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완벽’하게 쓰는 사람은 분명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다. 여기서 ‘완벽’이란 자신이 볼 때 더 이상 고칠 게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면에서 난 많이 부족하다. 한 번도 초고를 완벽하게 써 본 적이 없으니까. 항상 글을 쓰고 나면 두세 번 이상 읽어 보는데, 읽어볼 때마다 고칠 게 눈에 띈다. 고치면서 글이 완성된다.

 

 

며칠 전, ‘단상(30) 마음과 관련해 생각한 것들’이란 제목의 글을 서재에 올렸는데 이 글도 고친 게 많았다.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가 엉터리였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틀리게 써서 어떻게 고쳤는지를 공개한다. 첫째는 앞으로 틀리게 쓰지 말자는 뜻으로 나를 위함이요, 둘째는 글을 쓰는 우리 서재님들이 자신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보라는 뜻으로 서재님들을 위함이다.

 

 

 

1. 자신 없는 표현은 삼가기

 

 

 

 

내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1) 어쩌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고친 글)

이것에 대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내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1) - 이것을 뺐다. 이런 자신 없는 표현은 빼는 게 좋다. 독자는 자신감 없는 사람의 글을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것이다. 독자는 아마추어 의식을 가진 필자보다 프로 의식을 가진 필자를 좋아한다. 그래야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면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2. 낱말을 통일하기

 

 

 

 

어쩌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충돌2)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고친 글)

어쩌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분리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충돌2) - 를 ‘분리’로 고쳐서 낱말을 통일시켰다. 한 문단 안에서 ‘충돌’과 ‘분리’의 낱말이 섞여 있는 건 좋지 않아서다.

 

 

또 다음의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자신을 겨냥해서 모욕감을 주는 악성 댓글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3)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 따윈 무섭지 않다. 나는 끄떡없다.’라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의 악성 댓글의 위력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태도. 즉 당신은 헛수고를 했다는 걸 보여 주는 태도다. 또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로 인해 나는 정신적 타격이 심해 병원에 다닐 정도다. 그러니 당신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해야 마땅하다.’라는 태도.

 

 

 

 

 

 

(고친 글)

가령 자신을 겨냥해서 모욕감을 주는 악성 댓글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으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 따윈 무섭지 않다. 나는 끄떡없다.’라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의 악성 댓글의 위력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태도. 즉 당신은 헛수고를 했다는 걸 보여 주는 태도다. 또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로 인해 나는 정신적 타격이 심해 병원에 다닐 정도다. 그러니 당신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해야 마땅하다.’라는 태도.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3) - 를 ‘두 가지의 생각으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로 고쳤다. 그래야 그 다음에 나오는 낱말인 ‘태도’와 맞아떨어지게 된다.

 

 

또 다음의 글을 보자.

 

 

 

 

상대방이 총을 빵, 하고 쏘면 총알을 맞지 않더라도 죽는 시늉을 해 주고 싶다. 상대방에게 우선 만족감을 주고 싶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통쾌함4)만을 누렸다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겠다.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가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하면 복 받는다, 라고.

 

 

 

 

 

 

(고친 글)

상대방이 총을 빵, 하고 쏘면 총알을 맞지 않더라도 죽는 시늉을 해 주고 싶다. 상대방에게 우선 통쾌함을 주고 싶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통쾌한 만족감만을 누렸다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겠다.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가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하면 복 받는다, 라고.

 

 

 

 

통쾌함4) - 를 보면 만족감과 통쾌함이 같은 의미로 쓰이면서 통일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 군데를 고쳐서 통쾌함, 통쾌한 만족감, 만족감 등으로 썼다.

 

 

 

3. 같은 방식으로 나열하기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내가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하면 복 받는다, 라고.5)

 

 

 

 

 

 

(고친 글)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했으니 복을 받을 거야, 라고.

 

 

 

 

5)는 같은 방식으로 나열해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 거야’로 통일해 고쳤다. 또 ‘내가’를 뺐다.

 

 

 

4. 독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쓰기

 

간혹 글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의 입장에선 이런 것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몸과 마음은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반응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고친 글)

위대한 철학자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6)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몸과 마음은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반응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고 쓰면, 혹시 다른 철학자들을 들먹이며 그렇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생길지 모른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6)의 문장을 넣었다.

 

 

다음의 글을 보자.

 

 

 

 

백화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장에서 맘에 드는 멋진 핸드백을 발견한다. 가격이 비싸다. 몸은 그것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것이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그 핸드백을 어깨에 메어 보더니 어느새 계산대에서 그 핸드백의 값을 치르고 있다.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고친 글)

백화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장에서 맘에 드는 멋진 핸드백을 발견한다. 가격이 비싸다. 몸은 그것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것이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그 핸드백을 어깨에 메어 보더니 어느새 계산대에서 그 핸드백의 값을 치르고 있다.

 

이것에 대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분리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런 경우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7)

 

 

 

 

‘몸과 마음의 분리’라고만 단정적으로 쓰면,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독자가 생길지 모른다.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이성의 분리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7)의 문장을 넣었다.

 

 

이것은 내가 쓴 다른 글이다.

 

 

 

 

이처럼 마음이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우울·불쾌·슬픔·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좋은 감정 상태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겠다.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말이다.

 

 

 

 

 

 

(고친 글)

이처럼 마음이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우울·불쾌·슬픔·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좋은 감정 상태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겠다.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말이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8)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라고 썼는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독자가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노력했는데도 상대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8)의 문장을 넣었다. 그러면 독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독자는 말로써 직접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으나, 마음속으로 이 글은 틀렸어, 라고 생각한다면 그 글은 완벽한 글이 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게 좋다.

 

 

5. 내가 최고로 치는 글은 이런 것

 

 

- 간결체의 문장이 좋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체가 최고의 문체라고 생각한다.

 

- 글은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글이 길어지면 그중에는 불필요한 문단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없애는 작업을 한다. 문장도 마찬가지여서 많이 쳐 낸다.

 

- 좋은 글일수록 상당히 수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치밀한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 재미와 유익함(또는 감동)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글이 좋다. 유익함이 없다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재미가 없다면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가장 좋은 글은 쉽게 읽히고 그 글이 담고 있는 뜻은 깊은 글이다. 반대로 가장 좋지 않은 글은 어렵게 읽히고 그 글이 담고 있는 뜻은 깊지 않은 글이다. 뜻이 깊은 글을 쓰려면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같은 글이 쉽게 읽히고 뜻이 깊은 글로 본다.)

 

- 현학적인 글을 경계한다. 초보자가 현학적인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 글을 읽자마자 빨려 들어가 딴 생각이 나지 않는 글이 좋은 글이다. 반대로 글을 읽다가 자꾸 딴 생각이 나서 여러 번 집중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글은 좋지 않은 글이다. 흡인력이 중요하다.

 

(이렇게 썼지만, 이런 나도 좋은 글을 못 쓰고 있다.ㅋ)

 

 

 

....................................................................................................

 

* 이 글을 쓰고 나서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무려 400번이나 고쳐서 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만큼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겠다.

 

 

한때 문학이론서만 읽은 적이 있다. 또 한때 문장작법에 관한 책만 읽은 적도 있다. 아마 이런 부류의 책을 수십 권쯤 읽었을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배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런 책들이 그 자체로 재미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런 책들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여 추천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외래어가 부끄러운 사람”들한테 반갑고 힘이 될 만한 책. 한 달에 백 권도 넘는 책을 읽을 만큼 대단한 독서가인 최종규는 책을 읽으면서 ‘살려 쓰면 좋을 아름다운 우리 말’을 발견하면 따로 갈무리해 두고, 마찬가지로 잘못된 글, 나쁜 글, 불필요한 외래어나 외국어를 만나도 따로 갈무리해 두는 일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뿌리 깊은 글쓰기: 우리 말로 끌어안는 영어>를 선보인다.(알라딘, 책소개)

 

최종규님의 책을 통해 글을 올바르게 쓸 줄 아는 능력부터 키우는 게 좋다.

 

      



 

 

 

 

 

 

 

 

 

 

  <문장강화>. 이 책을 읽지 않은 작가는 드물 것 같다. 좋은 문장의 예문이 많이 들어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을 모르고선 글을 잘 쓸 수 없다. 문학이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준다.

 

 

 <유혹하는 글쓰기>. 글쟁이 친구가 꼭 보라고 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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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어떻게 쓸까 하고 생각하며 이렇게 한번 적어 봅니다~


.. 이 일은 내 생각과 마음이 서로 다르다 볼 수도 있고, 두 생각과 마음이 갈라섰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이러한 때 몸과 마음이 나뉘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


감정과 이성은, 생각과 마음으로 나타낼 수 있지 않으랴 싶어요. 사지 않겠다는 생각과 마음은 벌써 가방 쪽으로 가서 손에 쥐고는 값을 치르고 만다는 모습.

'분리'틑 '나뉘다'와 '서로 다르다'와 '갈라서다'로 적어 보았어요~

페크pek0501 2012-02-09 11:31   좋아요 0 | URL
단상(30)을 쓰기 전에 생각과 마음을 각각 국어사전 찾아 보았는데, 두 낱말이 동의어로 쓰이는 예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함께 쓰면 헷갈리겠다 싶어 그냥 감정과 이성의 분리라고 쓰게 되었어요.ㅋ

분리, 라는 한자어보다 우리말이 더 좋은데, 되도록 한자어 쓰지 말라고 배우긴 했는데, 저는 압축의 맛 때문에 한자어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엔 '나뉘다'로 써 보겠습니다, 선생님...ㅋㅋ

인식하다, 인지하다, 이런 낱말도 즐겨 써요. 그것보다 더 좋은 말이 있는데도 말이죠. 배운 대로 하기도 힘들어요.ㅋ

어쨌든 <뿌리 깊은 글쓰기>가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ㅋ


숲노래 2012-02-09 20:47   좋아요 0 | URL
국어사전 뜻풀이를 믿지 마셔요.
제대로 풀이한 낱말은 아주 드물어요.

내 가슴을 믿으면서 낱말 느낌을 헤아리셔요.

생각과 마음은 비슷하지도 같지도 않아요.
'마음'은 내가 받아들이는 무엇이고,
'생각'은 내가 스스로 짓는 무엇이에요.
그러니까, 마음과 생각은 아주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이성'은 '생각'이 되고,
'감성'은 '마음'이 되지요.

마음으로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으로는 무엇이 어떠하구나 하고 스스로 갈무리하면서 지으니까요.

먼먼 옛날까지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본 한자말과 중국 한자말 없이 살아가며
'감성'과 '이성'을 어떻게 나타냈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보면 돼요.

인식하다 - 느끼다
인지하다 - 알아차리다

자리에 따라 달리 쓰기는 하지만, 밑바탕으로는 이렇게 헤아리며 쓰면,
스스로 좋은 말길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잘 보면,
생각하다 - 헤아리다 - 여기다 - 살피다 - 돌아보다 -
톺아보다 - 가누다 - 가늠하다 - 살펴보다 - 짚다 - 되짚다 ...
'생각'을 일컫는 수많은 낱말은 자리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이 느낌을 홀로 곰곰이 따지면서 말씀씀이를 북돋아 보셔요~

페크pek0501 2012-02-10 10:27   좋아요 0 | URL
아, 된장님은 매우 높은 경지에 계신 것 같네요. 제가 오른 적 없는, 또 앞으로 오를 수도 없는 경지예요. ㅋ

님의 설명을 기억해 놓겠습니다.ㅋ

굿바이 2012-02-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이것은 부끄러워서 소심하게 지르는 비명입니다^^)

참으로 분하지만 저는 저런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그냥 혼자 아무렇게나 끄적이고 잊어버립니다.
복기하면 쪽팔려서 성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ㅋㅋㅋ

아참,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실은 저도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이참에 읽을까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2-02-09 11:35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잘 쓰시면서 왜 그러세요? 부끄러운 비명이라니요...ㅋ

읽을 책이 한두 권이라야 말이죠. 인생은 짧고 읽은 책은 많다, 고 생각되어요. 저도 감기로 아파서 누워 지낼 때도 책은 꼭 끼고 있어요. 책 보다가 낮잠 자려고요. 책이 수면제의 역할도 해요. 그래서 님처럼 아파도 할 건 다 한다는 것이죠. 그것 너무 웃겼어요. 소리내어 웃었다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읽어보고 무슨 뜻이지도 모를 글은 정말 짜증납니다.사람이 천재일 수는 없으니 쓰고 나서 더 다듬는 과정은 필수지요.Pek0501님의 글은 문장이 명료해서 이해하기 쉽습니다.머리에 든 것도 없는 인간들이 현학적인 글로 횡설수설하는 법이죠.

페크pek0501 2012-02-09 11:37   좋아요 0 | URL

예. 사람은 천재일 수 없고, 게다가 헤밍웨이 같은 대작가도 400번이나 고친다는데, 저 같은 범인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명료라는 호평은 감사하네요. 감사...

그런데 아직 사유가 깊은 글을 저도 써 보질 못했으니 만족의 경지란 얼마나 높은 곳인지를 헤아리게 되네요.

oren 2012-02-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법'이나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의 분리'와 관련된 '괴상한 문장' 이야기를 '어제'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고나니 올바른 문장을 쓰는 게 더욱 어렵게만 느껴지더군요. ㅎㅎ
* * *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은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는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옳지만 내용적으로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누가 바늘로 나를 찌르면 나는 ‘아야!’하고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는 등의 ‘괴상한’ 문장을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타인의 비명이나 찡그린 얼굴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비트겐슈타인은 위의 ‘토끼!’의 예에서 외침이 우리 몸에 대해 갖는 관계는 비명이 고통에 대해 갖는 관계와 흡사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외침과 몸, 비명과 고통은 실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외침의 경우 어떤 물체를 지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패턴매칭), ‘토끼.’라고 발화하는 3단계의 인식행위가 아니라, 지각으로부터 외침까지 전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행위를 의미한다.

페크pek0501 2012-02-09 11:39   좋아요 0 | URL
오렌님, 저도 그런 글 본 전이 있어요. 같은 글은 아니고요, 우리가 평상시 하는 말도 틀린 게 많다는 걸 모아 놓은 글이었는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가 쓴 문장에도 틀린 게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공부는 끝이 없고, 완벽함의 경지는 높고... 저는 그냥 하는 데까지 할래요. 욕심 부리지 않고요.ㅋㅋ 욕심 부리면 건강에 타격이 와요. 과로하면 안 되니까요.
언제나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 요즘 오렌님께 배우는 게 많아요. 여러 가지로요. ㅋ

이진 2012-02-09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페크님.
저 지금 감동받아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려고 합니다.
어쩜 이리 좋은 글을 써주시다니.
오늘 이 글 읽으면서 반성많이 했씁니다. 저는 수정이라곤 귀찮다는 이유로 거의 안하거든요. 또 제대로된 글을 써본적도 없고 페크님께서 최고로 치는 글에 거의 속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내가 쓸데없이 현학적은 아니었던가(솔직히 지식도 없지만) 일부러 글을 길게 보이려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쓰지는 않았나.
마침 또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도 찾고 있었는데 마지막의 책 소개는 정말 제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당.
안녕히 주무셔요 :)

페크pek0501 2012-02-09 11:41   좋아요 0 | URL
감동 받아 눈물이 주르륵이라... 이것 뻥이죠? 그러나 고마운 뻥이죠, 제겐...
그대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어요.ㅋ
잘 하고 계십니다. 나날이 발전하시는 소이진님이세요.

쉽싸리 2012-02-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기 공부네요.
아무래도 자주 고쳐야 좋은 글이 될것 같아요.
잘 고쳐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겠지만, 아무래도 고칠려고 하면 어떤 틀을 기반으로 해야하니까 공부도 많이 되고 결국 올바른 쪽으로 가깝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2-09 11:45   좋아요 0 | URL
쉽싸리님,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ㅋ

글을 고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문장작법 같은 책을 보면 공부가 되기도 하지만, 문장을 이렇게 써 보고, 또 저렇게 써 보고 해서 어떤 것이 나은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떤 게 더 세련된 표현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면 답이 나와요. 그 공부가 끝이 없어서 문제지만요. 그래도 완성을 향해 가야 하는 미완성의 우리는 노력해야지요. 그 노력을 즐기며 살아요, 우리.
또 오세요.

stella.K 2012-02-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저의 글에 상처를 가장 많이 주는 데가 알라딘 글쓰기 공간 같아요.
저는 글쓰고 다시 한번 읽으면서 문장이나 오탈자 한번씩 훑고 그냥 올려버릴 때가
많거든요. 올리고 다시 안 보는데 부득이하게 다시 볼 때가 있어요.
그럼 어찌나 화끈거리는지.
이 댓글 쓰면서 언니한테 흠잡히지 않을까 오글오글 합니다.ㅋㅋ

책이 인류에 등장하면서 초고가 완고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고 봅니다.
안중근 일대기를 다룬 <영웅>도 2년 동안 20번을 고쳤다고 해서 식겁했는데요 뭐.
근데 헤밍웨이는 무려 400번!
정말 도 닦는 마음이 아니면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날 것 같습니다.
일필휘지란 말은 아예 없었던 말 아닐까요?

문장강화는 모셔만 두고 있고, 스티븐 킹은 정말 재밌어요. 아메리칸 스딸로 정말 잘 쓴 것 같아요.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아직 팔리고 있군요. 품절이나 절판으로 나올만도 한데.^^


페크pek0501 2012-02-10 10:3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흠 안 잡아요. 걱정마세요. ㅋㅋ
저는 남의 글을 읽을 때엔 좋은 부분을 찾으려고 애써요. 그래서 그걸 댓글에다 쓰는 걸 좋아하죠. 이런 문장이 좋았습니다 라고요. 누구에게서든지 배울 점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남의 글을 꼼꼼히 분석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읽을 글이 한두 개가 아닌데다가 또 가장 관심이 많은 건 자신이지 남이 아니니까요.

이런 저도 흠 많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확 지우고 싶다니까요.ㅋㅋ 요즘 쓴 글도 아마 시간이 흐르면 지우고 싶을지 몰라요. 옛날 흑백사진 보면 촌스럽듯이 말이에요.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요즘도 나오는 건 저도 신기해요. 사실 다른 책들도 추천하고 싶었는데, 제가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품절이거나 절판이어서 소개 못 했어요. ㅋ

비로그인 2012-02-0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글이네요. 제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그대로 예시로 드러나있어요 ㅠ ㅠ

왜 소설에는 그런 문체가 많잖아요. 어쩌면... 이라든가, ...인지도 모른다. 그런 문체를 많이 접하다보니 허구한 글에다가 그 표현을 써먹는 것 같아요. 확신은 없는데 그럴싸하게 말하고 싶을 때 방어책으로요. 반성해야겠어요. 고쳐야되구요!

간결체가 가장 좋다는 건 저도 동감해요. 근데 막상 글 쓸때 잘 안 되요 ㅋㅋ 글쓰는 주제나 대상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로 글을 써서 그런거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쌩떽쥐베리 같은 작가들이 <어린왕자>를 썼을 때는, 정말로 순수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단해요...

그나저나 페크님은 글쓰기 관련 일을 하시나요?
이 글 읽으면서 국어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는 느낌이 들었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12-02-10 10:33   좋아요 0 | URL
아, 님의 질문을 듣고 보니 제가 글쓰기 관련 일을 한 것 맞네요.
학교교사는 아니었고 중고등학생들에게 글쓰기와 논술을 가르치며 돈 벌었어요. 결혼 전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했고, 결혼 후 자유기고가로, 일간지 리포터로 일했네요. 지역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적도 있는데, 무식하면 용감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인 것 같아요. 지금 보면 형편없어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빼곤 늘 무언가를 하며 살았는데, 그게 다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었음을 님의 질문 때문에 새삼 알았어요. 또 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