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스’의 흥행 성공으로 스필버그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할리우드의 유망주가 된 그에게 많은 시나리오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죠스2’를 비롯해 ‘킹콩’ ‘슈퍼맨’ 등 흥행이 보장된 시나리오들을 모두 거절했다. 그가 바라는 건 ‘뻔한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었다. 스필버그가 선택한 차기작은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공상과학영화인 ‘미지와의 조우’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극본까지 쓴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영화사에 남기기에 충분한 걸작 ‘E.T.’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큰 눈에 1m가 될까 말까 한 땅딸막한 몸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넓적한 얼굴, 총 대신 식물표본을 든 선량한 외계인 E.T.는 스필버그의 상상력이 빚어낸 결정체이자 스필버그의 분신 같은 존재다. 1982년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관객이 가장 의외로 받아들였던 것은 외계인이 ‘나쁜 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까지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외계인의 모습은 로스웰 사건에서 드러난 외계인 시체처럼 무언가 음험하고 위험한 존재, 또는 지구를 정복하러 온 무서운 괴물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착하고 연약한 식물학자 E.T.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외계인과 지구인이 서로 공생해야 한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펼쳐 보였다.
E.T. 스필버그의 분신
‘타임’지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애리조나에 살던 어린 시절, 컴퓨터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한밤에 자신을 흔들어 깨우던 기억을 회고했다.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차에 태우고 한밤에 사막으로 달려갔습니다. 전 아버지가 무얼 하려는지 몰라 좀 무서웠죠. 어느 지점에 가자 아버지가 차를 세우시더군요. 넓은 벌판에서 사람들이 온몸에 담요를 둘둘 감은 채로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유성우를 보러 나온 사람들이었어요. 아버지와 저 역시 나란히 담요 위에 누워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보았습니다. 장관이었지요. 그 순간, 우주에 우리 아닌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그들은 분명 우리의 친구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T.’는 지금껏 스필버그가 감독한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화 속에서 E.T.가 소년 엘리엇과 손가락을 맞부딪치는 장면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떠올리게 하는,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또 엘리엇과 E.T.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보름달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피터팬이 관객을 달나라 너머의 네버랜드로 인도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훗날 영화사 ‘드림웍스’를 설립한 스필버그는 이 장면을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영화들의 오프닝 시그널로 사용했다.
‘E.T.’는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를 위해 백악관에서 특별 상영되었으며 유엔은 이 영화를 제작한 공로로 스필버그에게 유엔 평화 메달을 수여했다. 영국 시사회에 참석한 다이애나비는 영화를 보던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 ‘롤링 스톤’지의 평론가 마이클 스트라고는 ‘E.T.’에 대해 “스필버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은 놀라운 특수효과가 아니라 그의 마음 깊숙이에 숨어 있는 따스함이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선풍적인 흥행 열기에도 ‘E .T.’는 1982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는 데 실패했다. 아홉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E.T.’는 네 개 부문-음향, 음악, 특수효과, 시각효과-의 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감독상이나 작품상을 받지 못한 것은 영화가 담고 있는 감성적이고 순수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개가 전형적인 해피엔딩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동을 남발하는 과도한 휴머니즘 영화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기 위해 스필버그는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상업영화의 귀재
사람들은 흔히 스필버그를 ‘흥행영화의 귀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죠스’와 ‘E.T.’에 이어 내놓은 작품들, 전편의 흥행성과를 능가하는 ‘인디애나 존스’나 ‘쥬라기 공원’의 흥행성적을 보면 ‘스필버그=최고의 흥행감독’이라는 공식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필버그가 단순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진진한 모험영화를 만드는 데만 출중한 감독인 것은 아니다. ‘E.T’를 논외로 한다 해도 스필버그는 흑인 여성들의 우정을 그린 ‘컬러 퍼플’(198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무대로 한 ‘태양의 제국’(1987)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를 적잖게 감독했다. 그가 워낙 대단한 블록버스터를 양산해낸 탓에 이런 작품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스필버그가 영화를 지나치게 빨리 찍는다는 점도 그를 상업영화 감독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다. 그는 한 해에 두 편의 영화를 찍는 일이 허다하다. 예를 들면 그는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라는 두 편의 대작을 1993년 한 해 동안 완성했다. 2002년에도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함께 감독했다. 그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캐슬린 케네디는 이런 작업 속도에 대해 “열세 살 때부터 영화를 감독해서 그런지, 스필버그는 그 누구보다 영화촬영 메커니즘에 통달해 있다. 그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출연한 톰 행크스 역시 “영화에 관한 지식에서 스필버그는 가히 백과사전 수준”이라고 말했다.
1981년 작인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1편 ‘레이더스’는 스필버그의 영화 중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로 손꼽힌다. 가죽채찍을 든 학자 겸 탐험가 인디애나 존스 박사를 처음 등장시킨 이 영화는 제작된 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험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더스’는 너무나 재미있다는 이유로 작품성이 평가절하된 경우다.
조지 루카스가 제작을 맡고 스필버그가 감독한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시리즈물은 감독하지 않는다’는 스필버그의 평소 지론과 달리 4편까지 제작되었고,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 중 2편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담고 있다”는 혹평을 들었으나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통해 현재의 아내 케이트 컵쇼를 만났다. ‘인디애나 존스 2’에서 툭하면 소리를 지르다 존스 박사에게 핀잔을 듣는 여주인공 윌리 스콧이 케이트 컵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