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사실과 신화
제2부 역사

여자에게 내려진 최악의 저주는 이러한 전사들의 원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생명을 낳음으로써가 아니라 목숨을 거는 행위를 하면서 인간은 동물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다. 인류 안에서의 우월성이 아기를 낳는 성이 아니라 죽이는 성에게 부여된 것은 그 때문이다. - P111

그러므로 실존주의의 전망은 원시 유목민들의 생물학적·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남자의 지배권을 가져오게 했는지를 이해하게 해 준다. 암컷은 수컷보다 더욱 종의 먹이가 된다. 인류는 언제나 종의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애써 왔다. 도구의 발명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남자에게 활동이자 계획이 되었다. 반면에아이를 낳고 기르는 행위에서 여자는 동물처럼 자기 몸에 묶인 채 꼼짝하지 못했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주인으로 군림했던 것은 인류가 자기 존재에 문제를 제 - P112

기하고, 다시 말해 생명보다는 삶의 이유를 택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계획은 시간 속에서 자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지배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남자의 활동은 가치를 창조하면서 존재 자체를 가치로 구성했다. 그것은 생명의 혼돈된 힘을 이겨 내고 자연과 여자를 예속시켰다. 이제 이런 상황이수 세기 동안 어떻게 영속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아야만 한다. 인류는 그 내부에서 자신을 타자로 규정하는 인류의 일부에 어떤 자리를 마련해 주었나? 어떤 권리가 그 일부에게 인정되었나? 남자들은 그 일부를 어떻게 규정했던가? - P113

인간은 타자를 생각함으로써만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고 앞에서 이미 말한바있다. 인간은 이원성의 기호 아래에서 세계를 파악한다. 이원성은 원래 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동일자同로 내세우는 남자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자의 범주에 분류되었다. 타자는 여자를 포함한다. 여자는 애초에 홀로 타자를 구현할 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자 한가운데서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오래된 우주 생성 이론에는 동일한 요소가종종 남자인 동시에 여자의 화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이 바빌로니아인들에게는 대양Océan‘과 바다Mer‘가 우주의 혼돈을 나타내는 이중의 화신이었다. - P117

모권제 시대에서 부권제 시대로의 이행은 엥겔스에게 ‘여성의 역사적 대패‘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상 여자의 황금시대는 신화에 불과할 뿐이다. 여자가 타자라고 말하는 것은 양성 간에 대등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대지, 어머니, 여신인 여자는 남자에게 동류가 아니었다. 여자의 위력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인간계 너머의 피안에서였다. 따라서 여자는인간계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사회는 항상 남성의 것이었다. 정치권력은 언제나 남자들의 수중에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에 관한 그의 연구를 마치면서 "공적 혹은 단순히 사회적 권위는 항상 남자들에게 속해 있다"고 단언하였다. 남자에게 동일자이고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동류이자 타인은 언제나 남성개체였다. 집단 내부에서 이런 저런 형태로 발견되는 이원성은 한편의 남자 집단을 다른 한편의 남자 집단에 대립시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들이 소유하는 재산의 일부고, 남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환 도구다. 오류는 완전히 서로 상반되는 두 형태의 이타성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다. 여자가 절대적 타자로, 즉 - 여자의 마력이 어떠하든 간에- 비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한, 여자를 또 하나의 주체로 바라본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남자 집단에 대항해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를 설정하는 별도의 집단을 한 번도 구성한 적이없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결코 직접적이고 자주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 - P120

그러므로 사회의 발전에 따라 남자가 자신에 대해 의식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게 될 때, 모든 사회가 가부장적 형태로 나아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해 둘 것은, 생명, 자연, 여자의 신비 앞에서 혼비백산하던 시대에서조차 남자는 결코 한 번도 자신의 권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있는 위험한 마법에 겁을 먹고서도 여자를 본질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남자이며, 그는 이와 같이 자기가 동의하는 소외 속에서 자신을 본질로서 실현한다. 여자가 강한 번식력의 덕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비옥한토지의 주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주인인 채 있다. - P122

이와 같이 가부장제의 승리는 우연도 아니고 폭력적인 혁명의 결과도 아니다. 인류의 태초부터 남성은 생물학적 특권 때문에 자신을 최고의 주체로 홀로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들은 이 특권을 결코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존재의 일부를 자연과 여자 안에 소외시켰지만 곧 되찾아 갔다. 타자의 역할을하도록 선고받은 여자는 일시적 권력만을 소유하도록 운명 지어졌다. 노예이든우상이든, 여자는 결코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신들을 만들고 여자들은 그 신들을 숭배한다"고 프레이저Sir James Frayser (1854~1941)가 말했다. 자신들의 최고의 신을 여자로 하는가, 남자로 하는가는 남자들이 결정한다. 사회에서 여자의 자리는 항상 남자들이 지정한다. 어떤 시대에도 여자는 자기 자신의법을 부과한 적이 없다. - P129

이러한 피조물의 여자들 가운데 최초로 태어난 판도라는 인류를 괴롭히는 온갖 재앙을 휘몰아치게 한다. 타자는 능동성에 대한 수동성이고, 통일성을 깨뜨리는 다양성이며, 형식에 대립한 질료이자 질서에 저항하는 혼란이다. 여자는 이처럼 악에 바쳐졌다. 피타고라스는 "질서와 빛과 남자를 창조한 선의 원리가 있고, 혼돈과 암흑과 여자를 창조한 악의 원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마누법전은 여자를 노예 상태에 두는 것이 적절하며 비루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레위기는 여자를 가부장이 소유한 소나 말과 동일시하고 있다. 솔론Solon (기원전 640년경~560년경)의 법률은 여자에게 어떤 권리도 부여하지 않는다. 로마법은 여자를 후견하에 두고 여자의 ‘저능함‘을 선언하고 있다. 교회법은 여자를 ‘악마의 문‘으로 간주한다. 코란은 여자를 가장 완전한 멸시로 취급하고 있다. - P132

여자를 억압하는 원인이 가족을 영속시키고 세습재산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의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여자가 가족을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이러한 절대적 예속에서도 벗어난다. 만일 사회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면서 가족을 거부한다면 그로 인해 여자의 운명은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다. 공유재산제가 우세한 스파르타는 여자가 남자와 거의 동등하게 취급받은 유일한 도시국가였다. 여자아이들은 사내아이들처럼 양육되었고, 아내는 남편의 집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남편은 밤에만 은밀하게 아내를 방문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그다지 귀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생학의 이름으로 다른 남자가 그녀와의 결합을 요구할 수 있었다. 상속이 사라질 때 간통의 개념까지 사라진다. 모든아이가 공동으로 전체 도시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여자들 또한 한 명의 주인에게 예속되지 않았다. 혹은 반대로, 시민이 개인 재산도 개인 자손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 또한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남자들이 전쟁의 의무를 따르듯이 여자들은 모성의 의무를 감내했다. - P141

여자가 실질적으로 가장 해방되었을 때 여자라는성性의 열등함이 선포되었으며, 이것은 내가 이미 말한 남성의 합리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사례다. 딸로서, 아내로서, 누이로서는 여자의 권리를 더는 제한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性으로서 남자와의 평등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자를 박대하기 위하여 ‘성의 멍청함과 나약함‘을 구실로 삼는 것이다. - P151

여기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존속하는 모순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사회에 가장 완전히 통합된 여자가 특권을 가장적게 소유한 여자라는 모순이다. 시민적 봉건제도 안에서 결혼은 군사적 봉건제시대와 같은 양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남편은 아내의 후견인으로 머물러 있었다. - P160

17세기 말에 귀족이며 아이가 없는 윈힐시 부인Countess of Winchilsea Anne Finch(1661~1720)은 글을 쓰는 모험을 시도한다. 그녀의 작품의 어떤 문장들은 그녀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시적인 천성을 가지고 있었다는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녀는 증오와 분노와 공포 속에서 소진되어 버렸다.

아아! 펜을 잡는 여자는
어찌나 주제넘은 피조물처럼 여겨지는지
그 죄에 대해 속죄할 어떤 방법도 없도다! - P174

이 시대에 가장 단호한 페미니스트는 1673년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저서 양성평등에 관하여De légalité des deux sexes』를 간행한 풀랭드라바르François Poullain de la Barre(1647~1723)다. 그는 남자들이 강자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남자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여자들은 습관적으로 이런 종속을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여자들은 단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유도, 교육도 따라서 과거에 여자들이 한 일을 가지고 여자들을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열등하다고 가리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부학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의 어느 것도 남자들을 위한 특권을 구성하지 않는다. - P178

이러한 대변혁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계였는데, 남녀 노동자의 신체적 힘의 차이를 기계로 많이 해소했기 때문이다. 산업의 갑작스럽고 비약적인 발전이 남자 노동자의 노동력보다 현저히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으므로 여자들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운명을 변화시키고 여자를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19세기의 대혁명이었다. - P189

G. 데르빌은 『자본론』을 요약하고 베벨의 주장을 부연하면서 이렇게 썼다. "오늘날의 여자는 애완동물이거나 노역동물이거나, 거의 두 가지일 뿐이다. 노동하지 않을 때 여자는 남자에 의해 부양되고, 죽도록 일할 때도 남자에 의해 부양된다." - P191

이 문제는 미국에서 흑인의 노동력에 관한 것과 조금은 같은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한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소수자들은 억압자들에 의해서그들이 속한 계급 전체에 대한 무기로 쉽게 이용되기 때문에, 억압받는 소수자들이 처음에는 자기 계급에 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흑인과 백인이나 여성 노동자와남성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하는 대신 협력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상황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남성 노동자들은 처음에 값싼 이 경쟁자들에게 가공할 위협을 느껴 적대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이 조합 활동에 동화되자 비로소 그녀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나아가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수 있었다. - P194

여성에 대해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여자의재생산 역할과 생산노동의 조화다. - P193

생산 활동에 참여와 재생산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두 요소의 수렴으로 여성 조건의 진전을 설명할 수 있다. - P197

페미니즘의 이러한 약점은 내부적인 분열에서 기인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성들이 성으로서 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무엇보다 자기 계급에 묶여 있었다. 부르주아 여성의 이해와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이해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 P199

뉴질랜드는 이미 1893년부터 여성에게 완전한 권리를 인정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1908년에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에서는 승리가 힘들었다. 빅토리아조의 영국은 여자를 강압적으로 가정에 가둬 놓았고, 제인 오스틴은 숨어서 글을 썼다. 조지 엘리엇이나 에밀리 브론테가 되려면 대단한 용기 혹은 예외적인 운명이 필요했다. - P201

이런 역사를 전체적으로 일별해 보면 거기서 몇 가지 결론을 볼 수 있다. 첫째, 여성의 모든 역사가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 흑인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백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 것처럼" 여성의 문제는 언제나 남성의 문제였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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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2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햇살과 함께 님, 벌써 2백쪽 넘기셨네요. 화이팅!!

햇살과함께 2023-02-24 10:13   좋아요 0 | URL
지난 주에 퇴근 후 자기 전에 읽으니 진도가 영 안 나가서
이번 주에는 출퇴근 시 들고 다니며 읽었으나,, 매일 25쪽,,
이런 빡빡한 책은 처음이에요!
벌써 2월은 며칠 남지 않았네요;;
그래도 3월은 31일이라는데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