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제작-스필버그 감독-해리슨 포드 주연-존 윌리엄스 음악’이라는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가 만들어낸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3편이 탄생한 지 19년만인 2008년 ‘인디애나 존스 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으로 되살아났다. 영화의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나 감독 스필버그는 모두 예순이 넘은 노장이 된 상태였다. 그러나 나이 든 존스 박사는 여전히 터프하고 멋졌으며, 스필버그의 발랄하고도 기발한 상상력 역시 관객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네 편에서 모두 존스 박사로 출연한 해리슨 포드는 “스크린 속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멋지게 표현하는 데는 스필버그를 따라갈 감독이 없다”고 평했는데, 이는 관객의 처지에서 보아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영웅이 아닌 인간의 영화
‘인디애나 존스’가 재미와 스타일을 겸비한 영화라면, ‘쉰들러 리스트’는 한결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쉰들러 리스트’의 경우는 스필버그의 ‘아카데미 콤플렉스’뿐 아니라 스필버그 자신이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했던 본연의 콤플렉스를 뛰어넘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깊다. ‘쉰들러 리스트’의 성공 후, 스필버그는 학창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죠스’로 인정받기 전까지 크고 작은 차별대우에 여러 번 맞닥뜨렸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에게 심하게 맞아서 코피가 터진 적도 많았습니다. 코가 좀 작아지면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밤마다 코에 테이프를 붙이고 잠들곤 했죠.”
‘쉰들러 리스트’의 원작은 1982년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시절, 스필버그를 처음 발굴했던 시드 샤인버그는 이 소설의 ‘뉴욕타임스’ 리뷰를 스필버그에게 보냈다. 영화화를 검토해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이 제의를 단번에 거절했다. 유명한 감독으로 인정받은 상황에서 굳이 유대인이라는 스스로의 콤플렉스를 환기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또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유대인 감독이 제작한다면 반유대주의 감정을 부추길 위험도 있었다. ‘쉰들러의 방주’는 스필버그를 거쳐 마틴 스콜세지, 로만 폴란스키, 시드니 폴락 등 여러 유력한 감독을 거쳤으나 그 누구도 선뜻 이 작품을 승낙하지 않았다. 결국 소설이 출간된 지 10년이 다 되어서야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감독하기로 결심했다.
폴란드에서 1000명이 넘는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를 스필버그는 흑백 필름으로 제작했다. 파격적인 시도였다. 영화의 소재가 실화인 만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찍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스필버그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모든 대사를 폴란드어와 독일어로 처리하고 영어 자막을 삽입하는 방법을 고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리암 니슨, 랄프 파인즈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열연한 이 영화는 1993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을 포함한 7개 부문 상을 수상했고, 2007년 미국 영화협회가 뽑은 ‘역대 최고의 미국영화 100선’에서 8번째 영화에 선정되었다.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도 작품상을 수상한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스필버그는 작품성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평론가 존 그로스는 ‘뉴욕타임스’에 실은 영화평에서 “솔직히 디즈니 만화영화와 스필버그풍의 모험영화가 뒤섞인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니 그런 생각은 나의 편견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인간 본연의 도덕성과 감성이 훌륭하게 결합된 걸작이다”라고 호평했다.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 개봉 이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어 이 영화에서 얻은 수익 전액을 기부했다.
‘쉰들러 리스트’를 기점으로 스필버그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미스타드’,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를 주제로 한 ‘뮌헨’, 가벼운 코미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쥬라기 공원’풍의 모험영화에서 조금 변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묘한 방법으로 경찰을 따돌리는 지능범의 이야기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나 음울한 미래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모두 180도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동화 같은 스토리’가 아니라 인간의 눈물과 땀, 그리고 고뇌가 담겨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점점 더 평범해지고 있고, 그의 영화는 영웅이 아닌 인간의 일상을 다룬다.
2005년 막 환갑을 맞은 스필버그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저에게 묻습니다. 왜 ‘E.T.’나 ‘레이더스’ 같은 영화를 더 이상 찍지 않느냐고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런 기회는 많지요. 예를 들면 ‘해리 포터’ 시리즈와 ‘스파이더맨’의 감독 제의 같은 것들 말이죠. 저는 두 작품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 영화들은 아이의 순수함이 담긴 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예전에 이미 해봤으니까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열정이 가득 차는 날이 오면, 다시금 이런 영화들로 되돌아갈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같은 해 개봉된 ‘우주전쟁’은 어둠과 고통으로 가득한 화면과 사악한 외계인이 등장해, ‘스필버그판 공상과학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스필버그는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된 걸까? 나이 든 피터팬은 이제 네버랜드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할아버지가 된 피터팬, 땡땡과 손잡다
1994년 영화사 ‘드림웍스’를 설립한 이후 스필버그는 대부분의 영화를 직접 감독하기보다는 제작하고 있다. ‘트랜스포머 2’를 제작해 올여름 극장가를 강타하기도 한 스필버그의 향후 스케줄은 2011년까지 꽉 짜여 있다. 그가 제작하는 영화들 중에는 2011년 링컨 탄생 200주년을 맞아 개봉하는 영화 ‘링컨’(리암 니슨이 주인공 링컨 역할을 맡았다)도 포함되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