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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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흑역사 속에서 희망 찾기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북하우스] (2023)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는 기자인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자가면역 기능의 이상에 의한 뇌염이 조현병이라는 오진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할 뻔했던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진단을 한 의사들이 보기에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경우, 책임감 있고 주의력 있는 의사의 노력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뇌염을 판정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은 결코 사소한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와 닿아 있었다.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거울삼아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차이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후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세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 시기부터는 자연을 바라보며 모든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분류하기로 이어졌다. 어떤 기준에 따라 대상을 비슷한 것 끼리 연결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속성을 지닌 존재끼리 모으면 자연스럽게 차이가 드러났을 것이다. 이 과정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기본적인 세계 이해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존재에게 나름의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곧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는 개체와 집단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인 셈이다.


 

우리는 인류사에서 자연에 이름을 붙이고 대상을 분류한 대표적인 사례를 잘 알고 있다. 학명이라는 용어로 생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의 린네식 분류 체계를 사용한 전통을 떠올리면 된다. 분류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란 개념 하나마저도 얼마나 불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인류는 아직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파악하고 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다. 현재 통용되는 개념에 적용되지 않는 생물들도 다수 존재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개념 하나도 인간이 규정한 분류의 개념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알게 되면 놀라게 된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앞에서 언급한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는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하는 경계 역시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보여준다. 저자 역시 주요 정신의학 진단들은 모두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296)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의 핵심 인물인 데이비드 로젠한에 주목해보자.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몇 명의 가짜 환자와 함께 직접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시설에 수용되는 것이다. 각자가 정신병동에서 지낸 체험을 바탕으로 20세기 정신의학사를 새롭게 쓸 논문을 내게 되었다. 그들은 이 실험을 통해 정신의학에서 정신질환의 진단이 자의적이며 맥락 의존적임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정신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혹자는 이 작업을 정신의학의 얼굴을 바꾼, 기념비적 성취라고 일컫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여기에서 출반한다는 점이다.


 

로젠한의 실험을 담은 논문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정신의학계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수용하는 절차나 시설에서의 돌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정신의학에 대한 불신도 증가했으며 심지어 정신질환자를 위한 병원도 속속 문을 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정확한 진단을 위한 엄밀한 기준이 마련되었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돌봄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는 고무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병원이 사라지면서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될 시설이 마땅치 않게 되고, 때론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더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엄밀한 진단 기준을 마련하면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환자 내부에서 찾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외부, 그러니까 외부의 고압적인 어머니나 나약한 아버지의 영향을 전제한 프로이트적 해석에 따랐던 것이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게 되었다는 것은 신체적, 생화학적인 증상을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낳았다. 따라서 이 변화는 현대의학이 약물의 과잉 처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 셈이기도 하다.


 

이 사례는 의학의 역사에서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내부에서 찾을 것인지를 두고 대립했던 두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한 가지는 신체 내에 4가지 체액이 있어서, 이 체액 사이의 기능 이상이나 불균형으로 질병이 일어난다고 보는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관점이 있다. 신체 질병의 다른 원인과 관련한 관점은 질병이 외부로부터 온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현대의 세균이나 감염으로 인해 발병한다고 보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은 연금술사로 더 잘 알려진 의사 파라켈수스의 관점이다. 다만 정신질환과 다르게 신체 질환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는 관점이 발병했을 때 약물로 이 원인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이나 발병의 원인이 외부인지 내부인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 여전히 기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한 논의도 서양의 2분법 적인 사고의 범주 내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탐정이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단서를 퍼즐처럼 모아 점차 뚜렷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존경스러운 업적을 이루어 낸 로젠한의 논문이 상당 부분 날조가 되었음을 밝히는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반전이었다. 게다가 로젠한의 논문은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주어진 실험 자료를 이 결론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날조하여 완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이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궁금했다. 저자가 찾던 가짜 환자들은 찾을 수 있을까? 혹은 어쩌면 이 가짜 환자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암울한 예감까지 들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한 가지 이슈는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의 경계에 관한 물음이다. 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혹은 이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일반적으로 확장해보면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중대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음에도 구분을 강요함으로써 비극이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성차별 문제), 이성애와 동성애(성소수자 문제), 백인과 유색인(인종차별 문제)과 관련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는 우생학의 역사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우리가 정상인과 장애인을 멋대로 규정하고 구분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주제에 금방 매료되었다. 한편 저자의 관점이 왠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데, 저자의 관점과 연결지점이 닿아 있는 책 2권이 떠올랐다. 하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란 표현은 인간의 관념적 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바다 속의 모든 생물을 이 범주에서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음을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와 함께 고민한 책이었다. 여기에서도 역사상 유래 없는 우생학의 폐해를 언급하는 대목과도 닿아 있었다. 또 다른 책은 자연에 이름 붙이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에게 자신의 책을 쓸 수 있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책 역시 본격적인 분류학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생물을 분류하고 경계를 온전히 정의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가짜 환자, 로젠한 미스터리 이 두 권의 책의 계보를 이으면서 특히 정신의학 부분으로 관심을 확장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인간이 마음의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말해준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친 사람이라도 항상 미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까지 이어진 행동의 연속체를 오가며, 살면서 이 연속체의 다양한 지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자가 5년 이상 진실을 알기 위해 이 모든 일에 뛰어들어 붙들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한 가지 이유로는 자신과 동일한 증상을 보였음에도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증상이 악화되었다가 사망한 환자를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또 다른 거울상과도 같은 환자가 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정신의학에 있어서 사람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돌봄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유산, 곧 병원이란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는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바라고 있다





[책속으로]

[1] "우리가 마음의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가 흐려졌다."(55)

"(현대의학은)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없다."(68)

[2]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125)
- 로젠한의 논문에 나오는 문장.

[3] "일단 ‘정신질환자’나 ‘조현병’이라는 꼬리표가 부착되고 나면 이것을 없애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특히 의사의 결론과 위배되는 증거가 뒷받침하는 증거에 밀려난다면 손쓸 방법이 없다."(147)

[4] "미친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미친 행동을 하진 않는다.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까지 이어진 행동의 연속체를 오간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연속체의 다양한 지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이며,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을 맥락이 좌우할 때가 많다."(235)

[5] "전기충격요법은 이탈리아 의사 우고 체를레티가 시작했다. 그의 조수가 로마의 한 도살장에 들렀다가 전기 쇠막대로 충격을 받은 돼지들이 유순해진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238)

[6] "문제는 지역사회가 환자들을 돌본다는 꿈이 말만 그럴듯했지 실현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 지역사회 돌봄 모델은 경증 장애인에게 유명무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중증장애인은 방치되거나 외면을 받았다."(252)

[7] "증상과 징후는 물론 아주 실제적인 것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수께끼였다."(296)

[8] "내가 보기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편람의 방식 때문에 정신의학의 실태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환자를, 인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 이것은 오진을 부추길 수 있다."(301)

[9]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대다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그대로 있으며, 그들이 받는 열악한 처우는 평범한 대다수 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키지의 시대와 오늘날의 진정한 차이라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이제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밖에 없다."

[10] "로젠한은 모든 곳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388)

[11] "신체냐 정신이냐, 뇌냐 마음이냐? 난감한 이 문제가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 우리는 어떤 질병이 다른 질병보다 더 우리의 공감ㅇ르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417)

[12] "의학에 대한 이런 믿음, 우리의 치료자, 진단, 시설에 대한 이런 믿음은 로젠한이 망가뜨리는 데 힘을 보탠 것이자 스피처가 바로잡으려고 애쓴 것이며, 제5판을 둘러싼 논란과 교도소 시스템과 관련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더욱 뒤흔든 바로 그것이다. 믿음은 정신의학이 잃어버린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 희망은 꼭 필요하다."(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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