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감 : 20대 사람들과 40대 사람들을 비교하면 분명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자신감’의 유무인 듯하다. 예를 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여기서 40대 사람들이란, 40대 후반의 사람들을 말하는데 50대 사람들도 포함함.)
20대의 여성은 어느 카페에 들어섰을 때 그곳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면 자신이 예뻐서인 줄 안다. 그런데 40대의 여성은 어느 카페에 들어섰을 때 그곳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면 자신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어서 쳐다보는 걸로 안다. ‘내가 카페에 잘못 들어왔나?’, ‘여긴 젊은 사람들만 들어오는 데인가?’하고 생각한다. 20대의 여성이 타인의 시선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면, 40대의 여성은 타인의 시선에 대해 위축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은 40대의 여성도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일은 모자를 쓸 때도 나타난다. 요즘 내가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추운 날에 모자를 쓰면 머리가 시리지 않고 따뜻해서 좋기 때문이다. 내 딴에는 백화점에서 멋있다고 여겨지는 걸로 골라 산 것인데 문제는 멋있게 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20대에 이 모자를 쓰고 다녔다면, 사람들이 쳐다봤을 때 모자를 쓴 내 모습이 예뻐서 보는 것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모자를 쓰면 해석부터 달라진다. ‘이 모자가 어색해서 사람들이 쳐다보나?’, ‘이 모자가 웃기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뻐서 쳐다보는 것이라고 착각하던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갖는다. 이렇듯 나이가 들면 자신감이 하나씩 없어지는 것 같다. 비단 외모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런 것 같다. 그리하여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감은 자신의 능력과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감은 실제 능력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학자들은, 무능한 사람은 유능한 사람보다 자기 능력을 더 그럴 듯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어떤 논문은 논리와 문법, 유머 세 분야 시험에서 하위 25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이 특히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무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사람은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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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봐도 많은 사람들이 자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서 자신감이 없어지는 게 오히려 진실에 가까워지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2. 열등감 : 하지만 자만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열등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어느 부분에선 자만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어느 부분에선 열등감이 있지 않을까. 나만 해도 자만한 구석이 있는가 하면 열등감을 갖는 구석도 많다.
내가 열등감을 갖는 것 중 하나가 ‘운전’이다. 요즘 운전 못하는 여성이 없을 정도로 여성 운전자가 흔한 세상이 되었다. 내 친구들만 해도 대부분 차가 있고 운전을 하고 다닌다. 그런데 난 운전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내가 20대 중반이었던 때에 운전하다가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냈는데, 그 이후로 무서워서 운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운전에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내가 이렇게 운전을 못한다고 말하면 열등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누군가가 “너 운전 못하니?”라고 물으면, 또는 “너 차가 없니?”라고 물으면 마음속 깊숙이 숨어 있던 열등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운전하는 친구들을 보면 멋져 보이고 부럽다. 나도 운전을 잘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또 한때는 딸 둘을 낳은 것에도 열등감이 있었다.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다. 주위 사람들이 ‘딸딸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우연히 만난 동네 사람이, “다음엔 꼭 아들을 낳으셔야겠네요.”라고 말하면 열등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아들 타령을 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이 열등감은 없어졌다. 만약 지금도 예전처럼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시대라면 내 열등감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들이 있는 친구가 아들을 예뻐하면서 자랑스러워하면 그 친구가 부럽다. 나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열등감을 가져서 좋은 점이 있다는 건 중요한 깨달음이다. 열등감의 좋은 점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어느 것에 열등감이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것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둘째, 다른 사람의 열등한 면을 무시하지 않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셋째, 겸손해진다.
3. 사랑 : 무엇엔가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무엇을 아주 좋아하게 되면 우선 마음의 중심을 잃는다. 정신이 온통 그것에 집중되어서 일상생활을 균형 있게 해 나가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행복하면서도 스트레스가 따른다. 이것을 ‘스트레스가 있는 행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아주 맘에 드는 책을 만나면, 그것을 단숨에 읽고 싶어서 점심 먹을 시간이 몇 시간 늦어지고, 파마하러 가려던 계획이 내일로 미뤄지고, 청소할 시간을 놓치고 저녁을 맞게 되는 수가 있다. 이처럼 책에 빠져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음으로써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결혼이란 것도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그런 사랑에 빠져야 할 수 있는 것.
앞으로 결혼할 사람들은 그 균형을 어떻게 잡고 살게 될까, 생각해 본다.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 딸들도 겪을 일이니까. 이 시대엔 결혼하면 맞벌이 부부로서 살 가능성이 많을 텐데, 부부 간의 사랑과 직장생활, 집안일, 육아 등의 문제들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살지 의문이다. 그 일들을 다 하려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몇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집안일 해 주는 사람과 아이 키워 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나마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생활과 직장생활, 이 두 가지를 잘 병행하는 일도 쉽지 않다. 결혼생활을 중요시하면 직장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직장생활을 중요시하면 결혼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을 다 알면서도 여자들은 또 남자들은 무모하게 결혼을 한다.
그 없이 행복하기보다 차라리 그와 함께 참혹해지는 게 더 좋다고 여긴다면 결혼을 해도 좋으리라. 둘의 영혼을 녹여서 하나로 합치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면 결혼을 해도 좋으리라. 아니 결혼은 꼭 이런 생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사랑에 빠진 해럴드(남자)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에리카(여자) 없이 행복한 것보다 에리카와 함께 참혹해지는 게 더 좋았다. 둘이 함께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자기와 에리카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지우고 둘의 영혼을 녹여서 하나로 합쳐야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일이 가장 중요했다.
-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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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그녀 없이 행복한 것보다 그녀와 함께 참혹해지는 게 더 좋았다’라기보다 ‘그녀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해져서 행복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 같다.
4. 친구 : 이성과 마찬가지로 친구도 상대의 어떤 매력에 서로 끌려야 친구가 될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관계가 유지된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자기와 비슷해서거나 자기와 달라서거나. 즉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동질성 때문이거나 이질성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친구 사이에서의 사랑은 어떤 빛깔로 나타날까.
루이스는 이어서 이런 말도 했다. “친구 사이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정해 놓은 의무에서 자유롭고, 질투하는 일이 없고, 필요한 자격 조건도 없으며, 매우 정신적인 차원에 속한다. 천사들 사이에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다.”
-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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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다음의 글로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고전적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인 연결점을 적게 가진 사람일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예방의학의 권위자인 딘 오니시는 저서 <관계의 연금술>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3~5배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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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간의 전염성은 놀랍다.
학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작업과 관련해서 많은 연구를 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이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친구들이 뚱뚱하면 본인도 뚱뚱할 가능성이 높다. 친구들이 행복하면 본인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면 본인도 담배를 피운다. 친구들이 외로움을 많이 타면 본인도 외로움을 많이 탄다.
-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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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겠다. 내 경험으론, 친구 사이에서 ‘어떤 것에 대한 생각’도 전염되어 생각이 같아지는 현상도 일어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