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의 거리여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인 영역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처럼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45센티미터 미만의 밀접한 거리, 친구나 직장 동료처럼 가까운 지인의 경우에는 45~12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개인적 거리, 인터뷰나 공식적인 만남 같은 상황에서는 120~37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는 370센티미터를 초과하는 공적인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00~101쪽)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
여기서 말하는 거리를 ‘마음의 거리’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필요하고 또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친밀한 관계라고 한다. 즉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가 되겠다.
“특히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누군가와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102쪽)고 한다. “존 그레이는『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들의 이런 특성을 ‘고무줄’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들은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자율성을 되찾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곁에 있는 연인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고무줄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달아나려고 하고, 고무줄의 탄성이 한계에 다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102쪽)
이런 남자의 특성을 모르는 여자는 오해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레이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남녀가 겪는 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었다. 여자는 느닷없이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102쪽) “실제로 애정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많은 여성들은 남자친구나 남편이 거리를 두려 할 때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을 대화로 풀어 보려고 할수록 남자는 더 멀리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103쪽)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망과 좌절은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고,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 거리란 몇 미터일까.”(105쪽)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나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나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의 ‘조절’이겠다. 서로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면 싸움이 나고 관계가 나빠질 수 있으므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자율성을 되찾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온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감정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나는 풍선을 사이에 둔 사람과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관계를 이해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부부 사이에서나 연인 사이에서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나 두 사람 사이에 풍선 하나 끼여 있는 모습으로 서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으면 풍선은 터지고 만다. 두 사람이 아주 떨어져 있으면 풍선은 날아가고 만다. 풍선이 터지거나 날아가지 않게 하려면 두 사람은 알맞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마음의 거리를 말한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의 거리일 것이다. 마음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2.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마음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 또 무엇을 잘 조절해야 할까 생각해 봤다.
작년 내 체중이 5.5킬로가 빠졌다.(현재 3킬로만 회복되었다.) 체중이 빠지고 나니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빈혈 증세가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싫은 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살이 찌기 위해 밥을 열심히 먹기로 하고 식사의 양을 늘렸다. 그랬더니 소화 불량에 걸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많이 먹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먹어야 했다. 식사량 ‘조절’이 중요하다.
정신의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짐에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차 있을 터였다. 걱정과 불안을 없애야 했다. 그것들을 없애서 정신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글쓰기’다.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인 셈이다. 그런데 글을 쓰면 정신엔 좋은 반면, 몸엔 부작용이 생겼다. 정신은 즐거워지되 몸은 고단해서 감기몸살이 났던 것. 글을 쓰되 감기몸살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글을 써야 했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쓸 시간이 모자란다. 글을 많이 쓰면 책을 읽을 시간이 모자란다. ‘7 대 3’으로 할까, ‘6 대 4’로 할까 생각하다가 ‘5 대 5’로 하기로 했다. 책을 두 시간 읽었다면 글을 두 시간 쓰기로 한 것이다. 시간 ‘조절’이 중요하다.
샤워를 할 때조차 물이 뜨거워서도 안 되고 차가워서도 안 된다. 적당한 온도의 따뜻한 물이어야 한다. 물 ‘조절’이 중요하다.
요즘 같은 겨울엔 실내의 온도 조절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습하지 않은 습도를 유지해야 건강에 좋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내가 ‘조절’을 중요시하는 순간, ‘조절’은 예전과 다르게 새로운 가치의 색채를 띤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잘 조절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