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인생의 조선일보
나는 조선일보를 꼼꼼히 챙기는 독자다. 내가 조선일보를 애독하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 것이다. 그러니까 햇수로만 해도 30년이 넘었다. 그땐 흑백 신문의 반이 한자였고 내가 아는 한자는 韓자, 國자, 民자, 愛자 정도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신문을 넘기신 후 보는 것이라 늘 종이 질은 구겨진 상태였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맨 처음 넘겨보고 싶어 아버지가 보기 전에 종이를 넘겨보았다. 종이 한 장이 넘어 갈 때 흩날리는 인쇄소 냄새가 좋았다. 그 시절 나는 버스가 지나가고 난 뒤 그려지던 휘발유 냄새와 소독차가 지나간 뒤 남겨지던 지독한 가스향이 좋았었다. 조선일보 맨 뒷면엔 항상 TV 란이 있었고 그 밑에 독자투고란이 있었다. 유일하게 TV소개만 한자가 없었다. 가끔 故 정영일의 영화평론과 다른 유명한 분(한자를 몰라서 ㅠ)의 방송 평론을 읽어보기도 했다.
언제인가 내가 고등학생 때 같은 나이의 '김혜수'라는 배우가 성인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연소자인 우리들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고교생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고교생이 볼 수 없는지 따지는 글을 엽서에 적어 조선일보에 보냈다. 그랬더니 며칠 후 독자투고란에 서울시 무슨 동의 몇 살 누구라며(서울시 **동 16세, ***, 이런 식으로) 내 이름이 신문에 새겨지는 일이 발생했다. 내용을 읽으며 스스로 참 잘 썼군, 미소를 지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 친척들은 조선일보만 보는 것인지 그날 우리 집 전화에 불통이 났다. 이모, 고모, 삼촌, 사촌 오빠 할 것 없이 그 몇 줄 안 되는 글을 읽고 죄다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웃긴 건 서울 무슨 동에 사는 열여섯 살 ***가 나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학교까지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들 하셨는지는 - 주로 고 녀석 당돌하군 식이었을듯 -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내용도 모르고 으쓱해 하셨다. 그때 나는 조선일보가 참 공정한(?) 신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우월감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그 우월감에 도취되어 김혜수 영화가 나중에 망했다는 사실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문제제기이후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짧은 글을 세상 사람들이 다 읽었구나 하는 야릇한 기분만 간직했던 것이다.
나는 경상남도 출신 부모님을 두었고 김대중을 빨갱이라 생각하는 가족 분위기에서 자랐다. 친척들은 제사 때 모이기만 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속은 사례를 말씀하셨고 YS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주장하셨다. 내 친척 분들은 주로 대구, 진주, 부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말 대거 서울로 이주하셨다. 나를 포함한 내 사촌들은 모두 8학군의 학교를 나왔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내 부모님을 포함한 그분들은 70년대 말 강남이 논두렁 밭두렁일 때부터 자리를 잡으셨고 지금은 분당, 용인 권에서 거주하신다. 그들 중엔 장관출신도 있고 대기업 임원, 대학교 총장, 국가 연구소 소장도 있다. 그분들의 자제, 내 사촌들 역시 대부분 대기업, 국가 연구소에 취직했다. 사촌들과 결혼한 배우자 역시 거의 경상도 출신의 대기업 프레임 속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까 나를 뺀 친척 대다수는 탄탄한 상류 혹은 중산층, 철저한 보수주의자들이다.(나도 몇 년 전까진 그랬으니 그들을 뭐라 할 자격은 없다) 이들은 모두 조선일보만 본다. 쭉 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 오늘의 조선일보
어제 자정 넘어 그들로부터 몇 개의 문자를 받았다. 이번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안좋아 잠을 못 이루고 있던 차에 꼭 거봐, 니들은 안돼 하는 조롱으로 들렸달까. 어르신들 막말 싫어하는 거 모르냐고, 노무현을 왜 싫어했는데, 등의 문자를 받고 이명박 잘 숨겨줘서 좋으냐 보낼까 하다가 그냥 부질없어서 꺼버렸다. 그리고 잠이 안와 다시 SNS를 확인해보니 지난 서울시장 선거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새벽녘에 이외수 작가만 모든 원망 이해한다며 죄송하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고 애써 아무도 말 안하는 듯 보였다. 아침에 보니 출판사와 마케터들은 상관없는 책 소개나 울지 말라는 식의 은유적인 시들만 올리고 있을 뿐...
신문을 보니 이번 야권의 참패를 김용민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오만이 부른 참사, 국민 상식에 무릎꿇다, 나꼼수의 착각등등. 두 번 죽이기는 시작되었고 이참에 확실히 밟아 씨를 말리겠다는 의지를 엿보았다. 나는 조선일보를 한 장 한 장 다 읽어보며 넘기기 때문에 그들이 상징적으로 빗댄 인사가 누구이며 무얼 비난하려고 하는지 잘 안다. 그리고 나는 내 친척들과 같은 보수층이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할지 더 잘 안다. - 참고로 노무현 시절, 그가 검사와 맞짱 뜨자고 했을 때 조선일보 읽은 (나를 포함한)보수들은 모두 거보라고 자질 안 되는 사람을 뽑은 꼴 좋다고 떠들었다. 막말 프레임은 보수가 가장 싫어하면서 열광하는 아젠다이다. 왜? 그래야 자기들하고 수준이 틀린 저질좌파를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 나는 이번 선거의 패인을 분석할 주제는 못된다. 그런 건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할 터이다. 내가 말 하고 싶은 건 보수층이라는 엄청나게 두껍고 단단한 절벽에 대한 절망의 심경이다. 그들은 책도 꼭 김진명 소설과 몇 년 째 이해인 수녀님 시집만 읽는다. 알라딘 서재같은 온라인 서재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책값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책 살 일이 없으므로 당연히 아이디도 없다. 그들도 나름 바쁘고 열심히 살기 때문에 왜 여기서 책 안사냐 뭐라 할 순 없는 일이다. 내 생각이지만 지방은 더 심하리라 생각된다.
SNS에선 자기 보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만 맞다고 생각하며 그걸 대세라 착각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조선일보는 그걸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다가 누가 실수라도 하면 제까닥 일초만에 대서특필한다. 예를 들어 이외수 새누리당 지지, 공지영 또 거짓말, 이런 식으로. SNS는 실시간이고 정보 확산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과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각의 과정이 노출되기 때문에 나중에 수정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 이런 속성을 잘 아는 보수들은 절대 SNS를 안한다. 출세하려면 어떤 종류라도 생각의 흔적을 남겨 놓는 것은 불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고로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언론에서 SNS를 무슨 종북 좌파들의 수다장소로 연일 떠들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멀리한다. 그러니까 SNS에서 그들의 생각은 절대로 알 수가 없고 - 반대로 저들은 우리 생각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고 - 우리끼리 우리 좋은 말만 허구헌 날 주고 받고 할 뿐인 것이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땐 서울이니까 그게 다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곳 알라딘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보수 성향의 알라디너가 이곳에 글을 쓸 리는 만무하다.)
#3. 우리 앞날의 동반자, 조선일보
아침부터 대한민국 보수들의 조용한 조롱과 냉소가 피부로 절절하게 와 닿는 오늘이다. 박근혜라는 붉은 지도의 화신을 넘는 일은 애초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박근혜는 준비를 오래 해온 인물이기 때문에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하루종일 박근혜만큼 애국하고 나라걱정만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지 모른다. 내가 아는 보수층들은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에 새마을 운동 노래에 맞춰 새벽 다섯 시부터 집 앞을 쓸었던 사람들이다. 독재가 무엇인지 민주화가 왜 필요한지 그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라는 일념으로 이 한 몸 부숴져라 일터에 던져온 분들이다. 나는 <강남몽>에서 내 부모님을 보았고 <허수아비춤>에서 내 사촌들을 보았다. 그분들은 전쟁 속에서 빨갱이가 당신들의 친척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고 열여덟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입대를 한 사람들이다.
그분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해온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독자가 무엇을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나는 오늘도 조선일보를 읽었다. 나는 조선일보 블로그에도 조선일보 욕하는 리뷰를 올린다. 그러면 조선일보는 제까닥 공정한척 뉴스에 띠워준다. 조선일보가 주는 떡밥을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구독료를 내었기 때문에 당당하다. 그런데 같은 글을 올렸을 때 알라딘과 예스 같은 온라인 서점에선 주기자의 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만 조선일보는 싸늘하다. 심지어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같다는 댓글도 달아준다. 조선일보가 열렬히 반응하는 건 ‘난설헌’같은 이념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순수문학이다. 난설헌 리뷰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조선일보를 보면서 나는 이 나라 보수들의 청정하고 아름다운 문학적 성향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 선거는 조선일보의 승리다. 이 승리를 정당화 하기 위해 나꼼수 죽이기는 더 꼼꼼하게 계속될 것이다. 진보는 드럽고 추악해서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말한다. 나는 반대다. 드럽고 치사하고 치밀한 계획정신을 똑바로 확인하고 알리고자 그들을 넘겨본다. 싸워서 이길 수 없을 땐 아예 싸우지 말라고, 손자병법 서문에 나와 있다. 한비자에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딱 하나, 자신에게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싸워서 이득이 생기지 않고 생기더라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판단했을 땐 과감히 다음을 기다리는 것도 용기라고, 그렇기 때문에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도록만 완벽하게 준비하고 연구해서 달려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일단 싸우기 시작했으면 되돌아 갈수 없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덤벼야 한다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승리는 싸우지도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싸우는 기술만 몇 십년 연구한 손자가 말하더라. 누가 생각나는가. 나는 딱 한사람, 박근혜가 떠오른다.
우연인가.
손자병법을 해석한 저자는 하필 MBN에서 TV조선으로 가셨구나.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조선일보로 이직한 것을 비난하긴 싫다. 다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를 알고 싶어 읽어봤다. 이 책의 결론은 손자병법이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안 싸우는 기술이라는데 있다. 싸우는 상대인 경쟁자를 존중하고 동반자로 생각하자는 공존의 철학, 그것이 저자가 마흔에 해석한 손자병법이다. 이 생각은 언뜻 진보적이고 훌륭하고 옳기도 하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미 이겼고 이긴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항상 이기기만 하는 사람이기에 너그럽게 경쟁자를 감싸안을 수 있다. 경쟁자가 자기를 이기게 하는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이긴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건 보수들이 완전 좋아하는 테마이다. 우리 사회엔 보수들이 좋아하면 확실한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많다. 이들은 빼앗겨온 입장에서 공존과 공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 이기고 나 가진 다음 나머지로 나누는 선심에 가깝다. 어제 이 책을 덮었을때 공교롭게도 김용민 낙선유력이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조선일보에서 무더기로 책을 보내주었는데 그 중에 어려운 시집이 하나 있었다. 아침에 울적한 마음에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그에게 드리고 싶은 시가 있어 옮겨 놓을까 한다. 3월에 꽃피는 봄이 오길 바랐던 그와 나꼼수 멤버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그리고 나와 같이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분들에게도 마음으로 전해 드리고 싶다.
우린 아직 젊고 젊지 않더라도 생각만은 젊다. 그러나, 생각이 젊은 건 그다지 이길 승산이 없는 패라고 손자가 가르쳐주더라. 더 꼼꼼하고 더 치사하고 더 속일 수 있어야 더 비겁해야 이긴다고, 그들은 말하더라. 일단 이겨야 공존이고 공생이고 철학이고 떠들 수 있다고 웃더라. 나는 저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꼼꼼해지기 위해서라도 조선일보를 읽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그렇게 적이 보는 눈으로 나를 보려면 냉철한 시선만이 필요하다고, 손자병법같은 비법은 한 수백권 오래전에 떼고도 남았을 박근혜의 시선이, 그녀의 미소를 일면에 장식해준 조선일보가, 그렇게 말씀하더라.
낙상 (落像)
네 혈관도 그렇게 한번 무너지고 싶었겠다
북한산 진달래 능선의 꽃사태처럼 너는
뇌출혈로 무너져 의식을 잃었다
백수광부가 물에 빠졌을 때처럼
황홀한 기억의
아슬아슬한 끄트머리, 그 잎사귀들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아직은 의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때
가로등 불빛 속으로
불콰한 얼굴들이 낯빛을 들이밀듯
펄럭이던 눈발, 색색의
현기증들, 오 그렇게
너와 함께 무너지고 싶었던
3월의 폭설, 낙상이란 말의 행복한 눈사태들
- 오정국 <파묻힌 얼굴> 中에서
낙상의 추억을 잊지말자. 그건 3월의 폭설일 뿐이었다.
이상기후가 닥쳐도 봄은 온다.
지진이 와도 꽃은 피듯이.
덧붙임)
아직 다음의 책을 안 읽으신 분들은
비록 지져분하지만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글 남겨주시는 세대에 맞춰 다른 책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