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하_누구와 웃을 것인가
이 비장미 넘치는 숭고함과 싸우는 사람들의 무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지도자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 다시 등장한 깃발들에서실마리를 찾는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 ‘민주묘총‘,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등이 적힌 깃발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집회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깃발을 준비한 사람 자신의 ‘평범하기 때문에 특별한‘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P53
독재자와 그 지지자들은 자신들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체제가 웃음거리가 되길 원하지 않아서, 또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독재 시도가 현실적 위협으로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농담은 이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를 바라지 않는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러니까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여전히 무기로서의 농담은 필요하다. 여기서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논한 ‘키니시즘(kynicism)‘과 ‘시니시즘(cynicism)‘의 구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21 슬로터다이크는 현대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기능 양식을 시니컬(cynical), 즉 냉소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계몽주의적 방식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키니시즘은 고대 그리스어 ‘개‘에서 유래한 키니코스(Kynikos) 학파로부터 따온 명칭으로, 이 - P54
들의 견유주의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슬라보예 지젝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비장한 측면을일상적 진부함과 맞닥뜨리게 해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이면을 폭로하는 게 키니컬한 절차라고 해설했다. 이게 개를 자처하며 알렉산더 대왕에게 볕을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했다는 디오게네스가 기행을 통해 당대의주류들에게 한 일이다. 즉 시니시즘이 ‘세상을 바꾸려노력해 봐야 소용없고, 어차피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정해진 결론으로 간다면, 키니시즘은 권력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권위의 부재를 증명해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한다. - P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