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래 간만에 야마다 에이미 작가의 책을 읽었다. 야마다 씨의 책들에 대한 판권이 소멸되었는지 이제 그녀의 책들은 거의 절판이 되어서 구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아니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던가 해야 한다. <풍장의 교실>에 대해서는 그전에 달궁 독서모임에선가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 헌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샀다. 그리고 세 개의 단편 중에서 두 개를 읽고 나서 마지막 <제시의 등뼈>를 읽다 말고 다른 두 책을 읽고 나서 마저 다 읽었다.

 

타이틀인 <풍장의 교실>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살풍경한 이지메, 왕따를 읽을 수가 있었다. 주인공은 도회지에서 사투리 쓰는 시골 마을로 이사 온 모토미야 안. 이 친구는 멋쟁이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지만, 그 반대급부로 반 친구들에게는 미움을 받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반장이자 그 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코가 있었다.

 

모토미야가 소속된 반은 에미코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리고 모토미야에게는 불량소녀로 낙인 찍힌 언니가 한 명 있다. 엄마에게 담배를 핀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 언니. 그런 언니를 보고 자란 모토미야 역시 자신도 곧 불량소녀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모토미야 반의 친구들 아니 이제는 적으로 돌변한 애들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심정이다. 결국 적들의 학대에 견디지 못한 그녀는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결정이 자신의 적들에게 복수의 방편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몰래 엿듣게 된 불량소녀 언니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적들을 풍장, 그러니까 경멸하는 방식으로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나름 아름다고 도도한 방식이지 않은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우리 시절에는 그렇게 합심해서 한 명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증오라는 감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인 <나비의 전족>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불과 읽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말이지. 두 번째 인스톨은 어려서부터 자신과 동거동락했던 친구 에리코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십대 소녀 히토미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읽은 아니 에르노의 문병일기에 따르면 치매 환자들 사이에서도 종속 관계가 성립된다고 하던데, 멀쩡한 사람들 사이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다만 방식이 예상 밖이었다. 내심 관심을 두고 있던 남사친 무기오와의 첫경험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그 시절을 통과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나의 기억이 실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이야기인 <제시의 등뼈>를 오늘 막 읽어서 그런지 제일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화자는 코코, 우연히 만난 구두쇠 검둥이릭과의 육체적 쾌락으로 시작된 관계는 그녀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릭에게는 12살 먹은 아들 제시가 있다. 릭을 사랑하게 된 코코는 릭의 아들 제시를 자원봉사하는 심정으로 보살피려고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원래 코코가 그런 여자였던가? 그녀의 친구들과의 대화를 유추해 보면 절대 아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철저한 에피쿠로스적인 삶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릭을 사랑한다면 그의 부속물처럼 따라 붙은 존재 제시도 거두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그녀의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비록 엄마가 200달러 때문에 자신을 거두는 걸 거부하긴 했지만, 아버지 릭과 어머니 사이의 증오에 얽힌 관계를 보며 자란 덕분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배운 적이 없는 그런 철부지 소년이었다. 그래도 제시가 코코에게 하는 행동들은 너무 했다고 생각한다. 코코가 없는 실력, 있는 실력 동원해서 스테이크를 구워 줬더니만 나가서 치즈버거를 먹겠다고 하니 성질을 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순간, 코코가 보살이 아닐까 싶을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급기야 제시의 만행으로 코코가 얼굴에 화상을 입는 사건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자 이즘에서 제시의 엄마가 등장할 차례가 아닌가. 역시나 그들의 날선 대화를 통해 비로소 코코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은 절대 제시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말이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과거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모두가 부질없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접점을 받아 들여야 비로소 이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코코.

 

야마다 에이미 작가가 <풍장의 교실>의 테마로 잡은 이야기는 성숙과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증오심을 폭발시키는 게 일상화된 시대에 야마다 씨가 오래 전 소설에서 파악했던 것처럼, 원인을 파악해서 무언가 고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과의 공존의 방식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말이다. 대화로 해결이 안되는 이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 찌는 듯한 무더위처럼 갑갑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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