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간지에 최근 서울 각지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 10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 실렸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에 관한 인터뷰였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을 옮겨 보았다.



휴지를 변기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해 놓은 곳도 외국인 눈에는 낯설었다. 이들은 “그런 화장실은 중남미의 빈곤국가를 연상케 했다”고 말했다. 음식점이나 주점의 ‘남녀 공용 화장실’을 보고 외국인들은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이들은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라니, 매우 충격적이었다. 몇 번이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해야 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2011. 8. 13-14.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남녀 공용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 등은 우리들에겐 이미 익숙해져 버려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인데, 외국인들의 눈엔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에겐 충격이 아닐까.

지하철에 관한 것도 있었다.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다들 뛰기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아 무서웠다. 알고 보니 지하철이 구내로 들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음식점에 관한 것도 있었다. (손님들이) “여기요!” “저기요!” 하며 종업원을 부르는 것이 낯설다고 했다. “식탁 위에 화장실 휴지가 있어 깜짝 놀랐다”는 대답도 있었다.


외국인들은 이 밖에도, 한국의 길거리에서 휴지통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쓰레기를 내내 들고 다니다가 호텔에 와서 버렸다는 것, 쓰레기통도 없는데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 특히 여자 나체사진이 담긴 전단이 대학가에 뿌려져 있다는 것 등을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 삶의 풍경을 보니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건 ‘이미 익숙해져 버려서’이다. 익숙하면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


익숙함으로 인한 무감각은 조지 오웰이 쓴 ‘교수형’이란 제목의 에세이에 잘 나타나 있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사이므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태연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교수대 뒤편으로 돌아가 죄수의 (교수형을 당한) 시신을 확인했다. 발끝이 아래로 쭉 뻗어 있는 그는 돌처럼 생명 없이 매달린 채 천천히 돌고 있었다.


소장은 지팡이를 뻗어 시신의 맨살을 찔러 보았다. 시신이 슬쩍 흔들렸다. “‘제대로’ 됐다.”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수대 밖으로 나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무룩한 기색이 어느새 걷혀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8시 8분. 오늘 아침에 할 건 다했다. 휴우.”


- 조지 오웰 저, <나는 왜 쓰는가>, 28쪽~29쪽.




소장이 교수형을 처음 집행하는 날부터 시신을 지팡이로 찔러 보는 일을 예사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반복되어 생긴 그 ‘익숙함’이 죽은 사람에 대한 연민도 슬픔도 없는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모 연예인(남자)이 부부 사이에서 오갔던 말을 재현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중 이런 말이 나왔다.


“야, 내가 뭘 잘못했니?”(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말)


‘야’라고 부르는 것이 시청자에 따라선 부부 간에 예의가 없는 사람처럼 또는 저급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 연예인은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익숙한 것이므로.


길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아마 그런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타인이 느끼는 불쾌감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익숙한 것이므로.


거짓말을 하다 보면 그 자신조차 그 거짓말에 속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그것에 익숙해져 버려서 그것이 ‘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다음의 명언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일은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스위프트)


비관주의는 일단 거기 익숙해지면 낙관주의처럼 편안한 것이다.(아널드 베넷)


아름다움은 곧 애인에게 익숙해져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된다.(J. 애디슨)


역경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더 이상 괴롭지도 않다.(클라우디아누스)


- <세계의 명언 2>, 해누리, 369쪽.




흔히 우리는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고 개선되길 희망한다. 그런데 ‘자기 개선’이라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 모두 일상적 습관이 되어 버린 익숙한 것들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인의 세계를 본 것처럼,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의 세계를 점검하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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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8-15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창호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세상이 악하다고 투덜대지 말고 네가 착한 사람이 되어라.

자기의 잘못은 절대 인정 않으면서 세상이 왜이리 악하냐고 삿대질하는 인간들이 있죠.

페크pek0501 2011-08-16 11:1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개인 하나하나가 다 잘 하면 좋은 세상은 저절로 되니까요.

오늘 날씨는 흐리네요. 초가을 날씨 같아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반가운 노이에자이트님!!!!!!!!!!

노이에자이트 2011-08-16 17:12   좋아요 0 | URL
명랑한 인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힘냅시다!

페크pek0501 2011-08-17 00:42   좋아요 0 | URL
예, 파이팅입니다.

옹달샘 2011-08-1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익숙하면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저에게도 익숙함으로 나쁜 습관이 생활화되어 문제로 인식을 못하고 삽니다. 무슨 일이든 나부터 반성하고 고치는 일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1-08-17 00:42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옹달샘님. 잘 지내죠? ^^^

누구에게나 익숙함의 무감각으로 인해 문제점이 있는데도 자각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예요.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집안 청소를 한다든지 해서 점검하는 거지요.

이 글을 쓰고 나서 저도 저 자신에 대해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자체가 '정신 교육'인 것 같아요. 쓰면서 많이 배웁니다. 또 남의 글에도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니 (책이든 블로거들의 글이든) 많이 읽게 되고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