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1일
1. 공들여 글 쓸 시간이 없네
이번 달은 ‘시시한 잡담’ 같은 글밖에 쓸 수 없을 것 같다. 공들여 글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서다. 하나는 끝냈다. 시댁 제사가 있어서 1박 2일로 지방에 갔다 왔다. 그것 말고도 줄지어 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니 내가 지금 한가하게 글이나 쓸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적막한 집에 혼자 있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
어저께 다섯 명이 함께 점심을 먹는 음식점에서 어느 쌤이 적막한 집에 혼자 있는 게 소원이라고 말해서 모두 웃었다. 그 쌤은 40대 후반의 주부. 네 식구가 사는데 늘 집이 북적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간 때에 아무도 없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단다. 집이 조용해서 좋고 밥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 죽겠더란다. 하하하~~~. 주부들 생각이란 게 비슷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요즘은 애들이 커서 그렇지 않지만 나도 혼자 있을 때가 좋아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울 지경인 시절이 있었다. 아이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내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서 텅 빈 집에 혼자 있게 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천국 같았다. 전화가 오면 통화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짧게 통화하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짧았기에 좋았다는 것을. 길어지면 좋기는커녕 지루해진다는 것을. 일 년 내내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된다면 적막함이 내 숨통을 조를 것 같다는 것을.
3. 빼빼로데이
오늘이 ‘빼빼로데이’라고 한다. 애들에게 주려고 어제 저녁 집에 오는 길에 1800원짜리 빼빼로를 네 통 샀다. 두 통씩 나눠 가지라고. 상점 앞에서 빼빼로를 팔려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난 상술에 놀아났다. 즐겁게 놀아났다. 나는 왜 빼빼로데이를 이용하여 과자를 많이 팔려는 회사의 상술에 대해 상점의 상술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걸까? 나는 왜 비판 정신이 없는 걸까?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
4.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된다
좋은 일이었다고 여겼던 것이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나쁜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쁜 일이었다고 여겼던 것이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면 나의 판단력이란 것도 믿을 게 못 된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그런데 이건 판단력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듯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거미 두 마리가 집을 지었다. 쭈~욱 쭈~욱 줄을 뽑아 집을 지었다. 욕심 많은 거미는 ‘더 크게 더 크게’ 하며 큰 집을 짓고 다른 거미는 분수에 맞게 작은 집을 지었다. 큰 거미집에는 벌레들이 다닥다닥 많이 걸렸다. 작은 거미집에는 거미가 먹을 만큼만 벌레가 걸렸다. 새가 지나가다가 벌레들을 보고 큰 거미집으로 달려들었다. 집이 커서 먹이가 많았던 거미는 새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인생은 뒤집힐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며 읽었다.
5.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욕심과 조금은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어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또 한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나의 연설을 듣고서 듣는 사람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족한 듯해야 행복하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