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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가부장제가 너무 쉽게, 치열한 논박이나 혼란 없이, 5천년 역사 동안 ‘자연스럽게’ 창조되고 유지되었다는 것에 읽는 내내 느껴지는 허탈함.
여성의 종속을 ‘생물학적 필연성’에서 분리하려고 강조하고, ‘여성의 사물화’가 아닌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능력이 사물화되고 상품화’된 것이라는 설명에서 오히려 더 강화되는 그 필연성과 사물화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씁쓸함.
역시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능력과 성적서비스를
버리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허무함.
읽는 내내 느껴지는 이 모든 감정적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종속의 현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역사적 흐름과 맥락 속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역사책이다.
그리고, 비록 ‘이것이 우리 난관의 끝이 아니’겠지만, 우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 ‘5천년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를 창조할 용기와 의식을 깨우고 대안적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이다.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훈련된 사고인 우리 자신의 사고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결국, 그것은 지적 용기, 즉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용기, 우리에게 닿는 것보다 더 멀리 뻗으려는 용기,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를 발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사고하는 여성에게 가장 큰 도전은 안전과 승인을 추구하는 욕망으로부터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여성적인‘ 자질 ― 세계를 다시 질서짓는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최상의 자기과신인 지적 오만 ㅡ 로 옮겨가려는 도전이다. 신을 만드는 자의 자기과신, 남성 체계건설자들의 과신으로. - P397
역사적 조건들이 올바르고, 자신들이 가지게 된 새로운 깨달음에 토대를 제공해 주는 사회적 공간과 사회적 경험 둘 다를 여성들이 가지고 있을 때, 페미니스트 의식(feminist consciousness)은 발달한다. 페미니스트 의식의 발달은 역사적으로 뚜렷한 단계를 밟는다. ① 무엇이 잘못었는가에 대한 인식, ② 자매애에 대한 느낌의 발달, ③ 자신들의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목표들과 전략들에 대한 여성들의 자율적인 정의, ④미래에 대한 대안적 전망의 발달. - P418
다른 집단들처럼 여성들이 대안적 미래를 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의 뿌리, 그들의 과거, 그들의 역사에 대한 발견과 인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성들의 새로운 전망은, 우리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성들이 사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해 사고하는 작업에서도 중심에 포진될 것을 요구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르네상스 시기 동안 요구했던 것처럼 정의할 권리, 결정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 P419
러너에 따르면 역사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개인의 삶을 후대로 계속되는 집단적 기억이라는 불멸성에 연결시키는 것 외에도, 과거를 현재에 비추어 해석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능력과 가능성의 한계를 탐색하게 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실패하고 오류를 범했는지도 배울 수 있다(11장). 그러므로 가부장제는 역사적 산물이며,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 종식될 수 있다는 러너의 기본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성서시대를 통해 형성되고 공고화된 가부장제의 역사이자 여성과 남성의 역사에 대한 면밀한 탐구와 이해는 그것이 어느 장소와 어느 문화에서 일어난 사실에 대한 것이든 우리의 현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 P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