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1부는 회식 때문에 다음날 저녁에야 보았습니다. 그 회식 장소에서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후배가 말했습니다. "오늘 저는 일찍 들어가서 추노나 봐야겠어요." 그리고 그 친구는 2차를 마다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우리는 오랜만에 방앗간에 들른 참새들처럼 어시장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2차로, 3차로 아쉬움을 달랬지요.



사진제공@kbs




곽정환 감독이 만든 작품은 무조건 본다는 후배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그 후배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곽정환 감독님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 감독님이 만든 거는 무조건 봅니다. 진짜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곽정환 감독'이라고 하지 않고 꼬박꼬박 '곽정환 감독님'이라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존경하는 모양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는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합니다. 그리고 그런 직업에 걸맞게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주로 갇혀 있는 국내와 헐리우드를 벗어나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 나아가 동유럽, 인도, 아시아까지 폭이 아주 넓습니다. 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후배가 추노를 일러 "아마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곽정환 감독님(!)이 만드신 작품은 무조건 본다"고 하니 아니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 오늘 저녁이로군요. 컴퓨터로 재방송(재방송이 맞나요? 아무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포스팅을 이미 몇 시간 전에 올렸습니다. <추노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

저는 그 포스팅에서 <추노>가 단 1부의 방영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한 것은 장혁의 매력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실로 장혁은 추노를 위해 준비된 인물이었습니다. 아니 추노 대길이 오직 장혁을 위해 마련된 캐릭터라고 말했던가요? 아무튼 장혁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껄렁거리는' 그의 독특한 연기는 대길을 조선 최고의 추노답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제공@kbs

그러면서 저는 감독의 연출과 시나리오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단 1부의 방영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장혁의 빛나는 매력 때문이었다는 말로 우선은 지켜보기로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전 2부를 보고난 후에 비로소 저는 이 드라마의 가공할 마력 뒤에는 감독의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시 추노의 힘의 원천은 곽정환 감독이었다

아, 정말 그렇군요. 제게 곽정환을 '감독님'이라고 호칭하던 후배의 말처럼 과연 곽정환 감독은 대단한 연출자였습니다. 신비하고 화려한 영상들이 마치 구름처럼 흐르는(실제로 화면이 구름처럼, 어떨 땐 바람처럼, 물결처럼 흘렀어요) 장면들에선 온 몸의 근육이 팽창하며 숨이 멈출 듯했습니다. 마지막 광활한 갈대밭에서 마주 선 장혁과 오지호를 보셨나요? 그 두 사람 주변을 흘러드는 화사한 영상들에선 비장한 슬픔마저 배어나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2부에서 드디어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오지호, 껄렁거리는 대길과 대조되는 강인하고 비장한 남자의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매력이 대길과는 또 다릅니다. 그렇군요. 대길에게 송태하가 없다면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오지호 역시 장혁이 없이는 자신을 완성하기 힘들겠지요.






그러나 역시 이들 두 사람의 멋진 연기를 화려한 영상에 담아내는 것은 감독이었습니다. 광활한 갈대밭을 가로질러 달리는 두 사람의 동작들을 감싸고 흐르는 신비한 화면의 변화들은 순식간에 보는 사람을 압도했습니다. 신비한 빛에 싸여 세상이 멈춘 듯한 화면, 그 속에서 빛나는 대길과 송태하의 숨 막히는 대결, 이것들을 만들어낸 것은 역시 감독이었습니다. 

하하~ 아무튼 저도 앞으로 그 후배처럼 곽정환을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될까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렇게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시진 않는군요. 그리고 <추노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극본을 쓰신 분은 천성일 작가로군요. 그런데 천성일 작가가 올려놓은 한 구절이 제 눈에 너무나 크게 들어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희망은 작고 부질없지만, 그것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 명품 감독에 명품 작가의 어록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바로 몇 시간 전에 썼던 <추노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

"작년 한해를 풍미했던 <선덕여왕>은 현대 정치사를 고대 신라에 옮겨놓은 것 같은 각본으로 대성공을 연출했습니다. 선덕여왕이나 미실은 단순히 고대 신라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호흡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커다란 공감을 불러냈습니다. 인터넷은 온통 <선덕여왕> 천지였지요. <추노>(본문에선 '장혁')도 그리 할 수 있을까요? 1부에서 만난 <추노>라면 충분히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노>에 거는 기대가 더 큽니다. <추노>에는 곽정환 감독의 화려하고 신비한 영상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명품 감독과 만난 명품 작가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어떤 것일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정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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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을 위한 집




20대부터 자연스럽게 제 방은 나를 위한 방이라기보다 책을 위한 방이었습니다. 서재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거기서 책과 함께 자고 먹고 놀고 다했죠. 그래서 어떤 공간을 보면 먼저 책을 둘 장소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 내부는 텅 빈 채 골조만 올라가 있는 상태였어요. 천정이 높다는 이유로 덜컥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천장이 높으면 책을 많이 넣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지요. 제가 외부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을 쓰는 체질도 아니고 우리 식구는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기에 집안에 서재가 두 개는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냥 집 자체를 서재화, 작업실화 시켰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놓고 외출해도 걱정이 없을 정도에요. 책 말고는 가져갈 게 없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이러한 서재를 만들기 위해 일상적인 것들을 많이 포기했고 그것이 나중에 저를 많이 불편하게 하더군요. 책꽂이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 2층 화장실을 포기하는 등 오로지 책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생활적인 면에서는 많이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책들을 보며 '이것을 내가 가지고 있구나'. '너무나 많은 것을 내가 누리고 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빈 책꽂이가 많아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마음 놓고 책을 꽂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쁩니다.


다 읽고 나니 봄이 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3개월 동안 읽었던 삼성출판사의 한국문학 전집 60권은 저의 자양분이었어요. 낮에도 창에다 검은 도화지를 붙여 방을 어둡게 하고 불을 켜고 읽었죠. 겨울에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니 봄이 왔고 뭔가 다른 힘이 생긴 듯이 든든해졌죠.

문학을 하다 보니 여전히 문학신간 위주의 독서가 주가 되긴 하지만 작품을 쓰다 보면 필요에 의해 하게 되는 독서도 상당수 있어요. 이를테면 낚시꾼을 묘사하기 위해서 낚시입문 서적을, 토끼를 등장시키기 위해 토끼 기르는 법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합니다.
30대 지나면서는 저절로 심리학, 정신분석 ,역사, 철학, 미술 ,신화 쪽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도스토예프스키는 다 읽기가 벅차서 악령 빼고는 나중에 나이 들면 읽어야지 하고 미뤄놓기도 하고 이방인 같은 작품은 매년 한 번씩 다시 읽어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전기나 자서전 ,평전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스콧니어링 자서전이나 로렌 아이슬리 자서전 ,로맹 가리 전기를 보면서 저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 영역이 얼마나 광활한지를 실감하죠. 그때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도 합니다.


한 권의 책은 곧 한 명의 사람


서재는 제 보금자리이자 둥지여서 따로 분리가 안 되요. 그냥 함께 사는 것이지요. 책도 그래요. 한 권의 책은 곧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 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한 사람과 깊이 소통하는 일과 같습니다. 모르고 있던 해박한 지식이나 세상의 수많은 낯선 이야기들을 알 수 있으니 사실 나로서는 득만 보는 소통이 되겠네요. 그들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에 대한 교감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에게 책은 곧 사람이고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미셸 투르니에처럼




햇볕이 잘 드는 한낮에 블라인드를 다 올려놓고 책장을 올려다 보며 서재 바닥에 누워볼 때가 있어요. 바닥이 타일이라 차가워요. 그래도 마치 마당에 누워 있는 것처럼 아늑하답니다. 제겐 조카들이 많은데 그들이 몰려와서 서재에서 이 책 저 책 들춰보며 뒹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그래서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처럼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서재를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오래된 수도원을 구해서 집으로 여기고 사는데 항상 문을 열어두어 온 동네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논다고 해요. 투르니에가 없을 때도 말이죠.
나중에는 소중한 책을 낸 저자들도 초대해서 낭독회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동의도 구해야 하는 일이니 정말 먼 훗날쯤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작품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 마을이라 읽을거리가 풍성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책을 본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소리 내어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간판이며 과수원의 배나 포도를 싼 신문지까지도요. 저는 형제가 여럿인데 오빠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그가 빌려오는 책들을 제가 먼저 읽기 시작 했고 그것이 독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난독이어서 뭘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에 읽었던 무수하고 잡다한 책들이 모두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었어요. 난쟁이 일가족의 삶을 통해 참다운 문학작품의 품격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소외된 사람들이 그의 문학 안에서는 오히려 중심이었고 이 작품은 저에게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필사를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간결한 문체인데도 울림이 크고 견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작품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 문장들이 그런 아름다움을 유지하길 하는 바람입니다.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


작년에 그림과 눈물이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라는 첫 문장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어요. 또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와 제임스 엘킨스의 독특한 이력에도 매력을 느꼈고요. 이 책은 설문을 토대로 쓰여진 글이라서 읽고 있는 이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예술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걸 쑥스러워하죠. 감동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감동의 눈물조차도 타인의 시선을 느껴야 하는 데서 오는 억압도 한 몫 한다고 봐요.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무의식적인 억압이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마크 로스코의 텍사스 예배당에 걸린 그림 앞에서 울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나도 당장 그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검고 어두운 색깔 때문에 울었다는 사람들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와요. 눈물은 슬플 때만 흘리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될 때도 눈물을 흘리죠. 결국 이 책은 부제처럼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내 안에 흐르다가 멈춰버린 감동의 눈물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울어 본지가 굉장히 오래되셨다거나 내 마음이 메말랐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에게 특별히 권해 드리고 싶네요.


새해에도 좋은 책을 가까이 두고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모두 따뜻하고 꿈이 많은, 좋은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또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들 일 것 같아요. 그래서 저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책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해잖아요. 책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조금 더 많아지고 우리의 만남도 더 깊어지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저자이기도 하고 독자이기도 해요. 그러니 우리는 늘 그렇게 함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시절이지만 새해에도 좋은 책을 가까이에 두고 한 발짝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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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책들을 한 공간에 모아두고 보니




원래는 여기저기 책꽂이가 있었는데요. 예전에 살던 부모님 댁과 형제들 집에 있는 것들을 한 공간에 모아보자 하여 이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새로 마련했고요. 일단 모아보니, 없어진 책들이 참 많더라고요. 잃어버린 책들은 과연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했고요.(웃음)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름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아놓으니 딱 이만한 방에 들어오더라고요.
아… 그래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책을 가지고도 자양분을 얻을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또, 책이 아닌 매체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영화나 음악, 잡지, 신문, 뉴스, 인터넷의 블로그 글들도 이런 형태로 어딘가에 보존해두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책은 보존이 되지만 휘발되어 버리는 그런 정보들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고 책을 통해서 지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또 대외적으로는 음악 하는 사람이고 해서 보시기에 좀 의외이실 것 같아요. CD나 악기가 함께 있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좋아하는 책들을 많은 분들께 소개시켜 드릴 수 있고, 혹시나 저 사람은 어떤 책을 볼까 궁금하실 분들이 즐거우실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저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여러분과 똑같은, 그러나 나름의 취향을 가진 일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책들 중에서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들만을 뽑았거든요. 재미있게 즐기면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삼형제가 나란히 앉아 책을 보던 기억


저는 일단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책을 읽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제가 초등학교 때 공부를 다시 시작하신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에도 집에 책이 참 많았는데. 서재의 큰 테이블에 삼형제가 대학원 공부하시는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숙제도 하고 했던 모습이 제게는 참 소중한 기억이에요. 굉장히 평화롭고 행복하면서, 지적인 호기심이 있을 때 바로바로 찾아보기도 하고 물어 보기도 하던 그런 공간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었습니다. 또, 제가 같이 사는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공부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사실 책을 좋아하긴 하더라도 서재에 정좌하고 있기 보다는 좀 뒹굴 거리면서 여기저기서 읽는 편이거든요. 이런 두 가지 필요성으로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삐삐롱스타킹을 쓰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이라는 스웨덴 할머니의 작품인데요.어린 시절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책이에요. 사후 세계에서 주인공 형제가 다시 만나, 흔히들 생각하는 평화로운 천국의 모습처럼 행복하다기 보다는 또다시 투쟁하는 이야기인데요. 그곳에서 용기 있는 삶을 살고 목숨을 잃은 후에 다시 한 번 다른 세계로 넘어 가는 이야기에요. 어린 시절 죽음에 대한 공포가 피부로 오는 나이가 있잖아요. 크면 오히려 그런 고민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고민을 한창 하던 어린 시절에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어요.





카프카, 보르헤스, 마르케스, 베케트를 좋아해요


이들이 환상성과 우화성을 유머적인 코드에 담아 이야기하는 점이 좋습니다. 세계에 대한 짓궂은 농담이 너무 짓궂어서, 웃으면서 읽다 보면 점점 웃음이 잦아들게 되는 그런 점이요. 노래 가사에도 있지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웃으면서 아프니까, 아픈걸 훨씬 더 아프게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중 카프카는 제가 대학시절 접했던 작가인데요. 카프카의 단편집은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정도로 사물을 보는 시선이나 상상력 등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




저도 승효상 선생님처럼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에요. 4-5권을 동시에 보는데요. 침대, 마루, 화장실, 서재, 심지어 부모님 댁에서 읽는 책이 다 달라요. 어떤 책들은 한번에 확 읽어버리는 것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여러 책을 동시에 읽어요.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지만 소설, 인문학, 과학, 일본어 책, 영어책 등으로 조금씩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뇌의 여러 부분을 건드려 주는 것 같아요. 특히 영어나 일본어 책은 매번 사전을 찾아야 하기에 굉장히 오래 걸리는데요. 이런 외국어 책을 보다가,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우리나라 책을 보면 또 막 잘 읽히고, 그러다 어느 순간 또 나른해질 때쯤 해서 외국어 책을 들면 뇌의 전혀 다른 부분이 간지러워져요. 이런 것들이 결국 전체적으로 머리의 여러 부분을 잘 건드려 주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한 책을 보다가 지쳐서 며칠씩 내팽개쳐지게 되더군요.


풍성한 책장을 갖고 싶은 바람




저는 실제로 그런 서재를 본 적이 있는데요. 소설가 신경숙 선생님 댁에 가본 적이 있어요. 나중에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꼭 소개해 주세요. 거기 가보면 아… 2층까지 전부 책꽂이에요. 계단을 올라 가서 2층을 보면, 오디오와 엄청난 책장이 있고요. 하여튼 모든 사방에 입이 떡 벌어지게 되요. 남편이신 남진우 선생님과 두 분이 일생 동안 모으신 책들이 정말 장관입니다.
지금은 저도 아파트에 있어서 조금 제한적이지만 나중엔 꼭 그런 공간에 살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실은 이 서재를 만들 때 도움을 주신 분이 신선생님 서재를 만들어 주신 분이세요. 제가 선생님께 여쭤보고 조언을 구했었죠. 지금 이 책장을 짜고 얼마 안된 때에 이렇게 마침 연락을 주셔서 서재를 만든 보람이 있고 기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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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알리는 일은 소중하기에




제가 영상 매체 종사자이긴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면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지내는 시간이 더욱 깁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 자양이 됐던 원천은 사실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 관련된 일에 참여하거나 도움을 주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마다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 일이 아니라면 모르고 지낼 만한 좋은 책을 이 기회를 빌어 알리는 일은 제가 영화를 찍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 못지 않게 소중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재라기 보단 '서고'라고 해야...




이 서재는 이 집을 지어 이사 오면서 처음 만들었는데, 저희 집 서재는 ‘서고’ 라고 해야 맞습니다. 서재는 책을 두고 읽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우리 집은 책은 쌓아놓았지만 읽는 공간은 아닙니다. 그저 책을 꽂아 놓는 공간이죠. 저희 집사람의 생각인데 책은 어느 곳에서나 읽는 것이고 따라서 식구들의 책은 모두 한곳에 모아놓고 책을 꺼내서 자기 방이나 거실이나 중정에서 읽는거죠. 즉, 이 서재는 편하게 흩어지는 공간으로서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저는 수집가가 아니라서 dvd나 cd나 책이나 계통을 갖추어서 빠진 것 없이 모으는 것, 희귀본, 고서 등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실용적이고 필요한 책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좋은 책들은 아이가 컸을 때 혹시 필요할까 싶어서 버리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좋은 책이 쉽게 절판되고 있기 때문에 집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책을 많이 쌓아두고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좀 골머리 썩는 일이죠. 결국은 책을 이고지고 살려면 서재가 결국은 점점 커져야 하니까요.
계통/원칙 없이 키를 맞추어서 모아놓는 편입니다. 그래야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요. 책의 구매는 인터넷으로 많이 사고 있어요. 이것저것 검토해서 고민 해서 구매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저자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 책이 나오면 꼭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엔 헌책방을 많이 다녔는데 더 이상 그럴 시간이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헌책방에서 절판된 책을 구하는 재미가 아주 큰데 지금은 다니면서 책을 고르는 시간에 차라리 한 줄을 더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후배중에 헌책방을 열심히 돌아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종종 부탁하는 편이에요. 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서 은퇴하면 또 그러한 즐거움을 누리게 되겠죠.


문학에서 만화까지 잡다하게


잡다하다고 밖에..(웃음) 어떻게 보면 한정되어 있는데... 인문 사회과학과 문학에 한정되어 있고, 그 분야 안에서는 매우 잡다합니다. 그리고, 만화가 조금 있고요. 만화광은 아니 지만 좋다고하는 작품은 챙겨서 보고 있고, 아이가 많이 좋아하는 편이에요. 또 만화책은 몇 권만 있어도 부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실제로 서재를 보면 비중이 많아 보이 기도 합니다. 만화 중에서는 ‘보노보노’가 가장 소중하고, 작가선생님과 일본에서 만나 뵌 적도 있어서 보내주신 일본 책도 좀 있습니다. 제가 좋아 하는 만화는 ‘멋지다 마사루’ 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문학이 가장 많습니다.


기억 속에 자리잡은 책들




처음 돈 주고 산 책은 ‘동서추리문고’가 아닐까 합니다. 예전 중고등학교 시절에 ‘삼중당문고’와 함께 돈이 생기는 대로 사서 모았 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몇 권은 가지고 있고요. 이것이 저의 취향이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장정 제본 모든 면에서 고풍스럽고 읽을 맛이 나는 겉모습에 너무 내용도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동서추리문고’는 특히 본격 번역된 sci-fi소설이 많았는데요. ‘우주선비글호’의 모험이 제일 재미있었구요. ‘삼중당문고’에서는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애착 가는 작가, 으뜸으로 꼽고 싶은 책




한국 사람 중에는 ‘이문구’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특히 ‘관촌 수필’은 대학생시절에 읽으면서 감탄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던 작품이고요. 한국 외에서는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합니다.
으뜸으로 꼽고 싶은 책은 단연코 ‘관촌수필’입니다. 이 책은 문장으로나 인물들 성격을 구축하는 면에서나 한국적인 정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국 사람의 손으로 쓰여진 문장 중에 으뜸으로 꼽혀야 되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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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있어서 서재는 삶 자체입니다


서재라 하면 책이 있는 공간을 뜻하는 것이지만, 저에게 있어서 서재는 삶 자체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아가며 책을 읽었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직업을 거쳤기 때문에 마치 밥 먹듯 책을 접했습니다. 이제는 몇 권 읽었고 몇 권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많이 읽었고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책이 쌓인 서재는 곧 제가 일하는 공간이자, ‘아침편지’를 쓰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공간입니다. 따로 책을 분류해 놓지 않지만, 직감으로 어느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압니다. 책을 찾을 때면, 찾는 책이 ‘나 여기 있소’, 이렇게 말을 걸어와요.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은, 아버지의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는 시골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지금도 선친을 ‘늘 손에 책을 들고 있었던 분’이라고 기억을 해요. 돈이 귀하던 그 시절, 돈만 생기면 아버지는 책방에 가서 밀린 외상값을 갚고 책도 하나 새로 끼고 오셨습니다. ‘너희 아버지 책 사는 바람에 내가 아주 못살겠다.’ 라는 어머니 말씀에 저는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엄청난 양의 책을 물려주셨습니다. 가난한 목사님이었지만, 장서가 많은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셨죠. 저도 그 물려받은 책을 끌고 다니느라 아내하고 여러번 다투었습니다. 이사 짐을 옮길 때마다 제일 골치 아픈 것이 책이잖아요. 무거우니까 큰 짐이 되지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은 저에게 있어서 그냥 책이 아니고, 아버지의 눈물이오, 아버지의 영혼입니다.
힘든 시기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을 펼쳐보면, 그곳에서 밑줄을 발견하게 되요. 거기서 저는 살아있는 숨결과 말씀을 느낍니다. 그 밑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래서 저도 모든 책에 밑줄을 긋습니다. 지금은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그 밑줄이 나중에 그것을 읽을 내 아들, 손자, 손녀, 내가 아끼는 후배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습관은 아버지가 저에게 물려준 유산입니다


아버지는 저를 회초리로 때려가면서 책을 읽게 했어요.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한) 연구’를 제 앞에 떨어뜨리시면서 밑줄 그어 놓으라고 하셨지요. 다음날 검사를 하셨는데, 당연히 밑줄이 안 그어져 있었기에 회초리로 맞았어요. 저희는 3남4녀였는데, 제 위의 형님은 아버지께서 책을 읽게 하고, 매를 들었을 때 가출을 했습니다. (웃음) 저까지 가출할 수는 없어서 참고 책을 읽기는 했지만 원망도 하고, 고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 후 대학 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 책과 밑줄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후 잡지 기자생활, 신문 기자 생활을 할 때에도 그 책을 읽으면 새로운 뜻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제가 취재한 상황을 책에 대입해보면, 내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매를 맞으면서 책을 읽고 밑줄 그었던 것이 나중에는 습관이자 아버지가 저에게 물려준 유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자나깨나 책 속에 있으니, 언제부터인가 제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한 분별력도 생겨나고, 책이 인생을 디자인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차츰차츰 알게 되더라고요. 부모의 먹는 습관, 웃는 습관, 말하는 습관처럼 책 읽는 습관도 그대로 유전자처럼 물려주게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려운 책은 처음에는 그냥 책장만 넘겨봅니다




독서를 지식을 얻는 것으로만 머물지 말고 -그건 공부가 되고 일이 되거든요.- 책을 취미처럼, 생활처럼 즐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습관화 하는게 참 중요하고요.

책이 자기 것이 되게 하려면 책 읽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쉬운 책, 재미있는 책은 요령이 필요 없죠. 그런데 어려운 책, 꼭 읽어야 할 책들이 있습니다. 이런 책은 처음부터 정독하면 힘듭니다. 이런 책은 처음에는 그냥 책장만 넘겨봅니다. 그러면 어떤 단어가 말을 걸어와요. 그렇게 마지막까지 넘겨보면 그 책이 훨씬 편안해져요.
그 다음에 또 한 번 넘겨 보는 거죠. 놀이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놀다 보면 이제는 어떤 문장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 다음, 세 번째쯤부터 읽기 시작하면 책이 재미있어집니다. 그런 방식으로 책 읽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갖고 습관화하면 책이 겁나지 않게 되지요. 어떤 책을 자기 손안에 둬도 이 책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죠.




책은 영감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




저는 매일 ‘아침편지’를 통해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아침편지’에 소개된 글을 중심으로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합니다.
이렇게 책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대화에 중요한 반찬거리이자 주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갖고 이야기하게 되면 대화가 재미있어요. 때로는 매우 가볍게 지나가듯이 이야기할 수 있고, 때로는 매우 심각하게, 때로는 눈물 흘리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책은 영감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데, 모두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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