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래 간만에 야마다 에이미 작가의 책을 읽었다. 야마다 씨의 책들에 대한 판권이 소멸되었는지 이제 그녀의 책들은 거의 절판이 되어서 구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아니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던가 해야 한다. <풍장의 교실>에 대해서는 그전에 달궁 독서모임에선가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 헌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샀다. 그리고 세 개의 단편 중에서 두 개를 읽고 나서 마지막 <제시의 등뼈>를 읽다 말고 다른 두 책을 읽고 나서 마저 다 읽었다.

 

타이틀인 <풍장의 교실>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살풍경한 이지메, 왕따를 읽을 수가 있었다. 주인공은 도회지에서 사투리 쓰는 시골 마을로 이사 온 모토미야 안. 이 친구는 멋쟁이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지만, 그 반대급부로 반 친구들에게는 미움을 받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반장이자 그 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코가 있었다.

 

모토미야가 소속된 반은 에미코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리고 모토미야에게는 불량소녀로 낙인 찍힌 언니가 한 명 있다. 엄마에게 담배를 핀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 언니. 그런 언니를 보고 자란 모토미야 역시 자신도 곧 불량소녀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모토미야 반의 친구들 아니 이제는 적으로 돌변한 애들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심정이다. 결국 적들의 학대에 견디지 못한 그녀는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결정이 자신의 적들에게 복수의 방편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몰래 엿듣게 된 불량소녀 언니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적들을 풍장, 그러니까 경멸하는 방식으로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나름 아름다고 도도한 방식이지 않은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우리 시절에는 그렇게 합심해서 한 명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증오라는 감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인 <나비의 전족>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불과 읽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말이지. 두 번째 인스톨은 어려서부터 자신과 동거동락했던 친구 에리코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십대 소녀 히토미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읽은 아니 에르노의 문병일기에 따르면 치매 환자들 사이에서도 종속 관계가 성립된다고 하던데, 멀쩡한 사람들 사이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다만 방식이 예상 밖이었다. 내심 관심을 두고 있던 남사친 무기오와의 첫경험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그 시절을 통과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나의 기억이 실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이야기인 <제시의 등뼈>를 오늘 막 읽어서 그런지 제일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화자는 코코, 우연히 만난 구두쇠 검둥이릭과의 육체적 쾌락으로 시작된 관계는 그녀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릭에게는 12살 먹은 아들 제시가 있다. 릭을 사랑하게 된 코코는 릭의 아들 제시를 자원봉사하는 심정으로 보살피려고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원래 코코가 그런 여자였던가? 그녀의 친구들과의 대화를 유추해 보면 절대 아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철저한 에피쿠로스적인 삶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릭을 사랑한다면 그의 부속물처럼 따라 붙은 존재 제시도 거두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그녀의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비록 엄마가 200달러 때문에 자신을 거두는 걸 거부하긴 했지만, 아버지 릭과 어머니 사이의 증오에 얽힌 관계를 보며 자란 덕분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배운 적이 없는 그런 철부지 소년이었다. 그래도 제시가 코코에게 하는 행동들은 너무 했다고 생각한다. 코코가 없는 실력, 있는 실력 동원해서 스테이크를 구워 줬더니만 나가서 치즈버거를 먹겠다고 하니 성질을 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순간, 코코가 보살이 아닐까 싶을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급기야 제시의 만행으로 코코가 얼굴에 화상을 입는 사건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자 이즘에서 제시의 엄마가 등장할 차례가 아닌가. 역시나 그들의 날선 대화를 통해 비로소 코코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은 절대 제시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말이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과거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모두가 부질없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접점을 받아 들여야 비로소 이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코코.

 

야마다 에이미 작가가 <풍장의 교실>의 테마로 잡은 이야기는 성숙과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증오심을 폭발시키는 게 일상화된 시대에 야마다 씨가 오래 전 소설에서 파악했던 것처럼, 원인을 파악해서 무언가 고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과의 공존의 방식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말이다. 대화로 해결이 안되는 이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 찌는 듯한 무더위처럼 갑갑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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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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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진부하긴 하지만 역시나 메멘토 모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구시대의 귀족도,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을 자랑하던 갑부와 권력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죽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불변의 사실 앞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라는 개인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도. 자신이 체험한 것만 글로 쓴다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아니 에르노는 치매에 걸려 조금씩 노쇠해지는 어머니를 수년간 문병한 기록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여기서 내게 드는 합리적 의심의 하나는 이 작가는 어쩌면 어머니 문병을 가면서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처음부터 책으로 낼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라는 점이다. 작가에게는 그 모든 게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아니 에르노는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어머니가 치매로 미치셨어도, 다만 살아계시기만 한다면 좋다고 고백한다.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슴은 화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도 말년에 치매로 자신의 첫 손자와 며느리도 알아보시지 못했다. 어려서 나를 그렇게 돌봐 주시고 귀여워 해주셨다고 하던데, 기억 하나 못하시고, 수십 년 보아온 당신의 며느리를 타인으로 인지하시는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니, 오로지 본능은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처럼 먹는 거에만 갔다. 할머니는 큰아버지 댁에서 사셨는데, 큰집에서는 하는 수 없이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화장실의 비누를 갉아 잡수셨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일까? 우리 인간이 정상적인 정신으로 일상을 영위할 때만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 에르노는 당신의 어머니 증세가 심각하기 전에는 자신의 집에서 모셨다. 하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게 되자 요양원으로 그리고 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지점이 작가의 죄책감이 시작되는 포인트다. 그녀에게는 일찍 여읜 언니가 있었고, 언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자신을 어머니가 버릴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했던가. 어려서는 종교에 심취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어머니를 보살필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를 문병하면서 아니 에르노는 다양한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 가고, 이도 모두 잃으셔서 말랑말랑한 젤리 밖에 먹을 수 없으셨던 어머니. 이십대 초반에 문학교수가 된 무남독녀 외동딸을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자신을 몰라 보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죄책감과 비통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어머니가 거주하는 방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똥오줌에서 기원한 구역질나는 악취에 대한 묘사는 정말. , 한숨이 절로 나올 뿐이다.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나라는 인간은 온전한 정신과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만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일까? 더불어 사는 대동세상을 꿈꾸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타인의 이기적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선의가 얼마나 무모한 기대인지 잘 알고 있기에.

 

아니 에르노의 리얼한 문병일기를 읽으면서, 그녀에게 나 자신을 대입해 본다. 나라면 그녀처럼 애증의 관계로 얽힌 어머니를 매주 시간 내서 찾아갈 수 있을까? 어머니를 찾아가도 생기는 죄책감은 덜 수 없을 것이며, 그렇지 않았을 때 죄책감은 가중되지 않을까? 그리고 별의별 핑계를 다 대면서 자기합리화를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리고 보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행동에 나설 그런 시간인가.

 

짧은 글이었는데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준 그런 작품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나의 뒤꼭지를 잡아당기는 그런 문제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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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6 16: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문제 - 어떻게 죽느냐는 정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 더 어려운거 같아요. 아픈 부모 더구나 치매로 모든 것을 잊은 부모님을 보는건 어떤 마음일까? 비누를 갉아먹는 부모님을 보면서 살아만 계시면 돼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건 난 그러고 싶지 않다는.... 하고 많은 병 중에 치매만은 안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야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여전히 인생은 쉽지 않네요.

레삭매냐 2021-08-07 06:07   좋아요 1 | URL
나의 시작이 내 선택이 아니듯,
소멸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mini74 2021-08-06 17: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게라심이 한 말이 생각나요.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 그러니 수고 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전 그럴 용기가 없어서 게러심이 대단하다 느꼈어요 ㅠㅠ

레삭매냐 2021-08-07 06:07   좋아요 2 | URL
소멸이라는 숙명 앞에서
고저 숙연해질 뿐입니다.

페넬로페 2021-08-06 18: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소설이 현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도, 소설과 현실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겪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르듯이요^^
그래서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면 왜이리 생각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

레삭매냐 2021-08-07 06:08   좋아요 2 | URL
그것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라
그런지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오토픽션의 대가 아니 에르노
다운 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stella.K 2021-08-06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암 보다 더 무서운 게 치매라던데.
저도 연로한 울엄미 보면 은근 걱정이되곤 합니다.
물론 아직은 건강한 편입니다만.
이젠 슬슬 제 걱정도 하게 되죠. 몇 살을 살다 죽던 사는 동안은
맑은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런지. 아놔...

아직 읽어 본 적가는 아닙니다만 이 작가에겐 오토픽션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 것 같습니다.
경험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글을 쓰기 위해 엄마를 만나는...
아무래도 작가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 배우 한혜진이 속상한 일이 있어 훌쩍대며 울면서 언제고 자신이
배우가 되면 이렇게 울어줄 거라고 했던 것처럼.ㅋ
뭐 작가로 인정 받았으니 그러면 된 거지만 웬지 스펙트럼이 그다지 넓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험만 쓰니...

레삭매냐 2021-08-07 06:14   좋아요 2 | URL
맑은 정신, 행잉 터프 !!!

저는 이 작가의 책을 서점에서 처음
만났는데(<단순한 열정>) 그 자리에
서 다 읽었답니다. 오토픽션 충격 그
자체!

문병일기를 보면 어머니를 병간호하
는 동안, 단순한 열정의 모티프가 된
사건(!)이 발생한 것 같더라구요 그것
참.

붕붕툐툐 2021-08-06 2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호옷~ 저는 엄마가 ‘치매 걸려서 너희들 고생시키면 어쩌니~‘류의 말씀을 하실 때마다 ‘엄마는 숨만 쉬어도 잘하는 거니까 걱정마!‘라고 해요. 저도 엄마가 살아만 계시면 좋을 거 같아요. 할머니 때도 그랬고 저마음 완전 공감돼요~
저는 인간은 피해를 끼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엄마도 저 자신도 치매 걸리는 게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저 책 읽고 보고 싶네용^^

레삭매냐 2021-08-07 06:19   좋아요 3 | URL
인간에게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그런 운명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 그렇게
되신다면 참담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실 때 잘하자‘라고 말이라도
해봅니다.

그렇게혜윰 2021-08-07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에르노는 진짜 신기한 작가에요^^

레삭매냐 2021-08-08 08:17   좋아요 2 | URL
오토 픽션이라는 장르를 만들
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자기 이름을 딴 상도 생겼더라구요.

독서괭 2021-09-10 1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9-10 16:0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괭님 ~

새파랑 2021-09-10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천재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역서 👍

레삭매냐 2021-09-10 16:15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도 축하 축하 !!!javascript:cmtForm_12841191.ExecWrite(˝3356786˝,˝s˝);

mini74 2021-09-10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매냐님~~~ 즐거운 불금 보내세요 ~~

붕붕툐툐 2021-09-10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coolcat329 2021-09-10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 분위기가 아주 훈훈하네요.
저도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1-09-1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9-1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200951313:18 포스팅]

 

5년 전에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었죠. 뭔 일로 해서 빈타운이라는 키워드로 네이버 검색을 했는데 이 사진이 뜨더라구요.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사진인거에요. 그래서 해당 사이트로 이동을 해서 보는 순간 기가 막히더군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4528일에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에서 찍은 사진인겁니다. 아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마운드에는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그리고 타석에는 이치로가 대결을 펼치는 순간이었습니다. 3회초 시애틀의 공격에서요.

 

아주 어렵게 찍은 사진이라 절대 잊어 버릴 수가 없지요. 게다가 디카도 아닌 필카로 찍은 사진이어서 사진 정보도 없더라구요.

 

, 또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 당하네요. 네이버에 신고해서 삭제하라고 해야하나요? 어디서 퍼왔는지 궁금하네요 하도 오래 전 사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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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한 때 야구에 미쳐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뭐 이제는 제가 응원하던 팀이 저주를 풀고 난 뒤에는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바로 그 해에 저주를 풀었나 보네요.

 

때는 바야흐로 2004528일 금요일.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두 선수의 대결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한창 필카로 사진을 찍고 현상 인화까지 직접 했었지요. 필카 시절의 로망이 떠오르네요. 요즘처럼 디카로 마구잡이로 찍어 대는 게 아니라, 비싼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수전증으로 손을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샷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 했답니다.

 

당시 리그를 씹어 먹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시애틀 상대로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페드로는 7이닝 8안타 4실점 그리고 홈런도 두 방이나 맞았네요. 평소의 페드로답지 않은 모습이긴 했지만 어쨌든 시애틀의 이치로와 페드로의 맞대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볼카운트 2-2에서 2루수 땅볼을 친 이치로는 1루에서 아웃, 2루 주자였던 랜디 윈은 3루까지 진루하고 다음 타자 스캇 스피지오가 희생타를 날리면서 시애틀이 2-1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어제 문득 12년 전에 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리뷰를 보고 다른 이들의 리뷰는 어떠한가 보다가 어느 브런치 쓰시는 양반이 제 리뷰에 올린 사진을 가져다 사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어서 도용의 추억을 써보네요. 영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사진 두 장이 왜 이렇게 낯이 익은가 싶었더니만.

 

정말 재밌는 것 중의 하나는 21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의 주인공 판토하 대위 역할을 맡아 열연을 보여준 살바도르 델 솔라가 2년 전 페루 문화부 장관을 거쳐 페루 총리에 취임했었다는 점이죠.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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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06 10: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작가는 실패했지만 주인공역의 배우는 성공한건가요. 작가의 한을 주인공이 푼 건가요 ㅎㅎ 너무 재미있어요 ~~사진도용은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ㅠㅠ

레삭매냐 2021-08-06 15:3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작가는 대선에 실패했지만,
영화 배우는 총리까지 역임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진은 진차 오래 전 일이라 ㅋㅋ

2021-08-06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6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8-06 12: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레삭매냐님 도용의 피해를 많이 당하셨군요 ㅜㅜ짜증나실거 같아요
최소한 처 표시는 해야되는거 아닌가요 🤔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급 관심이 가네요^^

레삭매냐 2021-08-06 15:32   좋아요 4 | URL
저는 어제 정선태 교수님의 팟캐로
전모를 다시 훑게 되었답니다.

소요산 몽키하우스의 슬픈 이야기도
알게 되었구요. 국가주의에 의해 희
생된 이들이 페루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더군요.

페넬로페 2021-08-06 14: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 시대에 필카로 찍을땐 필름사서 넣고 또 사진현상소에 필름 맡겨서 사진 찾아오고 그랬죠. 그때의 추억이 새륵새록 해져요. 저는 한때 박찬호선수 팬이어서 LA다저스 경기는 꼭 보곤 했는데 이치로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기억나네요. 남의 사진을 어디에서 도용했을까요? 참 그러네요 ㅠㅠ
레삭매냐님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시는건가요?

레삭매냐 2021-08-06 15:33   좋아요 6 | URL
아니 제가 브런치 작가라는 건
아니구요... 브런치 작가 하시는
분이 제 픽처를 슬쩍 하신 것
같더라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제가 뽀샵한 사진을 그대로 가져
다가 꿀꺽 시츄 *^^*

넵 그 시절에는 필름 장전하는
맛이 있었지요 :>

바람돌이 2021-08-06 17: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작가신데요. 구도가 완벽해요. 사진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확 느껴지는....
요즘은 사진같은것 가져다 쓰는거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거 다 알텐데 말입니다. 간도 크신 분이군요.
아 저는 아주 오래전에 알라딘 서재에 우리집 애들 사진 올렸는데 그게 인터넷 짤로 막 돌아다니더라는.... 그것도 우리집 큰애가 중학생 때 어디서 보고 딸 친구가 ˝야 이거 너 아니야?˝하면서 보여주더라는요. 6살때 사진 보고 알아보는 친구 눈썰미도 대단했습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저는 뭐 그냥 냅둿어요. 나쁜 말은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

레삭매냐 2021-08-07 06:0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그냥 그러고 말았답니다.
그냥 왠지 칩칩하더라는.

사진 칭찬은 감사합니다.
한 때는 열심으로 찍고 그랬었는데
이젠 다 귀찮아졌습니다.

대신 책이 있으니깐요.

붕붕툐툐 2021-08-06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만능 인간을 보았나.. 하...
(책만 읽는 줄 알았더니 사진도 잘 찍고, 미국에서 야구도 보고, 부러워서 그럽니다..하하)

레삭매냐 2021-08-07 06:01   좋아요 4 | URL
필카 시절에는 증맬루 한 컷 한 컷
에 진심이었는데, 디카 시절이 되고
나서는 사진 찍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보니 대충 찍게 된 것 같습니다.

야구도 시들해지고... 낙이 없네요.

얄라알라 2021-08-07 18:56   좋아요 2 | URL
ㅎㅎㅎ툐툐님 부러워하심이 뚝뚝뚝 떨어집니다. ^^ 저도 실은 레삭매냐님께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부럽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브런치 글에 맘대로 퍼가면 ㄸㄲ이 열릴 것 같아요. 저는.

coolcat329 2021-08-07 08: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필카 시절이 있었지요. 저는 유럽 배낭여행가서 필름 7통을 찍어왔는데요...학교 사물함에 둔게 털려서 다 잃어버린 가슴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지금같으면 폰에 다 담아올 수 있는데 그 때는 그런건 상상도 못했던 시절...그래도 저는 그 시절, 스마트폰 없던 그 시절이 더 좋네요.

얄라알라 2021-08-07 18:55   좋아요 3 | URL
필카, 코닥, 현상, 현상소. 추억의 단어가 되었네요^^ 세상에 필름을 훔쳐가는 도둑도 있나봐요...두꺼운 전공책을 훔쳐가면 팔아서 현금화하려나보다 생각하는데, 필름 훔쳐서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려는 사람도 있나보네요....게다가 7통이라니^^:;;

레삭매냐 2021-08-07 19:45   좋아요 2 | URL
와우 생 필름도 아니고 다
찍은 필름을 훔쳐 가는 사람도
다 있네요...

저는 첫 유럽여행 가서 찍은
필름들을 칼라인데 흑백인 줄
알고 착각해서 현상하는 바람
에, 암튼 그랬다고 합니다.

그 시절 필름이며 스캔한 사
진들이 죄다 어디에 갔는지
찾고 싶어지네요.

에코샘인가 누군가는 여행가서
사진 찍어대기에 열중하느라
정작 그곳의 정취를 느끼지 못
했다고 다음부터는 사진 찍기를
아예 때려 치우셨다고...

coolcat329 2021-08-10 08:48   좋아요 1 | URL
책을 훔치다가 필름들어있던 봉투까지 그냥 다 가져간거 같습니다. 어딘가 버렸겠죠 ㅠㅠ

저 몇년 전 한강에서 불꽃놀이 축제 구경하는데 그 멋진 장면을 봐야하는데 사람들이 죄다 사진만 찍는거에요. 참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거 사진으로 봐봤자 직접보고 느낀 그 감동은 안 담기는데 말이에요. 😟
 




이제는 일상이 된 것처럼, 램프의 요정 신간 코너를 슬슬 문질러 보았다.

 

그랬더니만 문동에서 세문 시리즈의 199번으로 넬라 라슨이라는 작가의 <패싱>이란 책이 나왔다는 거다. 어느새 200번을 코 앞에 두고 있군 그래.

과연 어떤 책이 당당하게 200번을 차지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궁금하지 않겠지만, 참고로 100번의 모옌의 <열세 걸음>이었다.

 

그런데 나의 관심을 끄는 건 197번과 198번이 없다는 점이었다.

197번은 존 맥스웰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였다.

 

그렇다면 이 책은 두 권으로 된 시리즈란 말인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떤 연유로 199번이 먼저 나오고 197번과 198번이 나중에 나오게 되었을까.

 

문동에서 처음 세문을 내기 시작했을 때는 양장과 무선을 같이 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양장본이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무조건 양장을 사랑하는 양장 매니아이기 때문에 무선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양장이 무선보다 한 천 원 정도 원가가 더 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양장본이 빠지기 시작한 다음부터 어쩌면 나의 문동 세문에 대한 애정이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빠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무선에는 영 정이 가지 않기 때문에, 양장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닝겡으로서는 도저히 양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앞으로는 절대 양장본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예전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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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04 21: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문동 세문시리즈 양장 따로 나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네요. 말씀대로 가격차이도 얼마 안나는데 한 번 더 충격을 받았지요. 홍보가 덜 되어 흐지부지 된건 아닐까 슬픈 추리를해봅니다ㅎㅎ

레삭매냐 2021-08-04 21:27   좋아요 3 | URL
처음에 문동 세문이 출발할 적에
양장과 무선을 함께 내주어서 정말
뭇지다 싶었었는데 말이죠...

독서 인구가 줄어 들다 보니 아무
래도 제작 상의 애로사항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정적으로 돈도
더 들구!!!

이제는 모두 과거지사가 되었습죠.

mini74 2021-08-04 21: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저는 이 글 읽고 처음 알았어요. 매번 흐느적 거리는 무선판만 있는줄 ㅠㅠ

레삭매냐 2021-08-04 21:33   좋아요 2 | URL
무선... 저에게는 애증의 단어입니다.

흐느적에서 그만 빵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음료수라도 물고 있었다면 바로 뿜각
이었네요.

청아 2021-08-04 21:59   좋아요 1 | URL
두분다 재밌으심요!!🤦‍♀️👍👍

얄라알라 2021-08-04 2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은 촉각으로도 읽는 게 분명하나봐요. 레삭매냐님의 말씀에서, 양장판 세문시리즈 제대로 한 권 만져 본 적 있나 없나 돌아봅니다^^;;; 없는 쪽으로 양심의 소리가 기웁니다^^;;;;

레삭매냐 2021-08-05 07:33   좋아요 0 | URL
하하 -
책은 촉각으로 읽는 것이다.

멋지십니다, 시적이에요.
역시나 책은 손으로 넘기는
게 쵝오지요.

독서괭 2021-08-04 2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엇 양장이 있어요?? 저도 첨 알았습니다.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1-08-05 07:33   좋아요 1 | URL
아 그러고 보니 양장이 빠진
지가 오래되었나 봅니다.

과거의 유물이 된 느낌이랄까요.

페넬로페 2021-08-04 2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장 좋아해 가격이 좀 더 높아도 양장을 샀었는데 많이 이쉽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05 07:34   좋아요 1 | URL
전 무조건 양장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니깐요.
고것은 취향의 문제지요.

cyrus 2021-08-04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에서도 <패싱> 번역본이 나왔던데요.. 이게 민음사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나왔으면 문학전집 사모으는 독자들은 곤란했을 거예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1-08-05 07:35   좋아요 0 | URL
이야 대단하심~

제가 넬라 라슨으로 이름을
눌러 보니 민음사 버전은
뜨질 않더라구요.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그것 참 신기하네요.

그래도 출판사 간에 아주
약간의 상도의는 있나 봅니다.

그렇게혜윰 2021-08-04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읽는 속도가 못 따라가서...

레삭매냐 2021-08-05 07:41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독서 슬럼프인지... 쿨럭

잠자냥 2021-08-04 23: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양장보다는 무선! ㅎㅎㅎ 가격이 일단 저렴 ㅎㅎ

레삭매냐 2021-08-05 07:42   좋아요 1 | URL
저도 만날 어떻게 하면 책을 싸게
살까나 하고 고민한답니다 핫하 !

바람돌이 2021-08-05 0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장보다는 무선! 양장은 어디 넣어다니기 불편할때가 있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소파에 누워서 책보다가 떨어뜨리면 많이 아파요. ㅎㅎ
뭐 책이야 같이 기획들어갔고 번호 다 정해 놓았는데 예정과 달리 뒷번호인 패싱이 먼저 인쇄되었겠죠라고 속편하게 생각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8-05 07:43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양장책에 찍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체험담~!

구러게요. 넘버를 건너 뛰고
출간해야 할 사정이 있었나
보다 싶습니다.

chika 2021-08-05 0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패싱 전에 뭐가 나오려나,찾아봤는데 정보가...
짐작인데 정말 민음사 패싱으로인해 서둘러 먼저 인쇄들어간게 아닐까.
근데 저는 무선파예요. 벽돌책 아닌경우는 무선이 읽기 편하더라고요 ^^

레삭매냐 2021-08-05 07:45   좋아요 1 | URL
그렇죠 아무래도 벽돌책들은 무선
으로 가다 보면 뽀개지기 쉽상이
더라구요.

제가 오래 전에 나온 파트릭 샤무와
조의 <텍사코>란 책을 하나 쟁였는
데 무선이라서 책이 그만 산산조각
이 나고 말았답니다. 양장은 그렇게
뽀사지지는 않...

미싱 넘버, 집단지성이 동원된 추리
놀이 재미집니다.

chika 2021-08-05 07:49   좋아요 1 | URL
가끔 양장도 쩌억, 갈라져버리기도하지만서도. ㅎ

근데 정말 어떤 세문이 나오려나 궁금하네요 ㅎ
 
서쪽으로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2년 전에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산 책을 구간으로 만들어서 읽었다. 모신 하미드의 <서쪽으로>. 파키스탄 출신으로 서구에서 공부하고 다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 남자. 이것은 판타지인가 아니면 우리네 일상을 적나라하게 후빈 그런 르포르타주인가.

 

10년 전 독재자 알아사드를 축축하겠다고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끝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로 수백만 난민이 발생했다. 그렇게 발생한 난민들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다 건너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유럽 땅을 밟아 보겠다고 일엽편주 신세로 지중해 바다에 나섰다가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 뿐이다. 나와는 다른 피부색과 종교 그리고 관습을 가진 이들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난민 수용에 찬성하지만, 그런 내 생각에 대해 너희 집에 난민을 받아 들여 준다면 너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지란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난민들에 대한 관용은 아마 거기까지였나 보다.

 

소설 <서쪽으로>의 주인공들은 내전이 벌어진 어느 곳의 남녀 사이드와 나디아다. 둘은 대학 강의실에 만나 조금씩 사랑의 싹을 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내전이 발발한다. 그냥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연애 좀 하겠다는데 극한의 폭력투쟁이 발생하다니... 조금 소심한 남자 사이드의 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시면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새출발을 꿈꾼다.

 

여기서부터는 판타지의 영역이다. 도서의 어딘가에 이 있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드의 아버지는 같이 떠나자는 아들과 어쩌면 미래의 며느리의 제안을 거부한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죽은 아내의 곁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그리고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낯선 땅에 가서 난민이자 이방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말이다. 어쩌면 죽음이 난무하고, 죽은 이의 머리로 공을 차는 극악한 상황이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비교적 안전한 서방행을 택한다. 아 참, 그전에 세계 곳곳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네들의 삶과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를 사이드와 나디아의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다른 곳의 안온한 일상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서사를 극적으로 만드는 그런 장치로 작동한다.

 

을 통해 사이드와 나디아가 도착한 곳은 난민들의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모신 하미드는 너무 쉽게 문을 통한 공간이동이라는 방식으로 난민들의 이주를 그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좋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하긴 난민들이 어디에서 환영받는 존재였던가. 미코노스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용변을 해결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위들이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그런 일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다음 무대는 런던이다. 런던의 빈 집들에 세계 곳곳에서 온 난민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된 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이기 시작한다. 나디아에게 가장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은 샤워였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 물이 귀한 에티오피아에 간 서구의 선교사들이 무너지는 게 바로 샤워였다지. 하루에 물 한 양동이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부족과 결핍을 모르고 자란 이들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런던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들도 있었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반이주자들이 구사하는 폭력은 무시무시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일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본고장에서 벌어지는 토끼사냥 같은 진압작전에 입안에 쓴맛이 도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이드와 나디아 같은 난민들에게는 숙명 같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인을 넘어 굳은 동지애로 뭉친 사이드와 나디아의 관계에도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 균열을 무엇으로도 봉합할 수가 없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머린이라는 곳이었다. 대서양 바다가 아닌 또다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 사이드와 나디아. 원래부터 독립적이었던 나디아의 주장 대로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이드는 군말 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고향을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그리워하던 사이드는 점점 종교와 영적 세계 그리고 자기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드와 나디아의 파국은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오래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휴대전화라는 물건으로 이제는 모든 게 가능해진 모양이다. 이국땅에서 휴대전화로 나디아와 사이드는 각지에 흩어진 지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뉴스를 접하고, 동시에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동시에 당혹스러워하기도 한다. 뉴스원인 동시에 뉴스의 소비자라. 아니 어쩌면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휴대전화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수단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전기와 수도가 아니고 휴대전화가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의 어디에선가 만난 우리는 모두 시간을 통과하는 이주자들이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모든 것을 조용하게 파괴한다. 시간을 이기고자 노력했던 인간들의 노력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니 같은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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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신간 사서 구간으로 읽는 신비한 독서나라네용~ㅎㅎㅎㅎ
마지막 따뜻한 시선 넘 좋습니당~

레삭매냐 2021-08-03 13: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뭐 그래도 2년을 넘기지 않고
읽었다는 데 의의를 두려구요 ㅋㅋ

새파랑 2021-08-03 14: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정도시면 2년 쯤이야 ㅋ 더 오래 묵힌 책들도 있으실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8-03 15:28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10년이 넘어가는 책들도... 쿨럭.

바람돌이 2021-08-03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2년 넘게 묵힌 책 아주 많습니다. ㅎㅎ
내전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책인가요? 난민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가는데 우리나라라고 해서 관련없다고 내버려둘수는 없는거 같아요. 자기 땅에서 강제로 내쳐져야 하는 삶들이 더 없었으면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03 15:29   좋아요 2 | URL
난민 문제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은
수작입니다.

적어 주신 말에 자극을 받아 검색을
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1. 2021년 세계 난민수 : 7,950만 명

2. 전 세계 인구의 1%가 난민이다.

3. 세계 난민의 50%가 어린이들이다.

4. 개발 도상국들이 85%의 난민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

5. 시리아 난민 가족의 80% 정도가 빈곤선 이하다.

6. 매 2초마다 한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