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가 없는 맑은 하늘
제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걸까.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기혼자는 미혼자를 부러워하고, 미혼자는 기혼자를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한쪽에선 배우자와 자식이 있는 게 든든해 보이고, 다른 한쪽에선 혼자 사는 게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음을 안다.
어느새 지인들이 불평불만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저마다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은 이가 없고 걱정이 없는 이가 없어서, 인생은 고해(苦海)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얘기를 들으며 다 같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건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 대부분이 즐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만 보아선 누가 마음 편히 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면, 추운 겨울에 밖에서 언 생선을 파는 장수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큰 기업체 사장 중에서 누가 더 나은 세상을 살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왜냐하면 매일 돈을 버는 재미와 집에 가면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밥이 있어 안락함을 느끼는 생선 장수가 있는가 하면,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는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기업체 사장이 있을 테니까.
인터넷을 통해 ‘지랄 총량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 이 법칙은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사람은 사춘기에 지랄을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단다.
나는 ‘불행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한 사람이 한평생 감당해야 할 불행의 총량은 누구나 같다는 걸 말함이다. 누구든 불행의 총량은 똑같이 정해져 있어서 젊을 때 불행을 겪지 않으면 늙어서라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든 달콤한 열매만 달려 있는 나무 같은 인생일 리 없고, 씁쓰름한 열매만 달려 있는 나무 같은 인생일 리 없다.
몸이 아파 본 자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듯이, 고난이 있어 봐야 작은 기쁨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예를 들면 미세 먼지가 많은 날이 있었기에, 우리는 공기가 맑은 날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또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창궐하는 긴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백신 공급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날이 오면 예전에 몰랐던 기쁨을 누리게 될 터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은 때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면 노년기보다 청년기에 겪는 게 나을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힘이 있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 반면, 노년기에 들면 난관을 극복할 힘이 부족하여 몸이나 마음이 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경제적 문제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말하고 싶다. “어차피 자기 몫의 불행은 정해져 있는 것. 그렇다면 하루라도 젊은 날에 겪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앞으로 남은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인천일보에 오늘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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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필자가 들어오면 신문사에선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수를 통해 당신의 인맥을 보겠어.’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