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6구역 읽으며

윤재철 지음 | [창비]

 


 

「주인 떠난 빈집

   대문에는 출입금지 노란 테이프 두르고

   철거 예정 딱지 붙은

   이미 갇혀버린 좁은 마당 한켠에

   70년대생 늙은 감나무


   아직도 푸른 잎사귀 사이로

   주황색 가득 매단

   골목길 내다보고 있다

   벌써 무릎만큼 자란 풀들은

   길바닥으로 내려서고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이

   이별은 발밑에 있는데

   70년대80년대90년대2000년대2010년대

   아무 의심 없이 내려섰던

   지층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감나무는 이별을 모른다

   단지 겨울 지나며

   도시 어딘가 숨어 사는 텃새들

   마지막 사랑처럼 날아와 맞출

   주황색 가득 매단          


 (계간지 《창작과비평》 2019 겨울호, 109-110)





[서툰 감상]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겠다. 시나 소설은 내게 외계어나 마찬가지다. 소위 문과생들에게 수식이 가득 과학책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나는 시를 모르겠다고 말하기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해하지도 못할 시집을 사서 만다라처럼 책상 앞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문학계간지를 읽어보는 경험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호기심을 가지고 나의 심리적인 벽을 넘어보려 시도해본다. 일단 그냥 글자를 따라 읽어나간다. 사실 어떤 시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잡지에 실린 중에서 윤재철 시인의 방배6구역이란 시를 읽다가 어떤 기억을 떠올렸기에 나는 시를 읽으며 떠오른 단상을 글로 잡아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서울이란 대도시를 바라볼 때마다 떠오른 생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녀왔던 무언가를 망각하기로 결심한것이 아닐까하는 점이었다. 도시의 골목 골목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살던 사람은 장소를 떠나고 있다. 내가 어렸을 살던 집터는 이제 건물과 간격이 거의 없을 정도로 들어찬 오피스텔이 들어서있다. 사실 재개발 구역 뿐만 아니라 서울의 상가들은 점점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서울 시내에는 임대라는 글자를 걸어둔 상가가 많아지고 있다. 반면 어디에선가는 새롭고 번듯한 대형상가 혹은 백화점과 같은 몰이 등장한다. 언젠가 이태원 재개발 지구에 올라가본 적이 있다. 이태원 역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면 인적이 드물고 출입금지 테이프가 둘러쳐진 집들을 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집들과 앙상한 나무 혹은 인적이 없는 마당에 수북히 났던 잡초의 흔적들을 있다. 윤재철 시인이 방배6구역에서 묘사한 바로 풍경을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아직 푸른 나뭇잎이 달려 있지만, 시간이 지나 한겨울이되면 푸른 감나무잎마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에는 주황색 감들만 매달리게 것이다. 이태원 재개발 구역을 다녀볼 , 여름 사람이 관리하지 않아 마당에 무덤마냥 수북하게 자라난 잡초와 내부의 곳곳에 둘러쳐진 거미줄을 기억한다. 아직 재래주택이 모여있는 골목길 담벼락에는 심심치않게 감나무가 서있는 것을 발견할 있다. 주인없는 감나무들은 언제 베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도 나뭇가지 가득 감을 내놓는 것이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감들을 보며 상상해본다. 감나무가 처음 감을 열기 시작했을 무렵, 시부모를 모시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어느 며느리가 한가득 매달린 감을 따는 모습을 말이다. 며느리는 작은 바구니에 가득 감을 담아 이웃과 나누어 먹었을 법하다. 어렸을 보았음직한 이런 풍경은 이제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주인이 떠나고 철거가 예정된 집들과 감나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윤재철 시인의 시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글자와 이별이 예정된 우리의 모습을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유치한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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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강양구 외 지음 / 바틀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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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황정아 외 9명 지음 | [바틀비]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틈틈이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여러 저자들이 서평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은 모두 물리학 혹은 생물학분야 전공자들이다. 이제는 어느 누가 이과 전공인 사람들보고 필력이 약하다고 있을까. 저자들은 모두 편견과 달리 인문적인 소양과 필력을 인정받은 필자들이다. 이제는 문과 전공인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도록 요구받는 세상이다. 이과 전공인 사람들 역시 인문적인 소양이 필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사람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결핍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변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혹은 과학을 싫어하니까 문과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피사유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과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있고, 문과 공부를 사람이 양자 역학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그만큼 다원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의 출판을 기획한 과학책방 갈다 이명현 대표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별을 좋아하던 덕후였지만 문예반에서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며, 문장을 다듬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저자들도 글쓰기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아는 이공대생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만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책의 필자 10명은 각각 씩의 책을 골라 서평을 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목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지만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책만 고른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과학사에 감춰져 있던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도서도 있다.

 


서평은  독후감과는 달리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객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라는 주어를 많이 쓰기 보다는 필자라고 한다던가 하여 스스로를 대상화, 객관화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한 객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거리두기라는 방식이 필자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떤 글이든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문제의식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책에 실린 20편의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서평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과 결부시킨 글들이다. 바로 저자 자신들의 어쩌면 부족했던, 혹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내게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표출하고 독자가 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있었다. 저자 각각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통해 사회현상과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이 내게는 피부로 다가왔다.

 


서평의 기본 목적은 서평을 읽는 이가 해당 책을 읽게 하거나 혹은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울렸던 고른 만큼, 독자도 이와 같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는 이미 책에 소개된 권의 책을 읽고자 온라인 장바구니에 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과학자/과학저술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이들을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문이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나의 무관심과 무능에 대한 변명으로 제도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저자들이 부러웠던 점은 이들이 전문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부분보다는 필자가 감명을 받고 각자 영향을 받은 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책들을 읽은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것이다. 이들에게 영향을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 그래서 삶의 의미가 한층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다는 의미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말할 있을까? 많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책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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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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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기존의 전통과 관행에 균열을 내는 사람

 


언론분야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분야다. 굿바이, 편집장 읽고나서 저자에 대한 인상을 마디로 이야기해보면 그는 기존의 전통과 관행에 균열을 내려고 노력해온 사람이라고 정리해볼 있을 같다. 무엇보다 언론인으로서 저자는 일을 만드는사람이다. 사회 조직이나 어떤 형태의 시스템이든 집단에 속해있다면 나서서 일을 만드는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것이다. ‘일을 만드는 스스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이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이 되고 안정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이 고착화된 관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조직에서 저자 같은 구성원은 일을 벌이고 튀는유형의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일을 만드는유형의 인간이 수는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보다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도 일을 만드는사람이 지금 보다 많아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기자이자 편집자/편집장의 역할을 맡았던 저자가 일을 만들지 않았다면, 한겨레 토요판 모습은 분명히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고, 한겨레의 가지 굵직한 이슈들이 나오지 않았거나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결과했을 것이다.

 


예를 가지 들면 저자가 기획했던 동물 기사가 있다. 바로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훌라후프를 돌리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던 남방돌고래 제돌이삶에 관한 기사였다. 저자가 토요판을 책임지고 있을 진행되었던 취재와 보도의 결과, 제돌이가 다시 자유를 얻어 제주 앞바다로 나갈 있게된 일련의 과정들이다. 이야기는 개별 동물의 사례를 통해 동물권에 대한 관심과 주목을 요구하였고, 다시 이것이 인권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통찰을 주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저자가 일을 만들지 않았다면, 제돌이는 여전히 동물원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을 것이다. 당시 대선을 앞둔 긴박한 시국에 토요판 1면을 돌고래 이슈로 채워넣으려 했던 저자의 시도는 내부에서도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고경태 대표는 당시에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돌이 문제, 보다 크게는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 중요성에을 감지했던 것이다. 저자는 사회에 묻혀있던 굵직한 이슈들의 징후를 예민하게 느끼고 감수하는 능력을 지닌 같다. 나는 이런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예민한 감수 능력을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술가적 감수성을 가지고 시대의 징후 예민하게 느꼈던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일을 만드는편집장에게는 이러한 예민한 예술가의 감수성 또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관점에서 책은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역사 100 중에서 저자가 언론에 몸담았던 지난 30 년간의 경험이 녹아있는 기록이라 있다. ‘엄숙, 근엄, 진지하기만 했던 언론 매체의 분위기를 김규항과 김어준의 쾌도난담코너를 통해 바꿨던 시도는 단지 가지 예에 불과하다. 한겨레신문의 토요판 기획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내외에서 비판과 마주했던 일들은 다른 인상적인 예이다. 진보 언론사의 성격임에도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이니만큼 견해 차이도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담았던 조직에서 특히 일을 만드는 책에서 기획을 의미한다. 기획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완성하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이미 여러 가지가 유치하게 다가올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남의 흉내를 내고 따라하는 이야말로 유치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획단계에서 튀는아이디어를 추진하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상황은 보수 언론사에서도 다를바 없을 것이다. 다만 데스크를 누가 지키느냐의 차이일 같다. 그런 점에서보면 저자가 편집의 책임을 맡은 자리를 지키며 씨끌벅적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관철해낸 일들을 따라가다보면 신기한 점이 두가지가 아니다. 본인은 뚝심이라고 판단할 지라도, 남들에게는 아집으로 보일 있었을 것이다. 역시 정답이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반듯한 결과를 얻더라도 기껏해야 칭찬도 진부할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저자가 들려주는 지난 날의 경험들은 다양한 가치와 견해가 공존하는 민주사회, 직장에서 책임을 사람의 자리지킴과 물러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의 물음을 추가로 내게 던져주었다.

 


책을 읽으며 가지 인상적인 사건을 들자면,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과 작가 서해성 선생이 만들어나간 한홍구와 서해성의 직설코너에서 생긴 필화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하여 칼럼의 제목을 감 없이 지은 것이 발단이었는데,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저자는 분마다 울리는 전화와 욕설, 협박에 한동안 시달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너의 글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글의 맥락을 차분히 따져보는 사람이라면 신문사에 욕하지는 않았을 같다. 기사 이후 8일간 260명의 독자라는 사람들이 절독선언을 했다고 한다.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다음날 신문 1면에 사과문을 게시한 사례는 다시봐도 아쉬운 사례이긴 하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고 화를 냈다고 해도 모든 사례에 대해 사과를 필요는 없을 터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정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실제로 쉽지는 않은 문제다. 사건은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저널리즘 분야의 종사자들 뿐만 일반 독자들에게도 생각해볼만한 꺼리를 준다고 본다. 나아가 강준만 교수의 언급에도 주목해보게 되는데, 일종의 팬심 가지고 특정인에게 충성하려는 행동을 하려면 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작 본질적인 이슈 갖고 싸우라는 말이었다. 이것은 특정인에 대한 팬심 갖고 있는 사람들의 미디어 컨트롤에 대한 경계를 경계하는 말이었다. 저널리즘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도 귀담아 듣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할 염두에둘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구성에 대한 부분을 가지 언급하자면, 저자가 챕터 뒤에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이 내게는 읽기에 아주 불편하다는 점이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으로 빠져들곤 하지만, 책의 구성만큼은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구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짧은 주석이라면 해당 페이지의 하단에 각주 처리하여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보다 주석이라면 책의 뒤에 미주 한꺼번에 모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 습관에 따라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경우는 주석도 살펴보면서 확인까지 해보며 읽기 때문이다. 매번 챕터의 주석이 있는 부분의 페이지를 찾아  확인하며 읽는 과정은 내게는 고역이다. 책을 읽는 흐름을 깨뜨림과 동시에 손이 분주해져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책의 구성에 정답은 없을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 독자의 읽는 방식에 따라 독서를 하기에 불편을 느낄만한 부분이 있다. 이따금씩 주석에 나온 2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처럼 주석의 내용이 많은 저자의 글쓰기 방식의 경우, 책의 뒷면에 주석을 한꺼번에 모아두는 것이 나을 같다.  

 


책을 읽으면서 편집자, 편집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일해온 저자의 개인사를 따라가보았고, 나아가 언론 역사의 단면을 있었다. 묻혀 있던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공론화하였고, ‘걱정 입에 달면서도 많은 일들을 해낼 있었던 저자의 기획 원칙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여러 사건 중에서 역사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항상 가져야 결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사람살이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같다. 저자는 이렇게 나온 유치한 생각’, ‘아이디어들에 꽂히면 즉각 실행해나갔던 것이다. 기획자로서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자기 계발서같은 뉘앙스를 같아 조심스럽지만, 일단 해보라 것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특정인이 관여된 경우라면 일단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걱정많은 사람들에겐 귀담아들을만한 조언이다. 사람이 모든 일에 전문가가 아닌 만큼 함께 만들어갈 사람을 찾고 섭외하는 일도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굿바이, 편집장 읽으며  30여년간 언론분야에서 숨가쁘게 지켜왔던 저자의 업에서, 편집장의 자리에서 길어올린 삶의 통찰을 살펴볼 있다.     

 


책의 어디엔가는 편집장으로서 저자의 궤적을 보여주는 시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이다. 시는 워낙 많은 맥락에서 인용되고 활용되어 식상할지로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며 느끼는 감정은 시가 그래도  일을 벌이는사람의 고단함에 대한 위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대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158, 재인용 부분)  

 


그러므로 저자가 지니고 실천해온 철학을 마디로 뭐라고 묻는다면, 나는 기존의 관행에 균열을 내기라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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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대표는 주간지 편집기자 생활을 시작으로하여 한겨례에 입사한 편집자, 편집장 언론분야에 30 몸담았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책에 대한 내용 보다도 유치한 생각이 어떻게 아이디어가 있는가?’ 대해 기획과 편집자의 시선으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라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글쓰기(기사쓰기와 같은) 기획의 관점에서 적용되는 아이디어로 적용 범위를 좁혀야 이해가 쉬울 같습니다.  

 


우선 본인의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종을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강연 참석자 중에는 대부분이 언론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같았습니다. 언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이미 면접을 봤던 사람도 있었구요. 우선 고경태 대표가 본인의 글쓰기에 자극을 주고 심지어는 혁명적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책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 박경리 작가의 토지였습니다. 종을 이야기했는데, 각각 여러 권의 책이라 읽기에는 노력이 필요할 같습니다.

 


저자의 글쓰기 방침은 우선 쉽게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쉬운 입말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문어체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구어체로 쉽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은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단문쓰기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문장은 복문도 많은 편이지만 읽히는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구요


 

고경태 대표는 유치한 ’, ‘유치한 생각이란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기에 낮은 곳에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입니다. 질문이란 문제의식을 갖는 , 그리고 같은 침묵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어 곳을 파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인(이미 6권의 책을 펴낸 저자로서) 경험을 돌아보면, 책을 썼던 것이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더라는 말이구요. 유치한 생각은 (당대의) 담론을 일상의 것으로 끌어다 놓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고경태 대표가 한겨레에서 일하는 동안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주제는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 방사와 동물권 논의, 형제복지원 사건 보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등과 같은 굵직 굵직한 이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언론인들, 기자들에게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같은 시간이 지난 사건들오 여전히 제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탐사를 해보라고 말합니다. 아직 해결해야할 숙제가 많다고 말이죠. 이런 점에서는 유치해보이더라도 역사의 맥락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일, 시대 정신 혹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노력을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있게된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사진에 나오는 한겨레 21에서 시노하라의 8·15’ 표지 기사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60년대 일본 전공투 세대인 아버지, 그리고 당시 20대인 대학생 아들, 이렇게 3대가 맞는 일본의 패전 기념일(815)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거대한 주제의 담론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별주체들이 받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상당히 인상적인 기획 취재였습니다.

 


저는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고경태 대표에게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1] 굿바이, 편집장에서 인문학 칼럼 연재를 중단한 착한 필자’ 1, 2 나오는데, 실명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죠.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2] 중에 형제복지원관련 보도를 3부에 걸쳐 장편의 글을 연재했는데, 기사가 소설 구조를 차용한 글쓰기 시도한 기사입니다. 저도 글쓰기 방식이 궁금해져서 질문했는데요, 질문은 기존의 탐사 보도와 관련 기사 글쓰기와 기사가 어떤 점이 다른가를 물었습니다.  자세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만, ‘소설 구조 적용한 기사라는 젓은 서사 내러티브를 사용하여 호흡의 글을 썼던 것인데, 편이 200 원고지 120매정도의 글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A4용지 장에 대략 1500자로 계산합니다만, 그렇다면 기사는 A4용지 16 정도의 기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기사 치고는 상당히 글인 셈입니다.

 


이렇게 서사가 있는 논픽션 글쓰기 방식이 실제 기사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요즘에는 흔히 활용되는 것은 아닌 같습니다. 일단 서사 내러티브를 적용하려면 탄탄한 구성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호흡의 글과 탄탄한 구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으며, 독자가 읽지 않으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상 고경태 저자의 저서 굿바이, 편집장출간 기념 강연회를 다녀온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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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 고전역학: 견적(見跡) – 소의 자취를 보다

장회익 지음 |  [추수밭]

 


근대 철학 근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거인

 


[1] 데카르트


지난 1장에서는 조선 시대의 학자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했고, 이치 추구의 바른 방향을 여헌 선생이 제시했던 배경을 확인했다. 여헌 선생이 77세의 나이였던 1631년에는 아직 서양의 과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이었다. 따라서 여헌 선생이 사실상 독자적으로 자연의 이치 추구하는 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우주설 펴냈다. 안에는 <답동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상상의 어린이(동자)’ 설정하여 동자가 자연과 우주에 대해 묻는 장면에 저자(여헌 선생) 이에 답하는 형식의 글을 썼다. 한편 여헌 선생은 17세가 되던 해에 우주요괄첩이라는 일종의 개인 비망록 혹은 가죽 다이어리(수첩) 만들어 평생 자신이 추구해야할 학문의 분야와 공부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써놓고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가지 평생(임진왜란으로 집이 불타 떠돌며 생활하던 시기를 포함하여) 품에 넣고 다녔다. 여헌 선생은 우주요괄첩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수첩은 소년 여헌의 학문적 출사표이자 포부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당시 사대부들의 공부방식이 학문의 스승이 되는 성인들의 인품과 학식을 따르고 경전에 대한 주석을 다는 정도의 학문 활동이었음에 반해, 여헌 선생은 학문의 영역에 성역이란 없음을 밝힌 것이었다. 여기에는 성인이라도 피할 없었다. 당시의 시대를 고려해보면 위험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헌 선생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의심스러운 점을 따져보고 이치를 캐묻겠다고 다짐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사례이기도 하다.

 


서양(당시의 유럽)에도 여헌 선생과 비슷한 견해를 가졌던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여헌 선생과 거의 동시대 인물들이었다. 바로 이번 2장에서 주로 언급되는 데카르트와 뉴턴이다. 사람은 수학이라는 실증적 도구를 활용하여 현실에 드러난 이치의 궤적 찾아냈다고 장회익 선생은 평가한다. 여헌 선생은 새로운 수학을 충분히 익히지 않았고(물론 당대에 조선에서도 예를 들면 정수론 같은 이론은 서양의 학문에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치를 밝히기 보다는 인식의 제시하는데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있다. 데카르트는 41세에 방법서설(1637)이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데카르트는 학문을 위한 진리 탐구 방법론을 기술했다. 이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여헌의 <답동문> 견주어볼 하고, 데카르트가 보다 본격적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과 대상에 대한 지식을 논의하는 세계 여헌의 우주설 비견된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떤 스승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앎을 추구하고자했다.

 


세상이라는 속에서 공부하고 얼마간의 경험을 쌓는 년의 세월을 보낸 , 나는 어느 자신 속에도 연구할 있다는 것과, 길을 선택하는 데에 정신력을 기울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방법서설부분 재인용)

 


데카르트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보고 싶어 대도시 파리로 갔다. 파리의 흥청망청한 사교계에 입문하여 유흥에 젖어 있던 생활을 하다가 당시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거론하던 파리의 지성계에 매료되었다. 이후 거처를 옮겨 은둔하다시피 하며 수학과 과학에 몰두했다고 한다. 물론 데카르트는 공부만 것은 아니었다. 승마와 검술을 배우고,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보수를 받지 않고 군복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데카르트는 군인의 신분으로도 앎에 대한 탐구를 지속할 있었다.   

 


한편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썼던  (1637) 메르센 신부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의 의도에 대해 밝히고 있는 부분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책의 제목을 방법에 관한 논고 아니라 방법에 관한 서설이나 견해 정한 것은, 여기서 의도가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방법서설)

 


다시 말해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마 자세로 책을 것이 아니라, ‘나는 앎에 이르는 , 진리를 탐구를 위해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점을 데카르트 자신이 편지에서 직접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여헌과 데카르트의 다른 공통점은 여헌과 데카르트 모두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여헌 선생은 임진왜란을 만나 집이 불타고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다녔던 시기가 있으며,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 받은 여행을 다니며 지식인들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동적인 여건 속에서도 공부 계속할 있었던 것은 사람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있다. 사람 모두 생애의 어느 시점에서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뜻을 세웠기 때문이다.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헌의 비밀 다이어리 혹은 가죽 수첩에 해당하는 우주요괄첩 데카르트가 <올림피카 Olympica>라는 제목의 노트에 대응한다고 있다. 여헌이 앎에 이르는 길에 시도하는 회의의 과정에 성역이 없음을 이야기했다면, 데카르트는 자신이 앍고 있던 모든 진리를 의심하고 심지어 거짓으로까지 간주하며, 이성이 안내하는 바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저자 장회익 선생은 인식의 순간이 바로 서구 지성사에서 고전학문과 근대학문을 나눌 분기점이 된다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회의를 거듭하고 이치를 따지던 과정에서 나온 명제가 바로 자신이 철학의 1원리로 삼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인 것이다





[그림: 데카르트를 그린 초상화에서,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밟고 있다. 이것은 진리로 알려진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신의 이성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상징처럼 보여주고 있다.]





[2] 데카르트라는 거인의 어깨에 오른 뉴턴의 등장

 

데카르트 사후 11년이 지난 1661 9,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19세의 청년이 입학했다. 아이작 뉴턴이라고 하는 청년은 대학에서 노트 하나를 들고 학기를 시작했다. 노트에는 당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관련된 내용이 한동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공백이 이어지다가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는 다시 철학에 관한 의문들이란 제목이 적혀 있다. 뉴턴의 대학 노트에 등장하는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노트에 적힌 단서를 들여다보면, 데카르트보다 46살이 어렸던 뉴턴(1642 ) 이렇든 대학생 시절 데카르트 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정황이 보인다. 아울러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뉴턴의 노트에서 배제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뉴턴이 가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여헌 선생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회의함에 있어서 성인도 성역이 없음을 말했던 것처럼, 청년 뉴턴의 지적 수련기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지배적인 앎의 스승을 따르기 보다 자신의 앎을 추구하고자 했던 청년의 의지를 읽을 있다.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공부를 해나갔는데, 운좋게도 칼리지 특대생으로 선발된 행운을 누렸다. 물론 이것도 기본적인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후 1666(당시24) 뉴턴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노트에 기록했다. 때는 역병으로 학교를 떠나 시골 고향집에서2년여 기간(1665-1667) 동안 홀로 공부했던 기간에 이루어졌다. 바로 시기에 고전역학으로 불리는 분야의 기틀을 잡게 것이다. 데카르트 물리학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데카르트 좌표계를 도입한 뉴턴은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새로운 수학적인 도구를 고안한다. 그것이 바로 미분 적분 것이다. 과정에서, 혹은 고민의 결과 뉴턴은 고전 역학에서 기존의 공간에 대한 개념과 다른 인식을 있게 되었던 같다. 책에서 저자 장회익 선생이 주목하는 부분은 공간을 인식하는 관념의 다르면 공간에서 물체의 운동에 대해 도출되는 질문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간에 대한 고대의 자연관은 평면(2D) 떨어지는 작용하는 수직축(1D) 상정하는 공간으로서, 공간의 축에 동일한 물리 규칙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 중력이 예컨대 수직축 방향에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 이러한 공간에 물체가 있을 경우, 물체는 반드시 수직방향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 공간에 있는 천체들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중력과 무관한 공간이 정의되면 축이 대등하며(다시 말해 축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의미), 공간에 물체가 있을 경우,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사과가 떨어지게 되는가?” 질문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 현상은 완전히 다른 질문을 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한편 여헌 선생의 삶과 여헌의 진리 추구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한 1장에서 여헌 선생은 예측적 대한 입장을 <답동문>에서 분명히 밝힌 있다.

 


얻어진 이치를 통해 지난 일들을 추구해보면 오늘의 일로써 지난 만고의 일들을 가히 있으며, 앞으로 일들을 추구해보면 다가올 만세의 일들 역시 오늘의 일을 통해 가히 알아낼 있다.”(53)

 


저자는 여헌 선생의 이러한 예측적 관한 논리가 뉴턴의 법칙(물체 운동 변화의 원리) 통해 현재 물체의 상태를 , 미래의 운동 상태를 있다라고하는 뉴턴이 고전 역학에서 완성한 관념과 대등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물론 근대 과학의 거인, 데카르트와 뉴턴은 수학이라는 정교한 도구를 활용하여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물의 이치에 대한 궤적을 명백히 밝힌 반면, 여헌 선생은 수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고, 진리 탐구의 방법론 이상으로 과학적인 결과 얻어낸 것도 아니었다. 아쉽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고전과학의 기틀이 되는 예측적 일반적인 구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절대적 공간과 절대적 시간을 상정하고 물체의 운동 원리를 알고, 대상 혹은 물체의 처음 상태에 대한 정보만 알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물체의 나중 상태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있다는 것은 정말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물론 뉴턴의 고전 물리학은 현대에 와서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계기가 등장하지만, 혜성의 운동과 같이 천체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예측하는데 성공한 인식의 틀이다. 고전 물리학이 흔들리게 지점은 아마도 3장인 상대성이론에 대한 장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2장에서는 17세기의 거인, 데카르트와 뉴턴이라는 인물들이 지상과 천상의 모든 물체들에 두루 적용되는 예측적 앎의 정교한 체계를 완성했다 점을 이번 장에서 인정하고 넘어가면 같다. 이러한 업적의 토대에는 거인이 바라보았던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같다. 결과적으로 공간에 대한 고대의 관념(2D+1D) 근대과학의 관념(3D)으로 전환될 있게 것이 고전 물리학이 가져온 중요한 영향이었다고 있겠다. 무론 이러한 업적이 가능했던 사건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초상화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기존의 지식과 인식의 틀에 도전하기, 다시 말해 당연한 것에 대한 회의와 진리 탐구에 대한 강한 의지와 뜻을 세운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고전역학을 인식의 틀로 하는 2장에서는 지난 1장과 마참가지로 동아시아의 조선과 유럽의 지식인들이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예측적 대한 태도를 비교해가며 살펴볼 있었다.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를 (진리)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 빗대어 전개되고 있는 점도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구도자는 무턱대고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소의 발자국을 찾듯이 진리의 실마리를 찾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로서 언제나 현재 상태를 알고, 변화의 원리를 알면 미래의 상태를 있다는 고전역학의 인식틀과 마찬가지로, 처음 상태와 나중 상태에 대한 변화의 원리라는 틀을 유지한 , 자연을 바라보는 여러 관념틀을 적용하게 것이다. 그래서 3장의 관념틀은 바로 상대성원리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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