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신곡 지옥의 7곡에서 재화는 운명의 손에 들려 있건만, 우리 인간들은 그 때문에 처절히도 싸운다(p.71, 신곡, 민음사)’고 했다. 돈은 어차피 운명의 여신(포르투나)이 관리하니 인간이 아무리 아등바등 해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오는 죽음은 그 시기도, 형태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은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죽음의 종류와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다. 태초의 인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간이 각자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면 아마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뚫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씩 죽음을 생각한다.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 아직은 두렵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후세계, 그저 많은 이미지로만 축적된 어둠의 세계에 혼자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 어쩌면 모든 것은 허상이고,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죽음은 온전히 자신만이 직면해야 하는 것이기에 인간을 외롭게 한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는 짧은 시간에 엄청 많은 얘기를 들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화자는 암 투병하는 친구와 그녀를 도와주는 자신 사이에 여러 다른 에피소드와 나(화자)의 생각을 뒤섞어 놓는다. 이 이야기들이 확실히 연결되지는(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않지만 멈춰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의 주된 소재는 늙음과 죽음이지만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러스한 표현들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 정말 맞는 말이야!’라며 크게 공감한 부분도 많다. 물론 슬프기도 하다.



작가인 잉그리드는 사인회에서 친구를 만나고, 그들의 친구인 마사가 암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바로 병원을 찾아간 잉그리드는 마사를 위로하고 자주 병문안을 간다. 마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하지만 암은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마사는 병원에서 고통을 겪을 만큼 겪고 결국 자신이 암에 굴복하며 죽어가야 하는 현실을 거부한다.

 

마사는 불법 사이트에서 안락사를 위한 약을 구해놓고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실행할 때 옆방에 있어 달라고 잉그리드에게 부탁한다. 잉그리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부탁을 부담스러워한다. 잉그리드는 마사와 병원에서, 또는 다른 장소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마사가 살아온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뉴욕 타임즈 종군기자로서 전 세계의 전쟁터를 누빈 마사는 딸에게 충실할 수 없었다. 딸에게는 처음부터 아빠도 다른 곳에 있었다. 마사와 그녀의 딸은 서로 없는 존재처럼 살아간다.

 

많은 고민 끝에 친구를 이해하게 된 잉그리드는 마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두 시간쯤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의 멋진 집을 대여해 그 곳에서 마사의 죽음을 준비한다. 죽음을 실행해야 할 마사와 죽음을 발견해야 할 잉그리드는 괴롭고 힘들지만 잘 극복해낸다. 마사는 옆방에 친구를 둔 채로의 죽음이 아닌, 잉그리드가 외출한 사이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죽음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잉그리드와 마사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든 건 알지만 외롭게 죽기 싫어하는 마사가 이기적인 것 같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목격해야 하는 고통을 친구에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생각했다. 마사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마사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잉그리드의 의도도 의심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엄청난 부탁을 순수한 마음으로만 들어줄 수 있는지, 혹시 잉그리드가 작가여서 나중에 글을 쓸 소재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나를 우울하게 했다. 계속 영화의 내용과 장면이 생각났다. 그러다 문득 잉그리드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여기게 됐다.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착하다가 아닌, 자신이 받아들이고 결정한 것에 책임을 다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잉그리드였다. 그것은 타고 나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이타심은 각성으로 생겨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

 

 

영화를 보고나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 방해를 많이 받는다. 책의 인물들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와 겹쳐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과 영화는 서로를 상호 보완해주어 이해가 더 잘되게 해주었다. 배우 틸다 스윈튼줄리안 무어의 캐스팅도 절묘했다. 영화는 <어떻게 지내요>의 내용 중 친구와 화자만을 압축해서 다루었고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암이라는 병에 걸리면, 투병생활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환희와 우울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신을 원망하기도 하며 살아있는 세포까지 죽이며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암에 패배한 채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고문을 사서 겪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구토, 설사, 피로-끔찍해, 끔찍해-그리고 결국엔-

 

늙고 쇠약해진 게 아니잖아. 나는 평생 내 건강을 잘 챙겨왔는데, 그렇게 열심히 건강을 챙기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식을 먹어온 탓에 오히려 상황이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의사 말이 심장이 아주 튼튼하대. 그게 내 몸이 계속 싸워 나갈 거라는 말이 아니면 뭐겠어? 숨이 끊길 때까지 내가 시달리고 또 시달리게 될 거라는 뜻이지. -p86~87]

 

이런 아이러니가 허탈하다. 건강을 잘 챙겨왔지만 암에 걸렸고, 몸은 끝까지 암과 싸울 것이라는 사실이.그것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잘 싸울 수 있다고, 온 힘을 다하고, 애를 써서 암과 싸우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암을 선물이자 정신적 성숙의 기회,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질을 발달시킬 기회로 생각해라, 최고의 자아에 이르는 여정의 한 단계로 생각하라(p.132)’고 부추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암에 걸렸다고 무조건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완치되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병에 걸리거나 죽을 때, 우리는 철저히 타자화된다는 것이 팩트인 것이다.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다소 두서없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그런 타자화에 대한 단 하나의 대안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웃에게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라고 물어봐 주는 것, 그것만 해줘도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p.122]

 

소설의 끝은 영화와 달리 명확하지 않다. 화자는 그저 어떻게 지내요를 계속 실천중이다. 전 남친에게 비난받아도 그저 묵묵히 정말 딱 당신답게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를 유지하고 있다. 그냥 그것으로, 그 정도면 된 거다. 더할 나위 없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쳐다본다. 마사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문장을 암송한다. 소설에서는 조이스의 다른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눈은 어두워진 중앙 평원 전역, 나무 없는 언덕들, 앨런 습지에 부드럽고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더 멀리 서쪽으로 소란스럽게 흘러가는 시커먼 섀넌 강의 물결 위에도 조용하고 부드럽게 내리고 있었다. 눈은 또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의 외로운 교회 묘지 구석구석에도 내리고 있었다. 눈은 비뚤어진 십자들과 묘석들, 작은 문의 창살들, 앙상한 가시나무들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드럽게 살포시 전 우주에, 살포시 부드럽게,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 하듯이, 모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더블린 사람들’, 중 '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열린책들]

 

죽은 사람들에는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있다. 게이브리얼은 30년 동안 연말 파티를 열고 있는 두 이모에게 다가올 죽음을 본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육욕의 대상자인 아내 그레타의 마음에 오랫동안 죽은 남자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도 망령이 되고 이 세상 모든 것과 심지어 죽은 것들에게도 관용이 적용되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의 눈과 평판을 의식하고 위선을 떨며 사는 것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게이브리얼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하는내 삶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이 중요한가?

 

만약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선택한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 옆방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견디며, 최선을 다해 병과 싸워 이겨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친구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그런데 옆방에 있어주지는 못할 것 같다. 난 무섬을 많이 타는 편이다.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친구야, 미안해, 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서.“


눈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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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1-15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과 좋은 영화가 잘 어울어진 정말 좋은 글을 좋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즐거운 금욜 저녁 되십시요!ㅎ

페넬로페 2024-11-15 21:59   좋아요 2 | URL
책은 끝부분 마무리가 약간 그래서 호불호가 있는 것 같아요. 기회 되시면 영화를 보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제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막시무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새파랑 2024-11-1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었었는데 별 네개였습니다 ㅋ 어떻게 지내냐라는 안부를 물어보는것 만으로 위로가 되더라구요. 영화가 더 재미있나 보군요~!!

페넬로페 2024-11-16 18:57   좋아요 2 | URL
책이 약간 어수선 하잖아요 ㅎㅎ
반면에 영화는 하나의 주제로 압축시켜 놓아서 좋았어요.
각색과 연출을 잘 했더라고요.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것도 없고요.
책도 나름 괜찮았어요^^
새파랑님!
어떻게 지내요?

새파랑 2024-11-16 19:57   좋아요 2 | URL
ㅋ 저는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여유가 생길거 같습니다~!!!!

전야제 2024-11-16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안락사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어서 페넬로페님 리뷰 읽고 넘 신기했어요. 덕분에 어떻게 지내요, 더블린 사람들 두 소설 알게 되서 안락사라는 주제에 대해서 폭넓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영화부터 당장 보고 싶지만요ㅎㅎ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4-11-16 20:53   좋아요 1 | URL
영화나 책에 안락사에 대한 내용이 많고, 최근에 안락사 캡슐에 대한 것도 있어 점점 더 관심이 커질 것 같아요.
근데 여기의 두 주인공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인것 같아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소설과 영화가 죽음을 많이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죽음은 참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야제 2024-11-16 23:34   좋아요 1 | URL
저는 그동안 편협하게 안락사에서 죽음을 결정할 주체에 대한 문제만 생각해왔는데 죽음은 공평하지 않다는 페넬로페님의 통찰 덕분에 접근성에 대한 것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네요. 역시 페넬로페님의 글 너무 좋아요ㅠㅠ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소개해주신 소설들 읽어볼 생각에 도서관가는 길이 두근거리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청아 2024-11-16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에 관한 국가별 조사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그 첫번째 조건을 돈으로 꼽았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몇년째 그대로라고.

이 영화 저도 봐야겠어요. 아마 저도 영화를 먼저 보게 될 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4-11-16 20:55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만 유일하게요?
정말 씁쓸하네요. 점점 더 암울해질 것 같습니다.
영화, 꼭 보세요.

청아님!
어떻게 지내요?

그레이스 2024-11-17 0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사논지 꽤 됐는데,,, 아직도 못봤네요,
게다가 더블린 사람들은 읽었는데,,, 그 문장들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ㅠㅠ
영화관 가는걸 좋아하질 않아서,,, 시간이 지난 담에 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4-11-17 00:57   좋아요 2 | URL
아, 진작에 구매해 놓으셨군요.
책에는 조이스의 다른 문장이 나와요, 읽으시고 어느 소설 구절인지 가르쳐 주세요 ㅎㅎ
영화에서 조이스의 문장을 암송하는데 저는 여지껏 뭘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암송도 못하고 돌아서면 까먹고요 ㅎㅎ

희선 2024-11-19 0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영화로 법 이야기 하는 게 생각납니다 그런 걸 생각하다니, 예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과 함께 있었던 사람 이야기를 봐설지도... 자살방조죄... 이건 어떤 벌을 받을지... 영화나 소설은 그런 걸 쓰기도 해야겠지요 어떤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또 그런 게 별로네요 힘든 사람한테 힘내서 살라고는 안 할 것 같습니다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아요

사람은 잘 지낸다기보다 무언가에 고통 받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냐고 하면 그냥 그렇지 하잖아요 그렇다고 무엇에 고통 받고 사느냐고 묻지도 못하겠네요 그냥 잘 지내냐고 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11-19 08:36   좋아요 0 | URL
네, 법에 관련된 문제도 있어 안락사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 소설과 영화에서도 그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어요. 특히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이런 주제에 더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누구나 다 고통받고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타인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볼 수 있는것도 인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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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룸 넥스트 도어)가 서로 방해되지 않고 보완적이라 시너지 효과를 낸다. 영화가 에드워드 호프의 그림 같은 느낌이라면, 소설은 사람 사는 모습과 감정을 다양하게 보여주어 인간미가 있다. 읽는 내내 죽음을 생각했지만, 신랄하고도 유머러스한 문장 덕분에 무겁지 않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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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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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빨리 만나고 싶어, 산책하는 동안 가볍게 오디오북으로 먼저 듣기 시작했다. 늘 그렇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마무리되기 전에 읽고 싶은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새 책을 집으면 그 전의 책이 그대로 쌓이는 걸 알기에 일단 오디오북으로 푸른 들판을 걷다를 들으며, 읽고 있는 책을 완독하고 이 책의 종이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 계획은 첫 번째 단편인 작별 선물을 다 듣기도 전에 어그러져버렸다. 힘들어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성추행(그것도 아빠에 의한)에 대한 내용이 나와 듣기를 그만두었다. 거기에 엄마의 묵인이 있는, 들여보내다가 있어 분노가 솟구쳤다. 심장이 뛰어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상하게 똑같은 내용이라도 억양이 들어간 사람의 목소리를 듣거나 시각과 청각을 다 이용해 보는 영상은 그냥 글자를 읽는 것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고민하다 한참 지나 책으로 다시 읽었다. 키건의 소설을 포기할 수 없었다.

 

키건의 소설에는 전반적으로 아일랜드의 특성이 들어있다. 종교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항상 뭔가 묵직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들이 겪은 여러 역사적 상황에서 오는 고통과 갈등이 안에 그대로 고여 있다. 때론, 아니 언제나 그것은 내부로 향한 비난과 불신으로 발산된다. ‘물가 가까이를 제외한 이 책에 들어있는 6개의 단편은 그런 배경에서 살아가지만 한편으로 자신으로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결과가 좋은 것이든 아니든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발자크를 사람과 시대를 하나의 맥락으로 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던 젊은이라고 했듯이 키건 역시 아일랜드와 거기에 사는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어떤 세월을 지나왔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가족에 대해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거기에 부재했던 것이 뭔지는 뻔하다. <작별 선물>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닌 당신으로 서술된다. 작가는 그런 일(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을 당신으로 객관화시켜 떠나야만 하는 운명과 결단을 말해주고 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경제권을 쥐고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식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낳아야 하는 당신의 어머니는 대가족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자기 대신 당신을 남편의 방으로 들여보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떠나야만 하는 당신은 애써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남겨진 어머니를 걱정한다. 당신의 불행을 알면서도 방관해온, 미안하다고 말하는 오빠는 당신과 달리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떠나는 당신에게 정말 약았다고 말하는 가해자 아버지 밑에서 그들은 여전히 견디며 불행하게 살 것이다.

 

누군가에게 작별은 선물이 된다.

남겨진 사람들이 신경 쓰이고 걱정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이제 당신은 층계참에 서서 행복을, 좋은 날을, 즐거운 저녁을, 친절한 말을 기억해 내려 애쓴다. 작별을 어렵게 만들 행복한 기억을 찾아야 할 것 같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p.17

 

누군가가 괜찮냐고 묻지만-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다-당신은 또 다른 문을 열었다가 닫을 때까지, 칸막이에 안전하게 들어가 문을 잠글 때까지 울지 않는다. -p.27]

 


성당 미사에 참여하면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은 매번 똑같이 진행되는 전례의 반복이 지겹지 않은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순명과 영성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라 경계에 선 사람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성당에 부임해 오는 신부님들의 특징이나 성격은 다양하다. 천성이 완벽한 신부 같은 사제, 직업으로서 신부를 선택한 것 같은 사제, CEO의 역할을 하는 사제, 권위적이고 본당을 자신의 왕국으로 여기는 사제, 신부는 취미이고 본업은 세계 여행가인 사제, 신부가 되지 않았으면 사업가나 사기꾼 중 하나가 되었을 사제 등 여러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사제복을 입고 서약을 했다면 신부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푸른 들판을 걷다>는 소설 첫 두 페이지의 문장에 암시와 복선이 들어 있다. 장황하지 않은 간결한 문장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키건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은 사제의 관점으로 전개되어 끝가지 사제를 따라가기 쉽다. 사제는 푸른 들판을 걷다 치유를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중국인을 찾아간다. “당신 문제 있어요.라고 말하는 중국인에게 치료를 받고 자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냈다고 생각한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고나면 자신의 죄가 모두 없어졌다는 착각에 빠지듯이 사제는 나름의 고해성사를 한 것이다. 자신의 과오와 사랑했던 여자에게 준 상처까지 씻겨 사제의 마음은 편해지고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다해 살 것을 결심한다. 카타르시스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진주가 산산이 흩어지고 사제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는 반들반들하게 닦은 플로어에 튀어 오르는 진주알을 바라본다. 진주 한 알이 굽도리에 부딪친 다음 반대로 다시 굴러와 던 양이 내민 손을 지나친다. 진주가 사제의 의자 쪽으로 다시 굴러가자 던 양이 한숨을 쉰다. 그가 손을 아래로 뻗어 진주를 집어 든다. 손에 닿는 진주가 따뜻하다. 그녀의 온기다. 이날 그는 무엇보다도 이 온기에 깜짝 놀란다. -p.52]

 

그녀의 온기는 던 양의 마음이며 사제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사제가 자신의 길을 충실히 가고 던 양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다. 특히 던 양이 받은 상처는 그녀와 사제가 평생 짊어지고 갈 짐이다.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며 차라리 하느님은 자연이라 여기며 물 흐르는 대로 내일을 위해 살고 싶은 염원은 그저 오늘 하루만 유효할지 모른다.

 


<퀴큰 나무 숲의 밤>은 사제가 아닌 마거릿이 과거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가는 스토리다. 얼핏 푸른 들판을 걷다와 비슷한 맥락이다. 마거릿은 미신을 믿으며, 자신의 세계 속에서 과거를 붙들고 있다. 자신과 결혼하자던 사촌인 신부와 그 사랑의 결과로 얻은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산다. 마거릿의 잘 이해되지 않은 여러 행동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여자에게 아이의 존재는 무엇일까? 마거릿은 떠나기 위한 동반자로 남자가 아닌 아이를 선택한다. 소농의 딸에게 12년 동안 구애하면서 일요일 저녁 식사를 624번이나 사주었지만 그녀의 치맛자락 하나 못 건드린(p.192), 마거릿의 치유를 도운 아이의 아버지 스택에게 이렇게 상처를 준다. 스택의 마음을 잠깐 느껴본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모르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 삼림 관리인 빅터 디건이 그런 얼간이다. 디건은 아버지가 죽으며 남긴 집 한 채를 땅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서 형제들의 몫까지 지불하며 이 집을 산다. 그 다음은 뻔하다. 삼림 관리인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 매달 나가는 담보 융자에 대한 이자와 원리금을 갚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소 젖도 짜야 한다. 뭐든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고', 가족을 살필 여력도 없다. 집이 대출금 없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당연히 디건의 아내 마사는 행복하지 않다. 공허하고 쓰라림을 느낀다. 그런 마사에게 온갖 꽃을 싣고 다니는 외판원은 그녀에게 장미 같은 사람이 된다. 마사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아채듯이웃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은 마사가 꽉 막힌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탈출하는 방식이다.

 

마사는 디건을 떠날 생각을 한다. 여전히 일상은 똑같이 되풀이되며, 현재를 무시하고 찬란한 미래만은 꿈꾸고 사는 디건에게 결국 집이란 존재를 잊어버릴 불가항력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제야 디건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인정한다. 집은 그저 집일뿐이고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검은 말>, <물가 가까이><굴복> 역시 고약했지만 털고 일어나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희망적이지도,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퀴큰 나무는 마가목의 다른 이름이다. 어마어마한 마력과 보호력을 가진 나무로 여겨진다. ‘퀴큰(quicken)’이라는 이름은 활기를 주는, 또는 생명을 주는 마가목의 힘을 가리킨다.(p.188, 클레어 키건의 주석)’]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실수와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앞으로 나가는 속성을 지녔다. 가끔은 그 속에서 머물기도 하지만 고민이나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다. 클레어 키건은 이 책에서 그런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간결하지만 많은 서사와 깊은 의미가 담긴 글로 마음을 흔들어준다.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또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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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11-11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올해의 책 순위 보니까 클레어 키건이 높더라구요. 페넬로페님도 팬이시군요~!!
아일랜드 작품 특성이란게 있는거 같아요.

전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11-11 21:34   좋아요 0 | URL
네, 클레어 키건 작가의 팬입니다. 이번 단편집도 좋더라고요. 똑같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조이스나 윌리엄 트레버와는 다른 결이 있어요. 새파랑님께서도 나중에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그레이스 2024-11-11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가목, 아일랜드랑 영국에서 많이 키워진듯요,
득히 아일랜드에사 자라는 나무들은 산사, 마가목, 벚나무 등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것들과 겹치는듯 해요^^
초기작이라 아직은 맡겨진 소녀보다는 생략이나 함축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클레어 키건다운 작품들이었어요.^^

페넬로페 2024-11-11 23:05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 마가목이 자주 나와 저는 아일랜드 나무인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한국에도 많이 있더라고요.
산사, 벚나무도 많군요.
단편이라 내용이 다양해 좋았어요. 발자크와 같이 읽어서 그런지 장황함이 없어 좋기도 하고요 ㅋㅋ

페넬로페 2024-11-11 23:08   좋아요 1 | URL
이 책 리뷰대회 했잖아요.
그레이스님,
좋은 결과 나왔을듯요^^

그레이스 2024-11-12 00:03   좋아요 1 | URL
그럴리가요^^
 

알라딘에서 문학적인 한 해라는 제목의 2024, 당신의 문학네권을 알려주세요.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책 다양하게 읽지 않는, 소설을 좋아하고 찬양하는 나, 페넬로페는 당연히 이 이벤트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적립금 1000원은 중요하지 않다.

 

문학소녀에서 시작된 내 인생에서, 시간이 나면 돈 벌 궁리를 하지 않고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남들이 인생 실패자라고도 여기는 나는 정말 문학을 사랑한다. 문학 속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 나는 여기에 머물며 울고 웃고, 울컥하고 심란해하고, 한숨을 쉰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것 같다.

 

책 좀 읽는다는 독서가만 존재하는 알라딘 서재를 상대로, 이때껏 읽은 문학 작품 중 네 권만 고르라는 선택의 부당함을 알기에 알라딘은 영리하게도 ‘2024, 사사분기라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아는 만큼 보이듯이, 책은 읽은 만큼만 얘기할 수 있는 정직함을 준다.



하반기 페넬로페의 문학네권은.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한강의 소설들 -그냥 한 권으로...

잃어버린 환상 오노레 드 발자크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피서객이 빠져나간 겨울의 바닷가에 선 것처럼 뒤늦게 이 책을 읽고 있다. ‘맡겨진 소녀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으며 작가 클레어 키건의 팬이 되었다. 짧고 명료한 그녀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서사와 다양한 삶의 모습에 반하게 되었다. 키건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어느새 소설 안으로 들어가 나를 저울질하게 된다. 문학이 주는 최고의 유용성과 고통을 키건이 주고 있다.

 

푸른 들판을 걷다는 키건의 단편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별 선물부터 읽기가 힘들고 마음이 무거워져 잠시 멈추다 다시 읽었다. ‘푸른 들판을 걷다에도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 특히 가톨릭교도인 나에게 종교란 무엇인지, 성당과 신부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었다. ‘살림 관리인의 딸도 마찬가지다. 왜 이리 삶은 복잡한지,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고 추구하는 것이 다 다르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키건은 말해주고 있다.

 

누가 신경이나 쓴대(p.141)?”처럼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현실이 슬프다. 본래부터 고통스럽게 설계되어 있는 듯한 힘겨운 우리네 삶도 버겁다. 아직 완독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출간된 클레어 키건의 세 책 중 단연 최고다.




 











여수의 사랑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한강 작가의 소설을 계속 읽고 있었다. 사실 읽어내기 어려웠다. 한강의 소설은 바로 풀리지 않게 하고, 여러 번 꼬아낸, 그렇지만 개념에 충실한 수학의 킬러 문항 같다. 포기하기 쉽지만, 결국 풀어내면 자신만의 뿌듯함과 한 단계 높아진 실력을 발견할 수 있다.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 네 권을 다 읽었다. 검색해보지 않고 압둘라자크 구르나라는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구르나의 소설을 읽으며 동아프리카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노벨상을 받지 않았으면 그의 소설을 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욘 포세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의 위력은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

 

한강 작가가 우리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글로 표현해주어 고맙다. 노벨문학상을 받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를 알게 해주어 고맙다. 천천히 한 권씩 재독하며 계속 축하하겠다고 결심했다.



 














발자크와 헤밍웨이의 문장은 완전 결이 다르다.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지만 두 거장의 삶은 많이 닮아있다. 두 사람 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경험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설의 형식은 다르지만, 이 두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그들의 소설에서 묘사된 지나간 시대와 사람을 지금도 만날 수 있다. 어느 작가가 썼던, 어느 시대의 작품이건 '보편성'은 문학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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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04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앗, 재밌겠네 싶어서 저도 써보려 했지만 올해 책 한 권도 사지 않아서 자격이 없군요.

페넬로페 2024-11-04 16:08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
책 구매는 굿즈를 받는 별개인 이벤트예요.
문학네권은 책 구매랑 상관없어요.
스크롤 내려 이벤트 참여하기 들어가셔서 네 권 고르시면 돼요.
꼭 올려주세요.
완전 기대하며 기다릴께요^^

Falstaff 2024-11-05 05:22   좋아요 1 | URL
근데 참... 4사분기에 읽은 책인데 11월 4일이란 말이지요. 그럼 10월 한 달 동안 읽은 책 가운데 네 권을 고르라는 이야깁니다. ㅋㅋㅋㅋ 그래서 10월에 서재에 감상을 올렸지만 사실은 9월에 읽은 책까지 포함시켜 한 번 골라보긴 했습니다.
근데 참여한 사람들은 4사분기가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인생책˝ 네 권을 고른 것 같고요, 알라딘도 독자의 진짜 인생첵 네 권을 요구한 것 같기도 하고 막 헷갈리네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4-11-05 06:2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사분기라는 말이 좀 그래서, 그렇다고 인생 전체로 하기엔 저번에 인생네권과 겹치기도 해서, 맘대로 그냥 하반기로 했어요 ㅎㅎ
폴스타프님께서는 평소에 워낙 많이 읽으셔서 고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coolcat329 2024-11-04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이벤트가 있군요. 올해 많이는 못 읽었지만 저도 이따가 한 번 해봐야겠어요. 내년엔 저도 페넬로페님처럼 한 작가의 전작읽기를 해보고 싶어요. 넘 좋은 자극을 주셨답니다.

페넬로페 2024-11-04 16:52   좋아요 1 | URL
어떤 문학네권일지 기대됩니다~~
쿨캣님 전작 읽기의 작가도요^^

서곡 2024-11-04 1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앗 또 네권 이벤트가 있군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11-04 20:13   좋아요 1 | URL
우연히 들어갔는데 있더라고요
ㅎㅎ
문학이라 반가워서요^

희선 2024-11-05 0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안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노벨문학상 받았다고 해도 잘 안 읽는군요 어려울 것 같아서... 한강 작가 책은 예전에 조금 봤어요 앞으로 보고 싶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뿐 아니라 세계 사람이 한강 작가 책을 보고 한국을 조금 더 알게 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11-05 06:3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이란 말을 붙인 것 같아요. 한강 작가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어온 건 작가가 지닌 저력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yamoo 2024-11-06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이벤트를 페낼로페 님 이 페이퍼로 처음 알았는데, 내용에 대해 헷갈렸는데, 다행히 폴님과의 댓글을 보니 아무거나 좋았던 거 4권 택해도 되는가 봅니다...ㅎ
저도 해봐야 겠습니다! 불끈!!

페넬로페 2024-11-06 17:21   좋아요 0 | URL
네, 구매 상관없이 하셔도 됩니다. 한 번씩 이런 이벤트가 재미있더라고요. 기록도 되고요^^

singri 2024-11-06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이벤트가 있군요;;;

페넬로페 2024-11-06 17:32   좋아요 0 | URL
넵, 저도 오랜만에 이벤트 클릭했는데 있더라고요^^
 

당신이 떠나면 어머니는 어떨까. 
상관없다는 마음도 든다. - P12

저 너머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러 나온 어머니에게 닿는다. 어머니는 겁쟁이처럼 살짝 손을 흔든다. 어머니가 자신을 남편과 같이 여기 남겨두고떠나는 당신을 용서하는 날이 올까 궁금하다. - P22

한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딸을 빼앗긴다.
한 여자는 아들이 별것도 아닌 여자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반쯤 그렇게 생각한다. 비용이 들고 감정은오가고 돌이킬 수는 없다. 공개적으로 서약하면 사람들은 항상 운다. - P41

사제에게 마이크가 다시 넘어온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식후 감사 기도를 드리지만 한마디도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은 기도를 드려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 하느님은 어디있지? 그가 물었다. 하느님이 무엇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 P49

그는 하느님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지만바로 이것이 이상한 점이다-그는 하느님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바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의 계시뿐이다. 저녁이되어 가정부가 돌아간 뒤 창가의 커튼을 꼼꼼하게 치고 나서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사제가 되는 방법을 보여달라고 기도를드릴 때도 있다. - P50

진주가 산산이 흩어지고 사제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는 반들반들하게 닦은 플로어에 튀어 오르는 진주알을 바라본다. 진주 한 알이 굽도리에 부딪친 다음 반대로다시 굴러와 던 양이 내민 손을 지나친다. 진주가 사제의 의자쪽으로 다시 굴러가자 던 양이 한숨을 쉰다. 그가 손을 아래로뻗어 진주를 집어 든다. 손에 닿는 진주가 따뜻하다. 그녀의 온기다. 이날 그는 무엇보다도 이 온기에 깜짝 놀란다.
사제가 댄스플로어를 가로지른다. 신부가 양손을 내밀고 서있다. 그가 신부의 손에 진주를 내려놓자 그녀가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눈물이 고여 있지만 그녀는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눈을 깜빡여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기만 하면 사제는 그녀의 손을 잡고 여기서 달아나리라. 적어도 사제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한때 바라던 일이었지만 세상에서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같은것을 바라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는 바로 그 점이 인간으로서가장 힘든 부분이다. - P52

"네." 중국인이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내 문제요?"
중국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아무 문제도 없어요." 사제가 말한다.
중국인이 웃는다. 원래 문제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안다. - P59

릇을 바라본다.
롤러의 딸과 보낸 파편 같은 시간들이 마음을 스친다. 그녀를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녀는 자기인식이란 말의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대화의 목적은 스스로 이미 아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에 보이지 않는 그릇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야기란 그 그릇에 괜찮은 말을 넣고 다른 말을 꺼내 가는 기술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면 더없이 따스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릇은 다시 텅 빈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 너머에 진짜 앎이 있다고 믿었다.  - P61

"고맙습니다." 사제가 마침내 말한다. "고맙습니다."
중국인이 새로 끓인 차를 한 잔 들고 그의 옆에 쪼그려 앉는다. 여기 자기만의 깨끗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믿고 그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 P63

사제가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건 뭐죠?"
"오래됐어요." 중국인이 말한다.
"비어 있네요." 사제가 웃는다.
중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비었어요." 사제가 말한다. "가득 차 있지 않다고요."
"네." 중국인이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 P63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고, 오늘 밤 하느님이 대답하고 있다. 사방에서 야생 커런트 덤불이 풍기는 짙은 냄새가 뚜렷하다.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서 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하느님은 자연이다.
그는 뉴리 외곽에서 롤러의 딸과 알몸으로 누워 있던 것을기억한다. 홀씨가 된 그 모든 민들레 꽃을, 그리고 언제까지나그녀를 사랑하겠다던 말을 기억한다. 그는 그 모든 일들을 온전히 기억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지. 곧 부활절이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성지주일 강론을준비해야 한다. 그는 길을 향해 들판을 다시 오르며 사제로서나무들의 라틴어를 최선을 다해 판독하는 내일의 삶에 대해서생각한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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