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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만약 누군가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흔들리다 못해 모든 것을 잃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할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원인과 이유는 수없이 많고, 그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역사와 관습의 올무, 돈과 인간관계에 의한 사람의 욕망 때문에 대다수는 무너진다. 인간은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우 뿐만 아니라 평화롭게 보이는 너울성 파도에도 목숨을 잃는다. 오히려 무심하게 숨겨진 악의와 조롱에 더 취약할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이미 모든 것은 깨어져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복합적이고도 깊은 어리석음은 언제든지 나에게로 향할 수 있다.
“I would prefer not to"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저는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p.110)’라는 이 말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 《바닷가에서》의 중심을 관통한다. ‘하지 않겠다’는 말보다, ‘안하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 실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관점에 따라 이 문장은 누군가에겐 감동을, 다른 누군가에겐 황당하고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관계와 변수 속에, 자신을 지킬 수도, 소외시킬 수도 있는 생존의 언어이기도 하다.
[일 년의 마지막 몇 달은 인도양을 지나온 바람이 해류가 순순히 항구로 가는 물길을 제공하는 아프리카 해안으로 끊임없이 불어간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또 몇 개월은 바람이 방향을 바꿔 거꾸로 불기 시작하면서 상인들을 집으로 빠르게 돌려보낼 준비를 한다.....
수세기 동안 용감무쌍한 상인들과 선원들, 분명 대부분 야만적이고 가난했을 그들이, 무심의 바람을 막아내려고 아주 오래전에 뾰족해진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그 쭉 뻗은 해안으로 해마다 여행을 떠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건과 신과 자신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신들의 이야기와 노래와 기도를 함께 들고 왔고, 그 지식을 흘낏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들인 노력의 정수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굶주림과 탐욕, 자신들의 환상과 거짓말과 증오를 가져와서 그것들 중 일부는 평생 그곳에 내버려두었고, 자신들이 사들이고 거래하거나 앗아갈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갔는데,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거나 납치해서 고국에 노예로 팔아먹었다
-p.32~33]
원래 ‘계절’이라는 뜻으로, ‘몬순’의 어원이기도 한 ‘계절풍’인 무심(musim)은 동아프리카의 역사를 무수히 변화시킨다. 여러 나라에 차례로 침략당하고, 배를 타고 들어온 상인들은 그곳의 경제를 장악하고 그들의 종교를 전파한다. 이슬람의 관습과, 이익을 남겨야만 하는 교역이 만나 독특한 문화와 관계가 생성되지만, 한편으로 형식과 태도에 부당하고 전근대적인 악습도 만연한다. 1960년, 무심이 불어올 때 들어온 바레인 출신의 페르시아인, ‘후세인’의 등장으로 이 소설의 화자인 ‘살레 오마르’와 ‘라티프 마흐무드’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것보다 사회적 관습이나 종교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곳에서 법률적인 것은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곳을 지배해온 영국이 그 어떤 수습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떠나버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스스로 풀 능력도 없기에, 국가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쉽게 권력을 쥐고, 그것을 유지하고자 말도 안 되는 악행과 폭력이 자행된다. 권력자의 정부인 라티프의 어머니의 말 한마디로 오마르는 감옥에 투옥되고 난민이 된다. 악의와 복수를 알라의 말씀으로 앞세우는 종교의 편협함도 한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하다.(특정 종교에 대한 비하는 절대 아님).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 《바닷가에서》에는 우리가 생각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한 권의 책이지만 대하소설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다른 소설인 《낙원》이 배경 설명을 숨긴 채,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며 어떤 세계를 유추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었다면, 《바닷가에서》는 우리 눈앞에 모든 것을 보여 주며 내가 몰랐던 세계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낙원’에서 어느 정도 인식한 동아프리카의 역사와 사회를 이 소설을 통해 더 자세하고 깊이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현지인과 난민의 시각으로 본토와 유럽에 대한 비판을 한다. ‘무심’으로 상징되는 많은 것들이 이국적이고도 흥미로우며, 아라비안 나이트의 후예답게 풍부한 이야기로 소설적 재미도 준다. 이 책에서 얻은 생각은 가지를 뻗어 문제의식으로, 선택과 사는 방법의 결과로 다가온다.
소설의 시작은 영국 개트윅 공항에서 난민이자 망명 신청자인 ‘라자브 샤아반 마흐무드’라는 이름을 차용한 ‘살레 오마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무심교역을 위해 들어온 '후세인'의 장난 같은 행동으로 악연을 맺은 마흐무드와 오마르집안의 사람인 살레와 라티프가 영국에서 난민으로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화자가 바뀌며 전개된다. 악연을 맺은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그들에게는 많은 상처와 오해가 있다. 결국 그들은 난민의 신세로, 고향을 떠나온 타국에서 그것을 풀고 화해를 한다. ‘필경사 바틀비’에 감동하고, 똑같이 영국인으로부터 ‘히죽거리는 블랙어무어(grinning blackamoor)'라는 말을 듣는 그들은 같은 처지의 이방인임을 실감한다. 늦은 나이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살레 오마르는 ‘살아왔지만, 살아버린 것이기도 한(p.13)’ 느낌을 갖고, 불안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 두 번째 난민 생활을 시작한다. 이 소설의 모든 배경은 오마르가 죽음에 더 가까운 나이에도 낯선 곳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준다.
[그러니까 내게 닥쳐온 사건들은 이렇습니다. 그것들 대부분은 극적인 드라마 없이는 말하기 어렵고, 그중 일부는 나를 고통에 휩싸이게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고, 그로써 내 시절에 대한 판단과 표리부동한 우리 삶의 하찮음을 드러내 보이길 간절히 원합니다. 나는 간략히 이야기할 것인데, 왜냐하면 쓰라림과 무력함 속에 내게 남은 얼마 안 되는 것들마저 사그라질까 두려운 마음에 대부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온 사건들이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들을 이치에 따라 따져보며 여러 해를 보냈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참을 수 없는 가혹함을 견뎌내야만 하느니, 차라리 가져서 상처가 나고 접질린 채 조용히 사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p.344]
살레 오마르는 영국의 공항에서 망명 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는다. 오마르가 가져 간 작은 초록색 천 가방에는 초라한 옷 몇 벌과 ‘우드알카마리’라는 향기로운 침향이 들어 있다. 검사관인 케빈 에덜먼은 우드알카마리 상자에 관심을 갖고, 슬그머니 가져가버린다. ‘원주민의 투박하고 부주의한 손에 맡기기에는 너무 여리고 섬세하다는 이유로(p.29)’ 침략자인 선조들이 아프리카의 많은 것을 갈취한 것처럼, 케빈 에덜먼도 오마르의 마지막 남은 소중한 물건을 강탈해 간다. 유럽인은 ‘세상을 먹어치우러 가는 수많은 무리들을 내보내고(p.59)’ 침략했음에도 정작 아프리카인인 오마르는 ‘끈끈하게 들러붙어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p.59)’.
내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작품을 읽은 건 그가 2021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유가 크다. 노벨상은 우리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작가의 책을 읽게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어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문학은 단지 책에 나오는 의미와 스토리만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서사와 배경을 통해 다른 역사와 세계를 배우고, 나와 다른 처지의 인간을 만나게 한다. 아프리카 특히 동아프리카의 매력적이고도 불행한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접하게 되었다. 거리가 멀고, 이질적인 문화를 가졌다고 해서 우리와 완전 다르지는 않다.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의 삶 속에서, ‘나는 안하는 편을 선택’하는 조건과 그것을 위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그 다른 것들이 가르쳐준다. 그런 면에서 구르나의 작품은 좋고 기특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해 내가 쓴 글은 중요한 걸 다 빼먹은 듯하다. 그저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되풀이되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힘들고 지칠 때, 바다를 보러 간다. 주기적으로 넘실대는 그 푸른 물을 보고 와야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바닷가에 서면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탁 트인 망망대해의 수많은 물결 하나하나에 상념이 생긴다, 지혜롭지 못한 것에 대해, 잘 하지 못한 처신과 지나친 욕망으로 인해 나 자신을 속이고 멍들게 했음에 후회한다. 내 마음과 달리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공감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슬프기도 하다. 무심의 바람과 함께 일생을 보낸 오마르는 바닷가에 있는 영국의 소도시에 정착한다. 이방인 오마르 역시 타국의 바닷가에서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담담히 인생을 받아들인다. 어떤 것에도 명확한 결론은 없다. 세상은 한 사람이 풀어내기에 너무 거창하고 막막한 것들이 많다. 무심으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삶에 그저 신의 자비를 바랄 뿐이다.
인샤알라-신의 뜻대로.
[저는 이 모든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시절 그 장소에 대해 생각하느라 녹초가 된 기분이에요. 그리고 적의와 경멸과 깔보는 시선을 겪으며 제 삶의 모든 이런저런 일들을 껴안고 이곳에서 살아가느라, 저는 녹초가 되어 쓰라리고 상처로 멍이 든 듯한 기분입니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세요? 분명 그 기분을 아실 겁니다. 저는 이번 주 내내, 알거나 알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또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며 살아온 이 모든 세월 동안 제가 얼마나 녹초가 되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p.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