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책을 읽으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것엔 동의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혜롭게 사는 건 아니다. 그 이유는 책에서 얻은 지혜가 꼭 실천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 이런 글이 있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 석가모니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50쪽. |
이 글을 당신이 읽었다고 해서 어떤 사람으로 인해 분노가 일어났을 때 ‘아,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는 글을 떠올리고 내가 참는 게 좋아,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서 이 분노를 풀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책에서 지혜를 얻는 것과 그 지혜가 삶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 이런 글도 있다.
이런 열등감의 표출은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인터넷 악성 댓글이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이 심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통해 분노와 열등감을 마치 ‘배설’하듯 쏟아낸다. 특히 유명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우월해진 것 같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들은 자기가 간절히 꿈꾸는 삶을 별 노력 없이 얻은 것 같은 연예인들을 비난하고, 악성 루머를 퍼뜨려 모욕감을 줌으로써 열등감을 줄이려고 한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96쪽. |
이 글을 평소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이 읽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을 아는 것과 그 무엇으로 인해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독서광들은 전부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독서광이란 어떤 사람인가. 남들보다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독서광들은 자기들만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 그 렌즈란 바로 ‘오만함’이다. 오만함의 렌즈를 끼고 살게 되면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는 착각을 하고 그 착각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또 우월감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2.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된다 : 책을 읽으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본다.
친정에서 만든 만두를 아랫동서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전화가 올 법한데 전화가 없었다. 이상했다. 섭섭해지려 했다. 그 다음날에서야 고맙게 잘 먹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전화를 기다렸는데 동서에겐 그 전화를 하는 게 급하지 않은 듯했다. 훗날 동서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알았다. 동서는 그때의 일로 내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와 관련하여 내가 읽은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필립은 노선생인 무슈 뒤끄로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필립은 노선생이 아픈 것 같아 수업을 쉬게 해 주면서 다음 주의 수업료를 선불로 지불한다. 그런데 노선생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목이다.
필립은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다. 아량을 베풀었으니 상대방은 무언가 감사의 표현으로 그를 감격시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노선생이 선물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뜻밖이었다. 필립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 무슈 뒤끄로가 다시 나타난 것은 대엿새 뒤였다. 전보다 더 비틀거리고 더 허약해졌지만 위중한 상태는 넘긴 것 같았다. (…) 그런데 막 나가려고 하면서, 문간에서 문을 붙든 채 멈춰 섰다. 입을 여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것처럼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네 돈이 아니었으면 난 굶어 죽었을 걸세. 가진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노선생은 굽신거리듯 정중한 절을 한 다음 돌아갔다. 필립은 목이 메임을 느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169쪽. |
이 글을 읽고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서 인간에게 그런 면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즉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 선물을 받는 쪽보다 그것을 주는 쪽이 선물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면 받는 쪽이 그 고마움을 깊이 느끼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 소설 속의 노선생처럼. (내가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인간의 특성을 작가는 이미 통찰했고 그래서 소설에 넣었으리라. )
그러므로 인간의 이런 특성을 생각하여 앞으로는 내가 뭔가를 베풀었을 경우에 상대가 고마움의 표시를 소홀히 한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 소설 덕분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3. 독서의 다른 효과 : 나의 경우엔 독서에서 얻은 지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독서는 여전히 유익하다. 왜냐하면 독서의 다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이다. 그리고 이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나는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동안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현대인이라면 가질 수 있는 걱정이나 불안 같은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중요하다.
그러니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이 책을 읽어서 돈이 생기나 쌀이 생기나?"라고 말한다면 나는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이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글 재능이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글쓰기를 그만두는 게 현명할 것이오."라고 말한다면 그는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이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또는 다른 취미를 갖든, 취미는 지루한 일상을 잘 견디게 해 주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취미 생활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튼튼해지고 자신의 삶이 튼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블로거들에게 늘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