도 했다. 살림과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굳이 만날 때마다 모임의 과제를 정하고 실행에 옮겼던 건 아마도 우리가 시간이 남아돌아 한가롭게 놀러 다니는 유한부인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디 한번 증명해보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같이 증명의 압박을 느꼈다.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 P115

히읗의 요실금 역사는 일학년 여름방학 농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역시 니은이 곁에 있었다. 농사일을 도우며 ‘노동의 신성함‘이나 ‘민중의 위대함‘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동이 트기도 전에 담배밭에 나가 키만큼 자란 담뱃잎에 팔을 긁혀가며 일하다보면 너무 덥고 힘들어 욕만 늘었다. 노동은 신성하기 전에 일단 힘들었고 민중은 그 힘든 노동을 견디고 버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기보다 죄책감만 자극할 뿐이었다. - P181

저 아이들은 어떤 과정에서 강간을 응징의 한가지 방법으로 학습한 걸까? 디귿 선배를 비롯한 동아리 남학생들은 왜 저들의 미숙한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똑같은 수준으로 행동하는 걸까? 어쩌자고 히읗과 니은은 누군가의 사냥감이자 누군가의 수호 대상이 되었을까? 이를 악물고 참담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옆에 앉은 니은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씨, 오줌보 터지겠네. 순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요의가 단박에 히읗을 덮쳤다. 히읗의 오줌보야말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 물속을 걷는 사람들 - P183

그 할머나는 담장에 짐승이 그려진 다음부터 늘 꿈자리가 사나워 베개 밑에 부엌칼을 넣어두고 잠이 든다고 했다.
아유, 짐승은 싫어. 사람도 지긋지긋한데. 꼭 꽃을 그려요, 응? - P197

너 그거 아냐? 가난은 팔수록 가난해진다.
소년은 여자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가난이 뭔지도 모르면서.
- 꽃을 그려요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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