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10호 대학 별책부록. 공부하는 일
공부란 결국 자기 질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임을.
여태껏 나에게는 그 질문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하고 싶다, 공부나 해볼까 라고 말만 했지, 정작 공부는 하지 않았던 듯.
질문을 찾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와 생업을 함께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 등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기도 하고,
신념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기준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 하기도 하고.
특정 계급만이 공부할 수
있다는 말.
최소한 주거 문제는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말.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은 이공계 대학원처럼 진학을 하면 생계가 해결되는 시스템이 아니고, 10여년을 쏟아부어 박사학위까지 마친다고 해도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저임금 비전임교원 정도이죠. 자신이든 가족이든 누군가를 부양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오게 돼요. 이런 환경에서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자연히 특정 계급에 편중될 수밖에 없죠. 물론 이건 본업과 작업을 병행하는 모든 분야의 창작자들이 가진 고충이기도 하니, 자리만 바꿔서 똑같은 일을 계속 겪고 있는 셈이에요. 아직 작업을 지속하는 학부 동료들은 모두 생계 문제, 최소한 주거 문제가 없던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요. - P79 미학 연구자 남수빈
<여성, 인종, 계급> 정희진 선생님의 해제에도 언급된 지식 생산은 중산층에서
이루어진다는 말과도 연결되는 지점.
페미니즘뿐 아니라 중산층의 경험은 모든 지식의 기반이다. 삶이 지나치게 고달픈 이들이나 부자들은 언어를 생산할 여력이나 이유가 없다. 모든 언어, 지식은 중산층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모두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서구 페미니즘을 상대화하고, 내가 선 자리, 로컬에 맞는 지속적인 재해석과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 P21 <여성, 인종, 계급> 정희진 해제
6명의 인터뷰이 중 미학 연구자
남수빈의 인터뷰가 가장 흥미로웠다.
저에게 미적 경험은 자아와 세계,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가 사라지는 경험이에요. 종교적 경험도 그렇고요. 스무 살쯤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었는데, 거기에서는 내가 세계에 대해 어떤 것도 알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인간의 물음에 세계가 응답하지 않는 상황을 문제로 설정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인간과 세계 사이의 그 거대한 벽이 사라지는 특별한 순간이 있고, 그게 바로 미적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 P69 남수빈
저는 이 구절이 울프가 그리려던 것을 그대로 설명하는 말이라고 느꼈어요. 『등대로』가 시적 언어로 더듬는 지속과 영원성의 경험은 결국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의 시간 밖에서 어두운 쐐기로 응집되었다가 빛과 침묵 속에서 경계를 잃고 티끌과 하나 되는, 그런 존재의 순간들이요. 종교학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미적 경험이 종교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에서 생긴 것이었고, 종교적 경험을 해명한다면 미적 경험의 본성에 어느 정도 닿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 P71 남수빈
대학 이후의 공부에서는 수용한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구성하여 짜임새를 갖춘 글로 조직해 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에, 읽은 것을 요약 정리하는 일이 중요했어요. 평소 이미지로 사고하고 기억하는 편이라, 도식을 그려 보고 구조를 이해할 때도 많아서 도식화도 많이 사용하고요. 난해한 철학 원전을 많이 접하게 된 이후부터는 낯선 개념들을 우선 숙지하려 하는데요. 맥락에서 떨어진 정의 설명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맥 속에 두고 여러 번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합니다. 누구나 할 법한 뻔한 이야기겠지만 그 이상 특별한 방법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 P76~77 남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