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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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고대하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책들이 나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원래 이런 책들은 바로 나와줘야 하는데, 아마 판권 계약과 번역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 후 6개월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번역서가 나왔나 보다. 그리고 아쉽게도 노벨문학상 수상 약발은 떨어졌다. 우리 같은 책쟁이들이나 신나하겠지.

 

<낙원><바닷가에서>까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고 바로 구르나 작가의 최신작 <그후의 삶>에 도전했지만,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넉 달이 걸렸고 읽는데는 고작 3일이 걸렸다. 역시 워밍업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구르나 작가의 <그후의 삶>은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던 19세기 말, 독일령 아프리카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의 문명인을 자처하던 식민 지배자들은 야만의 세계를 문명화시킨다며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원주민들을 거의 노예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알 부시리 같은 인사들의 반란에 대해서는 폭력을 동원해서 분쇄해 버렸다. 자신들의 지배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고작 1세기도 가지 못할 독일의 식민지배는 폭력과 학살 그리고 기아, 굶주림이라는 상처를 그 땅에 남겼다. 식민 후발주자인 독일은 아프리카 대륙의 반대편인 나미비아에도 역시 식민지를 건설한 이야기도 궁금한데, 그 동네에서는 구르나 작가 같은 인물이 없는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상인 아무르 비아샤라 밑에서 경리 혹은 창고지기로 평범하게 살게 된 칼리파의 기구한 운명으로 소설 <그후의 삶>은 시작된다. 칼리파의 조상들은 인도 구자라트에서 건너온 무슬림이었다. 아프리카 여성과 만나 결혼한 칼리파의 아버지는 그곳에 정주했다. 구르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태생부터 난민이었던 걸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후의 삶>에는 칼리파를 필두로 해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투입된다. 독일 제국의 아프리카 군단인 슈츠트루페(Schutztruppe)에 자원입대한 일라이스를 필두로 해서, 일라이스 누이동생 아피야, 칼리파의 아내가 되는 비 아샤 그리고 역시 슈츠트루페 아스카리 출신의 함자 등등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들 모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에 순응한 캐릭터들이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인 함자는 독일군 장교의 눈에 들어 지배자의 언어인 독일어를 배우게 된다. 먹고사니즘에 있어, 언어 구사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모양이다. 다만, 독일 장교가 함자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방식이 놀이였고, 흑인 아스카리를 원숭이 취급하는 타인의 시선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나중에 함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독일 장교의 칼부림으로 엉덩이 부상을 입은 그를 치료해준 독일 선교사와 그의 부인(프라우)이 흑인 아스카리에게 가진 편견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문득 왜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는 독일 식민주의자들에게 가열친한 항쟁에 나선 알 부시리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그 편이 보다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다수의 흑인들처럼 작가 역시 지배자들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함자가 소속된 슈츠트루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게릴라 전술로 영국군을 효과적으로 괴롭히는데 성공했다. 아무런 미래와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고향을 떠나, 지배자들의 군대에 자원입대한 아스카리 용병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자신들을 제대로 대우도 해주지 않았는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싸웠던 걸까. 설상가상으로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아스카리 용병 전력은 새로운 지배자가 된 영국에게 의심이 사기에 충분했다.

 

함자는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자신의 고향이자 칼리파가 사는 마을을 찾는다. 전쟁에서 당한 부상이 낫지 않은 채. 칼리파의 집에는 오빠 일리아스에게 구원을 받았지만, 슈츠트루페로 변신해서 자원입대하면서 자신이 더부살이하던 집으로 돌아가 글을 안다는 이유로 바깥주인에게 얻어맞아 왼손을 심하게 다친 아피야가 살고 있었다. 함자와 아피야의 사랑은 작가가 예비한 수순대로 흘러간다.

 

나는 계속해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함자가 보여주는 삶의 행로에 집중했다. 함자는 아스카리 용병에서 창고지기로, 다시 목수로 변신한다. 어쩌면 이것은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탕카니카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국가 탄자니아로 나아가는 구르나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우리네 삶처럼 갖가지 굴곡이 있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함자와 아피야의 아들 일라이스가 어두운 영에 사로잡혀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키야 의식을 치르게 되자, 스스로를 개화된 인물로 생각하던 칼리파가 대노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야만과 문명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몰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후의 삶>을 읽는 내내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았나 싶다.

 

탕가를 지배했던 독일이라는 연결고리를 기점으로 삼아, 일라이스가 자신의 외삼촌 일라이스의 행적을 추적하는 장면에서는 전작 <바닷가에서>가 떠오르기도 했다. 젊은 일라이스가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지배 계급의 엘리트로 성장해가는 과정도 주목할 한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자신들을 지배했던 국가에 유학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고국에서 대단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을까. 독일에서 일리아스가 마주하게 된 나치 독일 치하에서 추진된 재식민화 프로젝트의 진실 그리고 독립한 식민국가의 엘리트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한 유대감 조성이라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과제를 엿볼 수도 있었다.

 

초반의 느슨한 전개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은 급작스럽게 진행되면서 서사가 압축되지 않았나 싶다. 후발 식민국가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카이저라이히(Kaiserreich)를 꿈꾸던 독일 제국의 이면과 이국적이고 생소한 탄자니아 국가의 속살을 드러낸 인간 군상들의 드라마가 마음에 쏙 들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이 곧 출간될 거라고 들었는데, 해를 넘기지 않고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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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06 18: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생각으로 정리중이예요 ^^;;

레삭매냐 2022-10-06 19:36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의 정리를 기대해 봅니다 :>

빠이팅.

mini74 2022-10-06 1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출판사들이 잔뜩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요. 재판 리커버? 등으로 발빠르게 대응할거 같아요. 구르나 책들도 읽어야 하는데 ㅠㅠ 스노우맨이랑 회귀물 무협지?! 읽고 있습니다 ㅎㅎ 매냐님 글 넘 좋네요 *^^*

레삭매냐 2022-10-06 19:37   좋아요 3 | URL
어떤 작가가 수상을 하냐에
따라 여느 때처럼 희비가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30분 정도 남았는데
출판사들 비상 대기 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발란데르 아자씨 책도
닐거야 하고... 보뱅도 마저
닐거야 하는디 - 그렇네요.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10-06 18: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작가들이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 조금씩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받았어요.
그후의 삶으로 읽기 마감하려고 했는데 배반이 줄간된다고요? 휴~~

레삭매냐 2022-10-06 19:39   좋아요 4 | URL
어떤 작가가 수상을 하냐에
따라 여느 때처럼 희비가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30분 정도 남았는데
출판사들 비상 대기 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발란데르 아자씨 책도
닐거야 하고... 보뱅도 마저
닐거야 하는디 - 그렇네요.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미 2022-10-06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 들어올때 노 저어야하는데
말입니다. 올해는 출판사가 좀
서두르길 바랍니다.ㅎㅎ
<배반>도 기대되네요^^

레삭매냐 2022-10-06 19:40   좋아요 3 | URL
출판사에서 구르나 쌤들의
책 출간 선정을 잘한 것 같
습니다.

<낙원>과 <바닷가에서>
는 모두 부커상 리스트에
오른 책이고, <그후의 삶>
은 최신작이더라구요.

<배반> 어서 나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