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편 마지막 집
데니스 일리아디스 감독, 모니카 포터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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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Last House on the Left, 2009

  감독 - 데니스 일리아디스

  출연 - 토니 골드윈, 모니카 포터, 사라 팩스톤, 가렛 딜라헌트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만든 1972년 작의 리메이크이다. 그래서 몇 가지 달라진 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다.


  죄인을 호송하던 경찰차 두 명이 있다. 건널목에서 그들을 덮치는 커다란 트럭 하나. 알고 보니 그 죄수를 탈옥시키려는 동료의 것이었다. 경찰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사라진 일당들.


  그리고 어느 호숫가 마을 산장에 휴가를 보내러 온 가족이 있다. 엄마아빠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고 딸은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탈옥 죄수와 그 일당에게 잡힌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딸이 몰고 온 트럭이었다. 도망치던 딸과 친구는 그 일당에게 윤간과 온갖 폭행을 당하는데, 그 과정이 전편보다 더 잔인해졌다.


  탈주범 일당은 태풍을 피하기 위해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집을 한 채 발견한다. 바로 그 가족의 집이다. 의사인 아빠는 성심성의껏 다친 일당을 치료해주고, 쉴 자리를 마련해준다.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 돌아온 딸. 그녀의 처참한 모습에 부부는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별채에 쉬고 있는 자들이 딸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아빠는 복수를 다짐한다. 역시 두 사람의 복수 장면은 전편보다 잔인해지고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싱크대의 음식물 분쇄기부터 도끼, 소화기, 전자레인지 등등 집안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잘 이용했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새삼 피부에 와 닿았다. 딸은 친구가 갑자기 동네 청년의 꼬임에 빠져 대마초를 사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으면, 그 친구가 대마초만 사들고 빨리 나왔으면, 그 일당과 맞닥뜨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자기 자신도 목숨을 잃고 친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며, 그 부모의 손에 피를 묻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약물은 좋지 않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신세까지 망칠 수 있다.


  전작이 워낙에 고전 명작이기에, 리메이크하는 입장에서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수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수하는 장면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딸을 둔 부모의 심정을 더 잘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괜히 전자레인지로 사람 머리 터트리는 장면 같은 걸 넣지 말고, 엄마아빠의 비통함을 더 드러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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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 제시카 차스테인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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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ama, 2013

  감독 - 안드레스 무시에티

  출연 - 제시카 차스테인, 니콜라이 코스터-왈다우, 메간 챠펜티어, 이자벨 넬리스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어느 여인의 뒤에 숨은 꼬마아이. 두 사람의 옷과 손은 더러워져있지만, 꼬마는 그녀를 믿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주식 시장이 붕괴된 어느 겨울 날, 아빠는 세 살과 한 살 난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숲으로 향한다.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회사 사람들과 부인을 죽인 그. 차사고로 우연히 들른 오두막에서 그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습격을 받아 죽는다.


  그리고 오년 후, 두 소녀가 기적적으로 발견된다. 삼촌이 고용한 수색대가 숲을 뒤지다가 찾아낸 것이다. 도대체 그 오랜 시간동안 둘은 어떻게 숲에서 살아남았을까? 둘은 마마가 자기들을 지켜줬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믿지 않는다. 둘이 살아남기 위해 만든 허구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두 자매는 삼촌 부부가 맡아서 기르기로 하는데, 그 집에서 이상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


  오프닝이 끝나고 노래가 나올 때, 아이들의 낙서가 둘이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거기에 아이들 둘 말고 또 다른 존재가 그려져 있다. 산발하고 기묘하게 생긴.


  거기에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짠한 아픔도 느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인간이지만 동물처럼 자랐구나. 문득 신문 기사에서 본, 산짐승이 기른 아이들에 대한 기사가 생각났다. 인도의 늑대 소녀였던가?


  세 살이었던 큰 아이 빅토리아는 그래도 기억이 남아있어서 금방 사회에 적응을 하지만, 한 살이었던 둘째 릴리는 그야말로 들짐승 그 자체였다. 네 발로 다니고, 인간의 언어가 아닌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인간에게 경계심을 보이는…….


  잠깐만, 그럼 모글리는 어떻게 직립 보행을 하고 다닌 거지? 늑대가 키웠으니 당연히 네 발로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초반에는 긴장감이 있었다. 마마의 존재를 두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대립 그리고 어른들도 그 존재에 대해 느끼는 과정이 차근차근 잘 그려져 있었다. 특히 방에 있는 아이들과 복도에 있는 어른을 한 번에 잡으면서, 방에서 아이들과 노는 마마의 그림자가 등장할 때는 '오!'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삼촌의 부인과 마마가 보이는 아이들을 둘러싼 미묘한 주도권 대결 같은 상황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마마 때문에 사고를 당한 삼촌. 그래서 숙모인 에나벨은 아이들과 셋이서만 대저택에서 지내야했다. 덕분에 마마는 더욱 더 활개를 치고 다니고. 설상가상으로 숙모에게 마음을 여는 아이들에게 마마는 공포의 존재로 다가왔다. 오죽하면 빅토리아의 입에서 '그녀는 미쳤어!'라는 말이 나왔을까? 아이들은 숙모에게 따뜻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런 사실을 질투하는 마마에게 겁을 낸다. 그래서 더욱 더 긴장감을 주었다. 혹시 마마가 숙모까지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아이들을 해꼬지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결말에 다다르면서, 그 긴장감은 힘이 떨어진다. 어딘지 모르게 신파조의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모성애를 들먹이면서 눈물을 흘리라고 강요하는 듯한 그런 분위기. 그리고 결말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게 뭐람? 왜 이런 식으로?


  그렇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제일 나을 수도 있다. 결국 그녀는 사회에 적응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늑대가 기른 소녀가 인간 사회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는 그 기사를 떠올리면 말이다.


  그나저나 마마의 외모는 왜 그렇게 무서울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인데,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에 나오는 무서운 얼굴의 여인을 닮았다. 음, 어린 시절 각인 효과 때문에 아이들은 그녀가 흉측하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외모 지상주의인 사회를 비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빅토리아로 나온 꼬마 소녀의 연기가 참으로 눈물을 자아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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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소냐 - 할인행사
리차드 플레이셔 감독,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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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d Sonja, 1985

  감독 : 리처드 플레이셔

  출연 : 아놀드 슈왈제네거, 브리짓 닐슨 등



  영화 '코난 시리즈' 중의 마지막 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1,2편의 주연이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인공은 아닌 것 같다. 제목과 영화 시작부터 레드 소냐라는 여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 도와주는 역할 정도로만 나오고 있다.


  사악한 여왕에게 모든 것을 잃은 여인 소냐. 그런 그녀를 어여삐 여겨 신이 힘을 내린다. 한편 너무도 강한 힘을 갖고 있는 마법의 공을 파괴하기로 결정한 신의 사제들. 그들이 의식을 행하고 있는데, 여왕이 나타나 사제들을 다 죽이고 공을 강탈해간다. 소냐는 여사제였던 동생의 죽음에 분개하며 여왕을 무찌르고 공을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코난 시리즈는 이걸로 마지막이라는데,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영화가 소설을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사제들을 죽이는 장면이 잔인했다. 한 곳에 몰아넣고 생매장을 시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외에는 그냥 말 타고 가다가 칼싸움, 나라를 빼앗긴 어린 왕자 탄과 신하의 만담, 말 타고 가다가 괴물과 싸움, 그리고 말 타고 가다가 최후의 결전. 이런 반복적인 패턴이었다. 탄과 그의 신하가 없었으면, 영화가 지루할 뻔 했다. 다행히 그들이 개그력을 폭발시켰기에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공룡의 뼈로 만든 다리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종의 공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둥실 떠서 날아오를 것 같았다. 아쉽게도 그러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또한 여자의 전투복은 헐벗을수록 공격력이 높아진다는 속설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소냐의 의상은 몸매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을 더 크게 부각시키는 탱크 탑에 치마는 갈기갈기 찢어져있고…….


  그에 비해 코난은 1,2편에 비해 옷을 많이 껴입었다. 왕이라 이건가? 소냐 몰래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위험할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는 모습에서 스토커의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토커에게 매력을 느낄 리 없으니, 이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가 열중해서 싸울 때는 소냐가 자신을 이긴 남자만 사귄다고 하니까, 어떻게 해보려고 칼싸움 할 때 뿐. 여자 자빠트리려고 애쓰시던 아놀드 전 주지사님.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사악한 여왕의 시녀들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녀의 방은 삼면이 천장까지 제단 식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초가 수백, 수천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많은 초에 불을 붙이고, 하루 종일 꺼지지 않게 관리하던 이름 모를 시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저 시대에 초가 있었나는 의문이 들지만, 그런 거 일일이 따지다간 영화를 영화로 볼 수가 없으니 패스. 그렇게 보자면, 중간에 동굴에서 만난 기계 괴물의 존재 가능성과 어린 탄과 소냐의 의상이 과연 동시대에 출현 가능한 것인가도 파악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machine’이라고 외치는 코난의 대사에 당황했었다. 그 시대에 저런 단어가 가능할까? 그러니까 다 패스. 그냥 영화로만 즐겨보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어쩌면 어린 왕자 탄의 성장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철없이 왕자라는 지위만 내세우며 거들먹거리던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자기희생과 배려, 그리고 절제를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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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스티븐 R. 먼로 감독, 채드 린드버그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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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Spit on Your Grave, 2010

  감독 - 스티븐 R. 몬로

  출연 - 사라 버틀러, 채드 린드버그, 제프 브랜슨, 다니엘 프란체스



  얼마 전에 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1978’의 리메이크 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영 시간이 길어지고, 남자들이 여자를 강간하고 괴롭히는 수위와 여자가 복수하는 강도가 더 잔인해지고 강해졌다.


  내용은 전편과 비슷하다. 달라진 점은 여인의 머리색이 흑발로 바뀌었고, 강간범의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전편에서는 동네 백수나 양아치 같은 놈들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을의 보안관까지 가담했다. 세상에나!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에서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보호해야할 보안관이!


  심지어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있다. 아니, 자기도 딸이 있는 주제에 남의 집 귀한 딸에게 그런 짓을? 나중에 여주인공이 자기 딸에게 접근을 하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다. 미친 놈. 자기 딸이 귀하면 남의 딸도 귀한 법이다. 그런데 그딴 짓이나 벌이다니. 게다가 이번에는 뭔가 눈치 챈 마을 사람까지 죽여 버린다. 보안관이니 뒤처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보다. 아, 미친 놈, 미친 놈!


  이번에도 놈들은 여자를 처참하게 유린하고 고문했으며 조롱하고 동영상으로 찍기도 하고 급기야는 죽이기로 공모한다. 다행히도 막판에 그녀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살아남아 놈들에게 복수한다. 어쩐지 검은 머리의 그녀가 여전사처럼 보인다. 아, 그래서 금발이 아닌 흑발의 여주인공을 내세운 걸까?


  주인공이 당하는 장면은 역시나 빨리 감기로 돌려보아야 했다. 너무 잔인해서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영화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속이 편치 않았다. 그냥 썰고 자르고 죽이는 게 낫지…….


하지만 어떤 심리에서인지 여자가 처참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복수하는 장면은 그냥 통쾌하기만 하다.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하고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내 입에서는 ‘나이스! 잘했어!’ 이런 말만 튀어나온다.


  그래서일까? 이번 편의 복수 장면에 비하면, 전편은 애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강제로 항문성교를 시도한 보안관은 그의 엉덩이에 총이 강제로 삽입된다. 그녀는 자기가 당한대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또 다른 공범은 사지가 묶여서 산 채로 성기가 거세되는 고통을 겼었다. 또 어떤 놈은 욕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는데, 균형을 잃으면 염산으로 가득한 욕조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복수하는 장면에서 조금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가녀린 그녀가 저렇게 건장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천장에 매달고, 욕조에 버텨놓고,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축 늘어진 사람의 무게는 정신을 차렸을 때보다 훨씬 무겁다고 알고 있다. 그런 남자를 여자 혼자서? 누군가 공범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녀를 도운 사람의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그 부분이 좀 걸리긴 한다.


  전편이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는 환한 색조로 이루어진 화면이었다면, 이번 편은 암울하고 축축 늘어지는 칙칙한 색으로 되어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지만, 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보안관마저 미쳐버린 마을의 암울한 분위기와 여인의 뒤틀린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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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메어 자르치 감독, 리차드 페이스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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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Spit on Your Grave, 1978 (aka Day of the Woman)

  감독 - 메이어 자르히

  출연 - 카밀 키튼, 에론 타버, 리차드 페이스, 안소니 니콜스



  영화 초반에는 진짜 화가 나고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중반에 가면서는 도저히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빨리 감기를 눌렀다. 어째서 주인공이 그런 일을 겪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단지 혼자 사는 여자라서? 그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도도하고 예쁜 도시녀라서? 마을 남자들이 추파를 던지는데 눈길도 안 줘서? 그게 자기들을 무시한 거 같아서? 여자는 남자들이 눈길을 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황송해하면서 다리를 벌려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영화의 내용은 유명하다면 유명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차기작 구상도 할 겸 쉬러 온 작가 제니. 하지만 그녀를 보고 찝쩍대던 마을 청년 네 명에게 무참하게 윤간을 당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녀는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는데…….


  영화 초반을 지나면서 꽤 오랜 시간동안 그녀가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고 모욕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놈들이 여자 혼자 산다는 걸 알고서는 호숫가에서 윤간을 하더니, 나중에는 집에까지 따라와서 또 그녀를……. 그 부분은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위에서 말했듯이 빨리 감기로 돌려버렸다. '왼편의 마지막 집 Last House On The Left, 1972'에서도 주인공 소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이 오래 나오긴 했지만, 이 영화가 더 길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영화를 야한 장르로 분류했다고 하는데, 참 황당한 얘기다.


  그녀가 당하는 과정이 너무 끔찍해서일까? 나중에 그녀가 복수하는 부분은 다른 영화들보다 더 통쾌하게만 느껴졌다. 네 명을 하나씩 찾아가 유혹을 하기도 하고 달래면서, 그녀는 복수를 한다. 좀 더 잔인하게 죽여! 겨우 그걸로 네가 당한 게 갚아지냐! 그 새끼들은 더 당해도 싸!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죽일 때, 어쩐지 오싹함도 느꼈다. 그 전에는 표정이 풍부한 여인이었는데, 그런 표정은 다시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변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잔인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1978년도에 여자가 남자의 거시기를 싹둑 자르거나 수영하고 있는 남자를 육지로 올라오지 못하게 보트로 방해를 하다가 치어버리고 또 다른 남자는 목을 매다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게임을 시작하지.'라는 명대사가 나오는 영화 덕분에 그 정도는 '에게-'하는 수위가 되었지만 말이다.


  성범죄 기사들이 뉴스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을 보면,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그냥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남자는 아빠 빼고 다 늑대라는 말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남자는 아빠 오빠 삼촌 포함해서 다 늑대이다. 제기랄!


  그런 기사를 본 사람들은 말한다.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약하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성범죄에 대한 죄의식이나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긴 그도 그렇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형이 경감된다. 피해자만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반면에 가해자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놓은 주제에 1~2년 감옥에 갔던 걸로 죗값을 치렀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 영화처럼 복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해자는 고개 뻣뻣이 들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는 문밖에도 나오지 못하는 이 세상이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젠가 소설 '비스트'의 감상에서도 썼지만, 국가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면 국민은 도대체 누구를 의지해야할까? 아, 그래서 제니가 남자들을 죽일 때 통쾌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다. 여주인공이 강간당하는 과정도,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장면도 다. 하지만 속이 시원하긴 하다. 그녀가 남은 평생을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야하나 생각하면 조금은 먹먹하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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