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찮은 글이라도 마구 쓸 테야
글을 쓸 때 난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평소엔 철없는 아내로, 철없는 엄마로 산다.)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자신감 부족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글은 모름지기 자신의 영혼을 피로써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건 설마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난 단 한 줄도 쓸 수 없을 테니.
어쨌든 이 무더운 여름날에 진지해지기 싫어서 그리고 땀이 나는 게 싫어서 글을 쓰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아니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오늘 아침 달력을 보고 오늘만 지나면 7월이 끝나 8월이라는 것을 알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달에 글다운 글을 블로그에 못 올렸네, 그런데 뭐 꼭 잘 써야 글인가, 꼭 시간을 많이 들여 써야 좋은 글이 되나, 시간을 많이 들인 글도 별 볼 일 없는 글이 될 텐데, 이러다간 블로거도 못하겠다, 그냥 마구 쓰자, 하찮은 글이라도 마구 쓰자.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글 쓸 용기가 마구마구 생기는 것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그냥 헐렁하게 마치 아무 종이에다 낙서를 하듯 그렇게 글을 쓰면 될 일이다. 이렇게 영양가 높은 생각을 오늘 했다.
사실 글쓰기에 몰입하기엔 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그래서 난 피서 방법으로 독서를 택했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은 7월을 보냈다. 확실히 난 독서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떤 잡념이 없이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버린다. 더운 것도 모르겠고 나에게 어떤 걱정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빠져 놀 뿐이다. 이런 게 재능 아닌가.
2. 칼럼
예전에 문학상 공모전에 수필을 응모하여 당선된 경험이 있다. 내 기억으로 수십 편의 수필을 썼고 그중 골라낸 글로 2년에 걸쳐 다섯 번 당선되었다. 당선된 어떤 글은 50만원을, 어떤 글은 30만원을, 어떤 글은 20만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수필가로 등단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섯 번 당선되고 나서 더 이상 수필을 쓸 수 없었다. 나 자신과 나의 삶을 드러내서 솔직히 써야 하는 수필은 부담스러운 장르이기 때문이고, 품격이 높아야 하는 수필은 자신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문학을 사랑하지만 내가 비문학적 사람임을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가야 하는 방향 역시 비문학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내 눈에 칼럼이 들어왔을 때, 이거다 싶었다. 무엇에 대해 내 견해만 밝히면 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은 게 목표가 되어 버렸다. 아마 십 년 전쯤부터였을 것이다.
최근 한 매체에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달고 내 글이 네 편 게재되었다. 그래서 난 기분이 좋았던가.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 뒤로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다 썼기 때문인지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날씨는 덥기만 했고 글 쓸 의욕을 잃어버린 채 책만 읽으며 지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이러했다. ‘나도 등단작이 은퇴작이 될 수 있겠어.’
3. 발레
주 1회 80분 수업.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지 16개월째다. 무엇이든 시작만 해 놓으면 된다. 시간은 스스로 잘 가기 때문이다. 3년 뒤면 발레 실력이 향상된 표가 날까. 1년이 지났는데도 발레 실력이 늘 제자리걸음이고 늘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도 매달 들어오는 신입생 한두 명의 동작을 보면 내가 월등히 낫다는 게 위로가 된다.
아직도 난 왕기초반에서 배운다. ‘왕’자를 떼어 낸 기초반으로 올라가고 싶기도 하지만 난 그냥 이 반에서 꾸준히 배울 생각이다. 왕기초반에서 최고로 발레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보니까. 내가 그러하듯 초보자들은 상당한 실력을 보이는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 또 내가 그러하듯 “발레를 얼마큼 배워야 그 정도로 할 수 있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3년 뒤에 내 발레 동작을 보면 말이다. 이런 기대로 발레 배우기를 멈출 수 없다.
4. 결혼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내가 순한 양인 줄 알았다. 대체로 결혼 전 연애할 때 남자는 여자에게 잘 보여서 결혼을 성사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자가 화를 낼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는 여자를 ‘이미 잡은 물고기’쯤으로 여기는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여자도 화가 나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서로 자신의 더러운 성질을 알게 된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성질을. 그러므로 자신의 바닥까지 보고 싶은 사람은 결혼을 해 보면 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 부부가 싸우는 건 일 년에 한 번쯤 될 테고 아니면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해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싸울 일이 없다는 걸 뜻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부부가 어느 정도 싸우고 나면 타협점을 찾게 되어 싸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식이 크고 나면 자식한테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자제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싸울 기운이 없는 것도 한몫한다. 한마디로 싸움도 귀찮다는 상태에 이른다. 못마땅한 게 보여도 웬만한 것은 참고 넘어가게 되는 이유다. 그리하여 자식들의 눈엔 부모가 잉꼬부부로 보인다. 실제로 부부는 함께 살아온 오랜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정이 들어서 또는 연민이 생겨서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된다. 나를 포함해 내 친구들을 보면 그런 것 같다.
5. 행복
독서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 여름이 더 덥고 더 지루하고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책은 나의 고마운 친구다.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 ‘행복’에 대해 알고 싶어 최인철, <굿 라이프>를 읽었다. 이 책에 따르면 불행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행복한 사람들은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고,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돈의 힘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옷, 자동차, 집과 같은 물건을 소유하는 걸 중요시하기보다 여행, 영화 관람, 스포츠 활동 등을 통해서 얻는 경험을 중요시한다. 걷고 명상하고 여행하길 좋아하는 것도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발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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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음미하기(savoring)'라고 한다. 음미하기란 소소한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마음의 습관을 의미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가 유명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인용되기 시작한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는 이 음미하기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 소소하게 음미할 것들은 이처럼 우리 일상 곳곳에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소소한 즐거움들을 더 자주 경험하려고 일상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이전부터 이미 소확행의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 최인철, <굿 라이프>,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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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자세를 가질 때 느끼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상적으로 읽은 글을 다시 한 번 음미하기 위해 옮겨 본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인상적으로 읽은 또 하나의 글이 있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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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노력의 구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장시간 노력을 하는 것도 재능의 일부일 수 있고, 노력을 통해 재능이 성장하기도 한다. 이 둘은 역동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노력이 정확히 몇 퍼센트, 재능이 정확히 몇 퍼센트라고 칼로 무 자르듯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최인철, <굿 라이프>,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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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력을 하는 것도 재능의 일부일 수 있다니,
노력을 통해 재능이 성장하기도 하다니.
‘꾸준함’을 무기로 갖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힘을 얻게 해 주는 글이 아닌가.
아! 정말 맘에 드는 책이다.
여러 연구 결과를 덤으로 보여 주는 이 책은 나처럼 행복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충분히 흥미롭게 그리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특히 “행복한 사람은 작은 것도 크게 보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은 큰 것만 크게 본다는 점.”(132쪽)에 주목했다.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복에 대한 올바른 생각은 무엇인가. 행복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기술은 어떤 것일까. 의미 있는 삶과 품격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런 것들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