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현아, 대학이 해방구가 될 때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6. 유상운, 탐구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7. 소진형,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

8. 황민호, 졸업하기 싫은 학교

9. 현수진, 대학 안팎에서의 역사학

10. 유리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강의 노동은 그 대가가 철저히 ‘강의 시간만을 노동 시간으로 계산하여 시급으로 책정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노동이 아닌‘ 일들이 따라붙는다. 새로운 강의를 개발해도 개발에 들어간 시간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그렇게 개발한 강의는 정규직 교수의 것이 되며 강사 배정 역시 정규직 교수의 권한이다. 강사는 강의를 만들고 연구하고 실행하지만 그 강의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가질 수 없다. 심지어 수강생들의 과제와 시험 채점도 강의 시간에 포함되지 않기에 당연히 시급에 산정되지 않는다. 그 외에 학술대회를 열고 장소를대여하고 학회지를 편집하고 논문을 수합하고 심사위 - P104

원을 섭외하는 등 ‘학계‘를 움직이기 위한 수많은 일들또한 노동이 아니었다.
나는 몇 명의 정규직과 수많은 비정규직 및 하청노동자들이 벌처럼 움직여 유지되는 이 대학이 어떤곳인지 새로이 깨달았다. 대학이 매혹적인 공간이라고여겼던 것은 나의 착각이자 짝사랑이었다. 노동자로서다시 마주한 대학은 잔인한 공간이었다.

- 신현아 - P105

실학의 반대에 있다고 여겨지는 성리학에서 가장중요한 학자인 주희(朱熹)도 자신이 하는 성리학이 실학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남송 대에 주희는 문장의 표현이나 형식에 방점을 두는 사장학, 즉 전통적인 관점의 문학으로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성리학이야말로 개인의 윤리와 국가의 통치를 가 - P136

능하게 하는 실학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실학과 실용적 학문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실‘ 그리고 ‘실용적‘이라는 말은 그 외연이 넓어져 뉘앙스만 남고 정확한 의미를 간취하기 어려운 단어가 된다. - P137

‘실’, ‘실학’, ‘실용적 학문‘은 동아시아에서 몇백 년동안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학문을 비판하는 정치적 단어였다. 12세기에 주희는 아름다운 문장 쓰기를 정치라고 착각하는 기존의 정치가들을 비판하면서 실학이라는 말을 썼고, 사회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던19세기 지식인들은 변화를 지체시키는 전통적 지식인들을 비판하면서 실용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용적 학문은 배우기만 하면 실용성이 생기는것이 아니라, 제도와 조건이 마련되어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 소진형 - P147

이러한 지역 언론의 특성은 대학 교육을 수행하는초석이 된다. 비판적 사고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무장해 끊임없이 취재하고 글로 쓰기 때문이다. 주요언론의 지면은 연예인 가십과 소모적인 정치인 이야기로 채워지기 일쑤고, 지역의 이슈는 쉽게 사장된다. 반면에 지역 신문은 민주주의를 담보한 언론이다.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담겨있으며, 일상 속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 저널리즘[5]이다. 지역 신문은 자발적으로 이슈를 발굴해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

[5] 문제 중심 저널리즘이 사회 문제를 폭로, 반복적으로 조명하는 것에 주목하는 반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동일한 문제가 올바른 대응을 통해해결된 구체적 사례와 그 증거를 독자에게 제시함으로써 문제에 책임이있는 집단에게 무언의 압력을 줄 수 있는 준거점을 마련한다. 이규원·이미나, 『솔루션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참고.

- 황민호 - P160

그러나 학계는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공역사(publichistory)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공공역사 개념은 거칠게 말하자면 대학 바깥에 존재하는 공중(公衆)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종류의 역사 생산 및 실천을 의미한다. 학교의 역사 교육과 박물관의 역사 전시, 역사다큐멘터리와 사극, 유튜브의 역사 콘텐츠까지 공공역 - P178

사가 포괄하는 범위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공공역사는 학계가 독점하던 역사 지식 및 생산의 독점적 권위를 해체하고 역사의 민주화를 추구한다.

- 현수진 - P179

그보다도 큰 장탄식이 나오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봐도 한 인간의 문장이 아닌 경우다. 어떤 교수님들의원고는 아무리 봐도 거기 적힌 이름보다 많은 사람이쓴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것을 모를 수 없다. 도대체교수님 아닌 누가 그 원고들을 썼단 말인가? 그것은 모른다. 대학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 아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이 썼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번역기의일차 생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뭔가를 원고라며넘기는 교수님들도 있다. 이 학부 교재라는 것은 아예별거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걸까? 더 중요한 책은 이렇게 안 하실까? 아니면 이 교수님의 원고는 일괄적으로 다 이런 식인데, 단지 책의 중요도에 따라 교정 - P194

공의 수준이 달라지는 걸까? 여러모로 봤을 때, 적어도교재를 쓰는 일에 있어서는, 이 교수님들이 노고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노고에 합당하다고 여기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알 수있는 것은 많지 않다. 좀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교수님들의 얼굴이 궁금해 꼭 한 번 검색해 본다.(하여튼 스무 교수님들 중 두엇의 얼굴은 꼭 검색해 보게 된다.) - P195

얼마 전 인터넷에서, 실험용 쥐 rat을 ‘랫드‘라고 부르는 과학계의 해괴한 표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1] ‘랫드’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나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이런 일에는 나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랫드’는 물론 일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단어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또한 책의 바깥과 안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정해진 규범을 따르거나 규범을 정해 고치는 것이 우리 교정공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랫드’ 같은 게 나오면 표기법에 맞도록 다 고쳐야 맞는다.


[1]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과학용어 중에 실험용 쥐 rat를 "랫드"라는 해괴한 표기로 쓰는 전통이 있음. 왜 이걸 랫드라고 쓰는지 아무도 모름. 근데 교과서 같은 데도 저렇게 쓴 책 많음. 심지어 국가 법령 같은 데서도 저렇게 씀. 그냥 단체로 이상한 표기인 걸 다 알면서도 그냥 다 같이 틀리는 거임", 곽재식(@JaesikKwak), 2022년 10월 6일, 오후 10:38. Tweet. - P197

자, 사장님은 나를 왼쪽으로 당기고 동료님들은 나를오른쪽으로 당긴다. 원청업체는 앞에서 나를 당기고교수님들은 뒤에서 나를 당긴다.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나를 아래로 당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위로 당긴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교정지를 양쪽으로 동시에 당기고 싶다. 이것이 내가 만들고 있는 책이 당하고 있는 얼차려의 구성이고 가련한 예비-책들이 처한 상황이다. 말 못하는 책들, 그러나 만들어져야만 하는. - P200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나 교정공이란 이를테면 사라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정공이 개입할 수있는 지면은 오늘날 점점 좁아지고 있다. 또는 교정공이 개입할 수 없는 지면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와 어의 다름도 점차 사라지는 듯, 아와 어가 다르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들과 어와 어가 다르다고 우기는 사람들 사이의 다름도 사라지는 중인 것만 같다. 가끔 우리가 견딜 수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 합쳐졌던 적이라고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으니 이상한 생각이다. 대체 어떻게 감히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겠니? 말하는 얼굴들을 보면 그야말로 박살이 나 있다. 전에도 이랬던가? 이러지 않았던가? 우리 산산조각의 양상이 과연 바뀌는 것이라면, 산산조각을 대하는 우리의 양상도 분명 바뀌는 것이겠다. 내가 지금 맞게 대하고 있나?
글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박살 난 우리 사이에 쌓이고 녹고 쌓이기를 반복하며, 서로 합쳐지려고 이어지려고 이를 악문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틀림없이 그렇다.

- 유리관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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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3-10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랫드 ㅋㅋㅋ

서곡 2023-03-10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인간의 문장이 아닌 경우 ㅎㅎㅎ

햇살과함께 2023-03-10 22:23   좋아요 1 | URL
교정공의 애환:;; 대학출판사 책이 왜 그렇게 편집이 엉망인지 이해가 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