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앎은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알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그것에 대하여 관찰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알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일이다. 난 내 마음을 관찰 중에 있다.

 

 

마음과 관련해 내가 생각한 것들을 열거해 본다.

 

 

 

1. 몸과 마음이 분리될 때가 있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몸과 마음은 두 개의 존재로 분리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반응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운동하고 돌아와 고단한 몸으로 침대에 눕고 나서 갈증을 느낀다. 몸은 물을 마시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마음이 귀찮다고 한다. 너무 고단해 몸을 움직이기 싫다. 물을 마시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는 일이 귀찮은 것이다. 이럴 때 물을 마시고 싶은 몸과 물을 마시기 싫은 마음이 충돌한다. 그 결과 몸이 마음을 이겨서 물을 마시든지, 아니면 마음이 몸을 이겨서 물을 마시지 않게 된다.

 

 

이것과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내 몸은 물을 마시기 싫다고 한다. 물을 마시고 싶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런데 마음은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루에 몇 잔의 물을 마셔야 건강에 좋은데, 오늘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을 적게 먹으면 노화현상도 빨리 일어난다는 말이 생각나서 마음은 몸에게 빨리 물을 마시라고 재촉한다. 이럴 때 물을 마시기 싫은 몸과 물을 마셔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한다. 그 결과 몸이 마음을 이겨서 물을 마시지 않든지, 아니면 마음이 몸을 이겨서 물을 마시게 된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나는 사우나를 하고 싶다. 그런데 날씨가 춥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사우나를 포기하고 싶다. 그런데 몸은 사우나를 간절히 원한다. 땀을 빼는 사우나가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사우나를 원하는 몸과 사우나를 하기 싫은 마음이 충돌한다. 그 결과 몸이 마음을 이끌어서 사우나를 하러 갈 수도 있고, 반대로 마음이 몸을 이끌어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백화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장에서 맘에 드는 멋진 핸드백을 발견한다. 가격이 비싸다. 몸은 그것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것이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그 핸드백을 어깨에 메어 보더니 어느새 계산대에서 그 핸드백의 값을 치르고 있다.

 

 

이것에 대해 내 안의 감정과 이성의 분리로 볼 수도 있고, 두 개의 마음의 분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몸과 마음의 분리로 생각하곤 한다.

 

 

 

2. 물건을 살 때 정확히 판단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만약 물건을 산 당신에게 누군가가 “당신이 방금 카드로 긁은 그 물건, 정말 꼭 필요한 거 맞느냐”라고 묻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어떻게 나올까. 이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책이 있다. 마틴 린드스트롬 저,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정말 필요해서 물건을 샀을까, 하고 묻는다. 물건을 살 때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

 

 

이 책에 의하면, 기업은 소비자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얼마를 벌고, 뭘 잘 먹는지를 다 알고 있다. 하긴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으며, 자신의 소비를 기록하는 포인트 카드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자신에 대한 정보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대로 자신의 지갑을 조종당하는 일이 가능하겠다. 또 이 책은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비물질적인 것(성적이 올랐을 때의 성취나, 친구와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갔을 때의 유대감 등)을 좋아하는 반면,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물질적인 것(새 옷이나 아이팟 등)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나는 물건을 사고 나서 정확히 판단해서 잘 산 것인지를 모를 때가 있다. 특히 옷을 사러 다니는 것을 귀찮게 여겨서 옷을 살 땐 한꺼번에 여러 벌 사곤 하는데, 이럴 때 후회하곤 한다. 이건 왜 샀지, 하면서.

 

 

 

3. 누군가가 괴롭혔을 때 드는 생각

 

 

 

누군가의 ‘악’으로 인해 괴로워질 때 직접 복수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복수를 하지 않고 그가 스스로 괴롭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자신을 겨냥해서 모욕감을 주는 악성 댓글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으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 따윈 무섭지 않다. 나는 끄떡없다.’라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의 악성 댓글의 위력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태도. 즉 당신은 헛수고를 했다는 걸 보여 주는 태도다. 또 하나는 ‘당신의 악성 댓글로 인해 나는 정신적 타격이 심해 병원에 다닐 정도다. 그러니 당신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해야 마땅하다.’라는 태도.

 

 

앞으로 나는 후자 쪽을 따르려 한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괴롭혔다면, 그의 목적, 즉 그가 나를 괴롭히고 싶었던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를 검토해서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야겠다. 그러면 그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만족할 테고, 그 만족이 있어야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에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 수 있을 테니까.

 

 

상대방이 총을 빵, 하고 쏘면 총알을 맞지 않더라도 죽는 시늉을 해 주고 싶다. 상대방에게 우선 통쾌함을 주고 싶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통쾌한 만족감만을 누렸다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겠다. 한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었으니 덕을 쌓은 거야, 라고. 좋은 일을 했으니 복을 받을 거야, 라고.

 

 

 

4.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똑같을까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이 훌륭한 가정 주부가 되는 데 필요한 여섯 가지 요구 사항을 기입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그 강좌에서 이렇게 보고했다.

 

 

“저는 그런 요구 사항에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내가 고쳐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여섯 가지를 적는 일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도 제가 고쳐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수천 가지는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입하는 대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 아침에 대답을 하겠소’라고요.

 

 

다음날 아침, 저는 일찍 일어나서 꽃집에 전화를 걸어 붉은 장미 여섯 송이를 아내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꽃다발에는 ‘당신에게 고쳐 달라고 할 여섯 가지 일을 생각할 수가 없었소. 나는 지금 당신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오’라고 쓴 카드를 붙여 놓도록 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도착했을 때 누가 저를 문 앞까지 마중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눈물을 가득 담고 있는 제 아내였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저는 아내가 요구한 대로 비판하지 않은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 데일 카네기, <카네기 인간관계론>, 64쪽~65쪽.

 

 

 

칭찬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상대가 아무리 자신에 대해 비판해 달라고 해도 그 속마음은 칭찬을 바라고 있다는 것.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똑같을까.

 

 

 

5. 나는 나를 모르겠다

 

 

남을 아는 것이 지혜(智)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입니다.

 

- 노자, <도덕경>, 147쪽.

 

 

노자에 의하면, 남을 아는 게 지혜에 불과하다면, 자기를 아는 것은 사물의 깊은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라는 말이 있는데, ‘주제 파악’처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싶다. 아마 난 죽는 날까지 주제 파악을 못하리라.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어서 허영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애덤 스미스 저, <도덕감정론>을 읽고서다.

 

 

 

 

오만(傲慢)한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고, 마음속 깊숙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優越)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맞히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의 입장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바라볼 그런 눈으로, 자기를 보아주기를 바란다.

 

 

허영심(虛榮心)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여, 자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우월성(優越性)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우월성이 있다고 당신이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483쪽~484쪽.

 

 

 

이 책을 통해서 조금씩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나는 끝까지 나의 진실을 모를 수도 있겠다. 그냥 아는 데까지 알아볼 거야, 하고 생각해야겠다.

 

 

몇 년 전, 어떤 모임에 갔더니 누군가가 나에 대해 개성이 강하다고 했다. 튄다고도 했다. 놀라운 건 여러 사람들이 그 의견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평범한 내가? 기막히군. 그동안 없던 개성이 최근 갑자기 생긴 걸까?’

 

 

어쩌면 그들이 나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에 속한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아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어떤 점을 지적당하면 당황하게 되는 건 흔한 일이다. ‘내가 그런가?’ 하면서 깨닫게 되는 일이 있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우주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그 어느 별보다도 먼 것이다.”(체스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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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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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2-0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 참 좋아요. 어린왕자를 흉내낼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 멀고 먼 소행성으로 돌아가서 보고싶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말이죠~^^

페크pek0501 2012-02-04 00: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굿바이님.

아, 어린왕자. 여러 번 읽었죠. ㅋ

비행기 조종사 되고 싶을 때 있어요. 하늘을 날으는 기분을 체험하고 나면 세상이 좀 달라보일 것 같지 않나요?

2012-02-03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2-02-0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건을 살 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유는 가장 쉽게 속일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답니다. ㅎㅎ
* * *
지적 겸손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놀아라.
일치하지 않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를 잘 이용하라.
가짜 정확성과 가짜 확실성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에 저항하라.
무엇보다도 절대로 자신을 속이지 마라. 가장 쉽게 속일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 찰리 멍거

페크pek0501 2012-02-04 13:46   좋아요 0 | URL
아, 오렌님, 배 타고 오셨군요.ㅋㅋ

자기 자신을 속이기 쉽다는 글은, 제가 언젠가 제 글에서 인용해 본 적 있었어요.

“인간이란 늘 남에게 속기보다 스스로 자신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싶어하는 존재지요. 그리고 물론 남의 거짓말보다는 자신의 거짓말에 더욱 잘 넘어가고요.” -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령>에서.

찰리멍거의 글, 참 좋네요.

숲노래 2012-02-0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날 세상에서는
가게에 가서
참말 내가 바라는 것을
살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하면
이 말이 참 맞구나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2-04 13: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반가운 된장님. 시대의 요청에 따라 사기도 하고(스마트폰처럼), 또 광고에 현혹되어 사기도 하고, 없으면 창피해서 사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정말 인간은 무엇에 의해 늘 조종당하는 것 같아요. 저 위의 책 제목처럼요.

숲노래 2012-02-04 13:5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가게에는
'우리가 사야 한다'고 여기도록 강요받는 물건만 있지,
우리가 스스로 찾으려 하는 물건은 없다고... 할까요...

페크pek0501 2012-02-04 13: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된장님. 그거 잊지 말고 살아야겠어요. ㅋ

oren 2012-02-0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괴롭혔을 때 드는' pek님의 생각을 읽어보니 마치 '도덕철학자'의 생각을 엿보는 착각이 듭니다.ㅎㅎ '복수'와 '양심의 가책'에 대해서는 쇼펜하우어도 '인간의 본성'인 '선과 악'을 다루는 대목에서 빼놓지 않고 다뤄 놓았더군요.
* * *
복수심은 이미 악의에 가까운 것이고, 악에 이미 보복하고, 형벌의 특질인 장래에 대한 고려에서가 아니라 단지 일어난 것, 지나간 것 때문에 복수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아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행하고, 가해자에게 고민을 일으켜 놓고 보고 즐기는 것이다. 복수가 순수한 악의와는 다르고, 어떤 점에서 변호되는 것은 그것이 정당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

앞에서 말한 고뇌는 악의와 같은 뿌리, 즉 격한 의지에서 생긴 것이고, 악의와는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악의에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고통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이기심에서 나온 단순한 불의든, 순수한 악의든 간에 나쁜 행동에서 느껴지는 것이며, 그 고통의 지속적인 길이에 따라 '양심의 가책(Gewissensbiss)' 또는 '양심의 불안(Gewissensangst)'이라고 불린다. (905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선과 악' 그리고 양심의 가책] 中에서

페크pek0501 2012-02-04 13:48   좋아요 0 | URL
도덕철학자라고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고맙습니다.

그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 것 같아요.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에게 이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자신을 위해서(좋은 일 하면 복 받는다, 로) 결론을 내린 것이죠.


oren 2012-02-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오는 '오만한 사람'과 '허영심이 많은 사람'을 pek님의 글을 통해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좋네요. 이번 기회에 '오만과 허영심의 결합'과 '허영의 과오'도 다시 찾아 읽어보니 여전히 좋습니다.(비록 무척 길지만 붙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붙이고 갑니다...)
* * *
오만과 허영심의 결합

오만과 허영심이 각각 그 자신의 특성에 따라서 행동할 때,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을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러나 오만한 사람은 흔히 허영에 차 있으며, 허영에 찬 사람은 흔히 오만하다. 자신이 정당하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며, 마찬가지로, 자기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도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결점은 흔히 동일한 성품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의 특징들도 필연적으로 서로 혼동되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허영심의 천박하고 주제넘은 과시(誇示)가 오만의 가장 악독하고 유치하고 가소로운 무례함과 함께 결합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정한 성품을 어떤 것에 귀속시켜야 할지, 즉 그것을 오만으로 간주해야 할지 아니면 허영심으로 간주해야 할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흔히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492∼493쪽)


허영의 과오

나는 다만, 영예롭고 숭고한 것을 행하려는 갈망(渴望)과, 스스로를 존중과 시인(是認)의 적절한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갈망을 허영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적정성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심지어 충분한 근거와 이유가 있는 명예와 평판에 대한 애호, 진정으로 존중받을 만한 수단을 통해 존중받고자 하는 애호까지 허영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전자는 미덕(美德), 즉 인성(人性)에서 가장 숭고하고 가장 위대한 격정에 대한 애호이고, 후자는 진정한 영광에 대한 애호로서, 이것은 앞의 것보다는 분명히 열등하지만 그러나 그 고상한 정도에 있어서는 앞의 것 바로 다음가는 격정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허영(虛榮)의 과오(過誤)가 있다. 전혀 칭찬받을 가치가 없거나 또는 그가 기대하는 정도로 칭찬받을 가치가 있지도 않은 특성에 대해 칭찬받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즉 자신이 착용하는 옷이나 장신구의 시시한 장식 또는 동등하게 천박한 표현인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거지에 근거하여 칭찬받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확실히 칭찬받을 자격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님을 그 자신이 완전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도 허영의 과오가 있다. 자신이 어떤 일에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니면서 마치 자신이 그 일에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으스대는 골빈 멋쟁이(coxcomd), 자신이 결코 한 적이 없는 모험을 한 척하면서 그것에 대한 공로를 차지하려는 미련한 거짓말쟁이(liar), 자신에게 아무런 권리도 없는 책의 저자인 양 자처하는 우매한 표절자(剽竊者: plagiary), 이들 모두도 허영심이란 격정을 가진 사람들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분명히 표현되지 않는 존중과 시인(是認)의 감정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감정 자체보다는 자신에게 행해지는 시끄러운 칭찬의 표현과 환호를 더 좋아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칭찬이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직함(職銜)을 좋아하고, 인사받기 좋아하고, 방문 받기 좋아하고, 시중 받기 좋아하고, 존경받고 주목받기 좋아하는 사람, 이들 역시 허영의 과오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경박한 감정들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경우(즉, 진정한 미덕에 대한 애호와 진정한 영광에 대한 애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앞의 두 가지가 인류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위대한 격정들이라면, 이것은 인류의 가장 천박하고 가장 가져서는 안 될 격정들이다.(592∼593쪽)

페크pek0501 2012-02-04 14:00   좋아요 0 | URL
오만과 허영의 글은 오렌님의 서재에서 보고 제가 프린트해서 보았답니다. 반복해서 읽었죠. 그리고 그 글에 반해 도덕감정론을 샀다는 것이지요. ㅋ
도덕감정론이 많이 팔린다면 그건 오렌님 덕분일 텐데... 그것, 알라딘에서도 비봉출판사에서도 알아야 하는 것인데... ㅋㅋ

다시 읽으니 좋습니다.

프레이야 2012-02-0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먼 그 별로 가는 길이 참 쉽지 않아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일 잘 모르는 존재 또한 나 자신인 것 같아요.
밝게 비춰 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어떨 땐 알고도 모르는 척 무시해야할 때도
있고 그냥 지나쳐 가야할 때도 있고 말이에요.
언젠가는 그 별까지 갈 수 있을까요?^^

페크pek0501 2012-02-04 14:01   좋아요 0 | URL
아, 향기가 나는 프레이야님.
끝까지 못가더라도, 제일 모르는 존재가 나 자신인 것 같다고만 생각하고 살아도 될 것 같아요. 그것도 큰 깨달음이고, 그러면 최소한 자만엔 빠지지 않을 테니까요.
어쨌든 ‘확신은 금물’인 것, 자주 느껴요. 반갑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2-0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계발서라면 뭔가 수준 낮은 책으로 무시하는 사람도 있죠.데일 카네기 같은...Ppek0501님은 고전적 인문서적도 인용하고 카네기 책도 인용하고...편견없이 골고루 독서를 해서 이런 글을 남기니 읽는 사람이 흡족합니다.

페크pek0501 2012-02-06 00:08   좋아요 0 | URL
아, 답글 늦어서 미안합니다. 오늘 바쁜 하루였어요.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자기계발서라고 생각 않고 샀어요. 하도 카네기, 하길래
카네기의 명성이 왜 있는건지 궁금해서 샀어요. 궁금한 건 못 참아요.ㅋㅋ
카네기 책 중 특히 인간관계에 대한 책 같아서 샀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어요. 심리학 서적도 그렇고 너무 원론적인 책보다 정통에서 비껴난 것들이 오히려 재밌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끌리는 대로 읽을 생각이에요.
반가웠습니다. 또 봅시다. ㅋ

gimssim 2012-02-0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화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장에서 맘에 드는 멋진 핸드백을 발견한다. 가격이 비싸다. 몸은 그것을 원하는데, 마음은 그것이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내 몸은 이미 그 핸드백을 어깨에 메어 보더니 어느 새 계산대에서 그 핸드백의 값을 치르고 있다.'

- 끙! 이거 내 얘긴데. 사고 쳤다오. 조만간 페이퍼로 올려볼께요.


페크pek0501 2012-02-06 00:10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에 방문하셨네요, 중전님. 반갑습니다.ㅋ
그때가 언제인가요, 무슨 상을 받으셨다고 해서 제가 댓글을 단 기억이 있어요.

공감하셨다니 반갑네요. 백화점에서 사고 치셨나보죠? ㅋ가끔 그러는 것도 괜찮다고 여겨요.(자주 그러면 곤란하지만...) 너무 계획적으로 사는 것, 재미없잖아요.
꼭 페이퍼로 올려 주세요. 기대되네요. 꼭 보러 가겠슴다.ㅋㅋ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중전님은 글을 쓰셔야 된다니까요. 제가 팬이잖아요.(사진도 좋지만...)ㅋㅋ

마녀고양이 2012-02-06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나를 알아야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나를 알아야 현실적인 대처를 할 수 있고, 나를 알아야 평온을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정작 나를 들여다보는 자체가, 너무 괴로운 일이예요, 가끔은.

2. 악성 댓글, 또는 충고성 댓글 등등 말이죠,
저는 그 심리가 너무 궁금해요. 특히 daum과 같은 곳에 있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
왜 그렇게 다는걸까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요. 그에 비하면 알라딘 서재는 양반이죠. ^^

페크pek0501 2012-02-07 10:32   좋아요 0 | URL
반가운 마고님, 안녕?
그런데 이 글의 추천수가 왜 32인지 저는 궁금하네요. 그냥 생각의 잡동사니들을 모아 봤을 뿐인데...ㅋ 그만큼 공감한다는 뜻?인가요. 오늘 보고 깜짝 놀람.ㅋ

자신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결점을 안다는 뜻도 되는데,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면 자꾸 남 탓을 하게 되고 남을 비난하게 되죠. 한마디로 민폐가 돼요. 예를 들면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오바해서 화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걸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오바했다고 생각 안 하고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죠.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고 남에게도 해가 안 돼요.

1번의 내용은 좋네요. 그렇게 정리가 되네요. 결국 자신을 알아야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
2번의 악성댓글은...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사악한 경향이 있는데, 그것도 부당하게 인기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겨냥하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건 제가 따로 페어퍼로 써서 올릴 예정임.)
어쨌든 과도하게 악성댓글을 단다면 그가 외로워서일거야, 라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에너지를 적합하게 쏟을 무엇을 찾지 못한데다가, 잘 되는 일은 없고, 외로운 게 아닌가 생각 들어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게 궁금해서 이쪽으로 공부를 해 볼 생각입니다. ㅋㅋ 글을 쓰기 위해 이책 저책 뒤지다 보면 조금 알게 될 것 같기도 해요. ㅋㅋ 반가웠어요.

마녀고양이 2012-02-07 10:40   좋아요 0 | URL
알라딘의 추천수가 글의 품질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저는 이 페이퍼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렇게 카테고리를 나누시는 자체가 전 항상 감탄스러워요. ^^

네, 외롭기 때문에 집착의 일부분으로 악성 댓글을 쓰는게 아닐까도 싶고
인정받고 싶거나 주의를 끌고 싶어서인 것도 같고.... 한번 연구하고픈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논문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RISS 사이트로 날아갑니다, 저... 페크 언니, 쪼옥~

페크pek0501 2012-02-07 10:50   좋아요 0 | URL
아, 몰라요. 자꾸 호평을 해 주시면 어떡해요? 그럼 마고님이 더 좋아지잖아요. 에구에구... (나의 이 즐거운 착각질! 늘 착각질은 즐겁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