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와 관련된 10편의 이야기. 외모라는 주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10편 중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8장과 7장이었다.



8장 박정호의 [얼굴을 잃지 않는 대화]는 좀 더 알고 싶은 장이다. ‘대화란 서로 얼굴을 주고 받으며얼굴을 말에 실어 나르며, 증여의 사이클을 따라간다는 문장이 코로나로 절실하게 와 닿는다모두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하면서 얼굴을 주고 받지 못하여 대화의 단절거리감을 느끼고, ‘증여의 리듬을 타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상대방의 주저함과 모호함과 망설임 같은 표정 언어를눈빛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하는 얼굴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표정 언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험또 나의 표정 언어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대화가 뻗어가지 못하고 가라앉는 듯한 경험 말이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마르셀 모스의 사회학을 공부했고현대 사회의 선물과 희생 제의에 관한 문화적 담론과 실천을 연구하면서증여와 선물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고 하는데, ‘선물과 증여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저자의 책은 없고 지만지 천출읽기 시리즈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과 커뮤니케이션북 이론총서 시리즈의 류정아 저자의 <마르셀 모스증여론>이 있다사회학 책은 거의 읽지 않아서 어렵겠지만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니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언제?). 9장 김현주 [비누거품 아래죄와 부채]도 예술의 선물과 증여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8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얼굴을 보호하려면 선물을 주고받듯이 대화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얼굴은 사고 팔거나 훔치고 빼앗는 물건이 아니다. 얼굴은 선물처럼 건네받고 답례해야 할 자아상이며, 대화는 얼굴을 말에 실어 나르는 수레바퀴를 굴리는 일이다. 대화 속에서 말은 증여의 사이클을 따라간다. 사업상의 거래든 일상의 사교 관계든 아니면 길거리에서 낯선 이와의 마주침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이제 당신이 말할 차례입니다‘라는 소리 없는 암시, 발언권을 서로에게 부드럽게 넘겨주는 선물의 정신은 우리 모두를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초대장이다. 이렇듯 경직된 근육을 풀어 주듯이 대화가 오가려면 주의 깊게 마련된 증여의 리듬 규칙이 필요하다. 리듬 규칙은 대화 당사자들에게 동조 압력을 행사한다. 나와 상대 모두 이 압력을 인식하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자연스럽게 장단을 맞추는 말을 구사할 수 있다.

대면 상호작용 의례로서 대화는 메시지의 즉각적 교환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마르셀 모스가 말했듯 무언가를 주는 것은 나 자신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줌으로써 나를, 나의 얼굴을, 그리고 얼굴로 표현되는 신성한 자아를 준다. 아무리 사소한 대화라고 해도 상대방은 내 말에 실려 오는 나의 얼굴을 받고, 이어서 자신의 얼굴도 내게 내놓는다. – P152~153






















7장 정희원의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은 내용도 관심 가지만, 저자가 아산병원 노년내과전문의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내과세부과목 중 노년내과라는 게 생겼구나.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소아청소년과가 아니라 노년과가 생겨야 한다는 말이 이제 더 이상 우스개소리가 아니구나. ‘바프 만들기를 위한 몸이 아닌 죽기 전까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몸 만들기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저자의 <지속가능한 나이듦>이라는 책도 찾아봐야겠다.


그때의 심증을 지지하는 사회적 현상은 여전히 도처에 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뼈 빼고 다 빼 드립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본 일이 있다. 퍼스널 트레이닝업체의 광고였다. 이런 괴기스럽고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문구로 쓰인다. 더 아연실색할 일은, 마른 몸매를 추구하는 사람 중 종아리 근육을 위축시키는 종아리 퇴축술 같은 시술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보행에 필요한 종아리근육은 매끈한 ‘일자 다리‘가 중요한 여성에게 부기를 가라앉히고 없애야 할 ‘종아리 알‘로 인식된다. 이는 외모에 대한 그릇된 신념 체계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자기만족을 향후 50년 이상 지속될 근골격계의 불균형과 교환하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거래가 아닐 수 없다. - P130























10장은 보수적인 대구 지역에서 여성 퀴어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는 청소년(청년?) 활동가의 외모 통증 생존기이다. 외모 꾸미기에 관심 없는 나조차도(유일한 꾸미기는 흰머리 감추기용 뿌염?) 평생 가장 열심히 외모를 가꾸던 사춘기 중학교 시절이 떠오르며, 그때보다 더 외모 꾸미기에, 꾸밈 노동에, 관심과 압박을 받고 있을 오늘의 청소년, 청년 세대의 이야기다.


나는 서울로, 수도권으로 ‘망명‘을 가지 않고 대구에 남아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 나는 계속해서 지금 여기의 여성 퀴어 청소년으로서 자유를 찾아 나설 것이고, 그와 함께 나와 내 친구들은 아마 영영 외모를 가지고 아파할 것 같다. "제일 외모 통증이 덜한 때는 언제야?"라는 나의 질문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라고 답한 친구가 기억난다. 그 친구를 잘 알기 때문에, 그의 사후 묘비에나마 ‘이제 외모에 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고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다들 지금 편안하길 바란다. 다들 자기 살을 잘 붙이고 덜렁덜렁 터덜터덜 삐질빼질 쿵쾅쿵쾅 다니길 바란다. 동네에서 뻥 뚫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간간이 외모 통증을 언어화하며 살아가길. 이상할 만큼 정말로 괜찮은 어떤 날에 우리는 모두 덩어리진 생명일 뿐이었으니까. - P197




2장 김애라의 [메타버스 아바타의 상태]는 메타버스라는 곳도 오프라인의 연장선상에서 과시욕과 꾸미기를 분출하는 공간으로서, 철저히, 더욱더 자본주의적 성격의 공간임을, ‘물리적 세계를 초월하지 못한 공간임을 확인한 페이퍼라고나 할까.


메타버스 공간에서 정체성은 물리적 세계에 얽매인 이미지로 구현된다제페토에서 형성되고 있는 인플루언서 문화와 각종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아바타 패션과 현실의 아이돌 이름을 딴 ‘월드‘의 존재는 우리가 아직 초월적 세계보다는 물리적 세계 안에 존재하도록 강제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 P48



4장 임소연의 [K-성형수술의 과학]는, 민음사에서 올해 출간한 강렬한 빨강의 탐구 시리즈 중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저자라서 기대하고 읽었으나, 내용에 다소 동의되지 않았다. 나의 고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적인 얼굴의 비율을 상세하게 정의하는 인체계측학의 작업은 성형수술의 발전에 날개를 달았다. 인종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 기술이 외모 개선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아시아인은 백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을 뿐‘이라는 간단명료한 설명은 성형수술이 사회병리적 현상이거나 인종주의의 도구라는 혐의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다. 이른바 인종’과학’의 출현이다. - P78



다음 편은 "대학"이네. 이 또한 할 말 많을 흥미로운 주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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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0-18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민음사에서 이런 잡지를 내고 있군요?
외모, 이거 참 심각한 문제 같습니다. 10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들이 자기 허벅지 굵어서 싫다고 한다는 얘기에 너무 슬펐어요 ㅠㅠ ˝이상할 만큼 정말로 괜찮은 어떤 날에 우리는 모두 덩어리진 생명일 뿐이었으니까˝라는 문장이 좋네요. 햇살님 잘 읽고 갑니다^^

수이 2022-10-18 13:33   좋아요 3 | URL
마흔여섯살이 된 아줌마도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어우 넘 뚱뚱한데 하지만 그래도 튼실한 게 좋은 거리고 위안을 스스로 하지요. 십대때 하던 허벅지 걱정을 굳이 이 나이까지 해야 하는가 미니 스커트 안 입어도 잘 사는데 이런 생각이 또 드는군요 으흠

햇살과함께 2022-10-18 17:44   좋아요 2 | URL
괭님, 4개월 마다 발행되는 잡지예요^^
매번 한 가지 주제로 10편의 글이 실리고요.
마지막 문장 너무 좋으면서도 씁쓸하네요.
너무 어린 아이들이 어른처럼 꾸미고 살 찔까 걱정하는 거..너무 슬프죠..
어른들, 미디어 따라 배우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걱정되네요..

햇살과함께 2022-10-18 17:43   좋아요 2 | URL
vita님, 외모 걱정은 그냥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그 강도와 부위(?)와 투여하는 시간과 돈의 정도가 다르겠지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