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다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서로를 향하지만, 그 비난의 가운데에 전통적인 ‘가족‘을 이루는 중심, 즉 할아버지, 아빠, 삼촌 들은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관자였다. 서로를 헐뜯고 다투는 여자들 곁에서 바라보기만 하다 한마디 거들 뿐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같은 자식이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돌봄노동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았다. 큰아들이어도, 맞벌이를 하고 있어도, 남자는 예외다. - P105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사라진 나의 이름을 당연하게 여겼던 열일곱의 나와 손주들의 이름을 나이 순서대로 고쳐 쓰던 내가 다른 것처럼, 또 다른 각성의 언어는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 책을 훗날 읽었을 때, 글에 담긴 내 생각이 얕고 철없어 뒤늦게 부끄러워질까봐 조금은 두렵다. 그러나 내 생각이 세월과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두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더 높은 기준을 가질 미래의 나를 기대하며 용기 내어 글을 썼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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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하 작가님 책도 읽어봐야겠당~

알쏭달쏭한 마음을 추스르며 야외 부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가 5분 만에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뭔가 깜빡해서 돌아온 게 아니었다. 다 둘러보니까 5분이었다. 행사장인 옛청주역사공원의 규모는 작았고, (‘역사‘가 ‘history‘가 아니라 ‘station이라는 걸 그때서야 깨닫고 마음이 더 알쏭달쏭해졌다. 그래, 무대뒤로 보였던 저게 ‘역사‘였어…….) 딱히 볼 것도 할 일도 없었으며, 비 때문에 인적마저 없으니 그마저도 천천히 걸은 결과였다. 전혀…… 축제 같지 않았다. - P169

축제라기보다는 공무원들의 숙제 같았다. 악천후와 저예산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셨음은 알지만 태생부터가 지자체와 별 관련 없는,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이었으니 잘못출제된 과제 아니었을까. 다른 축제들은 거칠지언정 ‘이 축제를 왜 여는가.’에 대해 뜨거운 진심의 대답이라도 갖고 있는 반면, 젓가락 페스티벌에는 마지못함의 기운이 팽배했다. 문화도시로 선정된 그해에 일회성으로 열었다면 모두에게 행복했을 축제를 어영부영 꾸역꾸역 끌고 와야 했던 청주와 젓가락의 슬픈 인연도 이제는 끝낼 때가 됐지 않나 싶다. - P182

김혼비를 이 축제로 이끈 것은 8할이 이 대회였다. 닭발이나 생선 눈알처럼 형체가 지나치게 노골적인 무언가는 입에 넣기 커녕 바라보기만 해도 입가에 메기수염이 잡히는 박태하에게는 ‘다른 축제도 많은데 왜 하필!’이었지만, (그는 뱅어포도 수많은 생선 눈이 다닥다닥 붙은 작은 ‘눈알들의 벽‘ 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먹기 힘든 맛 혹은 보기 힘든 모양 혹은 맡기힘든 냄새를(혹은 이 모두를) 지닌 음식들을 차례로 격파하고픈 ‘이색 소망’ (실은 ‘괴소망’)을 가진 김혼비에게 이 축제는 벼르고 별렀던, 버킷 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벼킷 리스트‘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 P188

하지만 김혼비는 이 싸움이야말로 결국 ‘기세’라고 생각했다. 한번 기가 눌려 버리면, 원치 않는 상상력이 발동해 이 ‘음식‘의 곤충성을 각성해 버리면, 애벌레도 메뚜기도 굼벵이도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다. 파이터가 되려면 우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이미지트레이닝을 마친 김혼비는 판매원이 건네는 번데기를 받아 들고는(번데기가 얼마나 크면 이쑤시개도 아니고 나무젓가락에 꽂혀 나올 일인가요.) 한 입 덥석 베어 물었고, "먹을 만해. 별맛 안 나는데 살짝 ‘곤충 맛‘ 같은 게 섞여 있는 느낌이야." 라는 촌평을 남겼다. 베어그릴스가 강림한 듯한 그 기세에 박태하는 다시 한번 오싹했다. - P191

남대천 변 축제장 입구에 서니 올 데 온 것 뿐인데 올 게 왔다는 기분이었다. 인어를 빙자한 연어인지 연어를 빙자한 인어인지 모를 마스코트 조형물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어수선한 부스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동안 스피커에서는 안 그래도 여기 오면 내내 듣지 않을까 예상은 했으나 제목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인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인지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인지 한 번에 맞춘 적이 없고 이 대목을 읽고 난 후에는 헷갈린 적 없던 사람도 이제부터 헷갈릴 바로 그 노래가 울려 퍼졌다. - P213

생태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동물과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콘텐츠들로 바꿔 나가지 않을 거라면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결국은 괴롭히고 죽이는 축제들은 이제 사라지면 좋겠다. 모든 축제에서 물고기 맨손 잡기와 그에 준하는 행사들도 사라지면 좋겠다. 산천어축제 측에서는 "그런 행사들이 없어지면 누가 무슨 재미로 오겠나." 라며 맞서곤 하는데 이말이 본의 아니게 실토한 대로 ‘살상의 재미’가 전부인 축제라면 폐지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P232

기다린 행사가 이거였냐고? 그건 아니다.(성석제 작가께는 죄송하지만 그분도 우리가 이걸 기다렸다면 부담스러우실 것이다.)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진짜 이유. 자, 이름도 찬란한, 두둥, ‘작가 조정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한 발대식’?! - P247

문학기행 중에도, 또 우리끼리 읍내를 거닐면서도 [태백산맥]이 이 고장에 미친 영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축제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굳이 소설 속 내용을 떠올려 연결 짓않더라도 풍경의 곳곳에서 『태백산맥』이 움틀대고 있었다. 다리난간뿐 아니라 가겟집들 앞에도 소설 속 대목들이 붙어 있었고("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요." 같은 문장이 읍내 한가운데에 적힌 동네가 대한민국 어디에 또 있을까. 역시!) 상점 간판의 배경에는 태백산맥 줄기들이 공통 로고인양 그려져 있었다. ‘태백산맥 꼬막거리’ 안팎의 수많은 꼬막정식 가게들, 축제장에 맞닿은 시장에서 쉴 새 없이 팔려 나가는 수많은 꼬막들 또한 ‘벌교 꼬막’을 고유명사화한 이 소설에 큰빚을 지고 있을 것이다.(‘벌교 꼬막을 유명하게 만들다 못해 ‘고막‘이었던 표준어를 ‘꼬막‘으로까지 바꾼 주역 또한 『태백산맥』임은 유명한 일화다.) - P257

정말이지 이런 걸 만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어딘가에 ‘한국감연구회’라는 단체가 있고,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대회‘가 열리고 거기에 입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있다. 감 박피기를 개발하는 사람이 있고, 얼레 가방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전국을 다니며 연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고, 한때 만든 대금을 끼고 다니며 군밤 옆에 펼쳐 놓는 이가 있다. 축제장 음지의 꽃인 품바도 있고, 그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썰렁한 관객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있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공연하는 마술사가 있고, 만만찮은 지역민들의 입담을 능숙히 받아치는 노련한 사회자들도 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들이 아는 세계의 바깥이겠지.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의 바깥일 대금 아저씨와 우리는 대금 버스킹이 펼쳐지는 시간 동안 잠시 마주 서 있다가 연주가 끝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는 평범하지만 다정한 말들로.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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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대축제’.
하지만 중대한 난점이 있었다. 널 보러 오긴 했는데 정확히 너의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 프로그램은 풍부했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들이 총체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체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 축제에 붙인 제목만봐도 "백 년의 함성, 아리랑의 감동으로!" 인데 약간 ‘어쩌라고’의 느낌이 든다. 우리가 방문했던 2019년이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단 ‘100주년‘ 이라는 걸 감안하고 봐도 말이다. 홈페이지와 리플릿에 빼곡하게 적힌 설명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텅 빈 것 같았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추상적인’ 게 가능하다니….….. - P95

그런 점에서 애초에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왜 밀양 아리랑인가.’ 같은 질문을 놓지 못한 우리가 고지식하고 순진했다. 축제란, 아니 K-쇼란 본디 그런 본질적인 질문 대신 ‘우리가 왜 짱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을(관련 없을 것 같으면 ‘관련’의 의미를 무한 확장해서라도) 때려 넣어보여 주면 되는 것이었다. 부재한 철학은 중구난방 콘텐츠로, 중구난방 콘텐츠는 음향·조명·스케일을 최대치의 ‘고퀄‘로 뽑아내어 잘 커버하는 것이 K-쇼의 척도라면 ‘밀양강 오딧세이’는 예상을 훌쩍 넘는 양과 질로 흠잡을 구석 없는 쇼다. 축제 기간에 밀양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할 수도 있겠다. K에게서 늘 배우는 교훈은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으면 일관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K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면서 동시에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힘이기도 한, ‘이렇게까지’를 통해 가닿는 K-뚝심. - P104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축제 자체가 품바의 옷처럼 ‘거대한 누더기‘였고, 그 점에서 가히 메타적 - 프랙털적 축제라 할 만했다. 다른 축제들이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세련되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그런데 좀 과하게 애쓰다가 본의 아니게 키치에 빠지고 만다면, 이 축제는 그런 골치아픈 고민 없이 키치를 마음껏 드러내도 되는 축제, 아니 더 드러내야 하고 더 드러낼수록 목표한 바에 가까워지는 ‘대놓고 키치’ 축제인 것이다.(약간 날로 먹는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이곳에서 키치는 기지다. - P134

단오의 줄어든 위상과 달리 강릉단오제는 무척 메이저한 축제다. 기획된 ‘양산형 K-축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다가 자연스럽게 현대판 축제로 자리매김한 축제고, 전통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국내 축제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그나저나 ‘유네스코‘는 잊을 만하면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한국의 무엇을 수식한다는 점에서 OECD와 참 비슷하지 않은가.) - P140

‘창포물에 머리 감기’라는 어구에서 풍기는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느낌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인력들이 동원된, 약간 ‘창포물 세발(洗髮)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오른 가분이 들었지만, 많은 인원이 밀리지 않게 빨리빨리 체험하고 지나가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기도 했다. 이런 유의 서비스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주변머리는 없고 감을머리만 있었던 우리는 잔뜩 어색한 얼굴로 엉거주춤 선 채 머리 감겨지는 서로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체험장에서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웃어 댔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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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냐 하면, 이 형제에게 포상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뜬금없이 ‘세종대왕 체험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용포를 입고서 가마집은 없고 가마채만 있는 간이 가마에 올라 네명의 가마꾼이 이끄는 대로 축제장 한 귀퉁이를 1분 정도 스윽 도는 것이다. 그마저도 체험자가 별로 없어서인지 세종대왕으로 분한 청년이 그걸 타고 연신 축제장을 돌아다녔다. 세종대왕에게 포상을 받는 포상 체험도 있다. 그래도 이건 있을만하다. 잠시나마 그들 형제가 되어 보는 것이니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볏단보다는 세종대왕으로 꾸밀 프로그램이 훨씬많았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에서 멈춰 볏단의 체면을 세워 주는 주최 측의 자제력은 돋보였던 것 같다. 또 이왕 볏단 나르기를 하는 거 ‘볏단 빨리 나르기 대회‘ 같은 걸 열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는 것 또한 ‘의좋은‘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경쟁을 지양하는 주최 측의 자제력이었다고 믿고 싶다. - P21

"마음이 널뛰듯 한다." 라는 표현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널뛰기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막상 널 위에 올라가면 널에서 양발을 동시에 떼기도 힘들거니와, 어찌어찌 뛴다 한들 상대방의 하강 속도를 못 맞춰 다음 도약에 실패하고 만다. "마음이 널뛰듯 한다." 라는 표현은 차라리 ‘마음이 잔뜩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용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널 위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내려온 김혼비는 생각했고, 그런 널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던 널 반대편의 박태하도 그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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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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