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항의가 사람을 초라하게 느끼도록 만든다는 것은 분명한것 같아. 항의는 내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같은 항의가 오래 반복된다는 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결핍의 상태에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항의 기간이 길어지면 저쪽은 짜증 나고 이쪽은 초라하고 비참한 거야. - P19
하나는 네가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새로운것을 흡수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야. 뿌리에서 흡수하는것보다 많은 수분을 방출하는 식물은 고사한다. 대기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여야 하지. 항의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줄 것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네 지식과 정서의 저장고를 듬뿍 채워두어라.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너의 기쁨을 찾는다고 해서 항의의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너의 기쁨과 생동성만큼 너의 주장에 전반적인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내놓거나 혹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해라. 그렇게 하려면 너에게 어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단다. 종교수행자가 괴로운 표정만 짓고 있으면 사람들이 호기심을가질 수 있겠니? 다 버리고도 잔잔한 미소를 짓는 그런 ‘다름‘에 비로소 사람들이 압도되는 것이지. 페미니스트면서 나름대로 멋지고행복하게 살아라. - P20
다른 한편 1990년대 한국의 대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양성 갈등의 중심 무대였다. 무엇보다 1993년 여름에 터진 ‘서울대 신정휴 교수 사건‘으로 6년여간 민사소송의 법정 공방이 이어지며, 시민사회와 대학 여성주의 운동권의 연대가 이루어지면서 대대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은 신정휴 교수의 성희롱을 거부한 대학원생이 실험실 조교직에서 해고된 것의 부당함을알리는 대자보에서 시작되었다. 관련 재판에서 원고는 1심에서는 승소, 2심에서는 패소했으나, 대법원이 상고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직장 내 위계 관계에 있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향해 원하지 않는 성적언동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을 ‘인격권 침해‘로 적시했다. 그 결과서울고법 민사 18부 파기환송심에서 ‘신 교수는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6년간의 소송과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각인되었다. - P26
2000년 장춘익 교수가 <여성주의철학>을 개설하고 여성학 협동전공과정을 기안한 것은 여성주의 대항적 공론장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대부분의 철학과에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문헌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 이해와 그에 따른 학과 운영이 조금도 흔들림 없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림대 내의 제도적 배경이나 의무가 없이 전임 남성 교원이 <여성주의철학>을 전공교과목으로 개설해 다양한 교안을 개발하며 갈등과 감정적 공격이 상존하는 여성주의 교육을 20년간 이어간것은 놀라운 일이다. 장춘익 교수가 2000년 즈음 우리 사회와 교육환경의 변화에 직면해서 <여성주의철학> 교과목을 도입한 것은 결국지식인으로서, 사회철학자로서 그리고 철학교육자로서의 자기이해와 연결된 개인적 선택이었고, 또 그런 자기이해의 확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P32
한림대 철학과에 <여성주의철학>이 처음 개설된 2000년부터 마지막으로 개설된 2020년 1학기까지 총 473명이 이 수업에 참가했다. 사실 이 수업은 한국 대학에서 특정 분과학문 학부 교육공동체를 배경으로 동일한 교수자가 여성 (주의)철학을 20년 넘게 가르쳐온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2019~2020년 기준으로도 전국 46개 대학의철학과들 중에서 ‘여성 (주의)철학‘을 학부 전공교과목으로 개설한 경우는 6개 학과에 불과하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페미니즘 이론과 담론의 발전에 (여성)철학자들의 기여가 매우 크다는점을 생각하면, 사실 이것은 의아하다. 결과적으로, 20년간 이어진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 전공수업은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여성주의 페다고지의 장기적 효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매우 귀한교육 사례임이 드러난다. 1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장춘익 교수의 페미니즘 교육은 과연 청년세대 집단의 도덕적 가치와 정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우리는 장춘익 교수의 페미니즘 교육의 실체를 교수자 관점을 넘어 학습자 입장에서 파악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473명수강생 전체에게 온라인 설문조사에 초대하는 e메일을 보냈다. - P64
사례를 꼽았다.4‘ 한편 초기 남학생들은 좁은 의미의 수업 내용, 즉성불평등 문제와 페미니즘 이론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 수업에 참여했다는 것인데, 이 사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장춘익 교수가 ‘무심한‘ 남성 학습자들이 속한 교육공동체에서 신뢰자원을 쌓은 교수자였기 때문에 이들을 페미니즘 강의실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 교육이 학부의 전공과정에서 신뢰자원을 가진 전임교수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전 시기를 걸쳐서 수강동기를 묻는 문항에 ‘장춘익 선생님의 수업이라서‘라고 적시한 경우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답변한 응답자 다음으로 많았다. - P69
우리는 앞의 두 개의 장에서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 수업을 통해 캠퍼스 운동권 여학생들에 국한된 주변부 담론이었던 캠퍼스 페미니즘이 어떻게 여남 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전공 교육의 중심무대에서 생생한 실천적 의사소통의 과정으로 새롭게 의미화되었는지 확인했다. 그의 수업에서 학습자들은 교수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기정당화의 압박에서 벗어나, 보다 쉽게 상호적 의사소통에들어설 수 있었고, 그 정서적 편안함 속에서 긴장감 가득한 성차별과성정체성 문제를 평등하게 논의하는 내적 경험으로 재의미화했다. 그리고 그 평등한 의사소통의 관계 속에서 참여자들은 상대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는 자기성찰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결과 나의 기존 도덕 감정의 한계를 인식하거나 또는 나와 다른 상대를 마주보고연결되는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64그의 강의실에서 경험하는 평등한 토론과 상호적 성찰, 그리고 발견의 행복한 감정은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여성주의 페다고지가 지향하는 연대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편주의 도덕에 근거한 이러한 연대의 가치를 내면화한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만나는 젠더 억압에 새롭게 주목해 저항하거나, 스스로 연대의 요구를 이어가는 파생 공론장을 만드는 행위로 나아갔다. - P109
페미니즘에 노출되는 것을 통해서 성인 남성 단계에 진입하는 학습자들의 문화적 남성성은 분열적 자기성찰과 실존적 비판을 동반하는 분열적, 정치적 남성성으로 전환되고, 적어도 일부는 다시 ‘참여적 정치적 남성성‘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위에서 인용된설문조사 응답은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 분석은 남성을 향한 여성주의 페다고지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성에 대한 여성주의 페다고지는 남성 학습자들이 지닌 ‘문화적 남성성‘을 그들의 개인적 실존적 조건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사회 집단의 일원으로서 개인이 내면화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직접적인 도덕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의 위험성을 식민주의 문화정치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여성주의 정치학을 일부 이해하기 시작하는 남성이 겪는 자기비판과 성찰이 실존적, 분열적 상황과 - P130
유사한 심리적 과제일 수 있음을 여성주의 페다고지는 진지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인정을 바탕으로, 이들이 일상에서여성이 겪는 차별적 경험에 공감하고 젠더이분법을 여성의 관점에서 추체험하도록 돕고, 그들이 젠더문해력을 더욱 키우도록 지지하면서, 이들이 일상의 차별적 젠더질서를 비틀고 역류하는 참여적, 정치적 남성의식으로 나갈 수 있다는 신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분열적 남성의식에 들어서는 것은 방어에 고착되거나 여성주의적인 참여적 남성의식으로 전환되는 갈림길에 서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가부장 사회와 문화질서가 존속하는 한 도덕적으로 성찰하는 남성성은그 분열성을 완전히 떨구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바로 분열에 대한 성찰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 남성은 자신의 ‘성차별적 문화적남성성‘을 만들어내었던 젠더이분법과 남성중심주의적 사회질서를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데 동참하려는 보편적 도덕 의식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장춘익 교수의 페미니즘 강의실은 바로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페미니즘 교육의 비전이 움트는 장소이기도했다. - P131
여성주의는 마르크스주의처럼 일종의 세계관이지, 하나의 학제(department)가 아닙니다. 장춘익 선생님은 이를 정확히 인식하신 여성주의자였습니다. 정체성의 정치로서 여성주의, 사회정의로서 여성주의, 다학제 연구(융합, 通攝, "jumping together")의 핵심적 가치관, 연구방법론으로서 여성주의, 정치학으로서 여성주의의 부분성과 당파성, 메타 젠더.. 사실, 남녀를 통틀어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이렇게정의하고 실천하는 학자는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정확한‘ 여성주의 인식은, 그가 자신의 성별과 학제를 초월한 훌륭한 지식인이었기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 P135
것일까요? 물론 여성에 의해, 여성철학 전공자인 전임교수에 의해 강의가 제공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장춘익 선생님이 비판철학자였기에 가능했던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모든것을 단번에 총체적으로 거부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단번에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기도 하겠죠. 푸코와 버틀러가 주지하듯 우리는 종속화되면서 주체화됩니다. 이 세계를 비판하는 자도 이 세계의 힘의 자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자는 비판되는 사회만큼이나 더럽고 오염되어 있습니다. 버틀 - P162
러는 이런 상황에서 비판의 행위자성이란 피안의 초월적 주체 되기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수행성의 실패를 우연적으로 의식적으로 지속해나가는 가운데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떻게 실뜨기를 달리하여 형국을 바꿀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장춘익 선생님께서 바로 이 부분을 고민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설 실뜨기를 어떻게할 것인지를 고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선생님을 가부장 남성성의 ‘올바른‘ 수행에 실패하기를 모색한 철학자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장 선생님은 여성철학 과목 개설과 운영을 통해 남성성 수행의 소극적 또는 적극적 실패를 함으로써 비판이론의 정신을잇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비판철학과 여성주의, 민주주의와 여성주의를 실뜨기함으로써 비판철학과 민주주의의가 전통적으로 수행해왔던 남성중심성을 ‘올바르게‘ 수행하기를 ‘실패‘하려 했습니다. 저는 그가 실패했기에 비판은 살아났고 그 정신은 제자들의 실뜨기로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제자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인생을 구현함으로써 비판정신을 잇고 있는 것이지요.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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