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엔슬러 <아버지의 사과편지>
<분노와 애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에 해를 입힌 사람에게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을 막 썼단 말이에요. 이런 식의 표현에 대해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일찍이 1978년에 낸 책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앓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죠. 특정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 낙인찍는 은유에 반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은 징벌이 아니라 질병일 뿐이라는 것, 치료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님을 인지한다면 질병 관련 비유를 함부로 쓰지 않게되겠지요. - P171

동시에 글 쓰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여 구체적으로 써야 해요. 쉬운 듯 어려워요. 어떤상황을 세세하게 쓰려면 기억을 복기해 찬찬히 상황을 되짚어보고 무슨 사건을 쓸지 고민하고, 왜 좋고 나빴는지 감정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상당한 노동이 들거든요. 힘도 들고 시간도 듭니다. 또 낱낱이 쓰려니 무언가 부끄럽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뭉뚱그려서 추상적인 글을 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의 글이 관념적이고 모호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게으름’도 한몫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188

글쓰기는 이제 끝내야 하나 계속 써야 하나 영원히 헤매는일 같습니다. 저는 주로 기권하는 심정으로 글을 마쳐요. 이만하면 됐다는 확신보다는 더는 못 하겠다는 몸의 신호를 따르죠.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너무 아프거나, 똑같은 글을 너무여러 번 봐서 토가 나올 것 같을 때 "더는 못 고쳐."하면서 그냥 누워버립니다. 하하. 다른 일도 해야 하니까 더 이상 붙들고있을 수 없고요. 이렇게 물리적 한계 상황까지 끈질기게 내 글을 붙들어보는 것. 과연 완성한 것인지,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 - P204

답하는 이 외롭고 불확실한 과정을 견디는 것. 이것이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완벽함은 집착만으로 안 돼. 놓을 줄도알아야 돼. 너를 가로막는 건 너 자신밖에 없어."
누군가의 표현대로 완벽함은 안 주시고 완벽주의만 주신 신을 원망하며 끝나지 않는 글쓰기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P205

30대였던 제게 좋은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요. 요즘도 인생 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표지가 나달나달해진 저 책이 먼저 떠오릅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표현으로 일깨움을 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힘든 노동을 좋아하고, 신속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좋아하는 너희들 모두는 너희 자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들의 근면이란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 P215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 좋은 책을 읽거들랑 내게 들어온 가장 좋은 것들을 세상에 풀어놓는다는 보시의 마음으로, 글로 써서 널리 나누시길 바랍니다. - P219

여러분도 고유한 문체를 갖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자신의 글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고민해보는 거예요. ‘웃기면 좋겠다.‘ ‘담백한 문장을 쓰고 싶다.‘ ‘서늘하면 좋겠다.’ ‘독자가얻어갈 게 글에 꼭 있어야 한다.‘ 이런 지향점을 두고 글을 쓰다보면 자기만의 세계관과 정서, 읽는 호흡에 따라 고유한 문체가 생기지 않을까요. 문체는 남들이 가진, 좋아 보이는 걸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고유한 본질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자기 탐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P242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락하며 발표했던 연설문의 일부입니다.

영감,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는 사실입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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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행복한 미래

행복 디스토피아
어쩌면의 미래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아일랜드>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제임스 건 <조이 메이커>
어슐러 르 귄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행복을 향한 욕망은 행복대상을 앞으로 보내고, 그 흔적을 따라 길이 형성된다. 마치 그 길을 따라가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 P293

에델만의 논쟁적 주장에 답하면서 내가 진지하게 다뤄 보고자 하는문제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희망, 모든 형태의 유토피아주의와 낙관주의, "어떤 더 완벽한 질서"에 대한 모든 꿈이 미래주의의 논리를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볼 경우 이런 미래를 계승할 수 없는사람들에게 부정성을 위치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에델만은 여전히 긍정을 거부하는 행위 안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긍정하고 있다. 내게는 에델만의 논쟁적 주장에서 오히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점이 보이는데, 여기서 희망은 부정적인 것에 몸담음으로써 열리는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 P295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비판하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출발점으로 하는 정치의 형식 내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기묘하게 왜곡되고 혼합되는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나는 디스토피아 형식들을 통해 이를 살펴보려 하는데, 여기에는 내가 행복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된다. 왜 디스토피아인가? 왜 유토피아가 아닌가? 유토피아가 더 명시적으로 행복한 미래에 대한 전망에 기댄 형식이 아닌가? 물론 유토피아들이 행복한 미래로 환원될 수는 없다. 장 보드리야르가 주장하듯이, "유토피아가 기록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바로 지금에서 나온 것, 오늘의 질서가 놓치고 있는 것이다"(Baudrillard 2001/2006:62). - P297

노동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노동 대상에 부여하지만 그 대상은 그들의 손을 떠나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드는 것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가 아닌 대상에 귀속된다"(106[86]).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이 과정이 "대상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속박"(106)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은 상실한 대상에 매여 있다. 즉, 자본주의 자체가 우울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110[89]).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일종의 "살아 있는 자본"[105]이며 그래서 "욕구를 가진 자본" (120)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은 일종의 "불운"(120)이다. 노동의 전유는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노동자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생산을 하면 할수록, 더 고통받는다. 소외란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일종의 자기소외 - 인 동시에 노동자가 세상에 몸담는 방식을 형성하는 감정- 구조, 즉 고통의 형식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가 곧 자신의 - P303

연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유당함으로써 자신과의 연계를 상실하고 고통받는다. - P304

그렇다면 우리는 <칠드런 오브 맨>에 나오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사이의 전환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이런 전환의 지점들은 도착倒錯의 지점들이기도 한 것인가? 이미 언급했듯이 영화는 나쁜 느낌을 표출하는테오에서 시작한다. 그의 비관주의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에 대한비관주의, 가능성의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다. 우리는 대안에 대한 믿음이 현재의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판타지는 아닌지 추궁해 볼수 있다. 늘 바로 저 "지평 너머" 어느 지점에 닿기만 하면 상황이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라는 믿음은 우리 앞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세상만사를 회피하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세상의 가능성에 대한 불신도 고통을 막으려는 정신적 방어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무엇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잘못될 위험, 실망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실망을 잘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아마도 생존 전략으로서의 비관주의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것을 향해 달려들"면서도 희망을 회피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이룰 희망이 없다고 지레 마음을 다잡음으로써 실망에 대비했던 그런 순간들 말이다. - P321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곧 정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식스 에코의 불안은 끈적거린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안하다. "그런데 왜?"라는 그의 질문은 좋은 느낌을 주는 담요의 온기를 흩트리는 활기 넘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닥터 메릭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처음으로 여기 환경을 의심한 클론이야. 여기서의 자기 삶 전체를 의심하더군."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의 전 시스템은 예측 가능성에 입각해 있네. … 식스 에코는 그것을 약화시키는 한 가지 특징을 보여 줬어. 바로 인간의 호기심 말이야." 보통 궁금증과 호기심은 긍정적 감정으로 간주된다. 이 영화에서 궁금증과 호기심은 좋은 것(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제시되지만, 나쁜 감정에 연결돼 있다. 호기심 있는, 궁금해 하는 주체가 바로 기분 나쁜 주체다. - P342

불행이 미치는 영향을 기꺼이 받겠다는 정치적 의지는 정치적 자유로서 재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불행할 자유로서 자유를 급진화할 수 있다. 불행할 자유가 비참해지거나 슬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P352

물론 거기에 그런 느낌들을 표현할 자유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불행할 자유란 불행한 것에 의해 변용될 자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갈 자유다. 불행할 자유란 행복의 길에서 이탈한삶을 살아갈 자유다. 그 이탈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말이다. 결국 그것은 이탈 행위에 의해 불행을 야기할 자유를 의미한다. - P353

어쩌면 배가 자유롭게 표류하도록 한다면 혁명적 행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행복은 우연에, 우연의 도착에, 어쩌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가능성에 열려 있을 것이다. 우리는 뭔가가 발생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다린다는 건 우연 발생이 제거된 유산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연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유산을 거부한다는 것은 일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할 때, 우리는 우연히 일어나게도 하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우연한 일은 마주침, 마주침의 우연, 우연 마주침이다. 그런 마주침들은 일이 발생하는 토대를 재창조한다. 토대를 재창조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과거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길을 잃으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생각처럼, "앞으로 발생할 것은, 어쩌면, 단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침내 어쩌면perhaps에 대한 생각, 어쩌면 그 자체일 것이다"(Derida 1997/2005: 29). "어쩌면" 안에 들어 있는 "우연"hap이 "행복"happiness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행복한 미래란 어쩌면의 미래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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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West Against East

Japan Re-Open

- When Matthew Perry came back to Japan in 1854, the Japanese agreed to sign a trade treaty with the United States. Not too long after, France, Spain, and other European countries signed their own treaties with Japan.


The Crimean War

- Christians’ holy places (Jerusalem, Bethlehem, Constantinople) in the Turk
- Nicholas I, the czar of Russia wanted to take Constantinople for sailing down into the Mediterranean Sea
- England’s fear of Russia
- France’s fear of Russia
-> France and Britain vs Russia
-> France and Britain were determined to capture the Russian city of Sevastopol in the Crimean Peninsula which was in the north of the Black Sea.
-> In 1856, Alexander, Nicholas’s son, agreed to sign a peace treaty called the Peace of Paris. Russia would get Sevastopol back, but only after returning Turkish land to the Turks. And Russia had to promise not to keep any warships in the Black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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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 Britain’s Empire

Victoria’s England

-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 the Crystal Palace


The Sepoy Mutiny

- the East India Company
- 1856
- a colony of Bri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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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울증적 이주자

일상의 혼종성

영화 <베컴처럼 휘어 차기>
영화 <동양은 동양>
미라 시알 청소년 소설<아니타와 나>
야스민 하이 회고록 <하이 씨의 딸 만들기: 영국인 되기>

다문화주의가 불행의 원인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다문화주의 자체가 불행한 말이 되어 버린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 P224

이 장에서 나는 영국계 아시아인의 경험을 통해 제국의 역사와 행복의 약속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 볼 것이다. 우선은 19세기에 제국의 사명어떻게 행복의 극대화라는 공리주의적 명령을 통해 합법화되었는지,
제국이 어떻게 행복의 역사로 기억되는지에 대한 고찰로 시작해 본다. 그리고 <베컴처럼 휘어 차기>와 <동양은 동양>이라는 두 영국계 아시아인의 영화에서 불행한 인종차별주의가 다문화주의적 행복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살펴보면서 우울증적 이주자의 형상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분석해볼 것이다. - P225

제러미 벤담, 제임스 밀, 헨리 시지윅, 존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공리주의 사상가들은 각기 방식은 달라도 모두 제국의 사명을 지지하면서 행복을 극대화하는 담론에 기대고 있었다(Schultz and Varouxakis 2005 참조). 공리주의는 제국의 상대적 비용과 편익을 "재는" 방법, 가늠하는 방식을 제공했다. - P227

공리주의적 행복을 영국식 도덕의 보편화라고 비판한 니체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그의 비판이 옳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즉, 공리주의에 의해 정의된 행복의 목적은 식민통치의 목적과 일치한다. 행복의 핵심은그런 일치의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 지배는 타인들을 행복 목적에 따라 살게 만들어야 할 의무로 정당화된다. - P229

이런 집착을 "백인 남자가 황인종 남성에게서 황인종 여성을 구해 주는 것"으로 본 가야트리 스피박의 묘사는 지금도 여전히 놀랄 만큼 정확하다(Spivak 1988: 297[462]).
제국은 비천함에서의 해방으로 정당화된다. 비천함에서의 해방은, 비록 그것이 고통을 야기하더라도, 고통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밀은 9권에서 식민주의가 원주민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인도에 가져다주는 선the good이 그런 고통을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 P233

결국 개인이 된다는 것은 영국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되기에서 식민화된 타자는, 호미 바바(Bhabha 1994)가 머콜레이의 이 구절을 예리하게 읽어 내며 강렬히 보여 준, "흉내 내는 사람"mimic man다. 행복의 공리주의적 증진은 흉내의 기술을 수반한다. 식민지 엘리트들을 취향, 견해, 도덕과 지성의 측면에서 우리" 처럼" 만들라는 명령인 것이다. 식민 지배자를 흉내 내면서 타자는 행복해지는데, 여기서 행복은행복감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습관을 획득한다는 의미로, 여기에는 정서적 성향도 포함된다. 즉, 올바른 사물에 의해 올바른 방식으로영향 받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식민 지배자"처럼 된다는 것은 여전히 식민지 주민의 신체와는 뚜렷이 다른 신체에 몸담는다는 의미다. 바바가 보여 주듯 흉내 내기는 혼종 주체를 생산한다. 즉, 거의 같지만 아주 같지는 않은, 거의 같지만 백인은 아닌 주체다(Bhabha 1994: 122[180], 128[186]). 식민지 주민을 위한 행복 공식도 그 "거의"라는 망설임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된다. 거의 행복하지만 아주 행복하지는 않은, 즉 거의 행복하지만 백인은 아닌 주체 말이다. - P236

트레버 필립스는 우리에겐 다민족 사회를 위한 교통법규가 필요합니다」 We Need a Highway Code for aMuti-Ethnic Society(2005)라는 연설에서 제국주의 역사를 그런 측면에서 환기한다. "우리에겐 영국인이 본래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들은 아님을 보여 주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 섬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어우러지는 제국이라는 것을 창조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제국은 영국인이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들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어우러질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제국 자체가 행복한 다양성을 지향하는 영국적 성향,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사랑하고 함께 사는 삶을 향한 성향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 P237

영국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의 선물인 제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식민 지배의 폭력성을 잊으라 혹은 기억하지 말라는 암암리의 명령이 포함된다. - P239

영국 제국은 역사적 현실이었지만 이상이기도 했다. 제국의 이상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기획에 가담한다. 제국의 이상은 제국이 행복의 선물이라는 도덕적 이해를 통해 재편성됨으로써 유지된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런 유지의 결과들이다. - P241

* 커브슛(감아 차기, 벤딩슛, 회전킥, 바나나킥으로도 불린다)을 의미한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주특기로, 먼 거리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피해 날아가는 슛이다. 영화에서 이 기술은 주인공의 목표를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해결해 줄 수있는 대안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휘어 차기의 대상은 공이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나 꿈이기도 한데, 이를 ‘휘어‘ 찬다는 것은 거추장스런 규범들을 ‘깨뜨리기‘break보다는 ‘구부리며’bend 목표를 이뤄 나가는 유연함을 의미할 수 있다. - P242

이 다른 세계, 축구가 약속하는 자유의 세계는 제스를 백인 소녀와 백인 남성과 친하게 만든다. 자유는 백인성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것이다. - P245

우리는 여기서 슬픔을 공유하는 정서적 형식에 대해 알 수 있다. 정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특정 대상, 즉 행복 대상을 향한 정향을 공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대상 역시 같아야 한다. 정서 공동체가 상실의 대상들을 공유함으로써, 다시 말해 대상을 올바른 방식으로 놓아줌으로써 만들어진다면, 우울증자는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 정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가 되고, 이로 인해 계속 잘못된 쪽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자란, 방향 전환이 필요한 사람, 돌려세워야 하는 사람이다. - P255

아버지가 인종차별에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크리켓을 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백인 남성인 것이다. 우울증적 이주자를 다시 국가의 울타리안으로 데려오는 사람은 백인이다. 그의 신체가 우리의 전환 지점이다. - P263

행복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당신이 겉도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제 힘으로는 그 자리에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를 "어디든" 섞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인정은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개인의 추상적 잠재력으로부터의 소외를 수반한다. 그런 자기신념이 없다면 행복은 그가 있는 곳"에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무엇이든의 상실 안에는 "어디든"의 상실도 포함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행복할 자유란, 비록 판타지라 할지라도, 소수만이 있을 수 있는 "어딘가를 환기하는 것임을 상기하게 된다. 야스민이 자기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다는 것은 이 행복의 "무엇이든"으로부터소외된다는 뜻이다. - P285

행복의 약속이 공허함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통합을 원했던 이주자이기 때문이다. - P288

대상은 그것이 행복에 대한 소망으로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역사들의 지속성을 체화하고 있을 경우 불행해진다. 불행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행복이 다양화된다 해도 정치적 기억(즉, 국가적 시간에서의 현재)에서 적대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제거될 수도 없다는 것을 탐색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역사들은 뒤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역사들은 끈질기게 지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역사의 지속성과 함께하는 우리의 불행을 끈질기게 말해야 한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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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4-20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슈팅라이크베컴을 저렇게 한역했군요! 신인배우 시절의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화로 기억해요~

햇살과함께 2023-04-20 13: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키이라 나이틀리 처음 보고 못생겼는데(?) 매력있다? 생각했던 기억이 ㅎㅎ

서곡 2023-04-20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오만과편견도 그렇고 헤벌쭉 웃는 얼굴에 스며들게 되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