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신간이 소개된 것을 볼 때마다 이번엔 어떤 새 책이 나왔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아마도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간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몇 권 살 때마다 신간을 한 권쯤은 끼어서 구입하고 싶을 것이다. 신간은 마치 새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듯 설레게 한다.

 

 

이번에 내가 눈여겨본 신간은 데얀 수딕 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거대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거대한 건축물은 거대한 권력을 나타낸다.

 

 

 

 

 

 

루이 14세, 나폴레옹, 카타리나 대제, 카이저 빌헬름 2세부터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를 거쳐 마오쩌둥과 차우셰스쿠, 후세인을 하나로 엮는 단어는 '거대 건축물'이었다. 거대 건축물은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의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징표다. 유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히틀러는 약 7만평(23만㎡)에 달하는 제2관저와 40만석 규모 경기장을 꿈꿨다. 스탈린은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그 상징인 '겨울 궁전'은 그대로 뒀다. 혁명가에겐 제국의 위엄이 장식으로 필요했다. 독재자 시대가 갔어도, 비슷한 건축은 계속 나온다. 1995년 영국 베어링 증권 파산 후 경기는 바닥을 쳤고, 정권도 바뀌었다. 그러나 집권 노동당 블레어 총리는 보수당 프로젝트를 승계했다. 세계 표준시 기준점 그리니치 반도에 대형건물을 세워 '영국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조선일보, 2011. 12. 3.)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낱말을 열거하면 거대 건축물, 권력, 과시 등이다. 이 세 가지의 낱말들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거대 건축물이 탄생한다.’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을 읽으면 히틀러, 스탈린, 블레어 등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건축물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그 자체로 권력자의 권력을 나타냄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크고 훌륭할수록 자신의 권력도 커 보인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은 순수한 예술행위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예술행위의 영역에 있게 된다.

 

 

권력자들이 그처럼 자신의 권력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리라.

 

 

이 욕망,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주목하여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았다.

 

 

 

 

1.

이 욕망에 대해서 데일 카네기도 인정한 바 있다.

 

 

데일 카네기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소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뿌리 깊은 욕구”라고 말한 존 듀이와 “인간 본성의 가장 끈질긴 욕망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욕구이며, 인간이 문명 자체를 진전시켜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욕구 때문이라고 하였다.

 

 

 

 

 

 

 

2.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도 통찰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 때문이라고 밝혀 놓았다.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競爭心)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同感)과 호의(好意)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安樂)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虛榮)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信念)에 기초한다.” - <도덕감정론>, 92쪽.

 

 

 

 

3.

이처럼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남들의 이목을 중요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버트런드 러셀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우리가 가구를 사면서 생각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구를 구입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기보다 이웃들의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고름으로써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으려 애쓴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주부는 커튼과 양탄자, 식탁과 의자, 만찬용 식기와 커피잔 따위에서 자기표현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구를 갖추는 과정을 은밀하고 개인적인 작업으로 생각한다. 개성적인 아름다움, 특히 창조자 특유의 기질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수줍고 소심한 자아를 가진 이들-현대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도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은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구에서도 자기만의 취향을 표현하기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한다.” - <런던통신 1931-1935>, 147쪽.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만이 중요하므로, 자신의 취향대로 가구를 구입하지 않고 그저 이웃을 의식해서 가구를 고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그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웃을 두려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고질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로 모든 성취의 적이기도 하다. 거실을 가구로 꾸미는 일처럼 비교적 단순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퉁명스러운 검열관 같은 태도로 이 감정을 서로에게 강요한다. 이러한 태도 탓에 우리는 서로를 우둔하게 만들 뿐 아니라, 활기 넘치는 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광경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스스로 박탈한다. 따라서 꼴사나운 가구의 근원은 전쟁이나 종교 박해 등 인간 삶에서 주요한 모든 해악의 근원과 동일하다.” - <런던통신 1931-1935>, 148쪽~149쪽.

 

 

그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예로 들어, 파티를 치르는 일에서도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모습을 포착하여 비판한다. 파티를 즐기지를 못하고 그저 파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것에 주목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피로연을 여는 신혼부부 한 쌍에 대해 어디에선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파티가 끝나자 두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정확하게 똑같은 파티를 치렀다는 사실을 서로 축하한다.” - <런던통신 1931-1935>, 148쪽.

 

 

신혼부부인 그들은 파티를 즐기려는 마음을 갖기보다 남들과 똑같은 파티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파티에 임했을 뿐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만족감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남들에게서 찾으려 한다.

 

 

 

 

4.

그렇다면 인간은 남들의 눈만을 의식한 인생에 대해 끝까지 만족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로 들어 ‘만족할 수 없는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이전에 가졌던 생각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지위에 목을 매단 사람이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커다란 아파트에 살며, 이 아파트는 이 시대 유행에 따라 장식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맥이 빠진 저녁 잔치가 자주 벌어지지만, 따뜻하거나 진지한 말이 오가는 법은 없다. 이반 일리치는 고등법원 판사라는 직위를 즐기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 그러다가 이반은 마흔다섯 살에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는데, 이것이 점차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의사들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 그는 너무 피곤해 일을 하지 못한다. 장에는 불이 붙은 느낌이다. 식욕도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휘스트 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판사 자신이나 주위의 모든 사람도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 그의 부인은 그의 죽음 자체가 안타까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받을 연금 규모가 줄어들까 봐 걱정을 한다. 사교계의 명사인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자신의 결혼 계획이 엉망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반은 이제 살날이 몇 주 안 남은 상태에서 자신이 지상에서 얻은 시간을 낭비했고, 겉으로는 품위가 있지만 속으로는 황폐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 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불안>, 291쪽~293쪽.

 

 

주인공은 병에 걸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깨달음을 얻는다.

 

 

 

* 맺는말

 

 

1.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고 욕망을 지배하기

 

 

여러 책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였다.

 

 

인간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살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로부터 보이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가구를 구입할 때조차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맘에 드는 가구를 고르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고른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시하고 사회(또는 이웃)가 추구하는 가치에만 집착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삶인지 자기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이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삶의 재미도 없고 삶의 발전도 없다. 만약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머리를 파마하고 새 옷을 구입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라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까.) 또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또는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우러러보지 않고 오히려 비난한다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까.) 이것이 두 번째 생각이다.

 

 

어떤 욕망이든 중요한 건 ‘욕망에 지배당하느냐, 아니면 욕망을 지배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욕망이 지나치게 크면 욕망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못할 일이 없게 되어 삶의 균형이 깨진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해서 성형수술에 중독된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해서 비리나 범죄를 마구 저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2. 욕망이 가린 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지 않기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오로지 회사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이미 그는 그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회사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으로만 살았다. 그 욕망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인생의 새로운 행복에 눈뜨게 된다. 딸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도 소중하고, 가족이 함께 떠난 낚시여행을 하는 시간도 소중했다. 그러면서 왜 진작 이런 행복들을 알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한다. 자신의 욕망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며 살다가, 뒤늦게 인생의 행복은 이런 평범한 작은 일들에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했다. 혹시 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빨리 달리느라 기차가 지나친 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2011년을 보내며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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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2011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과 내일만 지나면 2012년이 됩니다.

그동안 제 서재에 댓글을 남겨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댓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방문해 주신 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덕분에 힘이 나서 글을 써 왔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지금까지 총 117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내년에 보다 나은 글을 올리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이곳에 들어오시는 분들 모두,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2012년에 뵐~게~요~

(페크 올림.)

oren 2011-12-3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건축물'에 관한 글을 보니 문득 '피라미드'를 비롯한 고대이집트의 건축물들이 생각납니다. 2008년 2월에 이집트 일주여행을 갔을 때 '테베'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엔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0년 동안 지어졌다고 하는 '카르낙 대신전'이 있더군요. 거기엔 약 200년 전 쯤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 곳에 진주했을 때 카르낙 대신전의 정문 쪽의 거대한 석축의 신전의 '벽 높이'에 감동받아 여기에 '맞장'을 뜨기 위해 자신의 군대병력을 동원시켜 흙벽돌을 마주 쌓아 올렸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더욱 인상적이었답니다. 그런데 헨리 데이빗 소루우는 이 멋진 '건축물'에 대해 '천박한 장관'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더군요.
* * *
여러 민족들은 그들이 다듬어서 남긴 석재의 양으로 자신들에 대한 추억을 영구화하려는 광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그만한 노력을 자신의 품행을 가다듬는 데 바쳤다면 어땠을까? 한 조각의 양식良識은 달까지 솟아오른 기념비보다 더 기릴 만한 것이 아닐까?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테베의 장관은 천박한 장관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목적에서 멀어져버린 100개의 대문을 가진 테베의 신전보다는 어느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돌담이 더 의미가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도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들을 짓는다. 그러나 기독교, 참다운 기독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은 대부분 그들의 무덤으로 간다. 그야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한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차라리 그 작자를 나일 강물에 처박아 죽인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당당했으리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월든』中에서

oren 2011-12-3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저도 오래전에 읽어봤는데 pek님께서 이 글의 내용에 어울리도록 정말 절묘하게 인용해 주셨군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갈망은 참으로 끈질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허망한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 *
남의 견해,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 나타나는 우리의 존재는 그저 생각해 보아도 그것이 우리의 행복에 본질적인 것이 못 됨을 곧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타고난 천성이 지닌 약점으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그것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가 남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거나, 자기의 허영심을 자극해 주면 마음속으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마치 고양이가 자기 등을 쓰다듬어 주면 목청을 꾸르륵거리는 것처럼, 칭찬을 들은 사람은(그의 헛된 자부심의 범위 내에 속하기만 하면, 그 칭찬이 분명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도) 으레 달콤한 기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참된 불행이나 행복, 다시 말해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해 온 그 두 원천이 실은 보잘것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는 갈채에 위로를 얻는다. 이와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나 그 정도를 불문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허영심이 손상되거나 모욕받거나, 또는 무시당하거나 멸시를 받으면, 영락없이 격분하거나 때로는 커다란 비애를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 쇼펜하우어, 『삶의 예지』中에서

페크pek0501 2012-01-01 12:42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을 써 주시다니, 그것도 두 개씩이나, 이러면 어떡합니까?
그럼 제가 무지 감사해서 황송해지잖아요. 호호...

소로우의 인용은 저도 처음엔 넣었다가 뺐답니다. 이 글이 길기도 하고, 또 그동안 소로우를 몇 번 인용한 적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오렌님이 쓴 그 글은 제가 찾은 인용문보다 훨씬 좋은데요.ㅋ
늘 느끼는 거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입력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반복해서 세 번쯤은 읽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오래 전에 읽어 어떤 내용인지 생각나지 않았는데, <불안>을 읽고,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했을 정도예요. ㅋㅋ

쇼펜하우어도 제가 단골로 인용하는 인물이에요. 전 그의 책이 재밌어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흥미롭지만 인생론 에세이도 흥미로워요.

댓글로 좋은 글을 감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바라시는 일 많이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11-12-3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드라마를 보고 잤는데 등장인물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죽는데,
행복해지기 위해 살라고, 그렇다고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은 아니라고,
사람은 가만 있으면 불행해지니 행복하기를 결심하고 살라고. 대략 뭐 이런 말을 하고 죽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왤케 다가오던지. 겁 많고, 게으른 저에게 정말 와닿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내년 한해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생각 좀 하고 살려구요.ㅋ
페크님도 내년 한해 행복하게 사십시오. 꼭이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4   좋아요 0 | URL
페크님도 내년 한해 행복하게 사십시오. 꼭이요.^^ - 요것 스텔라님에게 반사합니다. ㅋㅋ

요렇게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시다니... 내 가슴 속엔 감동의 물결이 넘실댑니다. 스텔라님, 행복하게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길, 그리고 바라는대로 이루어지길 빕니다. ㅋ

마녀고양이 2011-12-3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보다 '왜 인정받고 싶어할까, 어떻게 해소할까'에
더 관심이 있는거 같아요. 아들러는 인간 성장의 동력은 '열등감 해소' 및 '우월감 추구'라고 했는데 일견 납득이 가는 부분이예요. 언니가 말씀하신 발전과 비슷한거죠.

페크 언니를 안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정말 푸근한 언니 한분 모셔서 기쁘고
새해에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7   좋아요 0 | URL
아, 푸근한 언니라, 그것 참 맘에 드는데요. 한번도 푸근하다 소릴 못 들어봤어요. 그건 좀 체격이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몸은 좀 홀쭉한 편이라서요.
그러나... 마녀고양이님이 제 콘셉트를 정해 주신 걸로 알고 새해엔 푸근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새해 바쁘실 턴데 시간관리 잘 하셔서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잘잘라 2011-12-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보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면서 한편으로는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며 청개구리처럼 살아온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나는 너희와 다르다. 천상천하유아도존!'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죠.

새해에도 페크님의 진심 담은 좋은 글,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2-01-01 12:48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오랜만이군요. 반갑습니다. 호호~~
님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요, 소원성취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엔 자주 뵈요.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2-3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는 늘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도 남을 배려하지는 않는 인간들이 있습니다.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그런 인간들! 어떻게 혼내줄까요?

페크pek0501 2012-01-01 12:53   좋아요 0 | URL
혼내줄 필요가 없답니다. 그런 싸가지 없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것 자체가 벌이니까요. 그런 심성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답니다. 일이 잘 풀릴 리도 없고요. 그게 벌이지 않겠습니까. 남으로부터 존중 받지 못하고 욕을 먹으며 사는 것, 그것도 벌입니다.

그냥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나쁜 전범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새해에도 자주 방문해 주세요. 늘 고마워한답니다. ㅋㅋ
상투적이지만,...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ira 2011-12-3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마지막 날 우연히 들어왔는데 너무 좋은 글이네요. 저자신의 욕망도 어떤 기차,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 자주 놀러 올께요

페크pek0501 2012-01-01 12:55   좋아요 0 | URL
아, 첫 손님,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 오신다니 제가 힘이 나네요. 참 좋은 말입니다.ㅋㅋ

저도 나중에 시간 내서 님의 서재에 들를게요.
또 뵙기를...

2012-01-0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1-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책과 함께 행복하시기를...

우리 독서회원이 올해 읽고 싶은 책 중에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꼽았는데 토론도서로 선정할까요?^^

페크pek0501 2012-01-02 16:57   좋아요 0 | URL
어머머, 까르르~~ 조금 전에 순오기님의 서재에 들렀는데...
이걸 텔레파시라고 하나요?

챙기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 저한테까지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저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구입했는데, 글쎄요. 님이 직접 목차를 보고 토론도서로 선정해야 할 것 같네요.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 인간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등이 있답니다. ㅋㅋ저는 재밌던데...

복 많은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숲노래 2012-01-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 눈치나 인정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면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즐거운 길을 걸을 테니까
이때에는 나한테 가장 인정받을 삶을 사랑하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2-01-03 14: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된장님이 오셨군요.

자기만족이 제일 중요하죠.
자신한테 인정받는 삶을 저도 살고 싶어요.

복된 새해가 되시길...

카스피 2012-01-02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님,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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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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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3 14:23   좋아요 0 | URL
반가운 카스피님,

이게 용의 그림이군요. 멋집니다. 그리고 이 용이 제게 큰 복을 줄 것만 같군요. 이 선물, 고맙습니다.

복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2-01-0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easis 2015-10-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받고 갑니다..정말 대단하네요ㅎ
후배들을 위해 짧은 글 쓰고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종와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선생님. ^^

페크pek0501 2015-10-16 17: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답글이 늦이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글도 썼군요. 오랜만에 훑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시니 웃음이 나네요. 알라딘에선 잘 쓰지 않는 말인 것 같아서요. 어쨌든 님의 댓글을 기분 좋게 접수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