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수양을 위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어떤 현자의 말인데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나는 그 가르침을 아주 꼼꼼하게 따르고 있다. 날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 서머싯 몸 저, <달과 6펜스>, 16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읽다가 웃음이 나왔다. 이 소설의 화자가 나를 웃겼다. 다시 읽어 봐도 재밌다. 마치 자신은 웃지 않으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처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라니. 그걸 싫어하지만 매일 실천하고 있다니.

 

 

 

나도 정신 수양을 위해 내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며 살아 볼까? 무엇이 있을까? 물론 좋은 일이어야 되겠지.

 

 

 

-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

- 글을 잘 쓰는 누군가에게 나보다 글 잘 쓴다고 말해 주는 일.

-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다가 뒷사람을 앞에 서게 양보하는 일.

 

 

 

이것 다 어렵잖아. ㅋㅋ

 

 

 

- 길거리의 쓰레기 중에 아주 더러운 게 있으면 어떡하나. 쓰레기에 개똥이 묻어 있을 수 있잖아. 또 토사물이 묻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므로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 글을 잘 쓰는 누군가에게 ‘당신 참 잘 쓴다.’라고 말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보다 잘 쓴다고 말해 주는 것은 쉽지 않잖아. 물론 그렇게 말한 경험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인심을 쓰듯 이걸 실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데, 게다가 뒷사람을 앞에 서게 양보하다니.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 보니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하기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다.

 

 

 

이건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시길.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두 가지씩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하겠습니까?

 

 

 

 

 

 

 

 

 

 

 

 

 

 

 

 

 

 

 

 

 

 

 

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이 소설의 화자와 같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을 싫어한다. 밤이 되면 잠자기 싫어서 억지로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서 억지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이런 소원이 있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잠자고 싶은 시간에 잠을 자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 이런 소원을 생각하다가 알아낸 게 있다. 이런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 잠을 방해하는 소리를 내는 식구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을 차려 줘야 하는 식구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독신자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내 소원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독신자라면 직장에 다니더라도 휴일이면 아무 때나 자기 맘대로 잠을 자고 아무 때나 자기 맘대로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을 부러워하다가 언젠가 나도 한 번쯤은 혼자 살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애들이 결혼을 하고 남편과 내가 주말부부가 되면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집에서 밤에 혼자 잠자는 게 싫어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여전히 즐기지만 저녁이 되면 식구들이 들어오면 좋겠다.

 

 

 

이렇게 정리하련다.

 

 

 

 

 

젊음이 아름다운 건 젊음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젊음이 늘 유지된다면 아름답게 여길 리 없다. 꽃이 아름다운 건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꽃이 늘 피어 있다면 아름답게 여길 리 없다. 마찬가지로 잠은 시간에 구애받으며 짧게 자야 달콤한 법이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정해진 시간의 아침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의 밤에 잠자야 한다.

 

- pek0501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행복이란 긴 시간 동안 가질 수가 없겠구나, 짧아야 행복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달과 6펜스>를 읽지 않았으면 글 쓸 게 없을 뻔했다.

이 책으로 인해 글 쓴 게 다섯 편이나 된다.

<달과 6펜스>는 내게 ‘사골’이다. 여러 번 우려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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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12-08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굿모닝!
휴일에 늦잠 자고 싶은데 평소 같은 시간에 눈이 떠져요.ㅠ
금욜, 토욜 늦게 자고 싶은데 밤 11시30분되면 막 졸려요.
나도 잠자기 싫어해 봤으면...잠을 지배하고 싶어라.
착한 일 두가지 하는게 더 쉽겠다! 싫은 일하면 더 보람 있으려나요?
요즘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주문처럼 외우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13-12-09 11:00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굿모님!
으음~ 님은 그러실 것 같아요. 출퇴근하다 보면 얼마나 달콤한 잠에 빠져 드실지
짐작이 갑니다.
님의 말씀이 맞네요. 착한 일 두 가지 하는 게 낫겠다 싶네요. 우리는 그럽시다. ㅋ
싫은 일을 하면 보람이 있기보다 자기 극기 훈련이 되지 않을까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요. 도리없지요.

하늘바람 2013-12-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사골같은 책 재밌네요 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정신 수양보단 스트레스돌거같아요 특히 3번

페크pek0501 2013-12-09 11:0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 사골 같은 책이랍니다. ㅋㅋ
맞아요. 싫어하는 일은 스트레스를 주겠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 중에서도 찾아보면 남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프레이야 2013-12-0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모옴은 유머까지 갖췄네요. 페크님도요ㅎㅎ 절대공감이에요. 저도 아침 제시간에 일어나기와 밤 제시간에 잠들기가 제일 싫어요ㅋ 어렵기도 하구요. 늦게 일어나거나 날밤새거거나 ᆢ 아무려나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전 결혼식장 갑니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 보면 기분 더 좋아질 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13-12-09 11:04   좋아요 0 | URL
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보면, 당신은 이제부터 고생문이 훤하다, 좋은 세월 다 갔다, 그래요. 히히...
애 낳아서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살림하는 건 어떻고요.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연애할 때가 좋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우리 딸들은 일찍 시집 보내지 않을래요.
제 맘대로 되지 않겠지만... ㅋ


그렇게혜윰 2013-12-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하는 일 두 가지 매일 하는데요, 밥하는 것 그리고 화장실 가는 거?ㅋㅋ 둘 다 너무 귀찮아요. 서머싯 몸이 저렇게 유머 있는 줄 몰랐네요^^

페크pek0501 2013-12-09 11: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이 재밌네요...
밥하는 것과 화장실 가는 것이라... ㅋㅋ 그럴 듯하네요.
저는 밥하는 것보다 반찬 만들기가 더 싫어요.
특히 외출시엔 화장실 가기가 귀찮고요.

서머싯 몸의 팬이랍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녀고양이 2013-12-1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 상담받을 때, 제가 차마 못하는 것들을 해보라고 자꾸 부추기시는거예요.
그래서요, 저는 빨간 불에, 사람이나 차가 별로 없는 거리에서 그냥 건너요! 쿡쿡.....
제가 아주 고지식했거든요~ ^^

저두저두,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유머가 있는 분들 정말 좋아해요.
예를 들면, 마립간님? 아하하.

페크pek0501 2013-12-13 09:51   좋아요 0 | URL
아하하~ 마립간 님, 재밌는 것 맞아요...ㅋㅋ

차마 못하는 것들을 해 보라는 게 자기 극복 훈련을 위한 것 같네요.
저도 고지식한 면이 있긴 해요. ^^

노이에자이트 2013-12-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결혼 앞둔 여자들을 보면 고생문이 환하구나 한다지만...그래도 노처녀가 되어가는 친인척을 보면 "언제 결혼하고 애 낳을래..."하는 생각도 들 거에요.

페크pek0501 2013-12-13 09:54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아마도 저는 다 해 봤기에 그런 생각을 하나 봐요.
만약 아직도 제가 올드 미스로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엄마에게 되게 볶임을 당했을 것 같아서...
제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맞선 시장에 내보내신 어머니거든요...
저는 제 딸한테 안 그럴 거예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