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날 먹어봐 - 의료 목적의 식인행위와 사람고기 만두 이야기

12세기 아라비아의 거대한 저잣거리에서는 버려도 아깝지 않을 가방 하나와 돈 보따리를 짊어지고 제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간혹
"밀화인"이라 불리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밀화인이 란 꿀에 함빡 절인 사람의 유해이다. 다른 말로 ‘인간미라 밀과‘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름만 보면 오해하기 쉽겠지만, 꿀에 절인 중동 지방의 일반 밀과와는 달리 이것은 디저트로 쓰이지 않았다. 이 밀 과는 외용약으로 또-이런 말을 해서 유감이지만-내복약으로 쓰 였다. 조제에는 물론 조제자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특이하게도 내용물이 될 사람 자신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 P249

……아라비아에서는 70~80세 되는 노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 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바치기도 한다. 이들은 늘 목욕하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꿀만 섭취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는 꿀만 배설 하게 되고(대· 소변이 모두 완전히 꿀이다) 그 뒤 사망한다. 동료들은 그를 꿀로 가득 채운 석관에 재워놓고 봉인한 후, 겉에다 몇 년 몇 월 인지를 표시한다. 100년이 지나면 봉인을 뗀다. 밀과가 만들어져 있 는데, 사지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났을 때 치료약으로 이용한다. 소 량을 내복하면 즉시 증상이 가신다. - P250

타박상이나 기침, 소화불량, 복부 가스팽만 등과 같은 가벼운 병 증은 며칠이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의 효력에 대 한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용법이나 용량을 정 확히 따진 투약실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바람을 타고 떠도는 소문 에 근거했다. ‘편도선염에 걸린 피터슨 부인에게 똥을 좀 드렸더니 이젠 괜찮아졌대요.‘
104년 동안 의사들 사이에 베스트셀러 참고서 자리를 지켜온 《머 크 매뉴얼)의 편집자 로버트 버크로우에게, 효력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기상천외한 의약품들이 어떻게 생겨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 게 말했다.
"어느 실험에서 25~40퍼센트의 사람들이 설탕으로 만든 알약이 진통효과가 있다고 응답했지요. 이런 결과를 두고 볼 때, 일부 그런 치료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약으로 쓰이게 됐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겁니다."
그는 또 "평균적인 병증의 평균적인 환자가 평균적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을 때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한" 것도 1920년대에 들어 서고부터였다고 덧붙였다. - P257

사체를 재료로 만든 약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요리문 화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자신이 무엇에 익숙해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골수로 류머티즘을 치료하고 땀으로 연주창을 치료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인간의 성장호르몬으로 왜소증을 치료하는 행위보 다 심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우리는 사람의 피를 다른 사람의 몸 에 주입하는 것에는 전혀 혐오감을 품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 한다. 귀지를 약으로 쓰던 옛날 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본초강목》의 1976년도 영문판을 편집한 버너드 리드는 다 음과 같이 지적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활성원소와 호르몬 • 비타민, 질병에 대한 독 특한 치료제를 찾아 온갖 종류의 동물조직을 조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아드레날린, 인슐린, 에스트론, 월경독 등의 발견으로 볼 때, 대상이 주는 불쾌감을 극복해야만 가치 있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 P258

실험에 착수한 우리는 돈을 각출하여, 시립 시체보관소에서 사체를 샀다. 병들어 죽거나 늙어 죽지 않고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골랐다. 이렇게 우리는 두 달 동안 사람고기만을 먹으며 지 냈고, 다들 더 건강해졌다.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회고록 《내 예술, 내 인생》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다. 그는 어느 파리 모피상인이 자기 고양이에게 고양이 고 기를 먹여 고양이 모피가 더 질겨지고 윤기 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1904년에 함께 해부학을(당시 미술학도들에게 해부학 공부는 필수였다) 공부하던 동료 몇몇과 함께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리베라가 이 이야기를 꾸며냈을 수도 있다. 하 지만 현대에 와서도 인간을 약재로 사용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기 때문에 소개한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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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숙_파주

도대체 뭘 했어요? ......정호가요.
현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현철은 짧게 말했다. 그런 것은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모르겠네요. 그냥 매일 그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혔으니까. 아니, 이미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저 새끼 전역하면 진짜다 끝이다. 생각하면서 버티고. 근데 진짜 끝이더라고요. 허무하게. 허무해서 더 화가 나더라고요. 사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도 해요. 근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넘어가면 나는 다음번에 또 이렇게 넘어가겠구나, 하는 생각.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상상하니까 내 다음이 무서워지고, 내가 무서워지고. 무서워지니까 또 밉미치게 밉고. 이해 안 되겠지만 그래서 그랬어요. 전역하고 나서 매일 생각했어요. 목 조르는 생각, 칼로 찌르는 생각.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골라내다보니 이렇게 시시해진 것도 같고. 그땐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삼 년이 어저께 같아요. 그 생각에 묶여서 시간이 안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현철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결혼하실 겁니까?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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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머리만 하나 있으면 돼 - 참수와 회생, 그리고 인간의 머리이식

전신이식과 관련한 학문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화이트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심장이 뛰는 사체의 머리를 잘라내고 거기에 다른 머리를 끼워 붙이려는 사람들은 기증자의 동의라고 하는 커다란 장애물을 해결해야 한다. 신체에서 떼어낸 장기 하나는 비인격적이고 비개인적이다. 장기기증으로 얻는 인도주의적 이익이 장기적출에 따르는 슬픈 감정보다 크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체이식은 다른 문제이다. 낯선 사람 한 명의 건강을 회복 시키기 위해 온전한 신체 하나를 전부 기증할 유족이 있을까?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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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_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두 사람은 잘못된 동작의 예시로 늘 뽑혔다. 둘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총체적으로 문제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몸에 힘을 빼지 못하는 일이었다. 힘을 빼야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다 빼면 안 되고...... 이게 대체무슨 말인가. 희주는 잘못된 답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빼는 거면 빼는 거고, 주는 거면 주는 거지. 그게바로 균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너무 몸에 힘을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바로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면 주호는 자기가 지금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지못했다. 분명 힘을 뺐다고 생각했는데 강사가 소리쳤다. 이렇게몸에 잔뜩 힘을 주면 어떡해요! 또 주호가 이번엔 몸에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강사가 말했다. 아예 몸에 힘을 빼면 안 된다 했잖아요. 코어 잡고 중심은 안 흔들려야지! 주호는 자신의 몸이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장난 기계처럼 오작동하고있는 자신의 몸은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죠" - P86

김기태_보편 교양

땀과 열기와 웃음 속에서 곽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품에 안았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속 ‘늙은 교수‘를 떠올린 날이 있었다. 현실과 괴리된, 정체된, 그래서 화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고 해설되는 이미지. 그 늙은 교수는 적어도 ‘노트를 끼고‘ 강의에 출석하며 밤마다육첩방에서 시를 쓰는 성실한 제자를 두었다. 나는 늙지도 않았고 교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늙지도 않았고, 부분의 판단은 유보했다. - P114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머그잔에는 『노인과 바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 P115

있는 꿈도 없는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했다. 그러나 학생 주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다는,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새 교육정책을 얼마간 환영했다. - P117

‘수업 첫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수업 마지막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다.‘
3월이 지나며 곽은 수업중에 창밖을 자주 보게 되었다. - P122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인간은 굴종을 원해" 운운했던 영화 속 파시스트 악당들을 떠올리며자신이 그런 의심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번은 종료령도 듣지 못하고 잠든 채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을 거라 짐작하며 어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자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짜증내는 기색 없이 입가의 침을 훔치며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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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내가 죽었는지 아는 법 - 심장이 뛰는 사체들, 산 채로 매장된 사람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추적

중환자실 담당자들은 심장이 뛰는 사체가 지니는 모순 때문에 감정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들은 장기회수가 있기 전 며칠 동안 H 같은 환자들을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살피고 치료해야 한다. 24시간 내내 지켜보면서 이 사체들의 ‘목숨을 유지시켜주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뇌가 혈압과 호르몬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혈류 속으로 호르몬을 내보내 지도 못하기 때문에, 장기들을 정상상태로 유지시키는 일은 중환자실 담당자들이 대신 해주어야 한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 의과대학 의사들 팀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장기회수의 심리적 윤리적 영향‘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관찰결과를 내놓았다.
"중환자실 인원들은 사망진단이 내려진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술 을 실시하면서도, 그 바로 곁 침상에 ‘소생시키지 말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붙은 환자가 있을 때 혼란을 느낄 수 있다." - P191

심장이 뛰는 사체를 두고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은 죽음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또 정신이 - 영혼이, 기가, 또는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그것이 - 사라지고 오로지 시체만이 남는 정확한 순간을 어떻게 집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혼란의 연장선이다.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을 죽음의 순간으로 여겼다. 실제로 뇌는 심장이 피 보내는 일을 멈춘 순간부터 6~10분 정도 더 살아 있지만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정밀하게 따지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심장의 활동정지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로 충분했다.
문제는 수 세기 동안 심장이 박동을 멈췄는지 아니면 잘 들리지 않을 뿐인지를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청진기는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발명되었고, 그나마도 초기에는 귀에다 대는 나팔 모양의 확성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익사나 심장발작, 특정 유형의 약물중독같이 박동이 특히 약한 경우에는 아무리 꼼꼼 한 의사라 해도 분간이 힘들었고, 그래서 환자들은 실제로 목숨이 다하기도 전에 장의사에게 보내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 P192

법조계에서 뇌사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의사들보다 시간이 좀더 걸렸다.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를 사망의 새로운 기준으 로 삼고, 그럼으로써 장기이식의 윤리적 문제를 일소한 ‘뇌사의 정의를 조사하기 위한 하버드 의과대학 임시위원회’ 보고서가 《미국 의학협회지>에 실린 것은 1968년이었다. 그리고 법률은 1974년이 되어서야 그 뒤를 따랐다. 이 문제가 대두된 계기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있었던 이상한 살인사건 재판이었다.
살인범 앤드루 라이온스는 1974년 9월에 한 남자의 머리에 총을 쏘아 뇌사상태로 만들었다. 라이온스의 변호사는 피해자의 가족이 피해자의 심장을 장기이식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라이온스의 변론에 이용했다. 피고측은 만일 수술 동안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다면 라이온스가 그 하루 전날에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었겠 느냐고 주장했다. 배심원들 앞에 선 그들은 엄밀히 말해 그를 살해 한 사람은 앤드루 라이온스가 아니라 장기회수를 맡은 외과의사라고 설득했다.
심장이식의 선구자로서 그 사건에서 증언한 스탠포드 대학교의 노먼 섬웨이에 따르면, 판사는 피고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일반적인 사망의 판단기준은 하버드 위원회가 정한 것임을 알려주면서, 그 기준으로 평결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희생자의 뇌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표현대로, "두개골에서 스며나오는" 사진 역시 라이온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라이온스의 살인죄가 확정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이 재판의 결과를 바탕으로 뇌사를 법적 사망기준으로 하는 법을 도입했다. 다른 주들도 이내 뒤따랐다. - P212

사람들은 이성적인 차원에서는 대체로 뇌사와 장기이식이라는 개념을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감정적인 차원으로 가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가족의 뛰고 있는 심장을 꺼낼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장기이식 상담자를 만날 때에는 더욱 어렵다. 환자의 가족 54퍼센트가 거절한다고 한다. 오즈는 말한다.
"그게 아무리 불합리한 생각이라 해도, 그들은 심장을 꺼내는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최후가 될 거라는 두려움을 어떻게 하 지 못하는 겁니다."
사실상 자기가 환자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심장이식 담당의조차도 심장이 펌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때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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