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인이 도시의 성문 앞에 앉아 있었다.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저는 이 도시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곳 사람들의 인심은 어떻습니까?”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그 낯선 이에게 물었다.
“자네가 살던 곳은 어땠나?”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천지였지요. 그래서 그 도시를 떠나왔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여기도 마찬가지일 걸세.”
잠시 후 다른 이방인이 와서 노인에게 물었다.
“저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노인이 또 물었다. “자네가 살던 곳은 어땠나?”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는데 여기 오느라 헤어져야 해서 마음이 아팠지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여기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걸세.”
그 상황을 줄곧 지켜보던 낙타 상인이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왜 대답은 그렇게 다르게 하신 겁니까?”
노인은 이렇게 대꾸했다. “저마다 마음속에 자기 세상이 있는 법이지. 우리가 보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의 세상 아닌가. 이 동네에서 불행한 사람은 세상 어느 동네를 가도 불행한 법이네.”
- 장석주,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65~66쪽.
⇨ 이 이야기가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95프로쯤은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100명 중 95명은 노인의 말대로 그러리라는 것이다. 대체로 불평이 많은 이는 어딜 가나 불평이 많고, 행복한 이는 어딜 가나 행복하다는 얘기다.
만약 실제로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자기가 살던 곳의 이웃들을 나쁘게 말한다면 그를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본다. 그가 앞으로 사귀게 될 이웃들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할 거라는 걸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는 속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