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첫날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이달의 첫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은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한 소개를 겸합니다.

제가 주목하게된 도서는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벤야민 번역하기>입니다.




 1월 중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소식이 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같이 출간되어 더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마스크를 구하듯 줄을 서서 책을 사려는 독서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소개를 보면 이 책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역사책 같기도하고, 평론집 비슷하면서, 우리 삶의 다양한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 모음집인듯 보입니다. 
 (아직 않읽어 봤으므로, 기대평만...^^)
  발터 벤야민의 전방위적인 생각과 글쓰기의 방식과 닮았을까요.
 
  분명해보이는 것은, 
  저자의 글쓰기가 바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자의 특이한 이력과 다양한 독서(곧 다양한 관심)이 모여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룬 유기체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묵직하지만, 언젠간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2004년에 저자 김재준이 '여성동아'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가 있으니,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이 기사는 다분히 자녀가 있는 부모의 시선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교육법'을 화두로 삼고 기획한 기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우리의 독서 현실과 독서 방법, 그리고 글쓰기의 중요성'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영재'란 단어가 같은 의미는 다분히 '엘리트 양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이 단어 사용에 조심스럽네요.  
  기사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리 좋은 학교 교육 제도라고 해도,
  한계는 있다고 봐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입시를 위한 학원 없는 사회', '타인에게 공감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공부'를 아이들이 접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데에 관심이 생깁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또는 그러한 노력도 없이) 남자-여자를 대립구도로만 보거나,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쉬운 현실입니다. 
교육제도 또한 그렇습니다.

학교제도에 순응하기만 하는 '자신의 생각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기르게 할 수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자의대로 빼앗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문기사 하나에도 생각이 많아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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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대한 간략한 보고서

 


작년에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알게 되어 찬찬히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쿠타니는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에서 34 (1983-2017) 서평을 담당했는데요, 그녀가 은퇴 처음 발표한 정치·문화비평서가 바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이하 《진실》 표기)입니다. 책을 읽던 알게 소설 편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입니다. 《진실》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며에서 가쿠타니가 단편 소설을 언급한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상대주의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울프가 말한 자기중심주의 시대부터 시작해 자부심 넘치는 셀피(selfie) 시대를 거치며 부상한 나르시시즘 주관주의와 정확히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서 모든 우리 자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는 라쇼몽 효과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같은 대중 소설부터 < 어페어>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우리 문화에 스며든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처음 책을 읽을 당시에는 라쇼몽 효과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쿠타니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라면 류노스케의 「라쇼몽」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가정한 같습니다. 제가 소양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가쿠타니의 글도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언급한 대목만 가지고는 어림짐작만 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라쇼몽 효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류노스케의 「라쇼몽」 찾아 읽어보면 되겠죠. 가쿠타니는 과연 「라쇼몽」 자신의 글에서 어떻게, 어떤 맥락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가끔 라쇼몽 효과 의미가 무엇일지만 가끔 떠올렸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여러 글에서 만나게된 라쇼몽 대한 언급과 자료들을 모아 라쇼몽 효과의미를 이해해보려 합니다.

 




우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읽어봤습니다. 10페이지짜리 단편이라 금방 읽을 있습니다. ‘라쇼몽 한자어로 읽으면 라생문(羅生門)’ 해당합니다. 어떤 마을 외곽의 폐허가 2 누각의 문이 라생문이라고 불리는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곳이기에 동물이 들락거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누각의 나무를 뜯어다 내다팔기도 하고, 시체를 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오는 어느 , ‘화자 라생문을 지나다가  2 누각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화자 조심스럽게 누각 안을 보니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고, 어느 노파가 횃불에 의지해 시체의 머리털을 뽑고 있었습니다. 순간 화자 노파의 악행에 분노하여 칼을 들고 노파를 위협합니다.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물음에 노파는 대답합니다. ‘ 여자 시체는 사람을 속여 고기를 여자로 악행을 저질러 왔던 여자인데,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고 한다고 말이죠.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겁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화자 말을 듣고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납니다. 노파의 옷을 팔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가쿠타니가 말한 라쇼몽 효과 의미를 조금은 이해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가쿠타니는 《진실》  3장에서 다시 라쇼몽 언급합니다.

 


울프는 1989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어느 글에서 이런 상황 전개를 한탄하며, 미국 소설의 전통적 리얼리즘이 사망했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들이 “(자아의 세계로부터 나와) 이렇게 요동치는, 기이하고, 예측불가능하며, 돼지들이 발을 쿵쿵 구르며 걷는 바로크적인 우리의 나라로 향해 그것을 문학 자산으로 되찾 것을 촉구했다. (…) 울프는 기자의 목소리와 관점을 새로이 강조한 1970년대 뉴저널리즘의 영향력 있는 주창자였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선언이 문학계의 많은 이들을 전향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루이스 어드리크, 데이비드 미첼, 드릴로, 줄리언 반스, 팔라닉, 길리언 플린, 로런 그로프 같은 작가들은 수십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포드 매덕스 포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혁신자들이 「라쇼몽」같은 새로운 현실을 포착하고자 개척한 다중시점, 신뢰할 없는 화자, 뒤엉킨 이야기 구성 같은 장치를 여러모로 활용했다.”  

 


대목에서 가쿠타니는 「라쇼몽」 언급하며, ‘다중시점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 다시 읽어도 다중시점이란 표현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다양한 시점이 등장한다면 저처럼 소설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시점의 변화만큼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있을텐데요. 다양한 시점이 저에게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다만 소설 속의 노파와 화자 각자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하듯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해석만 찾아볼 있었습니다. 아니면 소설의 행간을 읽어 감지해 내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다시 가쿠타니가 언급한 대목이 소설과 맞지 않는 듯하여 혼란을 느끼던 , 단편 소설에 대한 작품해설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 가지 실마리를 찾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단편 소설 「라쇼몽」말고,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가 사실은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의 배경만 단편 소설 「라쇼몽」에서 가져와 적용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소설 「덤불 속」에는( 단편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각자 자신의 진실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포스터 출처]

By Daiei, (c) 1962

http://entertainment.webshots.com/photo/2011951000055228984dXleQp[dead link] accessed 01-March-2008,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644246



그러므로 가쿠타니가 《진실》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비판하며 언급하는 라쇼몽 효과 「라쇼몽」이란 작품은 사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가리킨다고 봐야합니다. 소설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영화  <라쇼몽>에서 분명히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해, 영화 <라쇼몽> 사실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소설  「덤불 속」 내용이었던 것이죠. 실제 단편 「라쇼몽」 아니구요. 그렇다면 가쿠타니가 말하는 다중시점 라쇼몽 효과 엄밀히 말하자면 덤불 효과 옳은 것이겠죠. 따라서 라쇼몽 효과라는 표현의 유명세는 사실  단편 소설 「덤불 속」에게 주어져야 마땅합니다.

 


퓰리처상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저널리스트 하트(Jack Hart) 글쓰기 《논픽션 쓰기》(정세라 옮김, 유유)에서 저자는 논픽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데, ‘시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의 마지막에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영화로 자주 인용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조차 명의 시점인물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


 




정리해봅니다. 가쿠타니의  《진실》 하트의 《논픽션 쓰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라쇼몽 효과 모두 다중시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실 경우 모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언급한 라쇼몽 효과 맥락은 사실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 속」 내용에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실제 단편 소설 「라쇼몽」 제가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시점 변화를 찾을 없었다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주었던 것이구요. 가지 이해하게 점은 미국의 문단에서 주로 회자되고 소비되고 있는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실제 「라쇼몽」보다는 다중시점이란 맥락에 초점을 맞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라는 점입니다.

 


라쇼몽관련 자료를 찾다가 한홍구 교수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역사이야기코너를 연재하며 글에서 라쇼몽 언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번에 발간한 역사서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한홍구 지음, 창비, 2020) 공저자 한홍구 교수라서 흥미롭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학비평가들이나 역사학자가 라쇼몽 언급할 ,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가 궁금했었고, 실마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에 라쇼몽 언급한 한홍구 교수의 글을 링크해두겠습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수많은라쇼몽 진실을 찾아」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487.html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https://ko.wikipedia.org/wiki/라쇼몽_(1950_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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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6호 - 2019.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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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 – 186(겨울)》를 읽은 감상

 


내게 문학이란 무엇일까



 

예기치 않은 눈이 펄펄 나린, 이번 겨울에 나와 함께 했던 계간지 창작과비평 겨울호(186) 다시 돌아본다. 나라가, 아니 세계가 바이러스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문득 진부한 의문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문학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계간지의 표지에 정리된 글들의 제목과 주제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모두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문학은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불완전성과 부조리함이 없다면 태어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문학은 우리와 사회를 가감없이 비추고 있었다



 

불과 전만 해도 조국사태 일본의 경제 제제 움직임과 일본 제품 불매 우리의 화두였다. 이제는 바이러스 기사 우리의 모든 관심사가 뒤바뀌어 버린   같다. 마치 언제 그런 문제가 있었냐는 말이다. 국내 확진자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고, 사생활이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눈총을 받고, 기피 대상이 되어갔다. 서울의 어느 카페 입구에 No Chinese라고 놓은 것을 지인이 보았다고 했다. 작년 말에 우리 사회는 No Japan 자랑스럽게 차에 붙이고, 가게 앞에 붙이지 않았던가. 이제는 차이니즈라니. 물론 극히 일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전염성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팍팍함 이유로, 또는 우리만은 살아 남기위해, 곤경에 처한 이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위험이 닥치지 않겠는가?’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문제는 당연시라는 지점에 있다. 겨울에 문예계간지 창작과비평 처음 만나고, 틈틈이 읽으면서 내게 문학이란 무엇일까를 막연히 생각해보았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지나 문학과 만나게 나에게, 진부한 질문은 결코 진부하지 않다. 문학이 자리매김하는 자리는 바로 우리 삶에서 당연한 당연하지 않다라고 바라보는 곳에 있지 않을까. 아마 문학의 역할이 이런 것이기에, 내가 계간지의 표지를 보며 문학의 존재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부조리함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라는 막연한 물음을 갖게 것일지도 모른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에서 동물로서의 인간이 유전자를 나르고 퍼뜨리는 생존 기계라고 표현한 대목이 떠오른다. 바이러스라는 개체 전체의 전략에 인간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그나마 공포도 똑똑한 인간이 앎을 통해 추가된 공포다) 바이러스의 위협에 문학 가장 강력한 백신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감염된 타자(사람과 다른 동식물을 포함하여) 격리하거나 배제하는 일을 당연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기술 지식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 집단의 전략을 극복할 있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 것이다. ‘문학 내가 타인의 시선과 관점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해줄 기회를 있다. 문학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문학적 상상력 통해, 당연한 현상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음 상상하고 발견하도록 한다. 이것이 문학 우리에게 있는 가장 강력한 효용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란 백신은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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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오늘은 이원석 작가의 서평 쓰는 다시 들여다보다가 머리 속에 계속 남아있는 내용을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책은 제가 가끔씩 들여다보는 책인데요, 얇아도 실속 있는 내용들이 밀도 있게 모여 있습니다. 가운데 서평의 전제라고 하는 () 나옵니다. 오늘 읽은 부분은 부분인데요, 여기에서는 글쓰기 이전에 독자로서 어떻게 책을 읽어 나가야 하는지, ‘독서의 태도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독서를 어떻게라고 묻고 있지만, 독서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독서의 목적을 어떻게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저자의 견해는 독자가 독서 목적을 분명히 정할 주문합니다. ‘우상 숭배냐 우상 타파냐라는 문구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견해를 문장으로 나타낸 표현은 온전히 매료되어야 제대로 비판할 있다라는 말이 되겠네요. 대상에 대한 애정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나아가 서평자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정하고 이를 밝히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서평은 정치적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평은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는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독후감과 다르며, 두루뭉술하게 입장을 정해서는 좋은 서평이 나올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보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되, 무엇보다 대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라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충고가 떠오릅니다


 




     제가 서평쓰기를 고민할 참조하곤 하는 도서는 황선애/김민영 작가의 서평 글쓰기 특강인데요, 책은 글쓰기 방법론 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들을 인터뷰하여 각자의 서평쓰기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책에 소개된 가지 방법론과 더불어 인문학자 김경집의 서평쓰기인터뷰 부분이 좋아서 가끔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런 성격의 책은 서평자 각자 다양한 글쓰기 방식이 있기 때문에, 책에 소개된 다양한 도움말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골라 적용해보면 됩니다.  앞의 서평 쓰는 에서 서평의 전제 소개한 서평자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를 명확히 밝히라 부분과 온전히 매료되어야 제대로 비판할 있다 말은 김경집의 비판적이되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라 말과 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쓰는 문장에서 여러 문제가 보일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대개는 자신의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퇴고하는 과정에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으로 저는 박민영 작가의 인문내공 참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사유를 하는 인간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간결한 안내서라고 있습니다. 생각 훈련법, 인문적 책읽기, 글쓰기, 글과 문장 다듬기 등의 다양한 지침이 종합적이고 간결하게 권에 담겨있습니다. 이전에 통독했던 책이지만, 때는 흘려 읽었던 겁니다. 이제 다시 글을 다듬고 문장을 개선해보려고 책을 다시 보니, 작가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제시한 예시처럼 제가 문장을 쓰고 있더군요. 과거에는 책을 읽어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보았기 때문에 것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이번에 책의 5장을 다시 읽어보니 문장의 문제점이 분명히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좋은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글과 문장을 다듬을 부담되지 않고 참고해 볼만한, 군더더기 없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퇴고할 , 자주 참고할 책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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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 – 186(겨울)

촌평 미래는 오지 않는다》를 읽고

(전치형·홍성욱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9)


 

미래 예측이란 바로 우리의 현재를 보살피는 일이며

자체로 미래를 만드는 행위다


 

이번창작과비평 겨울호(186) 실린 촌평 모두 흥미롭게 보였는데, 중에서 개인적인 관심사에 따라 과학기술의 담론과 관련 있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전치형·홍성욱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9) 대한 서평을 먼저 읽게 되었다. 서평을 작성한 강연실 교수는 마치 상공에서 새의 눈으로 지상을 조망하듯, 책의 경계 넘나들며 책이 다루는 문제의식의 윤곽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에게는 기술이 주도권을 사회에서 기술이 중심이 미래상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서평자 강연실 교수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에서 저자들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 의식을 주의 깊게 포착하여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래 예측은 이론과학이나 실험과학이 다는 . 인간 사회는 자연에 적용하는 정확한 예측 메커니즘을 그대로 적용할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예측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를 수행하는 사람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기술 진보를 거론하며 진행하는 미래 예측은 전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담론이 되는 미래 예측에는 누가 미래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소위 전문가 집단이 기술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미래 예측이란 자체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이해할 있지 않을까.


가지   주목한 부분은, 서평자가 책을 소개하는 몇몇 일간지의 소개글을 비판하는 대목이었다. 물론 서평자는 독자가 책의 핵심 논제를 오독할 가능성을 지적하는 대신, 책을 소개하는 주력 일간지들이 책의 핵심주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독자들이 흔히 지나칠 있는 오독의 전형을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책을 소개했던 일간지 담당자는 책을 읽지 않았을 같다. 서평가의 표현대로 주요 일간지의 책소개 글은 책이 비판하는 기술결정주의적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자는 사례를 통해 언론이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책의 논지를 간과했든, 의도적으로 회피했든), 우리가 어떤 가치를 향해 나아가려면, 우리의 현재 어떻게 바꾸고 변화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래 아마도 기술산업사회의 가장 위대한발명품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미래라고 하는 거대한 허구속에 우리가 노오력 해야하는 이유, 우리가 월급으로 평생 마련하지도 못할 아파트를 꿈꾸며 달려가야 이유, ‘인공지능 유토피아 꿈꾸며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가 녹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래는 오지 않는다에 대한 서평은 미래 예측이 미래의 기술을 예견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임을 환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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