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당신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실은 어떤 의문점들이 생겨서, 기부금을 보내기 전에 당신에게 그에 대한 답변을 요청해야겠습니다. 우선 당신은 돈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임대료를 내기 위한 돈이지요. 하지만 친애하는 부인, 당신이 이처럼 비참할 정도로 가난한 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에게 전문직이 개방된 지 거의 이십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당신이, 케임브리지에 있는 당신의 자매처럼 모자를 손에들고 서서 돈을 간청하고, 돈이 여의치 않다면 바자회에서 팔 과일, 책, 입지 않는 옷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분명 공동의 인간성과 공동의 정의 또는 공동의 상식에 어떤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당신은 길모퉁이의 거지처럼 슬픈 얼굴을 하고과장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집의 침대 밑에 몰래 숨겨둔양말 속에 금화를 안전하게 가득 쌓아두고 있는 걸까요? 어떤 경우든 이처럼 끝없이 돈을 요청하고 가난을 하소연함으로써 당신은 대단히 심각한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수표에 서명하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나태한 아웃사이더뿐 아니라 교육받은 남성도 당신을 비난하니까요. 당신은 확고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남성 철학자와 소설가 조드 씨와 웰스 씨 같은 남성의 질책과 경멸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 P241

"만약 그렇다면, 여성은 공무에 집적거리면서 내세우는 구차한 핑계들을 집어치우고 빨리 개인 생활로 돌아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하원에서 잘 해낼 수 없다면, 최소한 그녀 자신의 가정이라도 훌륭한 곳으로 만들도록 하라. 만약 구제할 수 없는 남성 특유의 사악한 장난기로 인해 남성에게 닥쳐올 파멸로부터 그를 구하는 법을 여성이 배울 수 없다면, 남성이 스스로를 파괴하기 전에 최소한 그에게 음식이라도 제공하는 법이라도 배우도록 하라." 이 부분에서 멈추어,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조드 씨 스스로가 구제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을 여성이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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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얼굴 - 은혜씨 그림집 니 얼굴
정은혜 지음 / 보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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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네 집>에서 천방지축이지만 당당했던 은혜씨. 문호리 리버마켓에 가보지 못한, 전시회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멋진 그림집으로 달랜다. 은혜씨 작가님의 개성 넘치는 꾸준한 활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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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띤 채 조용히, 약간은 당황한 듯 저희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안내하죠. 넓은 잔디밭 가운데에는 너도밤나무가 몇 그루 모여 있습니다.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나무들 스스로가 그곳을선택한 것 같아요. 그 자리가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이죠. 안쪽에는 약간 정신없어 보이는 느릅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나무는 바람이 가져오는 별 대수롭지 않은 소식에도 얼마나 소란을 떠는지 끝이 나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아무도 그 나무를 상관하지않지요. 그냥 거기에 혼자 있습니다. 그 앞쪽에는 호수가 있습니다. 호수 안에 가지를 넣고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버드나무 한 그루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떨지 않고는 일 분도 버틸 수 없는 환자 같지요. - P102

앙리: (슬프게) 지나치게 잘 맞지요. 어떤 장소들 중에는 마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행복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는것 같지요. 아름다움은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침묵은 조용히 관찰하며, 고독은 안전하게 숨을 장소를 제공하고, 우정은 세심하게 보살펴줍니다. 그런 장소에 가면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이 그 어떤 장소에 있을 때보다 더 커지지요. 또한 그곳에서보다 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곳도 없습니다. - P103

앙리: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지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프랑수아즈: 저도 지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진데요.

앙리 : 당신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프랑수아즈 : 당신 정말 못됐어요.

앙리: 원하신다면 착하게 굴 수도 있습니다.

프랑수아즈: (침묵) 그건 싫어요. - P106

프랑수아즈: 훨씬 더 크다고요? 좀 솔직해지세요.

앙리: 아니, 동일하지요. 아니, 그것도 아니라 더 작다고 해야죠. 다시금 즐길 테니까요. 그러니 프랑수아즈, 아시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선택하면서동시에 고통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고통은 즐거움의 이 - P108

면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만약 즐거움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다면 질투도 몰랐을 겁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와 나누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네 삶을 투영합니다. 그렇게 해도 성자들은 선하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죠. 하지만 프랑수아즈, 안심하세요. 내 고통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다지만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끝나게 마련이니까요. 작년에 내가 당신 곁에 가지도 못했던 것에 비하면 나도 많은 발전을 하지 않았나요?

- 대화_1 - P109

혼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것이 제게 아무 말도 않더군요, 당신이 저를 그곳에 데려다준 날은 제가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호수를 다시 보지 않고는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파리를 출발하기 전에 그해의 결론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해를 다시 붙잡고, 이해하고, 판단할 힘을 내기 위해서는 그토록 아름다운 물가 옆에서 느꼈던 우수에 찬 감동만이필요했습니다. 그날 밤은 백조들과 거룻배들-풀밭과꽃들 사이의 땅에서부터 풀려난, 석양이 깔린 직후에는특히 더욱 강렬한 실재감으로 다가오는 거룻배들-사이를 하늘이 힘없이 흐르며 지나갔습니다. 옆 사공에게노를 맡긴 채 거룻배 바닥에 누운 젊은 사공과도 같이제 영혼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움직이며 마법에 걸린 물, 이미 밤기운을 받아 서늘해지고 빛이 반짝이는 물의 더없이 감미롭고 영광에 가득한 표면을 경쾌하게 이동했습니다. 물에 닿는 공기는 너무나 감미로웠지요. 영혼은 어떻게 보면 공기와도 같지 않은가요? 그 앞에 얼마나 넓은 공간을 제시하건, 그것은 즉시 그공간을 채웁니다.

- 이방인 자크 르펠드 - P123

그녀가 나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내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를. 하지만 이 중 한 가지는 불가능하고, 저는 다른 나머지는 원하지 않습니다. 창조하신 최초의 빛처럼 저의 눈물을 비추소서.

- 사랑한다는 인식 - P146

프루스트가 방어적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가 속한 부르주아지의 보수성, 더 나아가 전체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동성애 혐오에 기인한 사건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프루스트가 『즐거움과나날』을 발표하기 1년 전,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뒤흔든 오스카 와일드 사건은 프루스트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1895년, 정직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의 대성공으로 오스카 와일드는 지난 3년간 발표한 4편의 희극이 모두 대중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등극한다. 성공 가도를 달릴 무렵 와일드는 명문 귀족 가문인 퀸즈베리가의 자제이자 자신보다 열여섯 살 어린 앨프리드 더글러스와 공공연히 연애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 행위가 범죄였고, 더글러스의 아버지는와일드를 고소한다. 결국 와일드는 유죄 판결을 받고2년간의 중노동형에 처해진다. 이 사건으로 당시 영국은 한바탕 들썩였고, 이웃 프랑스 언론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상세하게 소식을 전했다.

- 해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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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혼자 있게 되잖아요." 마들렌이 황급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관심이 최고라는 격언,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나를 사랑한다"를 거의 무 - P14

의식적으로 떠올리기라도 한 듯 서둘러 덧붙였다. "당신 말이 맞아요. 약속이 있다면 어서 가셔야지요. 그럼 안녕히." - P15

그녀는 계속해서 바쁜 일정이나 밀린 일들에 대해 말하는 르프레를 막으려 했다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지평선보다도 더 먼 곳에 있는 듯한 상대의 가슴 깊은 곳으로 갑자기 시선을 옮겼고, 이내 자신이 하는 말이 헛됨을 깨달았다. 그녀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당신이 매우 바쁘다는 사실을 잘 알겠어요."
저녁 끝 무렵, 그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작별인사를 드리러 와도 될까요?"
그녀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무관심한 이 - P31

나는 그녀에게 외투를 건넸다. 해는 이미 졌고, 사과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옅은 보랏빛이었다. 시들어버린 가벼운 화관, 혹은 후회처럼 고집스러운 파란색, 분홍색 작은 구름들이 수평선 위를 수놓았다. 우수에 젖은 백양목의 행렬이 머리를 성당의 장미 무늬 스테인드글라스 쪽으로 기울인 채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빛줄기는 나무 밑동에 닿지 못하고 그저 줄기 부분에 간신히 매달려 빛의 장식 줄을형성했다. 산들바람은 바다와 젖은 잎들과 소의 젖 세향기를 섞어놓았다. 노르망디의 시골이 저녁의 애수를 이처럼 감미로운 향락으로 감싼 적이 없었으나 나는 친구의 불길한 말 때문에 걱정되어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 P38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파리를 보면 혐오감을 느끼며 피하지요. 반면 미슐레는 해파리의 신비한 색깔에 매료되어 그것들을 모았습니다. 전 원래 굴을 싫어했는데 어느순간 굴의 향이 그것이 거쳤을 바다에서의 여정을 떠올리게 된 순간부터, 특히 제가 바다에서 먼 지방에 있을때면 아주 특별한 진미로 여겨졌습니다.

- 밤이 오기 전에 - P41

"이 방 손님들은 오늘 아침에 떠났습니다." 바닥을닦으며 호텔 직원이 말했다. "남은 향수를 아무도 쓰지못하게 병들을 모두 깨버렸어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것저것 사다 보니 가방에 향수병을 넣을 자리가 없었던 거지요. 정말 너무합니다."
나는 향수가 바닥에 몇 방울 남아 있는 병을 발견하고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다. 미지의 여행자들이 알지못한 채 그것은 아직까지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추억_2 - P60

며칠 전부터 다시 맑아진 하늘 아래 고요해진 바다를 볼 수 있다. 시선 너머 그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9월 바다의 분노나 차분함을 즐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들 8월 말에 바다를 뒤로하고 시골 내륙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게 유행이니까. 나는 바닷가 근처나 트루빌위쪽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그들을 자주 방문하곤 한다. 가을을 노르망디에서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정말 부럽다. 그들이 생각할 줄 알건, 느낄 줄 알건 상관없다.

- 노르망디의 것들 - P65

좋아하는 대상을 존경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니콜의 풍요롭고 그윽한 아름다움에서, 그녀의 너그러운 자비심과 온 존재에서 발산하는 거대한 심성의 매력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 OOO 부인의 초상 - P72

비를 머금은 바람이 향기 가득한 꽃잎을 흐트러뜨리고, 지게 하고, 썩게 만드는 것처럼 친구의 불행에 생각이 미치자 이런 관능적인 생각은 눈물 속에 잠겨버렸다. 우리 영혼의 모습은 하늘만큼이나 시시각각 바뀐다. 우리의 불행한 삶은 그것이 감히 닻을 내리기를 두려워하는 관능미의 바다와 정박하기에는 벅찬 정숙함의 항구 사이에서 정처 없이 표류한다.

- 미지의 발신자 - P85

그곳에서는 빛이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 환하게 비춰서 내게는 무엇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완전한 그 세계는 뜻밖에 놀랍도록 밝은 빛을 머금은 채 온유한 아름다움을 가진다. 나의가슴, 그 시절 쾌활했던 나의 가슴은 지금의 나를 보며슬퍼하면서도 또한 즐거워하며 한순간 나의 다른 가슴, 지금의 병약하고 건조한 가슴에 활기를 띠게 한다. 그때의 쾌활한 가슴은 햇빛이 가득한 그 정원에, 멀면서도 그토록 가까운, 그토록 이상하리만치 내게 가까운, 완전히 내 안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내 밖에, 결코 다시는 다다를 수 없는 막사의 안뜰에 있다. 노래하는 빛에 안긴 작은 마을에서 나는 태양이 가득한 거리를 채우는 맑은 종소리를 듣는다.

- 어느 대위의 추억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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