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1장 ‘아이보리 스노우’처럼 하얀 백인 아기

그런데 신생아 입양은 미혼모, 입양 기관, 아동 중 누구에게가장 큰 이익이 되는 것일까?
미국의 사회복지사는 백인 미혼모와 유색인 미혼모를 차별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건강한 백인 아동 시장은 탄탄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흑인 아동 입양 시장은 없었다. 유색인 아기를 출산한 미혼모에게는 양육이, 백인 아기를 출산한 미혼모에게는 입양이 권장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과거 자료는 많다. 가령, 오소프스키는 전통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은 미혼모가백인이 아닌 경우, 그냥 아이를 키우라고 했지만 "백인 십대 미혼모에게는 이러한 조언은 하지 않는다..." (Osofsky 1968:58)라고 지적했고, 실러는 1969년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백인 아기중 70%가 입양 보내졌지만, 비백인 아기 중 입양 보내진 아이는5~10%에 그친다는 통계를 제시했다(Shiller 1969). - P115

2부 12장 처벌과 강압

한편 1950~60년대 당시의 입양 중심 관행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다수 발견된다. 예를 들면, 정신과 의사 존 볼비는 사례관리자들에게 "나쁜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를 구한다는 감상적 사치"를 접고, "그 부모를 도와준다며 충동적인 행동"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친생부모보다 더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말라"(Bowlby 1952: 115)는 경고를 했다. 또한, 사회복지사와 사례관리자들은 "부정한 어머니"를 처벌하려는태도 대신 아기와 엄마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집중하라(Bowlbyet al. 1965: 121)고 제안했다. 한편, 1912년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소재 미혼모 시설 ‘레이크뷰‘에 입사한 후 원장을 역임한 사라 B. 에들린은 1954년 미국 노동부 아동국이 개최한 회의에 참석하여 "징벌적 태도를 보이는 사회복지사들"과 "미혼모와 아기의 삶을 더욱 편하게 만드는 법안 마련에 저항적인 사회복지사들에게 낙담했다"(Edlin 1954: 144)고 말했다. 일곱 명의 아이를 입양하고, 1955년 ‘생모‘birth mothe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퓰리처상 수상 소설가 펄 벅 역시 미혼모에 대한 태도를 우려했다. 특히 사회복지사들이 미혼모와 그 아기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재단한다면 이들이 행복한 가정과 지역 사회 생활을 할 기회를 과연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Buck 1956).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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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7장 누구를 위한 "최선의 이익"인가

1960년대 중반, 입양 전문가들의 관점에 주요한 변화가 있었다. 아동이 필요로 하는 것, 즉 "아동을 위한 최선" 대신 입양 부모의 욕구와 희망 사항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관점이 변한 것이다. 아동을 위한 좋은 가정을 찾으려 했던 것에서 입양 부모에게 공급할 아기를 찾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입양 관행에 있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입양부모의 요구와 희망에 상당한 무게 중심이 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Canada 1964.11.6.) - P88

2부 8장 입양 부모 평가?


비록 사회복지사들은 아기가 성숙하고 훌륭한 부모의 가정에입양될 것이라고 미혼모에게 약속했지만, 관련 자료를 보면 많은 경우 입양 기관이 입양 부모 자격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입양 종사자들은 한 여성의 아이를 다른 여성에게 주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고 싶었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입양부부는 ‘훌륭한 부모‘로, 반면에 미혼모는 ‘나쁜 엄마‘로 보여야 했다. 2002년 한 연구자는 이를 ‘행복‘ 입양 모델이라고 칭했다.

‘행복‘ 입양 모델에서, 준비되지 않은 부모라는 말을 (매우 자주) 들었던 친생부모들은 아기 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에서 ‘승자‘이다. 입양은 ... 미혼 임신에 대한 ‘나쁜‘ 평판을 줄여 주거나 없앤다. 일반적으로 친생부모는 아기를 입양 보낸 후 임신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고, 어떤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주로 ‘원치 않는‘ 아이로, 또 ‘사생아‘로 살았을 입양인들도 (아마도) 더 좋은 가정에 보내진다는 점에서 ‘승자‘이다. ... 또한 ‘행복‘ 입양 모델에서 ‘운 좋은 사생아‘로 여겨지는 입양아는 ・・・ 친생부모가 저지른죄에서 보호받게 되므로 ‘승자‘이다. ... ‘나쁜 행동‘의 결과로 나온 ‘나쁜 씨앗‘인 입양아는 ‘제대로 된 가정‘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이익을 본다고 여겨진다. 입양 부모는 … 아이를 키 - P98

울 수 있게 되니 ‘승자‘이다. ... 불임이 아닌데도 아이를 입양한 부모들은 불행한 아이를 ‘구원‘했다는 칭찬과 주변의 관심을 받는다. … 입양부모는 ... 마치 ‘훌륭한 부모‘인 양 존경을 받는다.(Henderson 2002) - P99

2부 10장 "사내들은 다 그렇지 뭐"

1962년 사회학자 빈센트는 사회복지 연례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미혼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의견을 개진했다.

사생아 출산에 절반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혼모와 미혼부에 관한 연구 건수의 비율은 30:1 정도이다. … 미혼모를 대상으로 한 연구만으로는 사생아에 대한 이해는 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미혼모에 대한연구와 동등한 수준으로 미혼부를 연구하고, 관찰하고, 질책한다면 딜레마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남녀의 성적 행위를 판단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전통적인 이중잣대의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몸을 버린 여자‘에 상응하는 남성을 묘사하는 표현은 없다. 우리는 미혼부보다 미혼모를 더 비난하고 낙인화한다. ... 무죄 추정의 관행에 있어서도 미혼모는 불리하다. … 왜냐하면, 배가 불러오며 그 죄를 스스로 입증하게 되니까. 반면, 미혼부에게는 어떤 증거도 남지 않는다... 미혼모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성적으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 미혼모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눈에 띄는 문제들을 제기하지만, 미혼부는 그렇지 않다. 산전 돌봄, 산모를 위한 시설, 그리고 양육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미혼모이다. … 미혼부에게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납세자들이 낸 세금을 쓰게 된다는 증거도, 관습에서벗어난 성적 행위를 했다는 증거도 없다. (Vincent 1962) - P107

쿤젤은 ‘비행소녀‘와 ‘미혼모‘라는 용어에 젠더 차별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몸을 버린 남자‘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한 사회복지사가 물었다. ... 복지사들은 "비행 소녀라 할 때와 비행 소년이라 할 때 같은 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비행 소녀라고 할 때는 보통 성적으로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사회복지사들과달리 과거 미혼모가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복음주의 기독교 여성들은 미혼모를 비행 소녀와 구별하기 위해 언제나 신중했다. (Kunzel 1993:55)

그리고 윌리엄 베넷은 미혼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요즘 혼외 출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대부분은 이러한 아이를 낳은 여성을 향한다.... 거의 모든 경우 미혼모는자신의 아기를 버리려 하지 않는다... 여자를 임신시키고 도망간 이기적인 미혼부는 통계 기록에 잡히지 않는다. 비난하고, 불명예스럽게 여길 사람은 바로 비가시화된 남자들이다. (Bennett 2001: 93)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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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6호 : 유머 인문 잡지 한편 16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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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머란 역시 코드가 맞아야 한다. 웃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
‘루소와 밀레의 우정’에 관한 잘못된 미담이 얼마나 많이 복붙되어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지 루소 연구자가 맞닥뜨렸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이 난다. 우리는 인용의 출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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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_강간 농담 성공하기

그러나 그날 나는 분명하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폭력을 경험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폭력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성찰하는 방향으로만 감각이 발달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타인에게 가학적으로 굴 기회를 노려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위험한인간이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내가 그 농담을 통해 잠깐이나마 어떤 지배력을 만끽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후로 나는 웃음을 탐구하는 사람은 사실은 힘의문제를 탐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 느슨한 도식은 이랬다. 힘을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은 폭력적이 된다. 힘을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은 슬퍼진다. 두 경우가 모두 비극이다. 그 사이 어드메에 희극이, 웃음이 있다. 다음번엔 꼭 웃기고 싶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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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_누구와 웃을 것인가

이 비장미 넘치는 숭고함과 싸우는 사람들의 무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지도자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 다시 등장한 깃발들에서실마리를 찾는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 ‘민주묘총‘,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등이 적힌 깃발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집회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깃발을 준비한 사람 자신의 ‘평범하기 때문에 특별한‘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P53

독재자와 그 지지자들은 자신들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체제가 웃음거리가 되길 원하지 않아서, 또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독재 시도가 현실적 위협으로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농담은 이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를 바라지 않는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러니까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여전히 무기로서의 농담은 필요하다.
여기서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논한 ‘키니시즘(kynicism)‘과 ‘시니시즘(cynicism)‘의 구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21 슬로터다이크는 현대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기능 양식을 시니컬(cynical), 즉 냉소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계몽주의적 방식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키니시즘은 고대 그리스어 ‘개‘에서 유래한 키니코스(Kynikos) 학파로부터 따온 명칭으로, 이 - P54

들의 견유주의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슬라보예 지젝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비장한 측면을일상적 진부함과 맞닥뜨리게 해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이면을 폭로하는 게 키니컬한 절차라고 해설했다. 이게 개를 자처하며 알렉산더 대왕에게 볕을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했다는 디오게네스가 기행을 통해 당대의주류들에게 한 일이다. 즉 시니시즘이 ‘세상을 바꾸려노력해 봐야 소용없고, 어차피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정해진 결론으로 간다면, 키니시즘은 권력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권위의 부재를 증명해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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