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엘보’라는 병으로 팔에 주사를 맞으러 다닌 적이 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 직전에 내가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사가 아프면 어떡하지? 아플까 봐 두려워.’라고 여기는 태도. 또 하나는 ‘까짓것 주사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라고 여기는 태도. 

 


  신기하게도 전자의 태도를 취할 땐 주사가 아픈 것 같았고 후자의 태도를 취할 땐 주사가 아픈 줄 몰랐다. 후자의 태도를 선호하게 된 이유다. 후자의 태도를 이젠 다른 일에도 적용하기를 좋아한다. 

 


  혼자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걸으며 불량배가 나타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 또는 혼자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 ‘무섭다. 제발 아무것도 나타나지 마라.’라고 생각하면 겁이 난다. ‘까짓것 뭐든 나타나려면 나타나라.’라고 생각하면 겁이 나지 않는다. 

 


  모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려던 밤에 모기가 방 안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잠자는 동안 모기에 물리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 하면 잠이 안 온다. 하지만 ‘어디선가 배부르게 피를 먹고 온 모기일지도 몰라. 설사 내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도 까짓것 작은 모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잠이 온다.

 


  내가 어떤 일을 바라다가 실망하게 되거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아휴, 속상해.’ 하고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반면에 ‘까짓것 이번엔 죽어 주겠어.’ 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 배짱에 동의하는 글을 책에서 만나 반가웠다. 혜민 스님이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서 다음과 같이 쓴 글이다. 

 


  『우리에겐 배짱의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내가 느끼는 열등한 부분에 대고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한번 외쳐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험만 보면 긴장하고 떠는 나에게 “그래 나 좀 긴장한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키가 좀 작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집 좀 가난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인정해버리고 나면 살짝 분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 열등한 요소를 치고 올라가려는 용기가 나오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시험을 앞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되 시험 보는 날엔 ‘시험을 잘 봐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지 말고 ‘까짓것 시험을 망치면 어때서?’ 하고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말한 게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데 여러 일을 겪으며 사는 우리에겐 이런 속임이 필요한 것 같다. 난 이것을 지혜로운 속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조바심을 버리고 여유를 택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다가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평안을 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자기 힘으로 평안을 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이다. 담력이 있는 본인 자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지원군이 어디 있겠는가.(8매)

 

 

 

 

 

 

 

 

 

 

 

 

 

 

 

 

 

 

 

 

 

 

 

『우리에겐 배짱의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내가 느끼는 열등한 부분에 대고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한번 외쳐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험만 보면 긴장하고 떠는 나에게 “그래 나 좀 긴장한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키가 좀 작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집 좀 가난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인정해버리고 나면 살짝 분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 열등한 요소를 치고 올라가려는 용기가 나오게 됩니다. 열등한 부분을 숨기고 부끄러워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인정해버리고 “그래서 어쩌라고?” 해버리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나도 모르는 내면의 힘이 나옵니다.』
- 혜민,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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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7-22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글을 읽으니 한탄강에서 래프팅 전에 물에 몸을 완전히 적신 후 노를 저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버린 몸이 되고 나니 몰입할 수 있어 좋더군요^^:)

페크(pek0501) 2020-07-23 12:02   좋아요 1 | URL
저도 가족 여행 가서 래프팅 한 적이 있는데 같은 경험을 했어요. 상대편으로부터 물 세례를 한 번 받으니 몸이 다 젖어도 좋다,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럴 때 하는 말 있지요. 이미 베린 몸인데.. ㅋ

서니데이 2020-07-22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혜민스님의 이 책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출간된 지 벌써 몇 년 되었네요.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컸을 때는 더 힘들고 결과도 좋지 않았던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뭐, 어쩌라고, 하고 하는대로 하는 거지, 하는 마음이 되면 좋은데, 그게 잘 안될 때는 그렇게 하는 것도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뭐,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비가 오는 저녁입니다. 편안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7-23 12:04   좋아요 1 | URL
혜민 스님의 책은 두 권을 완독한 것 같아요. 잡으면 금방 읽게 되어요. 쉽고 잘 읽혀요. 쉽되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 글이 많아요.
어제 두 시간을 걸으러 나갔다가 비가 오니 우산까지 들고 힘들어서 한 시간 반만 걷고 들어왔어요. 비 오는 날에 걷는 것 좋아하는데 어젠 고단하더라고요.

지금도 비가 얼마나 예쁘게 오는지 창 밖을 보고 감탄했다는...
좋은 비 날을 보내십시오. ^^

2020-07-22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3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이버 2020-07-22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직접 찍으신 건가요? 오늘처럼 흐린 날씨에 청명한 풍경을 보여주시다니 마치 선물 같습니다^^ 배짱이라니,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군요... 겁이 많은 제게는 실천하기 힘든 말이에요ㅜㅜ 막상 겪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걸 머리로는 알아도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더라고요... 내일부터는 ˝그래서 어쩌라고?˝를 마음속에 새겨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0-07-23 12:11   좋아요 1 | URL
예, 제가 찍은 거랍니다. 작년 이맘 때인 것 같아요. 저는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찍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가령 길을 찍을 땐 정면에서 찍지 말아야 한다는 거요. 정면에서 찍었더니 길이 혓바닥처럼 나오는 거예요. 하하~~
저도 같은 풍경을 여러 각도로 찍어서 좋은 걸 고르고 나머지는 삭제합니다.
여러 각도로 찍어 보면 가장 좋아 보이는 사진이 있기 마련.

마치 선물 같다는 표현에 저 뿅~~ 갑니다.
저 역시 겁쟁이올시다. 그러니깐 저런 글을 ,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겁이 없다면 저련 생각을 1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마음속에 새기기. 파이팅! 응원하겠습니다.

희선 2020-07-23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걱정하면 안 좋겠지요 그런 걸 알아도 그럴 때가 더 많습니다 배짱이 있으면 좋을 텐데, 별로 없네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어떻든 별로 마음 쓰지 않겠지요 다른 사람한테 힘을 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자기 자신한테 힘을 주면 더 좋을 듯도 하네요 저도 그렇게 잘 못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싶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7-23 12:14   좋아요 1 | URL
우리가 걱정하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읽고 공감했어요.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닌데 그 걱정의 노예에서 풀려 나질 않으니 참 세상살이 쉽지 않아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잘해야 좋은 삶을 산다고 하네요. 남에게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에게 칭찬도 해 주면서 살아야 한다고 해요. 그래야 기운이 난다고 합니다.
찾아보면 누구나 스스로 칭찬할 게 있을 거예요.
자신에게 힘을 주는 하루를 보내도록 합시당~~ 좋은 하루 되세요.

라로 2020-07-23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험 앞두고 있는 일인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그래서 어쩌라고˝의 태도로 살겠습니다.^^;;

모기에 대한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책이 있어요. 엘비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라는 책에서 작가가 앉아있는데 모기가 너무 많이 달려들어 물었는데 처음엔 막 안전부절 못하면서 모기를 잡으려고 하거나 몸을 긁거나 했는데 내려놓고 (아마도 어쩌라고의 태도로?ㅎㅎ) 가만히 명상을 했더니 하나도 물지 않더라는,,,기억력이 없는 편이라 책을 읽어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그 이야기는 실용적인 내용이라 그랬는지 책 읽은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기억을 하고 있어요. 물론 저도 물테면 물어봐,,뭐 그런 태도로 변했고요.ㅎㅎ

페크(pek0501) 2020-07-23 12:18   좋아요 0 | URL
오! 시험을 앞두고 계신 멋진 분이시네요. 그렇죠. 마음먹기 달린 거니까요.
시험, 응원하겠습니다.

명상의 효과. 멋진 구절이네요. 인간에게서 심상치 않게 뿜어져 나오는 기를
모기들이 알고 도망간 것 같네요. 깡패들이 처음 싸울 때 상대편을 보는 서로의
눈빛으로 우선 기 싸움을 한다고 하잖아요.

라로 님은 성실하고 꾸준하셔서 좋습니다. 저도 닮고 싶은 1인입니당~~
요즘은 게으름을 너무 사랑해서 문제예요. 킥킥.
시험을 즐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