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은 시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요즘 이 시집이 많이 팔리고 있어요. 그만큼 좋은 시가 많은 모양입니다. 이 시집의 리뷰를 쓰신 블로거님의 글에서 가져왔는데, 그 블로거님이 이해해 주시겠지요. 제가 양심은 있어서 댓글은 남기고 왔으니까요.

(여러분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습니까?) 오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신부들은 아마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오후를 맞고 있겠지요.

(당신은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맞고 있습니까?) 저는 졸업한 학교마다 기쁨과 슬픔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2. 좋은 영화 

늦여름입니다. 어젯밤에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밤12시가 넘었습니다. 늦여름의 시원한 밤바람이 얼마나 좋았던지 길에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았습니다.(누가 봤다면 돌았다고 했을 것임) 그렇게 늦은 시간에 길을 걷는다는 게 즐겁기도 했어요. 다른 날 같았으면 벌써 잠이 든 시간입니다. 저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영화, 참 재밌습니다.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그럴 때 성공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얘기를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서 볼 만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권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유쾌하도록 하하하 웃으며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제가 본 것 중에서 <7광구>보다 훨씬 재밌고 <써니>보다 조금 더 재밌고 <캐리비안의 해적>만큼 재밌습니다. 

<7광구>는 스릴이 지나쳐 지루하지 않고 집중력은 갖게 하나 관객으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너무 받게 하여 또 보고 싶지 않은 영화.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써니>는 단순한 시나리오지만 연출이 뛰어나 기분좋게, 신나게 감상하게 하는 영화. 마치 신나는 음악 감상을 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좀 작위적인 결말이 흠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볼 수 있는 영화. 특히 인어아가씨가 출현하는 신비로운 장면은 압권이다. 또 봐도 좋을 듯.  

<세 얼간이>는 의미 있게 교훈적이고, 눈물 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웃게 만드는 영화. 또 봐도 좋을 듯.

..............................

댓글로 쓰기 시작하다가 글이 길어져 그냥 페이퍼로 올립니다.

제겐 짧게 쓰는 기술은 없는 듯합니다. 쓰다 보면 자꾸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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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뭐가 길다고 그러십니까?
저만 할까요.ㅎ
영화 많이 보시네요.
전 귀찮아 개봉영화 언감생심이고 지나간 영화 IP TV로 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1-08-30 10:2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손님, 환영합니다.

이 글이 댓글로는 길고 페이퍼로는 짧지요? 댓글로 썼더니 너무 길어져서 옮겼어요. 저의 집에서 극장 간판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데에 극장이 있어서 영화보기가 쉬워요. 멀다면 자주 못 봤을 거예요.

스텔라님은 영화리뷰를 길게 쓰는 게 아니라 실속 있게 영양가 있게 쓰시는 거죠.
저도 시나리오에 관심 많아요. 시적인 대사도 좋지만 사유 깊은 대사는 외우고 싶어지죠. 사실은 영화리뷰 써 보려고 영화 관련 서적을 한꺼번에 5권이나 샀었는데, 지금까지 영화리뷰를 한 편도 못 썼다는 것.ㅋ 저는 칼럼이나 쓰고 스텔라님의 영화리뷰 감상이나 해야겠어요.

순오기 2011-08-2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저녁상을 물리고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밤입니다.^^
시인은 정말 대단해요, 저런 표현을 잡아내다니...
오늘 독서회원이 '세 얼간이'재밌다고 추천하기에 금욜 심야로 볼까해요.

페크pek0501 2011-08-30 10:24   좋아요 0 | URL
고향손님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오셨네요. 제게 용기를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처음 저와 비슷한 연령이신 걸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순오기님의 무궁한 발전을 늘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그저께 극장에서 영화 보다가 갑자기 순오기님 생각이 났어요. 방문해야겠다고 하면서...

2011-08-2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0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1-08-2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

ㅡ>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주인공이 안 다치면 화나죠ㅋㅋ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칼로 찌르거나 고문 장면 같은 거 나오면 못보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안 됐거나 아픈 사람이 나오는 '다큐'는 ㅡ 예를 들어 인간시대 ㅡ 같은 걸 도무지 못보겠더군요. 너무 실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들 잘 보고 감동을 받으면, 저는 이해가 잘 안 됐었는데, 저걸 어떻게 견디며 보는 걸까 싶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마다 감정이입하는 부분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반면 영화로는 웬만큼 긴박하고 잔혹해도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걸 보면 아무리 현실감이 있어도 영화는 영화로 느껴지나 봐요.

페크pek0501 2011-08-30 10:3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아픈 환자 나오는 프로는 채널을 돌리게 돼요. 저는 친구도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전 그런 친구에 대해 질투 안 해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7광구 같은 영화는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보는 내내 정신적으로 고단했어요. 처음으로 생각한 건데, 딴 생각 못하게 사람을 강하게 집중시키는 영화가 꼭 좋은 영화인가, 가끔은 옛 추억을 더듬으며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은 게 아닌가, 생각 들었어요. 써니처럼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교시절을 떠올리게 되죠. 아련히 추억에 젖게 해요.

신지 2011-08-31 01:43   좋아요 0 | URL
저는 pek님의 다른 글에서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이 되더군요. ㅡ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

저도 경쟁심이 많은 사람은 간혹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시기심 질투심은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pek님의 글들을 보면 노력한다기보다 무언가 그것을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그점이 좋아 보였어요. 영화 본 건 적어 놓는데 지금 보니까 마지막으로 극장 간 게 작년 12월에 '부당거래'네요. 올해는 한 번도 극장에 못 가봤다니, 초딩때 이후 처음인듯 ㅠ

실은 (글도 반갑지만) pek님 이런 가벼운 페이퍼는 처음이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꼭 칼럼이나 단상이 아니어도 이번처럼 가볍게라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08-3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31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8월 24일 최종 투표율 25.7%로 개표가 무산되며 무상급식정책은 현행대로 유지된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중학교는 내년부터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게 된다. 현행 무상급식은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1개구가 4학년에 무상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중략) 오세훈 시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면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이 33.3%에 미달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시장직을 걸었다.”(NEWSEN뉴스엔, 2011. 8. 25.)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르면 내일, 늦어도 오는 28일까지 시장직 사퇴 시기 등 자신의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보입니다.”(YTN, 2011. 8. 25.)


오세훈 시장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보며, 오세훈 시장에게 지금 필요한 건 훗날을 기대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퇴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1. 패배할 땐 웃기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늘 과묵한 내가 갑자기 즈베르꼬프하고 격투를 벌인 일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휴식 시간에 친구들과 미래의 정부(情婦)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강아지처럼 들뜨기 시작하더니, 자기는 영지 마을의 계집애들을 하나도 그냥 놔 두지 않겠다, 그건 - droit de seigneur(귀족의 권리)이므로 만약에 농부들이 건방지게 반항한다면 그 따위 텁석부리 악당들은 모조리 곤장을 먹인 후에 인두세를 곱절로 물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얼빠진 동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나는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마을 계집애들과 그 아버지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이런 풋내기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운 좋게 이겼지만, 즈베르꼬프는 바보이긴 해도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므로 허허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실은 나의 승리도 완전한 것은 못 되었다. 마지막으로 웃은 것만큼 그가 덕을 본 셈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 글은 상대의 웃음 때문에 자신이 완전한 승리자가 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상대편에서 보면 그 웃음 때문에 완전한 패배자가 될 뻔한 것을 면한 것이다. 그 웃음이란 바로 마음의 여유인 것이다. 즈베르꼬프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이겼다. 네가 이겼다고 인정해 주지. 그런데 그게 뭐 대단한 건가.”


그런 마음의 여유가 ‘허허’ 웃게 만든 것이리라.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창피를 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에 처했을 때 그래서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면서 그 상대에게 분노를 느껴 화를 벌컥 낸 적이 있는가? 그럴 땐 화내는 대신 시치미 떼고 웃어 버리자.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인지 모른다.)


2. 꿈을 웃으며 바라보기


내게도 꿈이 있다. 책을 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꿈꾸어 오던 일이다. 하지만 난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내 능력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꿈은 그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행복하다’가 된다.


설령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불행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꿈은 갖고 있는 그 자체로써 충분히 행복을 선사하니까. 꿈을 향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 년 뒤에 책을 내든 십 년 뒤에 책을 내든 언제 내면 어떠한가, 또 책을 내지 못하면 어떠한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게 이런 여유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생활의 발견>에 있는, 임어당의 이 말씀이 맘에 든다.




“인간이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은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자기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에서.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 인기가 떨어졌다고 해서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 사퇴로 인해 인생이 끝났다고 여기는 정치인, 그들은 자기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해서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어떠한 좌절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해 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웃으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하다. 느긋해서 불행에 빠지지 않는다. 오세훈 시장도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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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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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8-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혹시 이 글을 보시고 조회는 1인데, 어찌해서 추천 수는 10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을 위해 말씀 드립니다.

위의 조회는 다음 사이트에서 오시는 방문자들만의 조회를 의미합니다(그런 것 같음). 그 옆에 있는 추천도 다음 사이트 방문자가 누르는 것이고요.

밑에 있는 '추천'은 알라딘을 통해 들어오시는 방문자들이 누르시는 것입니다. 아무나 눌러도 상관은 없지만요. 알라디너들의 조회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알라딘은 다음 사이트와 제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오늘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다음의 시가 마음을 끌어 훔쳐 왔습니다. 그대로 옮깁니다.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 눈앞에 없는 사람 ㅣ 심보선 지음

새 글도 없는데, 계속 들어오시는 방문자님들을 위해 올린 글입니다.
(이 시라도 읽으면 좋으실 것 같아서...) 어느 블로거님의 리뷰에서 가져왔는데, 옮긴 것에 대해 그 분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시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1.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며 산다


나는 나의 선택을 의심한다.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집에 가면 늘 고민한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하고. 문제는 어느 것이 더 먹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 다 먹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것인데 말이다. 또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맘에 드는 두 가지 옷을 골라 놓고 내가 어느 것을 더 사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맘에 드는 게 분명 있을 것인데.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싶은지, 글을 쓰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둘 다 하고 싶지만 분명히 어느 쪽을 내가 더 하고 싶을 거야. 다만 내가 어느 쪽인지를 모를 뿐.’


이처럼 내가 뭘 더 원하는지 몰라 무엇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갈등하곤 하는데,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문제를 다룬 신간이 있어 관심이 간다. 레이 허버트 저, <위험한 생각 습관 20>이란 책이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방 25%’보다 ‘무(無)지방 75%’라는 라벨을 붙인 햄버거를 더 맛있고 덜 느끼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위험한 생각 습관 20’의 저자는 이를 ‘산수 휴리스틱(arithmetic heuristic)이라 부른다. 낮은 숫자보다 높은 숫자에 더 끌리는 현상이다.”(조선일보, 2011. 8. 20.)


나도 어떤 음식을 먹으려 할 때 지방 25%라고 표기된 것보단 무지방 75%라고 표기된 것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그런데 난 숫자보다 ‘무지방’이란 낱말에 끌려서일 것 같다. ‘무지방’이라고 하면 일단 안심이 되니까.


이와 같은 예를 다른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같은 약인데도 의사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선택이 달라진다.




A라는 약에는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10퍼센트 있다. 그리고 B라는 약에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있다. 그러면 환자는 B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는 의사가 그것을 긍정적인 문맥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 니콜레 랑어 저, <심리학>, 63쪽.




그렇다면 배우자의 선택에서는 어떨까.


“미국의 한 결혼 전문가가 이혼 여성 1000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은 애당초 결혼이 오래 가지 못할 것, 출발부터 불행할 것임을 대강 짐작하면서도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꿈꿔왔던 남자, 이상적 남편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시집을 갔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1. 8. 18.)


인간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며 사는지는 자신을 살펴봐도 잘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짬뽕을 선택하여 먹으면서 곧바로 ‘자장면을 먹을 걸 그랬어’하고 후회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또 구입한 옷을 잘못 산 것 같아 다른 옷으로 바꾼 경험도 있지 않은가.


 

2.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알지 못한다고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지난 50년간 밝혀낸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 왜 그런 식으로 판단했는지, 어떤 것을 왜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지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제공자가 아니라는 점이다."(68쪽)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취향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이 어디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올바른 결론을 얻어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고, 정반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72쪽.





아마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감정이나 생각 따위)을 당장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하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누구나 경험을 통해 어제(과거)의 판단과 오늘(현재)의 판단이 달랐기 때문에 내일(미래)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남녀 사이에서는 서로의 소중함을 이별한 뒤에야 안다고 한다. 늘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선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A. 카뮈 저, <페스트>라는 소설 속의 한 부부가 ‘페스트’라는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리되어 별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우친 진실은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부부의 경우에도 함께 있을 땐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몰랐던 것일까.




그 부부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결혼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페스트로 인해) 이 돌발적인, 더욱이 오래 계속된 별거 생활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같이 명백해진 진실 앞에서 페스트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 A. 카뮈 저, <페스트>, 80쪽.





아인슈타인은 직관을 중요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바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생각의 탄생>, 29쪽~30쪽.




결국 우리의 이성적 판단력을 신뢰해선 안 된다는 것. 오히려 이성보다 직관이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그러므로 심사숙고한 선택이라고 여겨질 때, 그럴수록 진짜 최고의 선택인지를 꼭 의심해 봐야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한 태도이다.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72쪽.





우리는 이성으로써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현명한 자가 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런데 도대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내가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매우 어처구니없는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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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레이 허버트 저, <위험한 생각 습관 20>

니콜레 랑어 저, <심리학>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A. 카뮈 저, <페스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생각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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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 - 나오키상 수상작가 무코다 구니코의 유쾌한 인간관찰기
무코다 구니코 지음, 곽미경 옮김 / 강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독서는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신과의 대화’라고 한다. 그 이유를 이 책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 알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독서가 작가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독자인 ‘나’를 읽는 행위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 작가로 알려져 있는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 38편이 담겨 있는 책이다. ‘유쾌한 인간관찰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인간이 가진 불편한 진실에 주목했다.


불편한 진실 첫 번째.




길을 걷다보면 맞은편에서 부모형제가 걸어오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어쩐 일인지 너무 당황스러워 갈팡질팡하며 어디다 시선을 둘지 모르고 만다.


아, 하고 무심코 손을 들어 알은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알아봤다는 걸 상대가 눈치 채지 않도록 모른 체한다. 서로 스쳐 지나가기 직전에 그제야 알아본 듯이 좀 무뚝뚝하게 말을 건다.


- ‘아는 얼굴’, 22쪽.





이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 자신의 경험을 딴 사람이 글로 옮겨 놓은 듯해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이십대에 있었던 일이다. 혼자 가는 길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는데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가고 싶었다. 그런 기분에 대해 그 누구하고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가 이 글을 읽고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음을 알았을 정도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런 걸 끄집어내어 글로 쓸 수 있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밖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반가워서 달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피하고 싶은 당혹감은 왜 일어날까. 어색함과 쑥스러움 때문일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까. 상대가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일까.


불편한 진실 두 번째.




(태풍 오는 날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화장실에 가고,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흥분되는 일이었다. 형제간 싸움도, 부부 싸움도 태풍이 부는 밤만큼은 휴전이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약간 서먹한 기운도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온 식구가 하나로 뭉쳤다. 나는 그런 게 너무 기뻤다.


이제나저제나 몹시도 긴장하며 기다렸던 태풍이 빗나가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또 있을까.


어른들의 말투나 몸짓에서도 (태풍이 빗나간 것에 대해) 분명 아쉬움 같은 게 느껴졌는데, 겉으로는 그런 걸 요만큼도 내색하지 않는 게 조금 얄미웠다.



- ‘태풍 오는 날’, 74쪽~75쪽.




인간 안에는 분명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걱정하던 태풍이 무사히 지난 간 것에 안심하기보다 어떤 아쉬움 같은 게 남아 있는 이 경우도 그렇다. 이제 더 이상 긴장감을 느낄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가족애가 오가는 시간이 끝났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불편한 진실 세 번째.




식사 시간에 온 손님은 반드시 밥을 먹고 왔다고 한다.


“뭐, 괜찮지 않은가요. 초밥 먹을 배는 따로 있다지 않아요.”

“정말 먹고 왔다니까요. 조금도 들어갈 배가 없어요.”

“아휴,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드셔보세요.”

“그럴까요? 그럼……”


아침을 어중간하게 먹어서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는 손님에게는 “그냥 맛이라도 ……”라고 권하면 대부분은 접시를 깨끗이 비운다. 하지만 먹고 왔다는 말을 해놓고 도중에 노선을 변경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끝까지 젓가락도 대지 않고 돌아가는 손님도 있다.


- ‘뻔한 인사말’, 86쪽~87쪽.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보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사람은 다 같은 모양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밥 먹고 왔다는 말을 한 것까진 괜찮다. 그런데 만약 한 젓가락쯤 먹고 싶은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젓가락을 대지 않아야 한다면, 그런 인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다음과 같이 작가의 유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주는 글도 있다.




(안경테가 망가져서) 노안경을 손보려면 (잘 보이지 않아) 또 하나의 노안경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손전등으로 손전등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만 있어도 그걸로 충분하다.


깨끗하게 해놓지 않으면 혼이 날 것 같아 나는 비누를 씻기 위한 비누를 찾았다. 물론 비누를 깨끗이 하려면 더러워진 그 비누를 쓰면 된다는 걸 곧바로 깨닫고 혼자서 웃고 말았지만.


- ‘혼자서 웃고 말았다’, 78쪽~82쪽.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글도 있다.




시대극을 볼 때 가장 마음 아픈 건 애송이나 하급관리가 죽는 장면이다. 악당 두목을 따른 죄밖에 없건만, 버러지같이 무참히 죽는다.


나 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배우들이 과격한 난투 끝에 숨이 가빠졌는지 참았던 숨을 후우 하고 내쉬거나, 거친 숨결 때문에 배가 불룩거리는 걸 보았을 때이다. 엄격한 연출가는 이런 장면을 NG로 판단해 다시 찍자고 하는데, 제발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아아, 다행이다. 정말 죽은 게 아니야. 이제 저 사람들은 1만 엔이든 1만 3천 엔이든 일당을 받고 돌아간다. 이렇게 안심하는 마음 약한 관객도 있는 것이다.


- ‘베다’, 220쪽~221쪽.





이처럼 작가들의 훌륭한 점의 하나는 우리들이 무심한 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잘 포착해서 글감으로 만드는 그 ‘찾음’의 능력일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책세상 출판)>에서 인용한 다음의 글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

오래오래 전부터 그것은 거기에 있었고

시인은 다만 그걸 찾아내는 것일뿐.”(얀 스카첼)  
 

나는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 배달되던 날, 책을 펼치자마자 그날로 다 읽어 버렸다.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 출판)>와 비교한다면, 조지 오웰의 에세이가 세계의 ‘무거운’ 진실을 전하는 글이라면,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는 개인의 ‘가벼운’ 진실을 전하는 글이다.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매력이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정치적 목적을 중시하는 조지 오웰의 글에 더 가치의 무게를 둘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란 그런 무거움만으로 채워져 있지도 않고 또 무거움만으로 채워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 ‘가벼운’ 내용의 책은 읽을 만하다. 코믹한 영화를 보듯 웃음 짓게 만드는 유쾌함과 봄 소풍을 가는 발걸음 같은 경쾌함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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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8-1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과 같은 이의 글만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일종의 허영심이겠죠.평이하고 잔잔한 글도 좋은데 말이죠.하긴 조지 오웰의 글도 늘 심각한 주제만 다룬 것만은 아닌데요.

페크pek0501 2011-08-19 11: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 좋을 대로'와 같은 가벼운 에세이도 있어요. ㅋ

평이하고 잔잔한 글의 매력을 아신다니 반갑습니다.
 

한 일간지에 최근 서울 각지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 10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 실렸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에 관한 인터뷰였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을 옮겨 보았다.



휴지를 변기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해 놓은 곳도 외국인 눈에는 낯설었다. 이들은 “그런 화장실은 중남미의 빈곤국가를 연상케 했다”고 말했다. 음식점이나 주점의 ‘남녀 공용 화장실’을 보고 외국인들은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이들은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라니, 매우 충격적이었다. 몇 번이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해야 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2011. 8. 13-14.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남녀 공용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 등은 우리들에겐 이미 익숙해져 버려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인데, 외국인들의 눈엔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에겐 충격이 아닐까.

지하철에 관한 것도 있었다.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다들 뛰기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아 무서웠다. 알고 보니 지하철이 구내로 들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음식점에 관한 것도 있었다. (손님들이) “여기요!” “저기요!” 하며 종업원을 부르는 것이 낯설다고 했다. “식탁 위에 화장실 휴지가 있어 깜짝 놀랐다”는 대답도 있었다.


외국인들은 이 밖에도, 한국의 길거리에서 휴지통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쓰레기를 내내 들고 다니다가 호텔에 와서 버렸다는 것, 쓰레기통도 없는데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 특히 여자 나체사진이 담긴 전단이 대학가에 뿌려져 있다는 것 등을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 삶의 풍경을 보니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건 ‘이미 익숙해져 버려서’이다. 익숙하면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익숙함으로 인한 무감각은 조지 오웰이 쓴 ‘교수형’이란 제목의 에세이에 잘 나타나 있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사이므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태연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교수대 뒤편으로 돌아가 죄수의 (교수형을 당한) 시신을 확인했다. 발끝이 아래로 쭉 뻗어 있는 그는 돌처럼 생명 없이 매달린 채 천천히 돌고 있었다.


소장은 지팡이를 뻗어 시신의 맨살을 찔러 보았다. 시신이 슬쩍 흔들렸다. “‘제대로’ 됐다.”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수대 밖으로 나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무룩한 기색이 어느새 걷혀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8시 8분. 오늘 아침에 할 건 다했다. 휴우.”


- 조지 오웰 저, <나는 왜 쓰는가>, 28쪽~29쪽.




소장이 교수형을 처음 집행하는 날부터 시신을 지팡이로 찔러 보는 일을 예사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반복되어 생긴 그 ‘익숙함’이 죽은 사람에 대한 연민도 슬픔도 없는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모 연예인(남자)이 부부 사이에서 오갔던 말을 재현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중 이런 말이 나왔다.


“야, 내가 뭘 잘못했니?”(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말)


‘야’라고 부르는 것이 시청자에 따라선 부부 간에 예의가 없는 사람처럼 또는 저급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 연예인은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익숙한 것이므로.


길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아마 그런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타인이 느끼는 불쾌감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익숙한 것이므로.


거짓말을 하다 보면 그 자신조차 그 거짓말에 속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그것에 익숙해져 버려서 그것이 ‘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다음의 명언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일은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스위프트)


비관주의는 일단 거기 익숙해지면 낙관주의처럼 편안한 것이다.(아널드 베넷)


아름다움은 곧 애인에게 익숙해져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된다.(J. 애디슨)


역경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더 이상 괴롭지도 않다.(클라우디아누스)


- <세계의 명언 2>, 해누리, 369쪽.




흔히 우리는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고 개선되길 희망한다. 그런데 ‘자기 개선’이라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 모두 일상적 습관이 되어 버린 익숙한 것들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인의 세계를 본 것처럼,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의 세계를 점검하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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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8-15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창호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세상이 악하다고 투덜대지 말고 네가 착한 사람이 되어라.

자기의 잘못은 절대 인정 않으면서 세상이 왜이리 악하냐고 삿대질하는 인간들이 있죠.

페크pek0501 2011-08-16 11:1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개인 하나하나가 다 잘 하면 좋은 세상은 저절로 되니까요.

오늘 날씨는 흐리네요. 초가을 날씨 같아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반가운 노이에자이트님!!!!!!!!!!

노이에자이트 2011-08-16 17:12   좋아요 0 | URL
명랑한 인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힘냅시다!

페크pek0501 2011-08-17 00:42   좋아요 0 | URL
예, 파이팅입니다.

옹달샘 2011-08-1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익숙하면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저에게도 익숙함으로 나쁜 습관이 생활화되어 문제로 인식을 못하고 삽니다. 무슨 일이든 나부터 반성하고 고치는 일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1-08-17 00:42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옹달샘님. 잘 지내죠? ^^^

누구에게나 익숙함의 무감각으로 인해 문제점이 있는데도 자각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예요.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집안 청소를 한다든지 해서 점검하는 거지요.

이 글을 쓰고 나서 저도 저 자신에 대해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자체가 '정신 교육'인 것 같아요. 쓰면서 많이 배웁니다. 또 남의 글에도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니 (책이든 블로거들의 글이든) 많이 읽게 되고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