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며 산다
나는 나의 선택을 의심한다.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집에 가면 늘 고민한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하고. 문제는 어느 것이 더 먹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 다 먹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것인데 말이다. 또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맘에 드는 두 가지 옷을 골라 놓고 내가 어느 것을 더 사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맘에 드는 게 분명 있을 것인데.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싶은지, 글을 쓰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둘 다 하고 싶지만 분명히 어느 쪽을 내가 더 하고 싶을 거야. 다만 내가 어느 쪽인지를 모를 뿐.’
이처럼 내가 뭘 더 원하는지 몰라 무엇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갈등하곤 하는데,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문제를 다룬 신간이 있어 관심이 간다. 레이 허버트 저, <위험한 생각 습관 20>이란 책이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방 25%’보다 ‘무(無)지방 75%’라는 라벨을 붙인 햄버거를 더 맛있고 덜 느끼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위험한 생각 습관 20’의 저자는 이를 ‘산수 휴리스틱(arithmetic heuristic)이라 부른다. 낮은 숫자보다 높은 숫자에 더 끌리는 현상이다.”(조선일보, 2011. 8. 20.)
나도 어떤 음식을 먹으려 할 때 지방 25%라고 표기된 것보단 무지방 75%라고 표기된 것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그런데 난 숫자보다 ‘무지방’이란 낱말에 끌려서일 것 같다. ‘무지방’이라고 하면 일단 안심이 되니까.
이와 같은 예를 다른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같은 약인데도 의사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선택이 달라진다.
A라는 약에는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10퍼센트 있다. 그리고 B라는 약에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있다. 그러면 환자는 B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는 의사가 그것을 긍정적인 문맥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 니콜레 랑어 저, <심리학>,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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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배우자의 선택에서는 어떨까.
“미국의 한 결혼 전문가가 이혼 여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은 애당초 결혼이 오래 가지 못할 것, 출발부터 불행할 것임을 대강 짐작하면서도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꿈꿔왔던 남자, 이상적 남편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시집을 갔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1. 8. 18.)
인간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며 사는지는 자신을 살펴봐도 잘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짬뽕을 선택하여 먹으면서 곧바로 ‘자장면을 먹을 걸 그랬어’하고 후회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또 구입한 옷을 잘못 산 것 같아 다른 옷으로 바꾼 경험도 있지 않은가.
2.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알지 못한다고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지난 50년간 밝혀낸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 왜 그런 식으로 판단했는지, 어떤 것을 왜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지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제공자가 아니라는 점이다."(68쪽)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취향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이 어디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올바른 결론을 얻어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고, 정반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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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감정이나 생각 따위)을 당장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하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누구나 경험을 통해 어제(과거)의 판단과 오늘(현재)의 판단이 달랐기 때문에 내일(미래)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남녀 사이에서는 서로의 소중함을 이별한 뒤에야 안다고 한다. 늘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선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A. 카뮈 저, <페스트>라는 소설 속의 한 부부가 ‘페스트’라는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리되어 별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우친 진실은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부부의 경우에도 함께 있을 땐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몰랐던 것일까.
그 부부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결혼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페스트로 인해) 이 돌발적인, 더욱이 오래 계속된 별거 생활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같이 명백해진 진실 앞에서 페스트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 A. 카뮈 저, <페스트>,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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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직관을 중요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바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생각의 탄생>, 29쪽~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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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의 이성적 판단력을 신뢰해선 안 된다는 것. 오히려 이성보다 직관이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그러므로 심사숙고한 선택이라고 여겨질 때, 그럴수록 진짜 최고의 선택인지를 꼭 의심해 봐야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한 태도이다.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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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성으로써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현명한 자가 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런데 도대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내가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매우 어처구니없는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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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레이 허버트 저, <위험한 생각 습관 20>
니콜레 랑어 저, <심리학>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A. 카뮈 저, <페스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생각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