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7th, 2022 개시


책덜어내기 챌린지를 어제부터 시작했다.

다시 읽지도 않을 거면서 끼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책들을 수급해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집의 책을 둔 공간은 너무 제한적이다. 예전에 상자에 넣어둔 책들은 뭐가 있는 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책에 연필로 메모를 하지 않고 깨끗하게 봐서 중고로 팔 적에도 문제가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책에 메모를 하면서 팔거나 누구에게 주기 전에 지우개로 싹 다 지워야 한다. 죽갔네 그래. 하긴 그런 깨끗한 책들은 이미 그 전에 다 팔아 먹었지.

 

사두고 안 읽은 책들도 너무 많다. 그런 책들부터 보고 난 다음에 팔지 아니면 소장각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여전히 책을 사들이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어제 다 읽고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책들 3권을 정리했다.

 

1.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2. 사색의 부서 / 제니 오필

3. 낡은 집의 봄가을 / 우메자키 하루오

 

다 읽은 책들이고, 리뷰까지 써서 깔끔한 상태다. 읽지도 않은 책들을 팔아 먹을 수는 없지. 안그래? 이렇게 세 권을 알라딘 중고매장에 팔고 3,900원을 벌었다. 예전에 반디앤루니스에서 더 후하게 가격을 쳐주었었는데 아쉽게도 망하게 되면서 중고책 시장에서 알라딘 바잉파워가 그야말로 불을 뿜고 있는 중이다. 모두 재고가 많다는 이유로 균일가 매입이다. 감지덕지해야 하나. 백원이 없어서 짤랑대는 잔돈들을 주머니에 넣고 복귀했다.

 

오늘은 대학 동창들과 여주에 새로 둥지를 튼 친구네 집으로 엠티를 가기로 했다. 책 몇 권을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나눠 줘야지. 일단 출발은 좋다. 이틀 만에 10권 정도해서 목표치 10% 달성할 예정.



오늘부터 동네 축제 시작이다. 중상에 이런 우산들이 있더라. 멋있어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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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0-08 1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이번 달에도 이달의 당선작 패쓰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책 사는 속도가 급격히 줄어 들더군요. 한번 해 보세요. 🤣
사진 멋지네요!

레삭매냐 2022-10-08 11:22   좋아요 4 | URL
아~ 그러셨군요 ^^

아무래도 적립금이 있다 보면
필요 이상의 지출이...
하긴 적립금 천원 쓰러 가기
도 하는데요. 볼펜이라도 하나
사야 하나 어쩌나 -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10-08 1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적립금으로 넣어요
왠지 현금으로 받으면 다 흩어지는 것 같아서...ㅎㅎ

레삭매냐 2022-10-08 11:27   좋아요 3 | URL
부자 동네에서는(강남점) 적립금
으로 넣으면 매입가의 20%를 더
쳐준다고 하던데... 저희 동네에서
는 왜 그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다음번에는 캐시 대신 적립
금으로? ㅋㅋㅋ

얄라알라 2022-10-08 16:42   좋아요 3 | URL
프렌차이즈점이어도 샌드위치 값 지역에 따라 다른 건 봤어도
적립금 정책 다른 건 오늘 또 첨 알았네요^^;;;

독서괭 2022-10-08 1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매냐님 책 덜어내기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재독은 안 할 것 같은 책들을 이고지고 다니는 것 같아서 읽은 책들은 좀 과감하게 처분해보려고 합니다만.. 안 읽은 책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ㅋㅋ

레삭매냐 2022-10-09 19:10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아무래도.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읽지도 않은 채로 팔거나 누
군가에게 주는 것도 참...

책 다이어트를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자목련 2022-10-08 1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덜어내기 챌린지, 제게도 필요합니다!

얄라알라 2022-10-08 16:41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을 시작으로, 챌린지 파도타기가 이어질까요?^^

레삭매냐 2022-10-09 19:24   좋아요 1 | URL
책덜어내기 챌린지기 널리 전파되시길!

coolcat329 2022-10-08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방법입니다. 책장도 순환이 필요하더라구요. 저도 정리를 해야게습니다.
동창들과의 여주 엠티 즐거운 시간 되세요!

레삭매냐 2022-10-09 19:25   좋아요 1 | URL
책장 순환에 책덜어내기가
절묘한 비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여주 엠티는 너무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합
니다.

페넬로페 2022-10-08 15: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에도 떡하니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습니다. 아직 읽지도 않았어요.
집에 있는 책 어서 읽고 책정리해야하는데
신간에 자꾸 눈이 가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2-10-09 19:26   좋아요 2 | URL
가을이라 그런진 몰라도 신간
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와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답니
다.

사들이기만 할 게 아니라 기
존의 읽지 않는 책들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추진해
보았답니다.

얄라알라 2022-10-08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레삭매냐님, 조심스럽긴 한데,
미니멀미니멀 좋아하는
제가 다 후련한 마음입니다. 챌린지 열렬하게 응원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싹싹 책 내보낼 때의 후련함이라니! 3권에 3900원이면 ^^;; 균일가 매입이라 아쉽네요

레삭매냐 2022-10-09 19:28   좋아요 1 | URL
저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으나, 특히나 책에 있어서
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하야 이번에 노력해 보
고자 합니다.

어제 그제 해서 한 열권 정도
떠나 보내고 나니 어찌나 시
원하던지요 ㅋㅋ

mini74 2022-10-08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중고에 팔기도 하고 지역센터에 갖다주기도 하지만 ㅠㅠㅠ 그럼에도 이고지고 ㅠㅠ 적립금 받음 좋아서 두배로 사고 ㅎㅎㅎ 매냐님 파이팅입니다. 우산들 예뻐요 *^^*

레삭매냐 2022-10-09 19:29   좋아요 1 | URL
아 맞습니다 -

팔고 나서도 또 무언가 살 게
없나 두리번거리게 되더라구
요.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방법도 있었군요 :> 그런데
그곳은 근간만 받는 것 같더
라구요.

비가 와서 축제는 파토나지
않았나 싶네요.

새파랑 2022-10-09 14: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도 앞으로 안읽을거 같은 책을 정리했었는데, 몆년 지나니까 좀 후회되더라구요 ㅋ 딜레마인거 같아요 ^^

레삭매냐 2022-10-09 19:35   좋아요 2 | URL
그동안 두 번인가 이사다니면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많이 책들을
정리했었는데, 근래 들어 책이
급격하게 불어나는 것 같아서
특단의 조치를...

부디 처리한 책들을 다시 사거
나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일단 어느 한 작가에 빠지게 되면, 덮어 놓고 그 작가의 책부터 사고 본다. 지난달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한 크리스티앙 보뱅에게 반해 버렸다. 알라딘 동지들이 계속해서 좋다 하길래,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하는 마음에 <환희의 인간>을 보기 시작했는데 뻑이 가 버렸다. 그 다음에는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었다. 미치게 좋았다. 여전히 보뱅이 구사하는 문장이 가심을 후벼 파들어오진 않았지만. 어쨌든 좋았다.

 

비슷한 시기에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도 구해서 병행해서 읽기 시작했다. 한 작가가 쓴 세 권의 책들을 돌려 읽다 보니 집중력히 현저하게 떨어지더라. 세 번째로 다 읽은 이 책은 가톨릭 성인으로 추앙받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13세기에는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의 부재로 신에 대해 잘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니 지금은 세상의 모든 정보들을 원하기만 한다면 바로 접할 수 있지만 여러 제약으로 신에 도달하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았던가. 부유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프란체스코가 살던 시절은 사제와 군인 그리고 상인의 시대였다. 그는 자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라도 될 수가 있었다. 심지어 산산조각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전쟁에 직접 뛰어 들기도 했다.

 

프란체스코는 전쟁 포로가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다마섹으로 가던 길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개심한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프란체스코 역시 극적인 변신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이 세상의 속박을 모두 던져 버리고 천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걸까.

 

육신의 아버지 베르나르도레로부터 소송을 당한 아들 프란체스코는 청빈의 성자로 거듭난다. 무언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가르침일까.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변할 수 없다는 우리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계시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왜 그렇게 우리는 사소한 물질에 연연해하게 되는 걸까. 남들보다 좋은 집에, 좋은 자동차에, 보다 맛있는 것들을 먹는다고 해서 궁극의 진리에 도달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번잡한 세상을 살면서도 늘 고독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도 결국 채울 수 없는 그런 진리의 공허함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선가 본 바에 따르면 백년에 한 번씩 프란체스코 같은 이가 세상에 온다면 인류는 구원받을 것이란다. 자본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시되는 21세기에 프란체스코가 와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사랑은 결핍이라고 했던가. 사랑이 모든 것을 채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가끔 보뱅 작가가 참 냉소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치광이와 성인 모두 진리를 말한다. 전자는 자신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는 궤변에 도달한다. 미친 사람이 진리를 말한다고? 하긴 어느 사회에서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기도 하지. 성인은 청빈의 사도였던 프란체스코처럼 높고 위대하신 분의 진리를 전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진리 타령을 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이들은 의심해봐야 한다.

 

동물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했던 프란체스코를 당나귀에 비유했던가. 내가 보기에 이 당나귀는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노동을 상징한다. 우리가 언제 노동 없이 먹고 살 수가 있었던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형태의 일터에서 묵묵하게 자신이 가진 노동과 시간을 팔고 그 대가로 금전을 취득한다. 우리가 버는 돈 역시 결핍으로 귀결된다. 아니 부족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채울 수 없는 결핍과 적당히 타협하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 엔딩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철저하게 보뱅 스타일로 구사되는 서사 속에 기대한 특별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과연 내가 이 글을 꼭꼭 씹어 먹고 있는지 아닌지 모른 채, 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그렇게 부유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을 뿐. 150쪽이 안 되는 책을 읽는데 보름이나 걸리다니. 내가 세 권의 보뱅 책들을 읽으면서 발굴해낸 나만의 보뱅 독서 키워드는 바로 되새김질이다. 보뱅의 내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한 번만 읽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점. 이런 불편한 독서가 나의 성장을 도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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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0-07 16: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께는 얇아도 만만치 않은 책인가봅니다.
<환희의 인간>과 <가벼운 마음> 조금씩 읽고 있는데
확실히 감동을 주는 포인트가 있더라구요.

레삭매냐님 믿고
일단 <작은 파티 드레스>부터 사두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10-07 17:58   좋아요 2 | URL
보뱅의 책들은 하나 같이
소화가 쉽지 않네요...

감동 포인트와 더불어
염통에 스며 들지 않는
묘한 이질감이 참 거시
키했습니다.

<작은 파티 드레스>는
책쟁이들에게 감히 추
천하고픈 그런 책이었습니다.

stella.K 2022-10-07 2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뱅이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은
오래 전에 절판되었어요. 좀 아쉽긴 하지만
매냐님 이리 말씀하시니 전 그냥 패쓰해도 좋을 것 같네요.ㅋ

레삭매냐 2022-10-08 10:49   좋아요 2 | URL
다른 서점에서는
모두 절판되었지만,
이웃 교#문고에서는 지금도
판재 중이랍니다, 소근소근.

1년 정도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 볼라구요.

바람돌이 2022-10-07 2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뱅은 작은 파티드레스부터.... 일단 기억해두고요. ^^
저는 아시시 진짜 좋아하는데.... 언제 다시 가서 한달쯤 편안하게 책읽고 동네 산책하면서 지내고 싶은 도시예요. 언젠가 다시 아시시를 가게 되면 이 책을 꼭 구해서 가져가는걸로..... ^^

레삭매냐 2022-10-08 10:54   좋아요 2 | URL
저도 이태리 갔을 적에 아시시
같은 소도시에 가보고 싶었는데
꼴랑 로마랑 밀라노 같은 대도시
간 게 전부네요.

다시 갈 수 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한달살기 프로젝트 넘나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10-12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뱅 읽고 있다 멈췄는데 예사 글들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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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고대하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책들이 나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원래 이런 책들은 바로 나와줘야 하는데, 아마 판권 계약과 번역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 후 6개월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번역서가 나왔나 보다. 그리고 아쉽게도 노벨문학상 수상 약발은 떨어졌다. 우리 같은 책쟁이들이나 신나하겠지.

 

<낙원><바닷가에서>까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고 바로 구르나 작가의 최신작 <그후의 삶>에 도전했지만,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넉 달이 걸렸고 읽는데는 고작 3일이 걸렸다. 역시 워밍업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구르나 작가의 <그후의 삶>은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던 19세기 말, 독일령 아프리카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의 문명인을 자처하던 식민 지배자들은 야만의 세계를 문명화시킨다며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원주민들을 거의 노예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알 부시리 같은 인사들의 반란에 대해서는 폭력을 동원해서 분쇄해 버렸다. 자신들의 지배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고작 1세기도 가지 못할 독일의 식민지배는 폭력과 학살 그리고 기아, 굶주림이라는 상처를 그 땅에 남겼다. 식민 후발주자인 독일은 아프리카 대륙의 반대편인 나미비아에도 역시 식민지를 건설한 이야기도 궁금한데, 그 동네에서는 구르나 작가 같은 인물이 없는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상인 아무르 비아샤라 밑에서 경리 혹은 창고지기로 평범하게 살게 된 칼리파의 기구한 운명으로 소설 <그후의 삶>은 시작된다. 칼리파의 조상들은 인도 구자라트에서 건너온 무슬림이었다. 아프리카 여성과 만나 결혼한 칼리파의 아버지는 그곳에 정주했다. 구르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태생부터 난민이었던 걸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후의 삶>에는 칼리파를 필두로 해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투입된다. 독일 제국의 아프리카 군단인 슈츠트루페(Schutztruppe)에 자원입대한 일라이스를 필두로 해서, 일라이스 누이동생 아피야, 칼리파의 아내가 되는 비 아샤 그리고 역시 슈츠트루페 아스카리 출신의 함자 등등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들 모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에 순응한 캐릭터들이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인 함자는 독일군 장교의 눈에 들어 지배자의 언어인 독일어를 배우게 된다. 먹고사니즘에 있어, 언어 구사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모양이다. 다만, 독일 장교가 함자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방식이 놀이였고, 흑인 아스카리를 원숭이 취급하는 타인의 시선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함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독일 장교의 칼부림으로 엉덩이 부상을 입은 그를 치료해준 독일 선교사와 그의 부인(프라우)이 흑인 아스카리에게 가진 편견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문득 왜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는 독일 식민주의자들에게 가열친한 항쟁에 나선 알 부시리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그 편이 보다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다수의 흑인들처럼 작가 역시 지배자들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함자가 소속된 슈츠트루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게릴라 전술로 영국군을 효과적으로 괴롭히는데 성공했다. 아무런 미래와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고향을 떠나, 지배자들의 군대에 자원입대한 아스카리 용병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자신들을 제대로 대우도 해주지 않았는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싸웠던 걸까. 설상가상으로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아스카리 용병 전력은 새로운 지배자가 된 영국에게 의심이 사기에 충분했다.

 

함자는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자신의 고향이자 칼리파가 사는 마을을 찾는다. 전쟁에서 당한 부상이 낫지 않은 채. 칼리파의 집에는 오빠 일리아스에게 구원을 받았지만, 슈츠트루페로 변신해서 자원입대하면서 자신이 더부살이하던 집으로 돌아가 글을 안다는 이유로 바깥주인에게 얻어맞아 왼손을 심하게 다친 아피야가 살고 있었다. 함자와 아피야의 사랑은 작가가 예비한 수순대로 흘러간다.

 

나는 계속해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함자가 보여주는 삶의 행로에 집중했다. 함자는 아스카리 용병에서 창고지기로, 다시 목수로 변신한다. 어쩌면 이것은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탕카니카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국가 탄자니아로 나아가는 구르나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우리네 삶처럼 갖가지 굴곡이 있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함자와 아피야의 아들 일라이스가 어두운 영에 사로잡혀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키야 의식을 치르게 되자, 스스로를 개화된 인물로 생각하던 칼리파가 대노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야만과 문명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몰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후의 삶>을 읽는 내내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았나 싶다.

 

탕가를 지배했던 독일이라는 연결고리를 기점으로 삼아, 일라이스가 자신의 외삼촌 일라이스의 행적을 추적하는 장면에서는 전작 <바닷가에서>가 떠오르기도 했다. 젊은 일라이스가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지배 계급의 엘리트로 성장해가는 과정도 주목할 한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자신들을 지배했던 국가에 유학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고국에서 대단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을까. 독일에서 일리아스가 마주하게 된 나치 독일 치하에서 추진된 재식민화 프로젝트의 진실 그리고 독립한 식민국가의 엘리트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한 유대감 조성이라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과제를 엿볼 수도 있었다.

 

초반의 느슨한 전개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은 급작스럽게 진행되면서 서사가 압축되지 않았나 싶다. 후발 식민국가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카이저라이히(Kaiserreich)를 꿈꾸던 독일 제국의 이면과 이국적이고 생소한 탄자니아 국가의 속살을 드러낸 인간 군상들의 드라마가 마음에 쏙 들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이 곧 출간될 거라고 들었는데, 해를 넘기지 않고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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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06 18: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생각으로 정리중이예요 ^^;;

레삭매냐 2022-10-06 19:36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의 정리를 기대해 봅니다 :>

빠이팅.

mini74 2022-10-06 1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출판사들이 잔뜩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요. 재판 리커버? 등으로 발빠르게 대응할거 같아요. 구르나 책들도 읽어야 하는데 ㅠㅠ 스노우맨이랑 회귀물 무협지?! 읽고 있습니다 ㅎㅎ 매냐님 글 넘 좋네요 *^^*

레삭매냐 2022-10-06 19:37   좋아요 3 | URL
어떤 작가가 수상을 하냐에
따라 여느 때처럼 희비가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30분 정도 남았는데
출판사들 비상 대기 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발란데르 아자씨 책도
닐거야 하고... 보뱅도 마저
닐거야 하는디 - 그렇네요.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10-06 18: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작가들이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 조금씩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받았어요.
그후의 삶으로 읽기 마감하려고 했는데 배반이 줄간된다고요? 휴~~

레삭매냐 2022-10-06 19:39   좋아요 4 | URL
어떤 작가가 수상을 하냐에
따라 여느 때처럼 희비가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30분 정도 남았는데
출판사들 비상 대기 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발란데르 아자씨 책도
닐거야 하고... 보뱅도 마저
닐거야 하는디 - 그렇네요.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미 2022-10-06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 들어올때 노 저어야하는데
말입니다. 올해는 출판사가 좀
서두르길 바랍니다.ㅎㅎ
<배반>도 기대되네요^^

레삭매냐 2022-10-06 19:40   좋아요 3 | URL
출판사에서 구르나 쌤들의
책 출간 선정을 잘한 것 같
습니다.

<낙원>과 <바닷가에서>
는 모두 부커상 리스트에
오른 책이고, <그후의 삶>
은 최신작이더라구요.

<배반> 어서 나오너라~~~
 


이달에는 모두 9권의 책을 읽었다.

9월이라, 아홉 권?

 

이번 달은 여기 헨닝 만켈과 크리스티앙 보뱅을 읽다가 지나간 느낌이랄까.

 

보뱅은 명절 전에 이책저책 수급을 해서 잔뜩 쟁여 두었다. 그리고 분량도 짧아서 금방 다 읽을 줄 알았건만, 그것은 나의 판단 착오였다.

밀도 높은 문장들 덕분에 나의 독서는 지지부진하지만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서 두 권은 다 읽었다. 다행 다행 -

 

그리고 부족하지만 느낌 가는 대로 리뷰를 남겼다.

먼저 읽다만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부터 읽어야겠다. 10월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그런 다음에 헨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우선 오래 전에 쟁여둔 <하얀 암사자>로 기세 좋게 출발을 했다. 왜 이렇게 재밌는 건데. 그리고 새롭게 피니스아프리카에에서 나온 시리즈 1탄과 2탄을 연이어 읽었다. 그리고 <사이드 트랙>까지 총 4권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소지은 남자>를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은 중년 형사 캐릭터에, 우리가 복지천국이라 부러워하는 스웨덴 사회에 대한 스케치에 이르기까지 잠자던 나의 독서욕구를 촉발시킨 무언가가 이 시리즈는 담뿍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곳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발란데르 시리즈를 읽다 보니 노르딕 세계의 중심인 스웨덴에 그리고 발란데르가 활약을 펼친 위스타드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을이 온줄 알았는데 다시 덥다.

날이 좀 더 선선해지면 조용한 곳에 가서 줄창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21년 전에 나온 헨닝 만켈의 <미소지은 남자>의 번역은 정말... 이래서 새로운 번역을 읽어야 하나. 일단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잘 따라 가는 중이지만 곳곳에서 세세한 부분은 완전 발... 그랬다고 한다.

 

다음달에는 또 어떤 새로운 책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만빵이다.

,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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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30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 강추😊


레삭매냐 2022-09-30 17:22   좋아요 2 | URL
좋은책만들기 번역은 정말
아마추어틱한 게...

피니스아프리카에 번역을
기다려야 하나요.

2022-09-30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9-30 1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럼 10월에는 10권이네요 ㅋ
10월에도 즐거운 독서에 맛집까지 섭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9-30 17:23   좋아요 2 | URL
왕년에 한창 책에 미쳐
살 적에는 20권 정도는
거뜬했는데 이젠 노쇠하여
ㅋㅋㅋ

맛집 투어! 기대를 저버리
지 않겠습니다. 독립책방
도 둘러봐야 하는데...

할 일과 갈 곳 그리고 먹을
것들이 많지만 시간이 태
부족이네요.

scott 2022-09-30 17:25   좋아요 3 | URL
매냐님 생선 맛집 순례기 팬 🤗

페넬로페 2022-09-30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9월에 9권~~
라임이 좋아요.
보뱅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저도 읽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2-09-30 17:34   좋아요 2 | URL
저도 말씀해 주신 라임을
노려 보았습니다 ㅋㅋㅋ

백년마다 프란체스코 성인
같은 분이 나온다면 우리
인류는 구원 받을 거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

분발해 보겠습니다.

stella.K 2022-09-30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월은 10권. 11월은 11권. 12월은 12권.
잠을 줄여서라도 라임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내년 1월엔 한 권만 읽으시면 되니까 잠은 그때가서 보상 받으시고.ㅋㅋ

레삭매냐 2022-09-30 23:49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자주 그랬는데
요즘에는 체력이 달려서리...

일찌감치 자야겠습니다.

남은 세 달 동안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독서괭 2022-09-30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 <눈먼자들의도시> 하나 있네요 ㅎㅎ 다음달엔 또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만빵이라는 말씀에 공감공감!! 요즘 책읽는 기쁨이 무지 큽니다~^^

레삭매냐 2022-09-30 23:49   좋아요 2 | URL
전 이제서야 <눈먼 자들의 도시>
를 읽었는 걸요 :>

부디 10월에도 그 즐거움과 기쁨
이 유지 되시길.

mini74 2022-10-02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을 잡아라가 새로 나왔군요. 10월엔 10권. 그렇지만 1월엔 1권일거 같지 않은 ㅎㅎ 매냐님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2-10-03 19:50   좋아요 1 | URL
올해 100권 중에 이제 19권
남았답니다 :>

석달이 남았으니 충분히 달성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연휴가 다 끝났네요.
감사합니다.
 
사이드 트랙 발란데르 시리즈
헨닝 망켈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읽을 책들은 항상 수급을 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책을 읽는다는 말이 있는 걸까. 헨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 <리가의 개들>까지 3권을 달리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사이드 트랙>을 집어 들었다. 이거 또 그전의 시리즈들과 결을 달리 하는데 그래. 추리물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시리얼 킬러가 등장한다.

 

<사이드 트랙>이 가진 다른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소설과 다른 변별점은 바로 킬러가 누구인지 먼저 알리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그래서 누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를 저지르는지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언제 우리의 주인공 발란데르 형사가 이 희대의 빌런을 검거하는가이다. 범인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전개가 쫄깃할 수 있을까? 능구렁이 헨닝 만켈 아재는 바로 그 지점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그리고 적어도 내게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맛에 추리물을 끊을 수 없는 걸까.

 

이제 모두가 다 알겠지만 쿠르트 발란데르 경관은 허점투성이 인간이다. 아내 모나와는 진작에 이혼했고, 하나 있는 딸 린다와는 소통불가다. 어머니는 작고하셨고, 홀로 남은 아버지는 자신보다 30세나 어린 돌보미 아줌마와 결혼해서 발란데르의 속을 썩인다. 전편에서도 치매기를 보이던 아버지는 정식으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자신이 애써 그린 그림들을 불태우는 기행을 보이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왜 이렇게 실감이 나는 걸까.

 

바다 건너 라트비아에는 <리가의 개들>에서 만난 바이바 리예파가 있다. 그녀에게 구혼을 해보지만, 그녀의 전남편 경관이 라트비아 악당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한 트라우마로 두 번째 남편을 해외에서 또 경관으로 고를 수 없다는 걸 발란데르는 너무나 잘 이해한다. 이런 중년의 위기를 보드카와 좋아하는 바버라 헨드릭스의 오페라만으로는 달랠 수가 없다고 헨닝 만켈은 독자들에게 조근조근 속사인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바버라 헨드릭스를 검색해 본다고 하고선 잃어 버리고 있다가 지금 너튜브로 통해 그녀의 음성을 들어 보니, 과연 발란데르가 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수 배우는구만 그래.

 

발란데르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메인 스토리에서 한참 또 벗어나 버렸다. 스포도 최대한 자제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추리소설의 경우에선 말이지.

 

어쨌든 구린내를 풀풀 풍기는 전직 법무부장관 구스타프 베테르스테트가 자신의 저택 부근의 바닷가에서 척추에 도끼를 맞고 머리 가죽이 벗겨진 사체로 발견된다. 당연히 범인의 정체는 알 수 없다. , 그전에 서두에 도미니카에서 태어난 돌로레스 마리아 산타나(D.M.S.)란 아기의 이야기도 잠깐 등장하는구나. 추리물에 아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 법이다. 나중에 다 연관이 되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느 유채밭에 갈색 피부의 소녀가 휘발유을 끼얹고 분신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발란데르.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하고 분석해야 하는 경찰들이야말로 어쩌면 극한직업 중의 극한직업이 아닐까 싶다. 아마 어쩌면 이유와 격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경찰들이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연히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않게 흘러간다. 이 일을 좋아서 한다고 하면 아마 거짓말이지 싶다.

 

스스로를 후버라고 명명한 킬러는 잇달아 살인사건을 벌인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문제가 있는 인사들이었다. 심장의 저편에서 둥둥 북소리를 울리며 지령을 내리는 제로니모의 명령에 따라 얼굴을 위장하고, 신성한 임무에 나서기라도 하듯 냉정하게 일처리를 하는 후버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발란데르는 여러 가지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자신만의 직감에 근거해서 범인에 대한 몽타주를 작성한다. 일단 무자비하게 도끼 자루를 휘두르는 남자고, 날씬하고, 냉정하며 겸손하다는 점을 도출한다. 물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범죄를 구사하는 만큼 그에 대한 정보는 일천하다.

 

사실 <사이드 트랙>을 읽으면서 내가 집중해서 본 것은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노출되었고, 그의 범죄를 언제 멈출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결국 파국은 이미 피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1990년대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고 있었던 스웨덴 사회에 대한 헨닝 만켈이 기술한 보고서가 마음에 들었다.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에서 물질적 결핍과 가난은 이미 퇴치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중들이 느끼는 정신적 결핍은 확산일로였다. 전통적 가족의 위상이 해체되었을 때,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무엇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험한 세상의 파고를 헤쳐 나갈 멘탈 강화를 위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해본다.

 

좀 더 디테일하게 살펴 보자면, 스웨덴 인구의 1/4이 산다는 대도시 스톡홀름에서나 벌어질 법한, 강력 범죄들이 쿠르트 발란데르가 활동하는 위스타드 같이 작은 도시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니 그전에는 도망간 소와 망아지들을 체포하거나, 취객들이 무시로 벌이는 싸움질을 말리는 것이 주임무였던 위스타드 경찰서 경관들 역시 자신들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 예산을 삭감하고, 주말 유치장 관리를 민영화한다는 프로젝트까지 구상 중이었다. 시민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물적 토대가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헨닝 만켈의 책을 통해 아직 제대로된 복지국가로의 이행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박한 물질만능주의에서 유래된 온갖 기상천외한 범죄들이 난무하는 한국의 오늘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28년 전에 이미 스웨덴은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일들을 이미 다 겪은 건가. 개인의 위기, 다층화되어 가는 사회적 문제들 그리고 시리얼 킬러를 쫓는 긴박감이라는 세 가지 토끼사냥에 나선 쿠르트 발란데르의 종횡무진 활약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시리즈가 과연 선전문구대로 노르딕 누아르의 레전드가 될 법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9946월과 7월은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린 해였다. 브라질과 같은 조에 속해 있었던 스웨덴은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헨닝 만켈은 위험천만한 후버의 복수극을 추적하는 동시에, 자국이 월드컵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는데도 나처럼 축구에 별다른 관심 없는 쿠르트 발란데르의 무심함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후반으로 가면서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는 실종되어 버리지만.

 

다 필요 없다. 결론은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밌다는 거다. <사이드 트랙>을 집어 들면서 이거 너무 두꺼운 거 아니야라는 노파심은 이야기에 몰입되면서 순삭되었다. <사이드 트랙>을 다 읽자마자, 어제 도서관에서 수배한 <미소지은 남자>를 읽기 시작했다. 시리즈 네 권을 독파하면서 이제 발란데르 경관에 대한 파악은 끝났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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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30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쟁여두기˝라 쓰는데 ˝수급˝이라 하시니, 격이 다르십니다^^ 레삭매냐님,

바버라 핸드릭스를 지미 핸드릭스로 생각할 뻔

책에 나오는 노래도 다 찾아가보시는군요^^ 얼마나 몰입하시며 좋으셨으면

요샌 저도 소설을 못 읽었는데
보뱅부터 읽고. 플친님들 대열에 끼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2-09-30 23:51   좋아요 2 | URL
그럴 리가요 -
오늘 주식시장 공모주
망조의 여파로 수급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나 싶
습니다.

전 처음에 바브라 스트
라이전드인 줄요 ㅋㅋㅋ
다채로운 오페라 곡을 듣고
싶은데 온통 <아베 마리아>
만 있더라구요.

보뱅은 고저 사랑입니다.

자목련 2022-09-30 16: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는 일만큼 쓰는 일도 중요한데, 매냐 님의 속도는 대단합니다!
연휴에도 신나게 읽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지 싶어요^^

레삭매냐 2022-09-30 23:52   좋아요 1 | URL
알라딘의 다른 독서 전사
들에 비하면 저는 그저
보탤 뿐이지요.

연휴에도 부지런히 읽겠
습니다. 충성!

coolcat329 2022-09-30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도 읽으셨군요.ㅋㅋ
실행력 추진력 최고세요~
저는 피니스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대로 천천히 읽어보려고 해요.
근데 이 책 무지 재밌군요! 이게 다섯 번째죠?

레삭매냐 2022-09-30 23:54   좋아요 2 | URL
쿠르트 발란데르 너무
재밌습니다. 혹시 몰라서
연휴 때 읽어 볼라고 두
권 땡겼답니다.

발란데르 시리즈로는
네 번째인가 봅니다.

피니스아프리카에
젭알 빨랑 책 좀 내주세요.
못 기달리겄어요.

coolcat329 2022-10-01 10:51   좋아요 2 | URL
사이드트랙이 시리즈 다섯 번째라는 의미였습니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나온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혹시 아시나요? 유명한 경찰 추리물 시리즈인데 이것도 저는 너무 재미나게 읽었거든요.
레삭매냐님도 좋아하실 거 같아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