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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첫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의 성공 이후, 두 번째 소설에 대해 굉장한 기대를 걸었다. 그는 《분신》이 걸작이 될 것이라 예상했고, 주인공 골랴드낀이 자신을 성공의 절정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분신》은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에게 냉대 받는다.(번역자 해설)
[『분신』이 어느 모로 보나 독자의 사랑을 받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해졌을 때에도 그는 실패의 원인은 형식에 있을 뿐이며 소설에 내재된 관념은 심오한 것이라고, 그리고 주인공 골랴드낀은 자기가 발견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전형이라고 자만하였다.-p.246]
《분신》에는 분명 형식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어떤 면에서 웃기기도 하다. 되새기고 싶거나 감동적인 문장도 별로 없다. 그러나 도작가가 창조해 낸 주인공 ‘골랴드낀’을 조각조각 해체하면 의미심장하다. 많은 부분들이 낯설지 않다. 골랴드낀을 통해 도작가는 인간의 깊고도 숨겨진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해 낸다.
‘분신’은 지금까지 읽은 도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잘 읽혔고.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좋았다. 아마 이 소설은 도작가의 시대보다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랴드낀의 모습에 나와, 나의 페르소나가 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억누르고 덮어버린 내 속의 광기와 욕망, 질투를 골랴드낀이 보여준다. 욕망과 현실이 괴리된 채, 추구해야 할 본질을 잃어버린 요즘의 우리들은 거의 모두 가볍거나 무거운 정신분열을 겪고 산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없기에 또 다른 나를 창조해, 그것을 추앙하기도 공격하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러한 것들을 이 소설을 통해 정확하게 잘 포착했다. 소설이 좋게 평가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랴드낀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변사가 되어 우리들의 주인공인 골랴드낀을 등장시킨다. 소설의 시작부터 이 주인공의 행동은 조금 이상하다. 소심하면서도 허세가 있고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제2의 골랴드낀을 통해 암시적으로 그 이유를 얘기하지만, 그에겐 철천지원수도 있다. 불안해하고 말재주와 처세술도 없다. 동료를 질투하고, 그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슬픔, 공포 분노, 무기력을 반복하며 느낀다. 용기 있게 나서야 할 때에는 뒤로 숨어버리고, 제어해야 할 때에는 오히려 가차 없이 돌진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다.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어느 정도 인식한 골랴드낀은 의사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를 찾아가 두서없이 말하기도 한다.
[제가 가는 길은요, 곧고, 솔직하며, 우회하는 법이 없지요. 왜냐하면 저는 돌아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거든요. 그런 길은 다른 사람들이나 가라지요. 선생님이나 저보다 더 깨끗할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흐리멍덩하게 대충 말하고 넘어가는 것은 싫어합니다. 같잖게 위선 떠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남에 대한 중상모략이나 뜬소문들을 경멸한답니다. 가면은 오로지 가면무도회에서나 쓸 뿐, 그걸 매일 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p.24]
의사는 골랴드낀의 생활 방식과 성격을 속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무뚝뚝하게 말할 뿐이다. 골랴드낀이 자신의 상관인 올수피 이바노비치의 딸인 끌라라 올수피예브나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쳐들어가 쫓겨났을 때, 그에게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分身)이 나타난다. 처음에 그 분신은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제2의 골랴드낀을 통해 주인공이 힘들게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 골랴드낀은 자신의 분신을 동정하고 도와주려 한다. 그러다가 분신은 골랴드낀에게 점점 적대적 인물이 된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일을 얄밉게 잘 해내고, 골랴드낀을 기만하고 걸레처럼 취급한다. 골랴드낀의 망상은 심해지고, 광기의 힘은 무섭게 골랴드낀을 망가지게 한다.
조현병이 무서운 건 자신의 본질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하는데에 있다. 망상이나 정신분열은 골랴드낀처럼 자신을 불신한다. 자신안의 무서운 에너지는 자신을 갉아먹고, 몰아댄다. 아직은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정신력으로 버텨보려고도 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다시 자신을 나락에 빠뜨린다.
골랴드낀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 제부쉬낀이나 고골의 ‘외투’에 나오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모습도 보인다. 필경사 바틀비도 연상되지만, 그는 그들과 다르게 페트르부르크의 쎄스찌라보츠나야 거리의 꽤 크고 웅장한 건물 4층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현금도 넉넉하다. 그런 그가 불안에 빠지고 공포를 느끼는 건 러시아의 수도인 페트르부르크의 분위기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그 당시 출세하고자 농촌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페트르부르크로 왔지만 그들 대다수는 정부의 하급관리로 단순한 필사업무를 했을 뿐이었다. 철저하게 등급으로 나눠진 그들의 계급은 나머지 다른 곳에서도 사람을 계급으로 평가하고 대우하는 기준이 되었다. 골랴드낀은 가난에서는 벗어났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은 이룰 수가 없었다.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말재주와 처세술이 없는 그는 더 이상 출세할 수 없었다. 번듯하게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기를 원했지만 계급과 능력적인 면에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골랴드낀이 좌절하고 슬퍼할 때마다 페트르부르크의 날씨는 비나 눈이 와 땅은 질척거리고, 추위가 심했다. 페트르부르크의 날씨처럼 골랴드낀을 둘러싼 모든 배경이 그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허약하게 만들었다. 골랴드낀이 보여주는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성, 상대적 빈곤, 타인에 의한 관계의 배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러한 것들로 인한 인간 심리의 전형적인 변화를 작가는 잘 보여준다.
《분신》은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과 다르게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읽어 나가며 골랴드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나와 우리들의 모습도 연상되었다. 골랴드낀의 광기와 좌절에 나의 에너지 역시 말라가는 느낌도 들었다. 만약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잘 분석하고 파헤친 작품이다.
《분신》은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이며, 힘들게 이 세상을 버티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골랴드낀 씨에겐 더욱 그랬다. 흠뻑 젖어서 무거워진 외투는 눅눅한 온기와 무게를 전하며 그의 사지를 기분 나쁘게 휘감았고, 그렇지 않아도 완전히 힘이 빠져 버린 그의 다리를 휙휙 꺾고 있었다. 열병과도 같은 오한이 그의 온몸을 타고 흐르며 따끔따끔 자극적인 소름으로 변해 돋아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그건 말이지, 어쩌면, 어떤 식으로든 말이야, 아마도, 확실히, 한순간에 모두 잘 해결될 거야〉라는 식의 말, 즉 늘상 하기 좋아하던 말을 이런 순간 할 법한데도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뭐, 아직은 괜찮아.〉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