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5
허먼 멜빌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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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이란 어떤 것일까를 자주 고민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어렸을 때는(내지는 청소년기에는) 지금처럼 책이 다양하지 않고 접할 기회도 없어서 그저 읽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많은 출판사들이 좋은책을 앞다투어 내기 때문에 쫓아가기도 벅차다. 그래서 나름으로 기준을 세우는 부모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다이제스트 판이 아닌 완역으로 된 책을 읽히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난해한 책들을 꼭 완역본으로 읽히며 고문을 해야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책들이 과연 완역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감동하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남아있지 않던가. 그래서 약간 수정을 했다. 이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온 책을 환영하기로.

사실 내가 청소년기에 이 책을 안 읽었기에 무척 궁금했었다. 지난번에 어떤 작가가 강연회에서 아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기에 마음 속으로 찜하고 있었던 책이다. 아직까지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고래. 동물 중 가장 크고 포유류이면서도 물 속에서 사는 신기한 고래. 지금이야 함부로 고래 잡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래잡이는 흔했었다. 이 책은 화자인 이스마엘이 고래잡이를 나가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고래잡이 배를 타고 항해 하면서 겪었던 일을 술회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은 허먼 멜빌이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가 탄생 100주년,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되었단다. 사후에 빛을 보는 예술가가 어디 멜빌 뿐이겠냐만은 그래도 안타깝다. 자신의 소설이, 당시의 보편성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책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에 힘을 얻어 더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야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지만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분명 뭔가 다르긴 한데 딱히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러다 해설을 보면서 알아챘다. 이건 누구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확실한 주인공이 있어서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형식이 아닌,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는가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 그러나 읽으며 열심히 누구를 중심으로, 즉 누구에게 나를 대입하며 읽을까 열심히 궁리하지만 결국에는 덧없는 짓이 되고 만다. 왜? 이스마엘과 모비 딕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지니까. 그제서야 허탈감이 밀려온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에게 동화되어 읽기도 하고 때론 비록 복수심에 눈이 멀어 정신이상자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종의 측은지심 때문에 멋지다(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간혹 보이는 내면과의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아하브에 동화되기도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제서야 독자는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 것이 바로 고전이라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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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블로그 푸른도서관 2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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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겨울이라 그럴까. 유난히 표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정말 예쁘고 깔끔한 것이 딱 내 취향이다. 하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표지를 좋아할 것이다. 이 시대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블로그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이 꽤 있다. 그 블로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와 주길 기대하며 꾸며 나간다. 그리고 익명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만약 한 쪽에서만 익명일 뿐이고 다른 쪽에서는 상대를 알고 있다면 어떨까. 상대가 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안 순간 지금까지와의 관계는 깨지고 말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감시한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런 이야기가 바로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다.

원래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여성성이 드러나는 친구 보다는 남자 같은 아이가 인기가 있다. 아마도 자신과 다른 것을 동경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단점이라고 생각한 부분들이 상대에게서는 보여지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이야기가 바로 첫 번째 이야기다.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 하는, 모든 선생님이 인정해 주는 아이와 선머슴 같고 적어도 겉으로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쿨 한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그러나 둘의 우정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일 뿐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혜욱이에게 민지 주변에 얼쩡거리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담임이 마음에 안 든다해도 그렇게 마음대로 학교를 뛰쳐나오면 어떡하나. 이야기는 혜욱이가 무작정 버스를 타고 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독자들은 뒤에 어떻게 될지를 알기에 안타깝고 불안한 것일 게다. 왜 꼭 그렇게 반항적으로 행동해야만 했을까. 모든 아이들은 그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괜히 답답하다. 단지 이야기일 뿐이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다음 두 번째 이야기. 처음 두어 줄을 읽으면서, 아니 '민준에게'라는 첫 문장을 읽으며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름이다 싶었다. 바로 전에 읽었던 <베스트 프렌드>에서 똑같은 이름 때문에 헷갈렸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건 이름만 똑같은게 아니라 아예 동일한 글이다. 알고 보니 이건 한 작가의 단편집이고 다른 책은 여러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었다. 잠시 또 헷갈렸다. 왜 같은 시기에 펴 내는 책 두 권에 같은 이야기를 실었을까. 한 권만 보는 독자를 위해서 그랬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오면서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상태를 묘사하지만 정작 엉망이 된 것은 은호 자신의 마음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독이 빠지는 시간 동안 금단 현상을 참고 견뎌야 하듯 은호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랑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기에 진서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진서의 전화가 왔음에도 그냥 만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몽땅 밀어버린 머리 때문에 다음날 학교에서 난리가 나겠네.(왜 자꾸 학교 생활에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 딸이었다면, 내 아들이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아,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것 때문에 괜히 꿈자리만 뒤숭숭했다. 그만큼 충격이컸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영악함과 사회적 다수의 횡포, 뭐 이런저런 이유로 심란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작가는 명확한 결말은 고사하고 각 인물의 정확한 상황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냥 두루뭉실 넘길 뿐이다. 그러면서 나머지는 독자가 알아서 상상하라는 듯이... 모든 사람은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교사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맹랑한 학생에게 뒤통수 맞는 듯하다. 정말 이런 아이들이 있을까. 아직도 난 현실을 좋은 쪽만 보는 순진한 어른이 되고 싶은가 보다. 아니, 청소년을 가슴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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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프렌드 푸른도서관 20
이경혜 외 4인 지음,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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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청소년 책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럴까. 유독 요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아니면 관심을 갖다 보니 많이 보이는 것일까. 어쨌든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좋아할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가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요즘 고등학생들의 생활은 어떨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또 많이 바뀌었으니 내가 다니던 때와는 달라졌겠지. 그러나 이런 책들을 접할 때마다 변한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그렇고 고민하는 것도 그렇고 학교 생활도 그렇다. 물론 그건 작가가 자신의 생활을 반추해 가며 이야기를 써내려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소위 청소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글을 쓴다는 작가들이 현재의 청소년들 생활을 무시한 채 옛 기억만을 가지고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한창 풋풋한 사랑을 하기도 하고 괜히 세상이 모두 불편부당한 것만 있는 것 같은 울분을 느끼기도 하는 고등학생 시절을 다섯 명의 작가가 하나씩 들려준다. 주인공 시점은 아니지만 작가가 주인공 수연 주변을 맴돌며 전적으로 수연의 모습만 보여주는 <베스트 프렌드>, 전학 가는 은따를 대신해 자신이 은따가 되어 버린 상황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자신만을 자책하는 모습을 그린 <가식덩어리> 등 각각의 이야기들이 결코 마음 편안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나마 마지막 이야기가 안심을 느낀다고나 할까. 하지만 어디 세상에 마음 편안하게 하는 이야기만 있으랴. 또 그렇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가라앉고 암울하기만 한 것일까. 요즘 계속 이런 류의 이야기들만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이제는 밝은 이야기도 좀 만나고 싶다. 하긴 밝고 명랑한 이야기를 하면 현실을 무시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나저나 '민재'라는 이름이 남자 이름으로 인기가 있나 보다. 서로 다른 작가가 두 이름을 같이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책에서 두 작가가 한 이름을 동시에 주인공으로 내세우니. 게다가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비슷한 이름인 '민준'이 나온다. 한 글자만 같아도 헷갈리는 내겐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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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 - 공산주의 선언 나의 고전 읽기 11
박찬종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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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알기도 할테고, 미처 잠재의식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꺼내서 엮기도 할 것(실은 이게 진짜 책 읽는 목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이며 온갖 생각들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특히 뒷부분을 읽을 때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체 게바라가 게릴라 활동을 하러 산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생각났다. 그때 읽고 있었던 책이 마르크스의 책이었다지. 이제서야 체 게바라가 자신의 고국에서 혁명에 성공한 후 또 다른 혁명을 위해 왜 볼리비아로 떠났는지 이해가 간다. 그야말로 체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니 '공산당'이란 말은 금지어 1호였었다. 사실 그런 것에 그다지 관심이나 흥미를 갖지도 않았었다. 부끄러운 얘기겠지만... 마르크스는 그저 학교 다니면서 외워야 할 사상가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공산주의가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를 떠나, 아니 공산주의가 대부분 실패했다는 사실을 떠나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며 실천가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지식의 얕음으로 인해 지은이의 해석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이해한 것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150여 년 전에 씌인 책이라지만, 또 공산주의 국가가 대부분 몰락했다지만 아직도 마르크스의 이론은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반공이념에 의한 공산주의 말고 마르크스의 진짜 공산주의가 말이다. 동독이 흡수되고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마르크스의 이론은 허구였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건 왜곡된 이론을 가지고 판단했거나 한쪽만 보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만큼 내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최근에 나온 책이기 때문일까. 뒷부분에서는 현실을 인용해 가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이미 공감하고 있고 열받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것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누가 자본주의를 싫어하겠나. 다만 점점 심각해지는 부의 편중화와 고용불안정을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가 인식하는 것일 게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란 일부 힘 있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세계 기구도 힘 있는 국가에 우호적이라는 점 또한 변함이 없다. 그걸 이미 마르크스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책 속에 갇혀 있는 택스트로 읽을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나저나 책꽂이에 꽂아두고 바라보기만 했던 동일 출판사의 <로자 룩셈부르크>를 읽어봐야겠다. 노동자들을 국제적으로 연대하고자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흩어졌고 그것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군부에 의해 살해된 여성운동가 룩셈부르크... 이렇게 책 속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재미 또한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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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 바람단편집 3 반올림 11
김혜진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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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머리말부터 찬찬히 읽는 버릇,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책을 펼쳐들고 머리말을 읽는데 어쩌면 이렇게 글귀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거의 작품이라고 해도 되겠다. 머리말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요즘 청소년 책들이 엄청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내가 요즘 청소년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딸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랑 말랑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바로 청소년 책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외국 작품들이나 있을 뿐 우리 작가의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거의 모든 출판사들이 청소년 책에 달려들고 있다. 그러니 접할 기회가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읽을 거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청소년들에게(청소년책 마니아인 나에게도) 좋은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요즘 청소년 책을 엄청 읽고 있다. 그 이유는... 점점 자라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과 내가 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결코 그 목적이 아닌 것 같다. 외려 요즘 청소년을 이해해서 내 딸을 그런 환경으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딸은 자신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두려는 부모에게서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고자 줄기차게 읽고, 그 부모인 나는 다른 이의 삶을 엿보고 딸을 '보호'하려고 읽는다. 같은 책을 가지고 읽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니. 그야말로 동상이몽인 셈이다.

총 일곱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끔은 이거 청소년 소설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이 낯선 이야기도 있었고 혹시 딸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지레 뜨끔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정말 청소년 소설이란 어때야 하는 걸까라는 물음이 새삼 뇌리에서 울린다. '어른인 우리가 청소년에게 이야기할 때는 어른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고르느라 애쓴다'는 출판사 대표의 말처럼 나 또한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청소년에게 읽혀야 하는 이야기는 착해야 하고 외설스럽지 말아야 하고(착한 것보다 더 우위를 두는 것이 이 부분이다.) 이왕이면 긍정적이기를 바란다. 실제 삶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그래도 여기 있는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보통의 아이들을 그리고 있어 좀 마음이 편했다. 지금까지의 청소년 책들은 안타깝고 아릿한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던 터라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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