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정말 인사를 나누었던가요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가 완료되자마자 앞 다투어 중소형 마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어 달 사이 백 미터 이내에 세 개의 마트가 들어서자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상징처럼 버티고 있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 가끔 두부나 참치캔 하나씩 사러 들르곤 했는데 아이는 가게 아저씨가 친절했다고 유난히 아쉬워 했다. 우리 아파트 말고 길 건너 아파트내 가게를 포함해 구멍가게가 두 개나 망하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섰다. 편의점 자리가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라 아이들이 학원버스를 기다리면서 음료수도 사먹고 시간이 나면 컵라면도 사먹고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 있던 구멍가게 아저씨는 돈이 오가면서 내가 사람에게 돈을 건네며 사람이 계산을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편의점 알바 학생은 마치 마네킹이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긁고는 무표정하게 영수증을 건넨다는 것.(알바 학생은 아무 잘못이 없다) 아저씨는 ‘날이 춥다’ 혹은 ‘축구에서 이겼다’, 아니면 ‘저런 빌어먹을 놈이 있나’ 같은 한마디를 덧붙이며 요즘 살기 힘들죠? 하는 표정을 지어주셨다. 그래서 늘 검은 모자를 쓰고 무릎에 담요를 덮고 계시던 모습이 주름진 얼굴과 함께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는 전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큰 일 날것처럼 서둘러 가게를 나오는 게 일상화되었다. 그 아저씨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실까... 이럴 줄 알았으면 거스름돈 받으며 따스한 한마디라도 해드릴 껄... 사는 게 이렇다. 늘 지나고 나서야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는 왜 이리 달라지지 않는 건지.
지난 겨울 학교앞 네거리에 붕어빵 장사가 시작되었다. 세 개 천원이었는데 정말 맛있고 크기도 커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이었다. 늘 학교 끝나고 북적거리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느 저녁 아홉시가 다되어서 그 앞을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데 -그때가 영하 십오도 였는데 차 엔진 수리를 맡기고 마트까지 걸어가던 중이었다 - 붕어빵 아저씨가 막 마무리를 하던 참이었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뛰쳐나와 붕어빵이 남았다며 그냥 가져가시라고 봉지에 한 무더기 싸 주셨다. 먹을 거 주는데 왜 이리 뭉클한지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아저씨 눈을 보았더니 참 선하게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다가 방학이라서 문을 열지 않는 것인지 자주 문을 열지 않는 모습이 몇 번 포착되었다. 근 한 달 간 한파와 함께 붕어빵 아저씨를 볼 수가 없었다. 또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 핸드폰 바꿔준다고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이동통신 대리점 앞이 붕어빵 가게) 간만에 문을 연 게 반가워 그동안 문을 왜 안여셨냐고 허긴 너무 추웠죠, 하며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는데.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와이프가 저 세상 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 주책맞게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나왔다. 그 말 듣고 붕어빵을 사면 동정한다고 여기실까봐 그냥 입만 막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힘내세요? 비슷한 - 나와 버렸다. 아저씨가 웃는 모습이 마치 슬픔같은 건 초월한 사람같아서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났다.
새로 생긴 마트 중 맛있는 과일과 야채를 싸게 파는 곳이 있어서 지난 겨울 자주 이용했다. 그 마트는 조금 더 큰 마트와 조금 더 작은 마트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주차가 좀 불편해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보였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우리 모녀는 그 마트만 줄기차게 이용했다. 갈 때마다 매장에 사람이 없어 휑뎅그레 한 것이 우리가 미안해 질 정도 였는데 최근에 입소문이 나서 사람이 늘었다. 마트에 과일 담당 총각이 있는데 외모가 꼭 연예인같이 생긴 것이 어쩐지 거기 있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담도 잘하고 목소리도 크고 우리가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고민하고 있으면 얼른 다가와서 귤도 넣어주고 갑자기 할인도 해주고 그렇게 아는 척을 했다. 며칠 전에 그 총각이 과일과 한참 떨어진 구석 위치에 있던 우리에게 다가와 그동안 사람 없을 때 늘 찾아주셔서 고맙다고 방울토마토를-1Kg 정도 되는-카트에 넣고 갔다. 다른 직원들도 우리가 가면 어쩌다 장바구니 없이 들러도 비닐 값을 받지 않거나 말이라도 한마디 정겹게 해주는 터였다. 우리는 횡재한 기분으로 마트를 나왔다.
동네 빵집에 언젠가부터 커피를 팔길 게 한번 마셔봤는데 그 옆에 카페베네와 파스구찌보다 맛이 훨씬 나으면서도 값은 반값이었다. 커피향이 정말 진해 한 번 씩 생각이 날 정도였다. 커피를 자주 사다 마신지 몇 개월이 지나자 또 입소문이 났는지 아줌마들이 다 거기 커피를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옆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아니라 그 빵집에서 다들 차 마시며 수다를 떨지를 않나. 무언가 내가 구심점(?)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던 차에 어느날 빵집 주인아주머니가 빵을 사는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것이다. 쿠키랑 초콜릿, 날짜가 지나가려고 하는 빵들이었다. 다른 카페도 많은데 매번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한마디를 붙이셨다. 우린 또 올레~ 하며 가게를 나왔다.
아줌마로 산다는 건 사실 동네 가게 아저씨, 아줌마와 빈번하게 인사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제 어엿한 봄이 되었으므로 동네 장사하시는 분들과 더 따스한 눈빛을 나누며 살아도 좋을 것 같다.
#2. 우리는 봄이 왔다고 인사하는 사이입니다
이번 주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새가 날아들듯 책이 날아 들었다. 3월부터 조금 바빠졌다. 책만 보고 글만 썼더니 그 날들이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책 좀 읽고 글 좀 쓰는 일과 관련해 수익창출의 길로 들어서다 - 그래서 부지런히 읽었는데도 책은 여전히 쌓여있으시다. 가끔 이틀만 글을 안올려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 오셔서 아무 일 없다고 하기 참 난감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눈물나게 고맙다 ㅋ) 다른게 아니라 이런 책을 싸들고 씨름을 하고 있다. 앞으로 책 읽는 속도를 빨리 할 생각이다. 여지껏 내가 책을 느리게 읽는다는 생각은 안하고 살았는데 책이 쌓여 있으니 그것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헐.
그 중 박에스더 기자가 쓴 에세이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는 나와 같은 세대라 말투며 논리며 결론까지 미칠듯이 비슷하다. 김영하의 장편은 미니북 때문에 예판 주문하였으나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잡으면 지난번 원더보이처럼 그냥 앉은자리에서 눕는 자리까지 보다가 그 다음날 다 제쳐두고 리뷰쓸까봐 ㅋㅋ) <통섭의 식탁>은 리뷰를 반 쓰다가 다른 일이 생겨 중단 상태.(개학한다고 아이 머리 잘라주러 미용실 갈 때 들고 갔다가 거기 아줌마들이 요리책이냐고 해서 씩 웃었다 ㅠㅠ) <자본주의, 그 이후>는 예상외로 어렵지 않아 한 챕터 읽고 잠시 호흡 가다듬는 중이다. (어떻게든 이 책의 리뷰를 써 보고 싶다) 이웃님이 뒤늦게 바람들었냐고(소설 안 읽고 자꾸 인문 기웃거리니까, 하하)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나 살아온 이 체제-하니까 왜 나꼼수 생각이 나는 것이냐-를 여지껏 크게 고민안하고 살아온 세월이 한심해 죽을 지경이라서 그렇다.
다음 주 내로 폭풍 리뷰가 이어질 듯하다. 만약 이어지지 않으면 그래도 여전히 책 읽고 (낑낑대며)글쓰고 있는 줄 아시길.
이상 울 동네는 봄이 왔다고 한사람이 알려드림. 우리는 적어도 계절이 바뀌면 그렇다고 그러냐고 좋겠다고 좋다고, 서로 인사는 하는 사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