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은 미안함과 연민의 기록















왕은철, <따뜻함을 찾아서>


그는 “뱀을 볼 때마다 / 소스라치게 놀랐을 / 뱀, 바위, 나무, 하늘”을 대비하며 자신에게서 타자로 중심을 이동시킨다. 

그는 「반성」이라는 시에서도 미안한 마음에 중심을 이동시킨다. “늘 / 강아지 만지고 / 손을 씻었다 /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 강아지를 만져야지.” 강아지를 만지고 손을 씻는 것은 내가 먼저라는 말이고,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지는 것은 강아지가 먼저라는 말이다. 시인은 늘 자기가 먼저였던 것이 미안했다. 그 마음이 시가 되었다.(106~107쪽)


⇨ 뱀을 보면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놀란 것만을 생각하고 뱀이 사람을 보고 놀란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 자신을 앎으로 해서 남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성찰하는 데 소홀하면 타자에 대해 둔감하여 타자의 슬픔과 고통에도 둔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시인은 함민복 님이다. 함민복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단지 경험으로 끝내지 않고, 자기를 먼저 챙긴 것에 대해 미안해 하고 동물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킨다. 


이렇듯 예술은 때때로 이 세상의 낮고 힘없는 존재, 즉 타자를 향한 미안함과 연민의 기록이다.(107쪽) 





2. 자신을 지켜야 하는 이유













전호근, <사람의 씨앗>


싹을 틔우고서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이 뜻을 품고 있어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뜻은 내가 품는 것이지만 쓰임과 쓰이지 않음은 세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양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선비가 수양하는 까닭은 세상에 쓰이기 위해서나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서 혹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42쪽)


⇨ 혼자 공부만 하다가 죽는 인생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의문을 품었었다. 자기 수양만 하다가 죽는다면 의미 없는 삶이라고 여겨 왔다.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지 않아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달라진다. 자신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우리가 공부를 하고 마음을 반듯하게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나 국가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므로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점을 내가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사회와 국가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 정치인들이 떠오른다.




3. 큰 소득과 가치는 보여 줄 수 없는 것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가장 커다란 소득과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는 일이 가장 드물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곧잘 의심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것들이야말로 최고의 실체인 것이다. 가장 놀랍고도 가장 진실한 여러 가지 사실들은 사람들로부터 사람에게는 결코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거두어들이는 참다운 수확은 아침이나 저녁의 빛깔처럼 만질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다. 그것은 내 손에 잡힌 작은 별 가루이며 무지개의 한 조각인 것이다.(325쪽)


⇨ 가장 큰 수확은 남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부단한 노력 끝에 바라던 바를 이루었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4. 중요한 것은 판단력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크세노폰을 보면, 최근에 배운 수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아스티아게스에게 키루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학교의 키 큰 학생 하나가 자기 외투가 작다며 몸집이 더 작은 학생에게 자기 것을 주고 대신 그가 입고 있던 헐렁한 외투를 벗겨 갔는데, 선생님은 내게 두 사람이 이 때문에 다툰 것을 두고 판단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옷을 바꾸고 난 상태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해서 더 잘 맞는 옷을 걸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자 선생님은 내 판단이 틀렸다며 나는 옷이 맞는가 하는 문제만 생각했는데, 제일 먼저 고려할 것은 정의라고, 그리고 정의는 누구도 자기 소유물을 두고 남으로부터 강요당하는 일이 없기를 요구한다고 지적했습니다.”(267~268쪽)


⇨ 두 사람이 제 몸에 맞게 옷을 서로 바꾸어 입은 것이 얼핏 보기엔 합리적인 것 같지만, 자기 맘대로 옷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상대편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으니 공정하지 못한 행위다. 


또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자. A가 B에게 옷을 서로 바꾸어 입자고 말했을 때 B는 싫다고 할 수도 있다. B가 입고 있는 옷은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라 소중해서 남에게 주기 싫어서다. 이런 경우도 상상해 보자. 옷을 바꾸고 난 뒤 나중에 B가 키가 커지자 옷을 바꿔 입은 것을 후회하며 B가 A를 원망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옷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벌은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따 오지만, 그것으로 순전히 제 것인 꿀을 만듭니다. 그 꿀은 이제 백리향도 꽃박하도 아니죠. 그와 마찬가지로 학생은 다른 이에게서 빌려온 조각들을 변형시키고 섞어서 완전히 자기 것인 작품, 즉 자신의 판단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르침, 숙제, 공부의 목표는 오직 자신의 판단력을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282쪽)


⇨ 중학교 때였다. 세계사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왜 하는가?’ 하고 선생님이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 뒤 답을 말해 주었는데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거였다. 그때 그 답이 얼마나 신선하게 들렸던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때 들었던 답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몽테뉴에게서 들으니 신기하다. 


우리는 책의 내용을 흡수하고 나서 그 내용을 변형시키고 섞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판단력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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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1-10 2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생 시절에는 교과목이 많아서 다 좋아하긴 어려웠겠지만, 살면서 최소한으로 알아야 할 것들은 학생 시절의 교과과정 안에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걸 그 때는 몰랐고요. 많이 배우는 것도 좋지만, 왜 배우는 것인지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잘 되진 않지만.^^; 페크님,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1-11 13:44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배우고도 잊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야 좋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페넬로페 2024-01-10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돌아보고 혼자서라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군요^^

페크pek0501 2024-01-11 13:47   좋아요 2 | URL
그렇다는 걸 책을 읽고 알았네요. 자기 성찰을 할 줄 모르는 이가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고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 많잖아요. 자신을 뒤돌아보며 살아야겠습니다.^^

stella.K 2024-01-11 1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왕은철 교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예술은 그저 아름다움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함의 기록이라니.
나이 들수록 왜 자꾸 연민이 생기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나중에 함 읽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4-01-13 12:05   좋아요 2 | URL
미안함의 기록이니 그 기록하는 마음이 아름답잖아요. 그러니 미안함의 기록인 동시에 아름다운 기록이라고 봐도 될 듯해요.
스텔라 님도 연민이 생기는 걸 보니 나이 들어 가고 있나 봐요.ㅋㅋ
왕은철 님의 책은 필사하기 좋은 책이에요. 글이 짧고 구성이 탄탄하거든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4-01-12 0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학교 다닐 때만 하는 게 아니겠지요 사람은 평생 공부하면서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도 해는 끼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여러 가지를 알려고 하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겠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4-01-13 12:09   좋아요 2 | URL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 맞아요.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자신을 이해해야 타인도 이해할 줄 알겠지요. 이런 이해가 없다면 인간관계가 원할할 수 없죠. 인생에서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공부 특히 마음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옛날 이야기 중, 집에 쌀이 떨어져도 글만 읽고 있다는 선비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했는데 남에게 또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한다, 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자기 수양을 해야 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24-01-26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어쩌다 바퀴벌레를 마주치면 나도 깜짝 놀라지만, 그 녀석도 놀라 가만히 움직임을 멈추고 더듬이만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다 내가 뭔가 내리쳐 잡을 물건을 찾아오면, 잽싸게 발을 놀려 사라져버리더라구요. 그렇지만 바퀴벌레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서로 재수가 없었다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ㅎㅎ

2. 요즘 저는 어떤 새로운 일을 맡아야 할 때, 내 자신이 그 만큼 준비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공부라기 보다는 내가 어떤 일을 맡았을 때, 그것을 잘하기 위한 준비된 사람이 되기 위해 늘 평소에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3. 저도 오래 전에 [월든] 읽었을 때, 이 부분 공감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제가 가장 뿌듯하게 느끼는 어떤 성과를 지인들에게 공유하면, 크게 공감을 얻지 못하더라구요. 반면 남들 눈에 잘 띄는 어떤 결과가 생기면 저는 그저 운이 좋아 그랬지 하고 마는데, 남들은 막 칭찬을 하기도 하구요.

4.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제도나 규범에 의해 강제당하는 일이 많지요.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누구도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강제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판단력을 키우는 일이 정말 꼭 필요한 일인데, 문제는 학교 공부로 그렇게 올바른 판단력을 키우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누구나 중학교 때 페크님처럼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 하니까요. 저도 그랬구요.

페크pek0501 2024-01-27 16:27   좋아요 0 | URL
1. 저는 파리를 죽이면서 미안함이 느껴질 땐 고통을 느낄 수 없게 한 번에 죽여야겠단 생각을 해요.
2. 평소에 역량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맞아요. 어떤 일에 대한 준비를 할 때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3.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겉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정말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4. 아무리 베푸는 일이라 해도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사람은 베풂을 받아들이는 사람인 거죠.
뇌물과 권력 등으로 인해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너무 많이 보아 왔죠.
가끔 판단이 안 될 때가 있긴 해요. 명석한 판단력을 지니려면 많이 공부해야 할 듯합니다.

번호를 매겨 쓰신 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따뜻한 겨울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