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아리랑대축제’.
하지만 중대한 난점이 있었다. 널 보러 오긴 했는데 정확히 너의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 프로그램은 풍부했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들이 총체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체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 축제에 붙인 제목만봐도 "백 년의 함성, 아리랑의 감동으로!" 인데 약간 ‘어쩌라고’의 느낌이 든다. 우리가 방문했던 2019년이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단 ‘100주년‘ 이라는 걸 감안하고 봐도 말이다. 홈페이지와 리플릿에 빼곡하게 적힌 설명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텅 빈 것 같았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추상적인’ 게 가능하다니….….. - P95

그런 점에서 애초에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왜 밀양 아리랑인가.’ 같은 질문을 놓지 못한 우리가 고지식하고 순진했다. 축제란, 아니 K-쇼란 본디 그런 본질적인 질문 대신 ‘우리가 왜 짱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을(관련 없을 것 같으면 ‘관련’의 의미를 무한 확장해서라도) 때려 넣어보여 주면 되는 것이었다. 부재한 철학은 중구난방 콘텐츠로, 중구난방 콘텐츠는 음향·조명·스케일을 최대치의 ‘고퀄‘로 뽑아내어 잘 커버하는 것이 K-쇼의 척도라면 ‘밀양강 오딧세이’는 예상을 훌쩍 넘는 양과 질로 흠잡을 구석 없는 쇼다. 축제 기간에 밀양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할 수도 있겠다. K에게서 늘 배우는 교훈은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으면 일관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K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면서 동시에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힘이기도 한, ‘이렇게까지’를 통해 가닿는 K-뚝심. - P104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축제 자체가 품바의 옷처럼 ‘거대한 누더기‘였고, 그 점에서 가히 메타적 - 프랙털적 축제라 할 만했다. 다른 축제들이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세련되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그런데 좀 과하게 애쓰다가 본의 아니게 키치에 빠지고 만다면, 이 축제는 그런 골치아픈 고민 없이 키치를 마음껏 드러내도 되는 축제, 아니 더 드러내야 하고 더 드러낼수록 목표한 바에 가까워지는 ‘대놓고 키치’ 축제인 것이다.(약간 날로 먹는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이곳에서 키치는 기지다. - P134

단오의 줄어든 위상과 달리 강릉단오제는 무척 메이저한 축제다. 기획된 ‘양산형 K-축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다가 자연스럽게 현대판 축제로 자리매김한 축제고, 전통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국내 축제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그나저나 ‘유네스코‘는 잊을 만하면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한국의 무엇을 수식한다는 점에서 OECD와 참 비슷하지 않은가.) - P140

‘창포물에 머리 감기’라는 어구에서 풍기는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느낌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인력들이 동원된, 약간 ‘창포물 세발(洗髮)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오른 가분이 들었지만, 많은 인원이 밀리지 않게 빨리빨리 체험하고 지나가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기도 했다. 이런 유의 서비스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주변머리는 없고 감을머리만 있었던 우리는 잔뜩 어색한 얼굴로 엉거주춤 선 채 머리 감겨지는 서로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체험장에서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웃어 댔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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