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육체적 관계에 대한 두 생각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는 부부다. 또 C라는 남자와 D라는 여자는 부부다. 그런데 B라는 여자와 C라는 남자가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나 버렸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속의 이야기이다.
재밌는 것은 두 남녀 B와 C가 육체적 관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A(남편)는 B(아내)에게 C라는 남자와 육체적 관계가 있었는지를 묻는다. 둘이 연애를 했더라도 그것만은 없기를 바랐다. 이에 B(아내)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대답을 회피하고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죄지은 얼굴을 한다. (그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과 상관없이 여기선 이 장면에 대해서만 말함.)
반대로 D(아내)는 C(남편)가 B라는 여자와 호텔에 들어간 적이 있으나 그때 육체적 관계는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절망하며 두 사람이 사랑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건 정신적 외도였으니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하며 이혼을 결심한다.
A라는 남자에겐 바람피운 아내가 육체적 관계가 없어야 불행 중 다행인 일이 되는데, D라는 여자에겐 바람피운 남편이 육체적 관계가 있어야 불행 중 다행인 일이 된다. 왜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또 A는 두 사람의 육체적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B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어떤 것이 누구에겐 중요하고 누구에겐 중요하지 않을까. 이것도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이 드라마를 보다가 니체가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생각났다.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어떤 것이라도 해석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해석에 사로잡히고, 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시점에서만 사물을 보게 된다. 요컨대 해석 또는 해석에 기인한 가치 판단이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매는 것이다. -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은이), <초역 니체의 말>에서. |
이것을 니체는 다음과 같이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렌즈처럼 앵글에 비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투과시키지 않는다. 가령 석양에 물든 산자락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도 자연의 풍광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는 마음을 비우고 본다 생각할지라도, 실상은 바라보는 대상 위에 영혼의 얇은 막을 무의식적으로 덮어씌운다. 그 얇은 막이란 어느 사이엔가 성격이 되어버린 습관적인 감각, 찰나의 기분, 다양한 기억의 편린들이다. 풍경 위에 이러한 막을 얹고, 막 너머를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즉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 -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은이), <초역 니체의 말 2>에서. |
2. 명절에 대한 두 생각
즐겁지 않은 명절이었다.
지난 주 설날 연휴에 3박 4일 동안 대구에 있는 시집에 머물다 왔다. 명절로 인한 ‘민족 대이동’ 속에서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것 자체도 고단한 일인데, 시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잠을 자야 하는 밤이 되기 전까지 발 뻗고 쉴 여유가 없이 바빴다. 집에 돌아오니 몸살기가 있었다. 며칠을 앓았다. 명절 후유증인 셈이다. 명절로 인해 며느리만 고단한 게 아니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고단해 한다. 아이들도 고단해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이란 말인가.
즐거운 명절이었다.
지난 주 설날 연휴에 3박 4일 동안 대구에 있는 시집에 머물다 왔다. 명절로 인한 ‘민족 대이동’ 속에서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것 자체는 고단한 일이지만 명절이 아니라면 따로 시간을 내서 시집에 갈 기회를 만들기 쉽지 않으니 명절이 필요한 것 같다. 명절의 즐거움은 역시 모든 가족과 친척이 모이는 데 있다. 며느리들은 며느리들끼리 수다로 즐겁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만나서 즐겁고 아이들은 사촌들을 만나서 즐겁다. 반갑게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음식을 맛있게 먹으라고 권한다. 모두가 유쾌하게 하하하 웃는 시간이 많은 날.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명절이었다.
사람에 따라서 즐겁지 않은 명절일 수도, 즐거운 명절일 수도 있는 것은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위에 옮겨 놓은 니체의 글을 다시 읽는다.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어떤 것이라도 해석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니체의 글을 기억해 두기로 한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기 때문에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