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방식과 모습은 모두 달라, 각자의 배경과 사연은 다양하다. 하지만 올해만큼 ‘코로나’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사람 사는 모습이 비슷할 때가 있었던가 싶다. ‘갇혀 살았다’라는 말이 일반화가 될 정도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스스로, 또는 강제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 일반화로 시간은 2시 다음엔 3시, 3시 다음엔 4시라는 기계적 역할을 할 뿐이다.
이 시국에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책만 좋아해서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도 생각한다. 활동적이지 않고 번잡함을 싫어하는 나에게 코로나시국은 불필요하고 피곤한 인간관계를 정리해주는 좋은 일도 해주었고, 책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책은 세상 밖,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 인식하지 못한 것을 일깨워주어 나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지만, 소소하고 인정 넘치는 인간적인 일에 눈을 감고 모른척하게 하는 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과 복잡함이 많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책이고, 아마 죽기 전까지 이것을 붙잡고 있을 것 같다.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강박이 생겨 어떤 책이라도 읽기 시작하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글을 써야하나?’라는 걱정이 앞선다. 글을 쉽게 척척 써내는 능력이 없기에 그 고민으로 책 자체를 즐기지 못할 때도 있다. 사서 고생을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책도 기록의 루틴 때문에 꾸역꾸역 읽지만 그런 책에 대해 좋은 글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작업들로 인해 내가 읽은 책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고, 언제나 기분이 좋다.
<2021년,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
이 두 권의 책은 장르는 다르지만 나에게 주는 의미가 비슷했다. 인간은 정치와 조직 속에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권력과 계급이 생겨나고 개인의 삶은 매몰될 가능성이 많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나 자유는 존중되지 않고 무시되어 생기는 비극과 아픔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회가 발전되고 있지만 앞으로의 우리들에게 이러한 현상은 더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그녀가 여자였기에, 하루 종일 사람들은 으레 이러저러한 문제로 그녀를 찾았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원했고, 다른 사람은 저것을 원했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고, 그녀는 종종 자신이 사람들의 감정에 흠뻑 젖은 스펀지일 뿐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겉껍데기조차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고, 다 써 버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등대로』에 있는 이 표현만큼 여성의 소진(消盡)을 잘 나타낸 문장이 있을까? 겉껍데기조차 남지 않게 삶을 산 램지 부인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는다. 램지 부인의 삶을 보며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10년째 재택근무중인 나 자신의 소진과 늙어감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고, 많이 먹먹했다. 램지 부인의 딸은 아이를 낳다가 죽고, 그녀의 아들은 전쟁 중에 죽는다. 불행은 참 슬프고도 집요하다. 이 소설에 있는 다른 문장들도 아름답고 좋았다.
100년 전 ‘나쓰메 소세키’는 <그 후>에서 다이스케의 말을 빌려 작금의 현실을 얘기한다. 그 신랄한 말들은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다만 룸펜도 아닌 고등유민인 다이스케가 한 말이라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들로 지난 가을의 한 자락에 독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다이스케의 마지막 선택도 열렬히 축복해 주지 못했지만, 이 소설에서의 소세키의 시각과 비판은 여전히 좋다.
소세키의 소설을 올해 7편 읽었는데, 그 중 내 마음을 가장 울린 것이 ‘문’이다. 책속의 문장도 좋았고, 어떤 선택에 의해 평생 주눅 들고 갇혀 살아야 하는 소스케와 오요네의 삶이 절절했다. 그들에게서 외롭고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낙인찍힌 인생들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민음사와 숲 출판사의 책으로 ‘오이디푸스 왕’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이나 읽으면서도 왜 오이디푸스는 저렇게 괴로워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모두 그가 모르고 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운명에 의해 부모에게 버림받은 피해자라고도 생각했다. 그 후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오이디푸스 왕’ 연극을 보면서, 인간에게는 모르고 한 행동이라도 책임을 져야 하며, 죄의식을 가져야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우메 카브레의 ‘나는 고백한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인간의 숙명을 인식했다. 우리는 알면서도 끊임없이 죄를 짓고, 나쁜 말을 하며, 남의 뒷통수를 치면서 살고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쁜 길로 가고 있으며, 그것은 반복된다. 그러한 본성으로 태어났기에, 이 세상이 선하고 좋으려면 우리는 내가 모르게 한 죄에 대해서도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한다. 용서를 구해야 하며, 고백해야만 하는 것이다. 600년을 넘나드는 방대한 내용에 소설의 각 구비마다 놀라움과 반전이 있었던 이 소설을 쓴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책과 연결되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올해 8년차로 접어든 독서동아리의 멤버는 이제 5명밖에 남지 않았다. 6월에 우리는 필독서로 ‘프랑켄슈타인’을 읽었고, 감동을 받았으며, 5명이지만 그래도 이 모임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올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프랑켄슈타인’ 뮤지컬을 보며 또 감사했다.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결국 12월 25일(가족을 팽개치고) 할인 이벤트가 전혀 없는 날에 뮤지컬을 관람했다. 딸아이가 우리들을 보고 호구, 아줌마 호구라고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프랑켄슈타인’ 뮤지컬은 뒤로 갈수록 더 감동적이었고, 무대 배경이 계속 변해 멋있었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우리들은 책을 먼저 읽은 것이 참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것이었다. 호구, 그래도 우리는 책 읽는 호구다.
‘케이크와 맥주’를 읽으며 케이크와 맥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잘 어울렸고, 맛있었다. 그래, 책은 도끼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보게 하고, 나의 얼어붙은 아집과 편견을 깨 준다. 멋진 녀석이다.
2021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도 알라딘 서재 친구분들이 있어 행복했다. 북플에 들어오면 나는 항상 미소 지으며 글을 읽고, 댓글을 단다.
내년에도 건강하고 즐겁게 친구분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